2023년 5월 27일 랑카위 로열 요트 클럽 첫날
어제 저녁, 랑카위 전방 35마일 바다에서 갑자기 전화가 된다. 김석중 선장님께 연락을 하니 원래 가려던 곳이아니라, 로열 랑카위 요트 클럽에 계신다고 한다. 한밤중이고 뭐고 무조건 오라신다. 기다리신다고. 그렇게 전화를 끊었는데, 35마일에서 되던 전화가 11마일이 되도록 안 터진다. 9.8 마일에서 다시 전화가 터졌는데, 랑카위 가운데로 뚫고 오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고 하신다. 그래서 남쪽으로 섬을 완전히 돌아 오른쪽에서 직진해 오라시고,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신다는 거다. 펜더는 모두 오른쪽에 달라고 하셨다. 그래서 섬을 돌아가느라고 2시간이 4시간이 되었다. 안전이 제일이다. 안전하게 로열 랑카위 요트 클럽 마리나에 접근하니 리치 파라다이스호의 마스트 등을 다 켜놓으시고, 전등으로 신호를 주신다.
오전 6시 20분. 마리나 안으로 들어가니 3분이 기다리고 계신다. 눈물 난다. 누가 한밤중 타국에서 이토록 잠도 안자고 기다려 준단 말인가? 3분 덕분에 수월하게 계류하고 수도라인까지 연결해 주신다. 함께 김석중 선장님의 리치 파라다이스에 가 커피 한 잔을 했다. 그런데 30분 후에 아침식사를 하러 오라는 거다. 진짜 염치없다. 그래도 오랜만에 한국 분들 만나서 수다도 떨고 맛난 아침식사도 대접받았다. 나는 드릴게 없어서 이탈리아에서 산 스파게티 면과 토마토소스를 드렸다. 이탈리아에서 스파게티 많이 사놓길 잘했다.
어친 식사를 하고 마리나 관리 사무실에 가서 전기 컨센트를 연결해 달라고 했다. 콘센트 보증금이 150 링깃 (43,000원)이다. 마리나에서 나갈 때 돌려준다고 하니 계류비에서 제할 생각을 한다. 하버 마스터와 세관, 이미그레이션은 내일 가도 된다고 한다. 진짜 제대로 자유롭다. 지금까지 마리나 중에, 크레타 하니아 마리나와 랑카위만 이렇게 제대로 자유 국가의 마리나 면모를 보여준 거다.
이후 300미터 거리의 하버에 가서 세븐일레븐에 들러 한 달짜리 무제한 SIM 카드를 샀다. 34.5 링깃, 한국 돈 만원이다. 이러니 한국의 통신사가 얼마나 바가지 인지 금방 비교가 된다. 특이 한 것은 무제한 핫스팟으로 해 달라고 하지 않으면, 3G 사용 후 핫스팟은 끊긴다. 먼저 와 계신 김석중 선장님의 크루분들이 알려 주셨다. 어쨌든 하버는 국제항이라, 면세점도 있고, KFC도 있고, 스타벅스도 있다. 다만 줄이 길고 종업원들이 좀 느리다. 오랜만에 아이스커피를 마셨다.
로열 랑카위 요트 클럽은 제대로 문화와 격식을 갖춘 마리나다. 우리보다 후진국인 말레이시아가 요트 마리나 만큼은 제대로 선진국이다. 부럽다. 전 세계의 수많은 요트들이 이 섬까지 와서 계류 중이다. 또 수많은 관광객들이 하루 종일 마리나를 드나든다. 제대로 해양레저 사업을 하고 있다. 부가가치가 높다. 아직 우리나라엔 이런 제대로 된 마리나가 없다. 내 고향 강릉에 바로 이런 게 생겨야 한다.
점심은 햄버거 하나 먹으려다, 마리나의 바 겸 레스토랑이 너무 멋져서 무리해서 15,000원 짜리 식사를 했다. 내일 각 엔지니어들을 불러 견적을 받아보고 수리를 하려고 한다. 일단 냉장고 엔지니어는 내일 오후에 만나기로 했다. 당장 야채가 떨어져 랑카위의 땡볕을 걸어서 1Km 거리의 Billion Duty Free Super market에 가서 오이, 양배추, 감자, 파, 사과 계란을 샀다. 41.45링깃 (11,922원) 이다. 가격이 마음에 든다. 이래야지 장 볼 맛이 나지.
돌아보다 보니, 마리나 레스토랑 곁에 엔진 부품 가게와 세일 요트 부품 가게가 있다. 당장 들어가 보니, AIS 장비는 없다. 그건 다른 가게를 알려준다. 마스트에 올라가 등을 갈아줄 일꾼과 풍향계 수리할 사람을 수배해서 월요일 알려 준단다. 엇! 급수관 호스가 있다. 물어보니 1미터에 3링깃. 당장 3미터 샀다. 또 이탈리아에서부터 찾던 화장실 LED 형광등이 있다. 이건 비싸다. 350 링깃. 당장 사와서 온수 보일러 급수관을 갈고, 화장실에 LED 등을 달았다. 이건 예상에 없던 수리 및 지출이다. 그래도 오늘 두 가지 해결했다.
갑자기 문자가 왔다. 어떻게 알았는지, 디젤을 사라는 거다. 리터당 3,28 링깃, 943.46원이다. 가격 좋다. 배달까지 해주니, 오 이거라면 사야겠다. 내일 아침 배에 디젤을 넣어보고 빈 통 숫자를 계산해서 문자를 주기로 한다. 김석중 선장님도 40 리터 더 사기로 하신다.
어제 꼬박 밤새서 피곤한데 잠은 오지 않는다. 저녁에 더블로 열심히 자자. 일단 이렇게 하나씩 일을 해결하고 있다. 내일 오전엔 하버 마스터와 세관, 이미그레이션에 가고 오후엔 냉장고 기술자를 만나기로 했다. 내일도 몇 가지 작업이 진행된다. 흐믓하다.
오후 6시. 로열 랑카위 요트 마리나를 드론으로 촬영했다. 멋지다. 드론 촬영 후 리치 파라다이스로 오랜만에 한국어로 수다를 떨었다. 무척이나 고맙고 행복한 랑카위 첫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