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는 구원받은 사람은 궁극적으로는 어떠한 실패도 없이 반드시 성화를 이뤄간다고 주장하고, 비개혁주의는 구원받은 사람도 배교할 수 있고 성화에 실패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개혁주의 진영의 주요 신학자 박영돈 교수님은 교회에 다닌다면서도 구원의 목적인 성화에 열심도 없고 별다른 진전도 보이지 않는 자는 거짓 구원의 확신에 빠진 자이므로 자신의 구원의 첫 출발점을 의심해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기독교인이 윤리적인 삶,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삶에 둔감한 이유는 실은 구원받지 못하고서도 구원받은 줄 오해하고 있는 탓이라는 거지요.
성경은 한 번 구원받은 자도 배교할 수 있고 성화에 실패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고 믿는 저로서는 박 교수님의 주장에 50퍼센트만 동의합니다. 물론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20)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할 때 박 교수님의 방향에서 현 상황을 진단하고 성화의 삶을 독려하는 거나, 구원받은 자도 방종할 수 있으니 때마다 회개하고 거룩한 삶에 더욱 열심을 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비슷한 목적을 가졌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전자의 입장은 참된 회심을 경험한 사람도 타락할 수 있다는 부분을 간과하기에 회심 이후 성장이 더디거나 비윤리적인 삶과 관련된 신앙 문제의 모든 원인을 참된 회심 경험의 유무를 가리는 출발점 하나로만 너무 쉽게 귀속 또는 환원시켜버리는 약점이 있습니다. 다른 복잡한 많은 원인들로 신앙생활에 여러 모양의 어려움을 겪는 많은 참된 신자들에게 괜히 구원을 의심케 하는 것으로만 문제 해결의 방향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가운데 억지로 또는 도식적으로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고 일원화된 해결책을 모색하려 할 위험성이 있다고 느낍니다.
사람은 어떤 다른 한 사람의 참된 회심 여부를 함부로 판단하거나 감별하거나 정죄할 자격이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구원 문제는 하나님과 각 당사자만의 인격적인 일대일 관계 속에서만 이뤄지고 그런 만큼 각각의 경우가 모두 특별하게 존중되어야 할 귀한 일이니까요. 그래서 제3자는 그의 삶의 열매들을 보고 대충 식별할 수밖에 없고, 의심스러울 경우에도 함부로 판단하는 말을 할 수 없고 다만 간증을 해주거나 좋은 책 등을 소개해주면서 기도해주는 정도로 간접적인 도움을 제공해주는 데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삶의 열매가 부족한 한 개인에 대해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런 겸손한 태도로 접근하려는 것과 그 부족함의 원인을 참된 회심의 경험이 없어서라고 섣불리 단정지으려고 하는 것은 다릅니다. 참된 회심을 경험하고서도 자라온 환경이나 삶의 여건, 개인적인 기질이나 심리적 상처 등으로 열매맺는 삶에 연약한 모습을 보일 수 있으니까요.
참된 회심도 중요하지만 회심 이후 참된 성화의 삶도 중요합니다. 이 또한 구원의 목적을 이뤄가는 여정에 중요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이뤄가야 하기에 탈락의 위험성이 전제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저는 참된 회심을 경험한 자들은 대부분 구원의 목적을 이루는 데 실패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다만 지속적으로 죄에 빠져 살면서도 회개하지 않거나 의도적, 습관적으로 불순종하는 삶에 젖어 있는 경우만 피한다면 크게 문제될 것 없이 구원의 목적을 이루게 된다고 믿습니다.
물론 사도 베드로가 권면하듯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는"(벧전 1:9) 일에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벧후 1:11)는 말씀대로 구원 받기에 넉넉한 삶을 사는 것이 신자의 목표가 되어야겠지만, 차선으로 좀 부족해도 지속적인 불순종과 회개 없는 삶에 안주하지 않는다면 쉽게 구원을 잃게 되는 일은 많지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결국 궁극적인 구원의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관건은 실은 자신의 죄인 됨을 알고 오해나 편견 없이 복음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참된 회심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해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만큼 올바른 복음전도의 가치는 여전히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 한 영혼의 구원에 가장 중대하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에게 최종적 탈락의 가능성을 열어둔 채 성화의 삶을 독려하는 것과 그 가능성을 닫아두어야만 하는 교리적 전제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비윤리적인 삶의 원인을 참된 회심 경험의 유무 탓으로만 손쉽게 돌리려는 것은 비슷한 듯하나 많이 다르다고 느낍니다. 이 차이점을 염두에 두고 참된 회심과 그 경험 이후 열매 맺는 성화의 삶의 중요성을 긴박하게 환기시켜주는 메시지로만 받아들인다면 아주 귀한 설교의 한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개혁주의 진영에서 이만한 영적 긴장감을 갖고 신자의 경건하고도 깨어 있는 삶을 강하게 도전해주실 분이 박 교수님 외에도 많이 있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첫댓글 그렇습니다. 복음은 생명으로 인도하지만, 다른 복음을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