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헤어핀의 목적
- 네트 앞에 짧게 떨어뜨려 상대방으로 하여금 높이 쳐올리게 만들어 공격 주도권을 가져오는 것
모두가 아는 사실이죠? 그런데 진짜 저 목적에 충실히 사용하시고 있나요?
초중급 동호인은 헤어핀을 공격권을 유지하는 기술이라는 인식보다는 '득점 기술'로 인식하는 편입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초급~중하급 시절에 정말 지독히도 유린 당하는 기술 중에 하나가 헤어핀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셔틀콕이 밑으로 떨어지면 퍼올리기 급급한데 상대방은 가볍게 툭 헤어핀으로 쉽게 득점하고, 사람이 앞에 있는데도 크로스헤어핀으로 빼는 기술은 정말 멋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배드민턴에서 구사하는 모든 구종 중에서 가장 양날의 검과도 같은 구종을 꼽으라면 바로 헤어핀입니다.
성공하면 좋지만 실패하면 처절하고 확실한 응징을 당하는 기술이 헤어핀입니다.
헤어핀을 득점 기술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가장 큰 문제는,
내가 헤어핀을 놓아도 득점이 안되겠다고 판단되면 헤어핀을 놓지 않고 올려 버리는 선택을 당연시 한다는 것입니다.
헤어핀은 상대편이 당연히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자유낙하는 물체는 중력가속도에 의해 점점 속도가 빨라집니다. 높은 곳에서 지면에 가까워질 수록 낙하 속도는 점점 빨라집니다.
헤어핀은 네트 바로 위에서 떨어지기 때문에 떨어지는 속도가 매우~~~ 느립니다. 상대편이 받으러 올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합니다.
따라서,
헤어핀은 상대편이 퍼올리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라고 확실히 인식하고, '자 올려줘봐'하면서 구사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헤어핀을 구사한 다음의 행동도 매우 중요합니다.
- 상대편이 다시 헤어핀을 놓지 못하고 반드시 퍼올리게 만들기 위해 라켓을 들고 위협을 해야 합니다.
(내가 놓은 헤어핀이 얼마나 아슬아슬하게 넘어가나, 받으러 달려오는 상대방이 과연 받을 수 있을까 없을까~ 관람객 모드에 빠지면 안됩니다)
- 내가 놓은 헤어핀 타구를 보지 말고 상대의 라켓을 뚫어지게 쳐다 봐야 합니다. 절대 타구를 보지 마십시오.
이 상황에서 크로스 헤어핀을 시도하는 동호인이 꼭 있는데, 라켓을 셔틀콕의 측면으로 빼는 동작이 보이거든 처절한 응징을 준비하면 됩니다.
- 상대편이 아슬아슬하게 퍼올리고 중심이 무너져 중립 포지션으로 돌아가는 동작이 늦어졌다면,
내 파트너가 반드시 그 쪽으로 때릴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적극적인 넷킬 준비를 해야 합니다.
배드민턴의 타구는 치는 순간 그 전술 목표를 달성합니다. 하이클리어는 상대가 물러나게 하고, 드롭은 상대를 끌어들입니다.
헤어핀은 치고 나서 위협하는 다음 동작까지 해야만 상대가 퍼올리게 만드는 전술목표를 달성하는, 2개의 동작이 연결되어 있는 유일한 타구입니다.
2. 헤어핀의 탄도
헤어핀은 구사하는 위치가 네트에 얼마나 붙어있느냐에 따라 탄도가 전부 달라지겠지만 탄도의 유형으로 정리하면 위와 같이 3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빨간색이 가장 이상적인 헤어핀의 탄도입니다.
네트를 넘어가기 전에 최고점에 도달하고 떨어지면서 네트를 아슬아슬하게 넘어가는 탄도.
파란색 탄도가 흔히 보는 초급~중하급의 헤어핀 탄도입니다.
네트에 뜨지 않게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서 헤어핀을 앞으로 밀면서 높이를 조절하죠. 최고점이 네트 바로 위이긴 하지만 완만하게 떨어지기 때문에 상대방이 달려들면서 드라이브나 공격적인 언더 드라이브로 역습에 나설 가능성이 높습니다.
녹색 탄도는, 선수나 상급자 게임에서는 거의 구경할 수 없지만, 헤어핀을 놓는 시점에서 상대편이 2스텝만에 도저히 닿을 수 없는 먼 곳에 위치해 정말 텅텅~ 비어 있을 때 네트 앞에 바짝 붙여 확실히 점수를 얻고자 할 때 구사합니다. 복식에서는 놓을 기회가 그리 많지 않지만 일단 놓게 되면 상대편이 달려와도 닿을 수 없거나, 닿아도 언더클리어로 퍼올릴 각도도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헤어핀은 날아가는 궤적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또 하나 절대 간과해서는 안되는 요소는 바로 '타점'입니다.
헤어핀의 타점은 반드시 "드라이브 or 헤어핀"이 모두 가능한 타점이어야 합니다. 네트 밑으로 너무 떨어진 순간부터는 상대편 전위의 모든 의식은 헤어핀 방어로 쏠려 버립니다. 이 상태에서 헤어핀을 구사해버리면 상대편 전위가 노스텝 점프로 날아와 그대로 찍어버립니다. 초급에서야 서로 사이좋게 누가 더 얇게 넘기나 싸우지만, 끊어치는 푸시나 와이퍼샷까지 장착하고 있는 상급자 앞에서 이런 짓하다가는 '맞아도 싸다'는 결과 밖에는 안 돌아옵니다.
네트 그물보다 밑으로 내려간 셔틀콕은 상대편이 아주 멀리 있기 전에는 절대 헤어핀을 구사해서는 안 됩니다.
(상급자들은 이 상황에서 일단 놓을 것처럼 라켓을 보여주고 상대를 끌어 들인 이후에 뒤로 미는 수법을 구사합니다)
가장 약하게 쳐야하는 타구인 헤어핀의 힘 조절은 어렵습니다. 아차 힘을 더 줘 버리면 떠서 찍히고, 아차 힘을 덜 주면 네트에 걸려 버리고.
헤어핀의 컨트롤은 손목으로 하지말고 라켓을 손가락으로 휘두른다는 감각으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손목보다 손가락이 10배는 정교한 움직임이 가능하니까요.
엄지, 검지, 중지로 잡고 손가락의 감각으로 라켓을 살짝 스윙을 해야 좋은 헤어핀 구사가 가능해집니다.
3. 크로스 헤어핀의 비효율성
제가 크로스 헤어핀을 놓는 경우는 3가지 뿐입니다.
- 상대편 타구가 네트에 너무 바짝 붙어 떨어져서 퍼올릴 각이 안 나올 때. 퍼올리다 네트에 걸리나 크로스헤어핀 놓다 걸리나 매한가지 상황
- 상대편 드롭이 너무 날카롭게 떨어져서 퍼올리긴 틀렸고 상대 전위가 떡하니 내 앞을 지키고 있을 때
- 상대편 뻥드롭을 들어가는 방향대로 커트하듯이 헤어핀 놓고 전위를 장악할 때
앞의 두 경우는 어차피 실점할꺼 이판사판으로 구사하는 것이고, 마지막은 상대편이 퍼올리면 그대로 내 파트너가 지키고 있는 후위로 올리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크로스헤어핀이 효율적이지 않은 이유는,
헤어핀은 상대방 눈 앞에서 라켓을 보여주면서 치는 타구입니다. 크로스로 치기 위해서 라켓을 빼는 것이 100% 상대방에게 보입니다.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예측이 쉽고 받기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뜻입니다.
언더처럼 보이게 하고 헤어핀을 놓는다던지, 드라이브처럼 보이게 하고 헤어핀을 놓는 것처럼 상대편을 갈팡질팡하게 만들만한 요소가 거의 없습니다.
크로스헤어핀은 친 사람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같은 편 후위까지 움직이게 만듭니다.
선수1이 헤어핀을 놓을 기회가 생겨 앞으로 들어가는 순간 선수2는 선수1의 뒷쪽으로 이동을 하는데, 이때 선수1이 크로스 헤어핀을 구사해버리면 선수2는 헤어핀이 떨어지는 쪽 후위로 맹렬히 이동을 해야만 합니다.
얌점히 앞에 떨궜으면 상대편이 퍼올리고 편안하게 공격에 들어갈 것을 괜한 크로스헤어핀을 구사하는 순간 후위는 코트의 80%를 혼자 커버해야하는 상황이 되어 버립니다.
크로스헤어핀을 놓지 말라는 잔소리에 대해 '그럼 우리는 연습할 기회도 없이 평생가도 크로스헤이핀 구사도 못하게 되잖냐?'라고 반문하기도 합니다.
이때 제가 드리는 대답은, '크로스 헤어핀은 드라이브의 부산물이다' 라고 말합니다.
상황에 맞춰 드라이브의 방향을 조절할 수 있는 실력이 되면 변변히 연습해본적 없는 크로스 헤어핀도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게 됩니다. 갈고 닦은 예술 같은 크로스 헤어핀은 어렵더라도 상황에 맞춰 아쉽게 않을 정도로 구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냥 자동으로 됩니다.
요약하면,
- 헤어핀은 가장 느린 타구다. 상대가 받는 것이 당연하며, 상대가 퍼올리게 만드는 것이 목적인 타구다.
- 헤어핀의 전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위협하는 후속 동작이 반드시 뒤 따라야한다.
- 상대편 라켓을 보는 것에 익숙해지면, 크로스헤어핀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깨닫게 된다.
ps. 헤어핀을 놓고 위협하라는 동작은 초급~중급에 해당됩니다.
상급자는 위협하는 구체적인 동작을 하지도 않고, 심지어 헤어핀을 놓고 네트에서 조금 물러서기까지 합니다. 왠지 헤어핀으로 반격해도 될 것 같이 느껴져서 헤어핀을 헤어핀으로 응수하는 순간, 날아들어와 그대로 찍어 버립니다.
눈으로 상대편 라켓을 쫒고, 날아들어갈 거리만큼 뒤로 물러서는 것이 안되는 급수일 때는 헤어핀을 놓고 위협하는 동작까지 하는 게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