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석: 질의와 응답 2467번. (말라기 4장) 4절 VS 1,2,3,5,6절 / 이런 각도에서 다시 한번 연구해 보십시오. 2011-08-27. 말4:1-6, 단9:24, 슥12:10, 사4:2-6, 마24:15, 단9:26, 슥14:4-5, 말4:4, 롬9:8, 계6:12-14, 계18:18-21, 마24:20
답변 감사합니다.
<응 답>
이런 각도에서 다시 한번 연구해 보십시오.
초심자님, 참 난해한 구절의 질문이네요.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우리는 성경에서 찾아내어 올바른 해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런 질의를 통해서 다시한번 성경을 깊이 있게 바라보게 되고 연구하는 종말론에 대한 보다 넓은 지식을 가질 수 있게 되어 글을 쓰는 보람이 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종말에도 그들의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영접하기 까지는 메시야를 대망하면서도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고 예수님의 메시야 됨을 인정치 않고 있습니다.
메시야 출현의 성경적 근거를 보면 단9:24절의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70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고 하신 말씀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소망하는 메시야 왕국과 그 나라의 왕으로 등극하실 메시야의 예언이 이 말씀에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종말에 구원 받아 왕국에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그들의 최후의 구원을 얻는 일은 그들의 최후의 피난처에서 이루어질 일인데 그때까지 그들은 저들의 메시야가 예수신줄 모르고 피난처로 옮기는 것입니다.
그날의 그들의 회개의 모습이 슥12:10절에 나오며 그 장소로는 이사야4장에 나옵니다(사4:2-6). 이 일에 대하여 예수님은 마24:15절에서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종말에 예루살렘게 거주하는 유대인들은 단9:26절의 멸망의 왕이 예루살렘에 등장한 것을 보았을 때, 스가랴가 예언한 바 감람산이 갈라져 아셀까지 미치는 그 산 골짜기로 도망하라는 말씀을 따라 그들의 최후의 피난처로 도망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그곳에서 재림하시는 주님을 만나게 되는데 그가 자기들이 대망했던 메시야이심을 그때 비로소 바라보게 되어 통회하는 회개와 함께 그 예수를 영접하므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슥14:4-5).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그때까지는 복음을 받아 드려 복음적인 생활을 하는 게 아니라 율법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순수한 율법을 지키는 생활을 못하고 변질된 율법을 외식적으로 지키는 생활을 해 왔었으며 메시야 재림 직전까지도 그들의 그런 생활에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존 당시에도 이런 신앙의 전형적인 유대인들인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에 의해 복음이 배척 받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종말에 유대인들에게는 올바른 율법관과 그 율법을 준수하는 생활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복음은 반 율법적이거나 율법을 배척하지 않습니다. 율법을 온전히 이루며 율법의 의를 온전히 이루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자기의 율법적인 생활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율법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 율법을 따라 살아간다면 그들에게는 구원의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1) 그런 생활을 한다면 하나님의 의는 율법에서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2) 그들은 율법적인 생활을 통해서 자기들의 죄를 깨닫게 되어 참 회개를 이룰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3) 그들은 그 율법에서(제사제도를 통해서) 새로운 의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4) 그들은 철저한 율법적인 생활을 통해서 율법으로는 의를 얻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되며 율법에서 증거해 주는 바 그들의 메시야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복음과 율법에 대해 증거해 주는 변증법적 논리가 이 같은 복음과 율법과의 관계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4:4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바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고 하신 말씀은 아직까지 복음을 받아드리지 못하고 메시야 만을 대망하는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억할 때 그들이 종말적인 환난을 당하는 날에 메시야에 대한 소망이 새로워지게 되며 새로운 회개운동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들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며 약속의 자녀들인 것입니다(롬9:8).
이들이 대환난을 당한 예루살렘에서 피난할 유대인들이며 이들이 그 피난처에서 재림하시는 메시야를 만나게 될 것이며 그가 바로 예수님이심을 바라보고 통회하며 회개하는 복음운동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성취될 예언이 단9:24절의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라고 하신 예언이 정말로 응할 것입니다.
초심자님, 이런 각도에서 다시 한번 깊이 연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2011년8월28일 민 병 석 목사
***2467-1번. 말라기 4장의 정리 / 말라기 4장 1,2,3,4,5절의 성경적 주석. 2011-08-29
답변 감사합니다.
<응 답>
말라기 4장 1,2,3,4,5절의 성경적 주석
* 말라기 4장의 올바른 주석
말라기 4장은 그 해석이 굉장히 다양합니다.
여기서 응답자는 다음과 같이 정리해 봅니다.
1. 해석의 기본적인 문제
구약에 계시된 종말적 계시를 제대로 인식하려면 구약에 나오는 종말계시는 주로 유대인들을 위한 메시야 왕국에 관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교회와 연계된 계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연계된 것이며 교회와 유대인들이 공통적으로 맞는 종말의 실상과 동일하다는 점에 있어서 큰 의미가 있지만 구약적 종말계시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메시야의 출현과 종말적 심판과 메시야 왕국에 대한 유대인들의 소망을 계시해 주고 있다는 사실에 눈이 떠져야 합니다.
그 대신 신약에 계시된 종말적 계시는 주로 교회를 위한 것으로 주의 재림과 종말적인 심판과 천년왕국과 새 예루살렘에 관한 계시로 나오며 우리는 구약의 종말적 계시를 이 같은 신약의 종말적 계시에 접목시킴으로 하나의 완성된 종말론을 정립할 수 있다는 사실에 수긍해야 하는 것입니다.
2. 말라기 4장의 계시는 이런 의미에서 해석을 시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1) 1절의 주석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은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이 말씀은 주 재림의 날에 임할 심판을 가리키는 종말 계시입니다.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은 일곱째 대접심판으로 이 지구가 불로 소멸되는 모습입니다(계6:12-14, 18:18-21).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세상의 악인들은 이 심판 중에 멸망할 자들로 그들의 운명이 마치 초개와 같은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은 세상의 모든 악인들이 한 명도 남김이 없이 모두 멸절 당할 것임을 의미합니다.
(2) 2절의 주석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여기서 너희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내 이름을 경외한다"고 한 말씀은 4절에서 "내 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여 잘 준행한 생활을 하면서 메시야를 대망하며 메시야 왕국을 소망으로 살아온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을 가리킨 것입니다.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고 하신 말씀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의 구원을 위해 마련해 두신 저들의 환난 날의 예비처에서 재림하시는 메시야를 바라보았을 때 그들이 받는 기쁨과 감격을 표현한 말입니다. 그들은 아직까지 참 메시야를 배척해 왔던 자신의 불신앙을 통회하며 회개하게 될 때 "의로운 해"이신 주님이 그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심으로("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단9:24절에서 계시된 그들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사4:3-6절에서 계시된 말씀과 짝이 되는 말씀입니다.
(3) 3절의 주석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나의 정한 날에 나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여기서 악인을 밟는 일은 1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인류의 마지막 심판을 가리킵니다.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란 말씀은 주님의 심판을 바라보는 기쁨을 표현한 것입니다.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다"고 하신 말씀처럼 그 악인들은 흔적도 없이 모두 소멸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구원 받은 남은 자들은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는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4) 4절의 주석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이 말씀은 메시야를 대망하는 종말의 유대인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재림 주를 마지하는 교회의 영광스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때까지도 메시야가 누구신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야를 만날 것입니다.
예수님이 초림 때, 율법을 준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간절히 사모하고 메시야을 대망했던 경건한 유대인들이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만나고 그를 맞아 드릴 수 있었던 것처럼 종말에 유대인 중에 메시야를 만나 구원 받을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메시야를 기다리며 메시야 왕국에 소망을 두며 살아가는 경건한 유대인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도망하는 일에 대하여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이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신 말씀을 보면 이때까지 구원 받을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율법적인 생활을 일상화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마24:20).
(5) 5절의 주석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이 엘리야가 누구인가에 대한 해석은 구구합니다. 세례 요한을 가리킨 것이냐, 아니면 종말에 등장할 예언사역의 사명자인 두 증인을 의미한 것이냐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두 증인의 예억사역은 유대인들의 구원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이들은 전3년 반이 그들의 예언기간인데 유대인들은 이 시기에 적그리스도를 저들의 메시야로 착각하여 맞아 드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 증인의 사역은 교회를 위한 말씀사역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구원과는 거리가 멉니다. 5절에서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라고 한 날은 1절과 연결된 날로 주의 재림과 심판의 날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3절에 나오는 악인을 밟을 하나님의 정하신 날과 같은 날입니다.
(6) 6절의 주석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세례 요한의 복음사역을 가리킨 말입니다. 이 엘리야의 복음사역은 아비와 자녀들 간의 화평의 회복을 의미하며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화목제물로 죄인들과 하나님과의 화평 관계가 이루어진 것을 의미해 주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이 같은 아버지와 아들간의 화평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저주를 받아 이 땅을 심판할 때 함께 멸망할 것임을 경종한 말씀입니다. 종말에 구원 받을 유대인들도 결국은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화목제물을 힙입어 하나님과의 화평관계를 새롭게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인데 이 복음을 거역하여 화평이 이루어지지 않는 많은 유대인들은 그 여호와의 날에 떠오르는 의로운 해의 광선을 받아 치료 받을 수 없을 것이며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2011년8월30일 민 병 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