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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1년
프랑켄슈타인의 문명의 여파.
- 내트 터너, 미국의 노예 지도자가 사형을 선고받다.
벨기에가 네덜란드로부터 분리독립.

그해 선임된 교황 그레고리오 16세, 천주교 조선대목구 설립.
Faraday에 의해서 전자유도의 법칙 발견.
60년전 스페인 제국이 대영제국에 포클랜드 제도를 양도하였다.211년후 재전쟁
- 제7차 러시아-튀르크 전쟁: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점령하다
50년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요제프 2세가 농노제를 폐지하다.
- 임마누엘 칸트가 순수 이성 비판을 출간하다
스페인 개척자들이 로스엔젤레스를 건설.
- 조지 타운에 고립된 영국군이 요크타운에서 조지 워싱턴에게 항복하다. 이 충격적인 항복 소식은 영국 내 반전 여론에 불을 붙인다
40년전 버몬트 주가 미합중국에 가입하다. 미국혁명을 통해 맨 처음 미합중국을 창립한 13개 식민지을 제외하면 처음으로 연방에 가입한 사례.
-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유럽 최초로 헌법을 제정하고 귀족의 리베룸베토 특권을 폐지하다.
- 바렌느 배신사건. 해외로 망명을 시도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등 왕실 일가가 붙잡히다.
30년전 원년 순조의 명령에 의거하여 공노비가 철폐되다.
프로이센 왕국의 수학자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가 정수론연구를 저술하였다
20년후 전해 아편전쟁로 장 바티스트 세실 함장이 지휘하는 에리곤 호가 마카오에 도착하였다
30년후 1861년 - 남북전쟁: 서부 군관구 북군의 존 C. 프레몬트(John C. Fremont)가 사령관 직에서 물러나고 데이빗 헌터(David Hunter) 장군에게 임무를 인계하다.
김정호, 대동여지도 제작.
이탈리아 왕국 설립.
양무운동 시작(~1894)
알렉산드르 2세, 농노해방령 발표
40년후 - 독일 제국의 성립. - 파리 코뮌 공안위원회 설립.
서원철폐령(전국 47개 서원만 남기고 폐지)
신미양요발생
청일수호조약 조인
일본 이전에 지방 권력이 폐번치현으로 중방정부 에게 돌아감
60년후 시베리아 횡단철도 기공식 참석후 일본 제국을 방문중이던 러시아 제국 니콜라이 황태자가 자객에게 칼에 맞는 오쓰 사건 발생
: 에디슨이 최초의 등사기를 대중에게 공개
1471년 에드워드 4세은 잉글랜드의 왕이자 요크 왕가의 첫 번째 왕으로 등극,랭커스터 왕가의 헨리 6세의 삼종제(三從弟)이다

60년전 프랑스 슈농소 성의 영주 장 마르케가 영국군에 동조한 죄로 고발당했고, 슈농소 성은 프랑스군에 의해 파괴되었다
40년전 잔 다르크가 화형을 당하였다.
포르투갈 왕국이 아조레스 제도를 점령하였다.
30년전 장영실과 이천이 서운관에 측우기를 설치하였다.
질 에아네스 함대가 블랑코 곶 (흰 곶) 을 발견하였다.
서유럽 최초의 흑인 노예 무역이 시작되었다
20년전 고려시대 역사서인 고려사가 완성되었다.
사창(社倉)이 실시되었다.
20년후 1491년 말 스페인의 페르난도 국왕과 이사벨 여왕이 이끄는 10만 대군이 이슬람 왕국 그라나다를 포위했다.1월2일 입성함
30년후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브라질 연안을 항해하였다
조식.이황탄생
40년후- 우즈베크인의 나라인 히바 칸국이 건국되었다.
포르투갈이 믈라카와 호르무즈를 점령하였다
60년후 독일에서 개신교 제후들이 슈말칼덴 동맹을 결성하였다
1111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5세 대관식 잘리어 왕가의 네 번째 황제이자 마지막 황제
하인리히 5세는 군사를 움직여 교황과 고위 성직자를 투옥하여 성직 임명권을 강제로 받아내고 1111년 2월 11일에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대관식까지 치렀다.
60년전 이스파한이 셀주크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에스토니아 인들이 루스 인들을 몰아내고 타르투룰 회복하였다.
노르망디 공 기욤 (윌리엄 1세)이 앙주 공 지오프리와 싸움
40년전 징기스칸 부친 예수게이피살
동로마 제국의 소아시아 상실 및 남이탈리아 상실
- 동로마 제국과 로베르 기스카르가 이끄는 노르만족 간에 벌어진 바리의 공성전에서 노르만족이 바리를 함락시킴으로써 노르만족의 최종 승리로 끝났다. 이로써 로마는 원래의 발상지였던 이탈리아를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다
-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셀주크 제국군이 동로마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머시아의 귀족 에드윈이 윌리엄 1세에게 반기를 들었으나 처절히 실패하였고, 영지는 노르만 심복들에게 분배된다.
30년전 이자연사망.독일의 슈파이어 대성당이 축성 (완공)되었다
20년전 - 프랑스의 카페 왕조의 앙리 1세가 키예프의 안네와 랭스 성당에서 결혼하였다.
이스파한이 셀주크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20년후 셀주크 제국에서 마흐무드 2세 사후에 그의 동생 토그릴, 아들 다우드, 조카 마수드 간의 내전이 발발하였다. 우선 다우드가 셀주크 술탄이 되었다.
진회가 남송의 재상이 되었다.
야율대석이 에밀에 도착하였으나 동 카라한 왕조의 공격으로 서쪽으로 더 나아가지는 못하였다.
30년후 진회에 의하여 남송의 무장 악비가 처형되었다
- 게저 2세가 헝가리와 크로아티아의 국왕이 되었다.
- 사마르칸트 북부의 카트완 전투에서 야율대석이 이끄는 서요의 군대가 산자르가 지휘한 셀주크 제국 - 서 카라한 왕조 연합군을 격파하였다
40년후 가즈니 전투에서 알라 알 딘이 이끈 구르 왕조 군대가 가즈니 왕조 군을 격파, 바흐람 샤를 포로로 잡고 도시에 방화하였다.
아이슬란드에서 화재/질병 보험 제도가 시행되었다.
피렌체 공화국이 포데스타 선출을 시작하였다
59년후 모로코의 페스가 콘스탄티노플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가 되었다
고려의 무신 정중부, 이의방 등이 무신정변을 일으켰다.
60년후 살라흐 앗 딘에 의하여 파티마 왕조가 멸망하였다. 이집트는 다시 수니파 국가로 돌아서게 된다.
노르만 인들이 카탈루냐에서 철수, 마요르카로 떠나 이베리아에서 노르만 공국을 수립하려는 시도가 끝났다.
이고의 반란이 실패로 끝나 이의방이 실권을 쥔다.
751년
피핀3세는 삼촌 까를로마누스의 반대에도 751년에는 교황 자카리아의 승인을 받아 메로빙거 왕조의 마지막 군주 힐데리히 3세를 폐위하고 프랑크 회의에 의해 왕이 되었다.
까롤링거왕조 시작
탈라스 전투 - 압바스 왕조군이 당나라군을 탈라스에서 격파. 제지술이 중동으로 전파되다.
신라, 불국사,석굴암 설치
751년경에 무려 전세계의 인류문명사에서 가장 최초로 발명해낸 목판인쇄본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석가탑에 보존하다.
일본은 동대사를 건립하면서 불상과 대불전을 조성하는데 260만 명 이상이 기부를 하였고 16m 높이의 청동불상인 비로자나불상은 3년에 걸쳐서 8번의 주조를 통해 머리 부분과 몸체 부분이 별도로 주조되어 결합하여 751년에 완성되었다.
60년전 바위 사원이 완공되었다.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프 아브드 알 말리크가 이끄는 우마이야 왕조군이 메소포타미아의 반란을 진압하고 아라비아 반도를 재정복하였다.
클로비스 4세가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40년전 711년과달레테 전투에서 타리크 이븐 지야드가 이끄는 우마이야 왕조군이 서고트 왕국의 왕 로데릭이 이끄는 약 3만 3천명의 서고트 왕국군을 섬멸하였다. 이 전투에서 로데릭은 전사하였다
다고베르트 3세가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30년전 - 테우데리히 4세가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 툴루즈에서 아키텐의 공작 오도가 이끄는 가톨릭 세력 (아키텐 - 프랑크 연합군) 이 툴루즈를 공격하던 우마이야 왕조군의 이슬람 세력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툴루즈 전투)
20년전 세르다냐 (피레네 동부) 의 베르베르 인들이 아키텐의 오도와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되었다.
프랑크 왕국, 남 프랑스 해안 일시 수복 (vs 우마이야)
10년전 샤를르 마르텔이 사망한(741년) 이후에 생 드니 수도원에서 교육받은 두 아들, 카를로망과 소(小) 페펭(페펭3세)이 궁재직을 계승하였다
20년후 샤를 대제(Carolus Magnus)라고 불리는 샤를르(768-814)는 중세기에 있어 가장 유능한 통치자였다. 그는 그의 동생 카를로망과 함께 국가를 분할하여 통치하다가 771년에 동생이 사망하자 단독 영도자가 되었다
30년후 롬바르드 족을 쳐이긴 후에 샤를르는 이딸리아 전역에 대한 자신의 권익을 추구해야 되었기에 헌납약속의 실행을 주저하다가 781년에 로마 공국(公國), 라벤나 등 몇 개의 소지역구를 교황에게 기증했다. 이렇게 하여 이제 교황령이 건설되었고, 이는 1870년까지 존속하였다
40년후 알폰소 2세가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왕이 되었다.
아스투리아스 왕국이 칸타브리아 일대의 우마이야 왕조 거점들을 점령하고 영토를 도우로 강 이남으로 확장하였다
60년후 니케포루스 1세가 이끄는 비잔티움 제국군이 불가르족 군대의 총공격으로 인해 괴멸당하였다
카롤루스 대제가 지휘하는 프랑크 군대가 타라고나를 공격하나 후우마이야 왕조의 반격으로 실패하였다.
데인족과 전쟁으로 고드프레드왕과 덴마크국경확정
391년 즉위한 391년 7월 광개토왕이 군사 4만 명을 거느리고 북쪽 변경의 석현성(石峴城) 등 10여 성을 함락시켰으나 진사왕은 광개토왕이 군사작전에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 맞서 싸우지 못했다. 10월에는 험준한 요새지인 관미성(關彌城)마저도 함락당했다.
이전의 백제의 공세가 기운느낌
391년에 궁실을 중수하고 연못과 산을 쌓는 등 무리한 토목공사를 일으켜 국력을 낭비
60년전 미천왕죽고 고국원왕이 고구려 제16대 국왕이 되었다
40년전 후조의 황제 석지가 황제 칭호를 폐지, 조왕(趙王)을 자칭하며 전연에 염위군을 상대로 한 구원군을 청하였으며, 2월에 염위의 포위군을 격파하였으나 염위의 왕 염민에게 매수된 부하 유현에게 살해당하였다. 석지가 살해당하면서 후조도 멸망하였다
30년전 사마비가 동진 제 6대 황제가 되었다.
- 율리아누스가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20년전 백제군이 고구려의 군대를 패하(浿河)에서 군사를 매복시켜 물리쳤다. 그리고 그 해 겨울, 3만 명의 백제군이 고구려의 평양성을 공격하였고 이 때 고구려 왕 고국원왕이 전투 도중 전사하였다. 이후 소수림왕이 고구려 제 17대 국왕이 되었다
20년후 호노리우스가 공동황제로 칭했던 콘스탄티누스 3세 : 서로마 제국의 장군사망.408년부터 410년까지 서고트의 대왕 알라리크가 로마를 포위하고 항복을 권유했는데도 자존심 때문에 뻗대다가 결국 410년 로마가 관광당하는 꼴을 맞이해야 했다.
30년후 - 콘스탄티우스 3세가 호노리우스와 함께 서로마 제국의 공동 황제가 되었다.
- 비잔티움 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 간에 전쟁이 발발하였다.
40년후 - 비잔티움 제국의 에페소에서 에페소 공의회가 개최되었다. 이 공의회에서는 그리스도의 2개의 본성인 인성과 신성이 서로 혼돈과 분리됨이 없이 일치를 이룬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네스토리우스파를 단죄하였다.
60년후 카탈라우눔 전투: 훈족 군대와 서로마 제국군, 서고트족, 프랑크족 연합군이 카탈라우눔 평원에서 맞붙었다. 아틸라는 이 전쟁 이후 카탈라우눔 평원에서 군대를 철수시켰다
서기 27년 세례이후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고(서기 31년)
60년후 데케발루스가 다키아의 왕이 되었다.
BC 330년, 48세인 장의와 18세인 소진이 귀곡자를 찾아왔다.
BC 330년- 알렉산더, 페르시아 정복하다.다리우스 3세, 박트리아까지 도망갔지만 부하에게 암살당함(BC 330년경)
60년전 로마 켈트족의 침입.
60년후 진 소양왕 한나라공격에 앞서 조나라 연여공격.
80년후 진 소양왕 사망.효문왕즉위
조 염파 연나라 공격.신평군으로 작호
베트남 BC 690년 경 부족국가인 반랑국, 어우락국(BC 257), 남비엣국(BC 207) 등이 차례로 건국되었다
타하르카고대 이집트 제 25 왕조의 왕. [본문] 누비안(Nubian)으로서 북부 수단(Sudan)에 위치한 쿠쉬(Kush)에서 이집트를 BC 690년부터 BC 664년까지 통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