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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우스라는 거대한 영웅의 부재는 이타카 궁전을 혼란과 무질서의 공간으로 만듭니다. 오만무례한 구혼자들이 궁전에 몰려와 가산을 탕진하고 권력을 탐합니다.
부재는 단순히 '누군가가 없다'는 음영 상태에 그치지 않고, 남겨진 이들에게 "너는 이 결핍 앞에서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라는 서사적 질문을 던집니다.
호메로스는 아버지의 부재라는 시련을 통해 텔레마코스가 소년에서 주체적인 어른으로 바로 서는 성장 극의 구조를 서두에 배치했습니다.
2. 텔레마코스의 여정: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자아 발견
텔레마코스(Telemakhos)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멀리서 싸우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는 아버지가 전쟁터로 떠날 때 갓 태어난 아기였으며, 아버지가 없는 그늘 아래서 구혼자들의 눈치를 보며 무기력하게 자라났습니다.
1) 지혜의 신 아테나의 개입과 결단
아테나 신은 멘토르(Mentor)의 모습으로 변장하여 텔레마코스에게 나타납니다. (오늘날 스승을 뜻하는 '멘토'의 어원이 여기서 유래했습니다.)
아테나는 그에게 더 이상 집에서 불평만 하지 말고, 아버지를 찾아 바다로 나아가라고 촉구합니다.
텔레마코스는 아버지를 찾는 여정 속에서 필로스의 네스토르 왕, 스파르타의 메넬라오스 왕 등 고대 영웅들을 직접 만나며 아버지가 누구였는지, 그리고 자신이 계승해야 할 영웅적 유산이 무엇인지를 깨닫습니다.
2) 타자의 거울을 통해 아버지를 재발견하다
텔레마코스는 아버지를 직접 만나지 못하더라도, 아버지를 기억하는 타인들의 입을 통해 아버지의 지혜와 고통을 듣습니다.
이는 단순한 정보 수집이 아니라, 아버지를 '어린 시절의 막연한 우상'에서 '고통받는 한 인간'으로 객관화하여 이해하는 유년기의 탈피 과정입니다.
3. 페넬로페의 시간: 수의를 짜고 뜯는 정체성의 정치학
이타카 궁전의 중심에는 아내 페넬로페가 있습니다. 그녀는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구혼자들의 집요한 협박과 강요 속에서 가문과 정절, 그리고 왕좌의 정통성을 지켜내야 했습니다.
1) 밤과 낮의 역설 (낮에는 짜고, 밤에는 뜯는다)
구혼자들이 재촉하자 페넬로페는 시아버지 라에르테스의 장례 수의(Shroud)를 다 짜면 구혼자 중 한 명을 선택하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낮 동안 짜 올린 직물을 밤이 되면 촛불을 켜고 스스로 풀어헤칩니다.
2) 정지된 시간과 주체적 저항
시간의 지연: 수의를 짜고 뜯는 행위는 구혼자들이 강요하는 직선적 시간(결혼과 정복)을 거부하고, 스스로 순환하는 시간을 만들어내어 판단을 유예하는 고도의 지혜(Metis)입니다.
삶과 죽음의 메타포: 수의는 죽음을 상징하지만, 그것을 해체하는 행위는 오디세우스와 이타카의 '삶'을 연장하는 정치적 투쟁입니다.
페넬로페는 무력을 행사할 수 없는 여성의 한계 속에서도, 직조라는 일상적 노동을 투쟁의 도구로 변용시켜 수동적인 피해자가 아닌 서사의 능동적 주체로 자리 잡습니다.
■ 2강 요약 및 정리
텔레마코스의 '공간적 이동(여행)'과 페넬로페의 '시간적 지연(직조)'은 모두 오디세우스라는 부재를 견뎌내기 위한 위대한 응전이었습니다.
텔레마코스: 아버지를 찾아 나섬으로써 부재를 '성장의 계기'로 삼았습니다.
페넬로페: 시간을 견디고 지연시킴으로써 부재 속에서도 '지혜와 절개'를 지켜냈습니다.
이처럼 고향 이타카에서 두 사람이 준비를 마쳤을 때, 비로소 서사는 5권부터 칼립소의 섬에 갇혀 있던 주인공 오디세우스를 세상 밖으로 불러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