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섬에 갔다.
상심한 친구를 옆자리에 태우고 서툰 길, 운전대를 잡았다.
귀에 익은 그 섬에 나는 초행이다.
목적지 근처에 도달하고 보니 단순한 코스를 전전긍긍 운전해 온 내가 우스워졌다.
사실 나는 산이나 물이나 들을 찾아 나서는 일에는 무심한 편이다. 나의 관심사는 주로, 인간과 인간이 얽어내는 스토리에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시간이 나면 자연보다는 공연장이나 전시회장 찾기를 더 선호한다. 것도 귀찮을 땐 엉덩이를 질기게 방바닥에 붙이고 비디오 네 편을 연달아 보기도 한다.
남이섬 입구, 주차장이라 짐작되는 곳에서. 도대체 섬이란 것이 어디 있냐? 엉겁결에 실수로 바로 섬으로 골인해 들어온 것은 아닐까. 실 없는 소리들을 주고 받으며 목을 길게 빼고 있는데 웬 아저씨가 다가와 주차비를 내라고 한다. 주차딱지 따위는 외면하고 싶은 이 아줌마, 상관 없는 질문으로 시간을 끌며 아저씨 속을 태운다.
아저씨 섬이 어디 있어요?
저어기, 여기서는 안보여요.
그럼 섬에는 어떻게 가요?
저 배 타고 들어가는 거예요.
으응, 배? 섬 안에는 뭐가 있어요?
뭐, 숲길에서 삼림욕하고 그러지요.
예에, 삼림욕?
그게 뭐, 배 타고 찾아가는 수고까지 들여가며 해야 하는 것일까.. 평소의 내 생각은 그렇기 땜에 내심 신통찮아하고 있는데, 친구가 말한다.
뭐 별 볼 일 없을 것 같으면 들어가지 말지 뭐..
그러나 나는 안다.
친구는 저 섬에 가고 싶다.
20분마다 한 대씩 운행한다는 배를 타고 물 구경을 잠깐 하다보니 섬에 닿았다.
그런데.
어마! 어떡해! 탄성 사이로
뜬금없이 흰.눈.이 내린다.
나풀거리는 나비의 공중 몸짓으로 하얀 눈꽃송이들이 휘날리기 시작했다.
아... 물가와 숲길에 선물처럼 흩날리는 흰눈으로 하여 섬의 풍경은 일시에 아득해지고 꿈인듯 아름다워졌다. 비로소 섬과 자연에 대한 기대가 내 맘 속에도 자라난다.
곧은 허리를 쭉 펴고 하늘로 하늘로 솟구친 오래된 잣나무들 사이를 영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듯, 설레이는 입장을 하였다.
머얼리서, 나무 사이를 한가로이 거니는 타조를 쫓다가 오히려 쫓김을 당하는, 젊은이들의 희열에 찬 함성이 들려왔다.
통통하게 살 진 토끼들이 더러는 발길에 채이고 더러는 흰 눈꽃송이를 맞으며 길 가, 한데서 졸고 있다. 얘,얘, 집에 가서 자. 감기 들라.
분수는 물을 뿜어내는 모양 그대로 얼음 조각을 쌓아 올려가며 아직도 약한 숨을 내뿜고 있었다.
물가를 스치며 섬 가장자리로 둘러있는 자전거 길에서, 색색의 머플러 휘날리며 바퀴를 돌리는 젊음들이 충만한 웃음소리를 바람에 실어 보내왔다.
눈을 맞으며 거닐다가 숯덩이 코에 솔잎 눈썹을 한 겨울연가 눈사람과 사진도 찍었다.
그러다 문득
손이 몹시 시려워져
가까운 커피숖을 찾아 들어갔다.
따스한 찻잔을 모아 쥐고 앉아 친구와 나는
우수에 가까운 감정에 젖어 말이 적었다.
창 밖으로 소리 없는 흰눈이 시야가 뿌옇도록 한꺼번에 휘몰아친다.
문득, 유리창 저편에 펼쳐진 물 언저리, 퇴색한 갈대숲에 젊은 남녀가 서로를 희롱하며 들어선다. 오랜 동안 그들은 우리가 있는 곳의 유리창 밖, 그 곳에서. 바람과 흰 눈발을 맞아가며 서로를 기꺼워하고 있었다.
......우리에게도 저런 날이 있었을까? 응?
그러게... 너무 아련해서... 꿈을 꾸었던 것 같기도 하고...그래......
괜스리 눈가에 물기가 잡힌다.
아니...괜스리는 아니다. 친구, 그녀의 가슴에 넘치도록 괴어있는 그 울음을 나는 안다.
나 또한 친구의 우울에 깊이 사로잡혀 있었으며
또 옛날이, 푸르던 날들이, 꿈속처럼 아련하다는, 새삼스런 느낌에 젖어 상심이 더욱 깊어졌다.
창밖 연인들의 희롱이 지치기 전에
우리는 자리를 떴다.
하긴...
그들이 지치기를 기다리는 것은 아마 무리일 것이다.
그대들의 기꺼움이여 영원하라.
나지막히 축복의 메세지를 띄워 보내 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밤.
길은 미끄러웠다.
핸들이 제 절로 돌아가는 것을 여러 번 느껴야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빙판길에서 차바퀴가 미끄러지듯
그렇게 순식간에 미끄러져 내린 인생의 오후 무렵에
친구와 나는
움직이지 않는 차량의 대열에 끼어
어둠 속에
함께 어둠인양
그렇게 있었다.
첫댓글 내가 너인양 "남이섬"에 빠져들었다. 눈이 오시니, 눈에 어리는 게 많아 무등만 바라보고 있다. 시방
우리 칭구들 오학년 맞아? 희숙아, 경하야 네들 넘 이뿌당ㅇㅇㅇ 나도 무등산 하염없이 바라보고잡다.
희숙아~ 이 글 어디에서 읽었었는디...난 오늘~ 방콕~~~! 하고 무등산 자락이라도 한번씩 쳐다 봐가면서 모처럼 집안에서 여유를 누린다네~~~!
윤희숙의 하루였군. 잘 읽엇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