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차말씀열기(71)_성막덮개, 4개 앙장의 영적 의미_그리스도 안에서 입니다(출261-14, 엡17) 출애국기 16장입니다. 14절까지 하겠습니다. 칠육기 16장 1절에서 14절 함께 읽겠습니다. 너는 성막을 만들되 앙장 열 폭을 가는 게 꽃 뱃실과 청색과 자색, 홍색실로 그룹을 공교히 수놓아 만들지니 매폭의 장은 28, 광은 4 규벳으로 각 폭의 장단을 갖게 하고 그 안장 5폭을 서로 연하여 다른 5폭도 서로 연하고 그 안장에 연락할 말폭 가에 청색고를 만들며 다른 연락할 말폭가에도 그와 같이 하고 앙장말폭가에 고50을 달며 다른 앙장말폭가에도 고50을 달고 그 고도를 서로 대하게 하고 금갈고리 50을 만들고 그 갈고리로 앙장을 연합해야 한 성막을 만들지며 그 성막을 덮는 막것 응장의 염소 틀로 만들되 11폭을 만들지며 각 폭의 장은 30, 광은 40, 11폭의 장단을 갖게 하고 각 안장에 5폭을 서로 연하며 또 6폭을 서로 연하고 그 여섯째 폭은 절반은 성막 전면에 접어들이 오고 안장을 연락할 말폭 하에 그 50을 달며 다른 연락할 말폭과에도 고 50을 달고 늑갈고리 50을 만들고 그 갈고리로 그 고를 깨어 연합하여 한막에 대기하고 그 막굿 앙장의 나머지 그 반 폭은 성막 뒤에 드리우고 막굿 앙장의 길이에 남은 것은 이 편에 한 교배 저 편에 한 교배씩 성막 좌우의 양편에 덮어 드리우고 붉은 물들인 수양의 가죽으로 막의 두께를 만들고 해달의 가죽으로 그 웃두께를 만들지니라. 아멘 뭔 말인지 하나 더 읽는 순간 두 번째 줄 가는 순간 첫 번째 줄 까먹어버려. 뭔 말인지 그게 정상입니다. 여러분 실망하지 마세요. 저도 그래요. 뭔 말인지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그냥 이런 겁니다. 그냥 그림으로 그리면은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여기 이렇게 이렇게 덮개하고 덮개가 여기 또 하나 더 이렇게 더 있고 더 있고 이렇게 이렇게 이거를 폭을 한 폭을 만들면 덮기도 힘들고 비닐하우스 덮어봤어요? 여러분 힘들어요. 한 폭으로 어떻게 덮어? 여기 덮는 게 따로 있고 뒤에 덮는 게 따로 있고 여기 이렇게 5개씩 10포 10개를 해서 연결 연결 갈고리를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해서 금갈고리로 연결하고 이렇게 해서 덮어 이동할 때 빨리 분해해서 접어가지고 넣어서 가고 그런 겁니다. 여기 막대기가 총 합쳐서 48개가 뭐가 있고요. 뭐 그런 내용이에요. 여기 문이 이렇게 있고 다 된 거죠. 이걸 막 엄청 헷갈리죠. 이게 덮개가 4개 있어요. 커버예요. 커버. 천막 텐트 칠 때 이렇게 하는 커버예요. 첫 번째 오늘 덮개에 대해서 보죠. 되게 복잡한 것 같은데, 성막을 덮는 지붕 덮개예요. 4개의 앙장이 이렇게 폭우로 4포구 4개가 있고 골격은 48개 패널이 있어요. 널판지. 널판이 있고 그다음에 앞뒤에 이렇게 두 개의 휘장이 뒤가 아니고 안에 앞에 안에 안에 지성소하고 성소를 구분하는 거하고 휘장 이렇게 두 개가 있고 그게 전부입니다. 복잡하게 써놨는데 모세가 이렇게 하나님께 받아 적을 때 기분이 어떨까요? 기분이 뭐지? 이거? 여러분 하나님과 이렇게 대화한다는 게 얼마나 엄청난 거예요. 우리가 지금 그거 하고 있는 중이죠. 여러분도 될 거예요. 아멘 뭔가 치실라마지 상세하게 이렇게 외우세요. 안 될 것 같아요. 미리 포기하지 마세요. 그러니까 승자의 승마는 전부 다 스크레스로 말한다고 그랬습니다. 그렇죠? 여기 있고 이렇게 나중에 여기 이렇게 또 장막이 있죠?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그렇죠? 여기 문이 이렇게 있고 이게 뭐 이런 형태예요. 그러니까 중요한 건 이거죠. 이게 전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고 그랬고 우리는 여기 안에서 것부터 시작해서 지금 나오고 있어요. 이제 이 구조에 대해서 나누고 있는 중입니다. 굳이 이렇게 자세하게 기록을 했을까? 이런 부분을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죠.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읽기도 힘들고 다 까먹는데 주님 이러니까 토 달지 말고 니가 뭐 안다고 그러냐고 그렇게 떠오르는 거예요. 아이고 죄송합니다. 토달았네요. 제가 하나님이 할 일이 없어서 이걸 이렇게 자세하게 기록하겠어요. 만군의 하나님께서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렇게 자세하게 기록했으면 아멘 하고 읽으면 되지 이렇게 짜증을 내냐고 제가 뭐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도달지 말라 자식아 네가 뭘 한다고 까보니 이런 생각이 확 올라오더라고요. 그래서 깨갱 알겠습니다. 성경의 모든 기록은 하나님의 1.100도 더하거나 빼지 말라고 그랬고 그 모든 기록은 우리를 위해서 기록이 되어 있고 하나님을 위해서 기록이 된 건데 성려의 감동으로 기록이 된 거라고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교원과 책망함과 바르게 함과 교육하기에 좋은 책이라 이러니까 여기도 교원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교육하기에 좋은 뭔가가 있는 거예요. 이것도 그것만 알면 돼요. 우리는 성경 읽을 때 읽다가 민숙이 나오면 지나가죠. 그것도 교훈과 빠른 감과 책망함과 가르치기에 아주 좋은 성형이 감동한 거예요. 그러니까 막 넘어가면 안 돼요. 나하고 별로 재미없다고 해서 넘어가면 그건 열어보면 큰일 납니다. 오늘 같은 이런 것들도 폭을 꼭 5폭을 해야 되나 4폭 반이면 안 되나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그냥 하라면 하라 그렇게 아멘 하면 되는 거지 다 이유가 있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어쨌든 출애굽기 26장도 성경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아멘 성경이에요. 성경 정경이라고 이거 어쨌든 이 성망의 모든 구성 요소가 에스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은 게 없습니다. 여러분 되게 중요합니다. 그렇죠? 이번에서 9장에 11절, 12절 배웠던 기억나시나 모르겠는데 그리스도께서 장례 이래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손으로 짓지 아니한 이 창조의 이 땅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가 피가 아니고 자기 피로 그렇죠? 영원한 속죄를 이루시고 그다음에 단번에 성소로 이쪽으로 들어간 게 아니고 하늘 성소로 들어가 있는데, 그게 더 크고 온전한 장막이라는 거예요. 하늘성소 이걸 보고 더 크고 온전한 장막을 배워야죠. 무지하게 중요한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천국의 삶을 사는데 핵심적인 것만 여기 기록되어 있는 거예요. 이걸 모르면 천국의 삶을 살 수 없는 거예요. 사실은 이 땅에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의 삶을 우리가 사는 거죠. 이해 가시죠? 그럼 이걸 보면서 천국의 뭐가 이런 걸 통해서 우리에게 뭘 말하고 싶은 거지? 이걸 캐치해야지. 이거 뭐 이렇게 복잡하게 갈고리를 끼고 그렇게 해. 두룩두룩 박아서 그냥 둘둘 말아서 그냥 메고 가면 돼. 이런 생각을 하시면 시민이 곤란합니다. 더 크고 온전한 장막이 도대체 왜 이 땅에서 이렇게 표현이 되어 있고 이걸 통해서 우리에게 뭘 말씀을 하시길 원하는지 그게 중요한 거죠. 우리도 죽어서 가면 이거 보게 될 거라고. 이걸 천국에 가면 그대로 있을 거라고요. 그때 아 잘 가르쳤네 이런 생각이 나야지. 잘못 가르쳤네. 여러분하고 저하고는 다른 데 있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아이 그럼 도둑 들어올까? 몰라서는 꽉 잠가 놓을 거예요. 이 땅의 것은 그림자라고 그랬죠. 모세를 통해서 하늘의 모형을 하늘의 것을 이 땅의 모형으로 주는 거예요. 이 모형을 통해서 하늘의 것을 알아라 이런 뜻이고 정확하게 왜 에스 그리스도를 이걸 통해서 보여주는지 하나님의 아주 숨어있는 뜻이 있다라는 거죠. 정확하게 알라라는 거예요. 이걸 준 이유는 결국은 천국의 삶을 사는데 이 삶이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이다라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여기 하나님이 안에 좌정하고 계시잖아요. 그렇죠? 항상 임재하고 계시잖아요. 그게 중요한 거예요. 우리가 임재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아셔야 돼요. 임재가 떠나면 여기서 임재가 떠나면 끝입니다. 불기둥과 구름 기둥이 여기서 없어져 버리면은 이건 그냥 말 그대로 사막의 텐트에 불과해 불기둥과 구름 기둥이 있으면 이게 천국이고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임재, 성령의 임재, 지금 오전에 하지만 첫 번째는 잠잠훈련, 두 번째 임재 안의 거한 훈련이죠. 임재 안의 거한 훈련을 하는데 이런 것들을 보고 그걸 깨달아야 돼요. 얼마나 중요한지요. 우리가 임재 안에 있으면 다 가진 거예요. 임재 밖에 있으면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겠어요? 성형의 임재가 내게서 떠나가면 끝이에요. SDS에 보면 10장. 그다음에 30매 보면은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으로 떠나죠. 그게 제약 때문에 떠나죠. 임재가 없는 거예요. 그런 건 좀 완전히 귀신의 속으로 이런 거. 배가 된 집 많이 보셨죠? 요즘 시골에 가면은 그런 거하고 똑같은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다시 이걸 지으라고 하죠. 그리고 영광이 들어오죠. 그러면 어떻게 해요? 보자에서부터 생수가 흘러나와서 모든 것이 살아나죠. 바다도 살아나고 저주받은 바다가 살아나잖아요. 우리하고 똑같아. 우리는 원래 폐가였죠. 흉가였는데 이제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덮으니까 이렇게 싹 생수가 흐르면서 우리가 뼈에 살이 붙고 근육이 붙고 이러면서 이렇게 살아나 있는 거죠. 지금. 그런데 잠시라도 떠나면은 또 빛을 말하는 거죠. 이해 가시죠? 그걸 아셔야 돼요. 이걸 보면서 우리가 이 안에 항상 거하고 있는 걸 지금 말씀을 하고 있는 거예요. 대사장이 항상 여기 들어가죠. 그 부분을 염두에 두고 한번 보도록 하죠. 자 어쨌든 이 4기업의 막을 오늘 한번 보는데 그리스도의 인격이나 성품, 그다음에 교회 모습을 동시에 보내주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천국의 삶이 이렇다라는 걸 우리에게 지금 보여주고 계시는데 이 성막의 의미를 잘 보시면은 이 부분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게 있어요. 그냥 우리가 보기엔 그냥 텐트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성막을 덮는 모습은 그 안에 제사상이 있고 예배하는 자가 그 안으로 들어가잖아요. 지금은 열려서 언제든지 들어가죠. 바르시아. 그럼 그걸 듣고 있다라는 거죠. 누가 듣겠어요? 우리를? 예수님이 우리를 듣고 있는 부분을 말하고 있는 거예요. 이게 계속 이동한다라는 것은 믿는 자들이 모인 교회 우리도 지속적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들을 보여주기도 하고요. 그렇죠? 고착화되어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우리의 모습, 참다운 모습들은 하나님의 이 불기둥이 이동할 때마다 언제든지 이동할 수 있는 그런 모습이어야 한다라는 것을 우선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고 성막에 지금 덮는 막을 통해서 나타난 그리스도의 모습은 4기업인데 첫 번째가 거기 잘 보시면 첫 번째 1절에 10폭, 20폭 이런 부분은 너무 여러분 그게 10폭은 또 하나님의 숫자다 이런 것까지 자세하게 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 중요한 것은 베실, 청색, 자색, 홍색실 이 부분을 한번 보셔야 되고 그리스도의 성품을 드러내는데 가늘게 꽃 뱃실로 짠 내부 등 막 이게 첫 번째 막이 이게 여러분 이렇게 가늘게 연결이 어떻게 되어 있죠? 되어 있는데, 여기가 천사가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천사를 그리기 힘들어요. 그렇죠? 여기 안에 여기도 있고 여기도 안에도 있잖아요. 천사가 여기 금실로 수를 놨어요.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제사장이 딱 들어가면은 뭐가 보이겠어요? 맨 안에는 이걸로 요걸로 덮여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 골조만 있잖아요. 천정도 골조만 있고 거기에 들어가면 이게 쫙 덮여서 들어가면 보면 천사들이 쫙 수놓아져 있고 이 실이 아주 가늘게 꼰 뱃실이에요. 그러니까 60수, 120수 아시겠어요? 비싼 난닝구가 120수 싸구려 난닝구는 30~40수 막 이런 중국 메이드인 예 거기서 들어 그 정도로 아주 예쁘고 섬세하게 짜여진 뱃실로 짰어요. 맨 안에. 그러니까 이게 깨끗하고 그런 걸 아주 보들보들하고 얇은 걸 덮으면 몸에 싹 달라붙으면서 편안하죠. 이런 것들을 보여주는 예수님의 성품이에요. 예수님이 그것처럼 우리를 덮고 있다라는 거예요. 맨 먼저 그게 이제 첫 번째 가늘게 꼰 뱃실이에요. 두 번째는 염소틀로 만든 걸 덮어냈죠. 염소틀로 염소틀 염소틀 뱃실 그 다음에 염소 염소틀인데 이 털이 흰색이에요. 흰색 염소, 하얀색 염소 보셨죠? 우리는 흑염소가 좋은 건 줄 아는데 먹기 좋은 흰염소즙은 잘 안 먹대요. 왜 그러죠? 귀해서 그런 흰 염소는 농사가 잘 축사가 잘 안 되나? 자 어쨌든 흰 염소 털이에요. 하얀 털. 흰 염소 털 가죽으로 만드는데 염소틀도 이렇게 부들부들한 걸 염소 키워봤어요. 옛날에 어릴 때 시골에 염소 이렇게 많이 키웠는데 성질은 아주 더럽지만 깨끗하게 목욕시켜놓고 만져보면 되게 부드러워요. 새끼 염소가 얼마나 부들부들한지 몰라요. 따뜻하고 부드럽죠. 하나님의 성품이 그렇게 그렇다라는 걸 보여주고 있는 거고, 세 번째는 수양의 가죽으로 만들었어요. 수양의 가죽으로 만드는데 붉게 물든 거예요. 붉게. 이거는 금방 아시겠죠? 붉은색 피를 상징하니까 예수님의 대속을 통한 희생을 말하고 흰색 염소틀은 예수님이 잡혀 죽으셨던 대속의 제사 여기는 붉은색은 예수님이 그렇게 피를 흘려서 구원을 완성을 했다라는 걸 보여주고요. 그 다음에 마지막에 해다래 가죽 해다래 가죽 이건 어린 양을 표시하는 것으로 볼 수가 있겠죠. 수양의 가죽은 그겁니다. 수양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간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그래서 피를 흘려서 죄를 짊어지시고 죄를 대속하고 구원을 이루셨다라는 걸 보여주고 그다음에 네 번째 해달의 가지고 있는 해달이 정확하게 어떤 동물을 말하는지는 잘 모른대요. 그 당시에 사막에서 해달 모르죠. 예굽에 있을 때 가지고 있던 가죽들이겠죠. 그렇죠? 그런데 이게 물개라는 말도 있고 아니면은 여러 가지 말이 있어요. 정확하지는 않다고 되어 있습니다. 어쨌든 그거는 그냥 보면은 엄청 거칠죠. 맨 끝에 덮여져 있는 거니까 바람과 먼지 뜨거운 햇볕 차가운 밤공기에 노출되어 있는 그런 부분이니까. 이슬도 오고 비도 오고 막 이런 그러니까 썩지도 않고 그다음에 이런 것들을 모든 걸 다 견딜 수 있는 그런 재질이어야 한다라는 거죠.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그렇게 고통과 괴로움을 모든 것을 다 견디고 참아냈던 그런 것들을 말하고 그걸 통해서 능이 이겨냈던 그 성품을 말한다. 그래서 4가지에는 그렇게 보통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내 부분에 대해서는 뒷부분에 가서 잠깐 더 말씀을 드릴 기회가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어쨌든 첫 번째 앙장, 그게 4가지 색깔이 되어 있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뒤에 가서 다시 말씀을 드릴게요. 그 부분에 아주 중요한 내용들이 들어가 있어요. 되어가 있어요. 사보검사가 거기 안에 다 나와 있는 부분인데 뒷부분에서 다시 말씀을 드리기로 하고 그다음에 네 가지 양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부분을 잘 보시면은 이걸 듣고 있으면 안에는 완전히 암식이잖아요. 불이 켜져 있고 그다음에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과 빛이 거기 안에 들어가 있어서 밝게 보일 수가 있는데, 밖에서는 이 안에 있는 게 안 보여요. 아무것도 안 보여요. 완전히 덮여 있어 가지고 그 아무나 들어갈 수도 없어요. 누구만 들어갑니까? 제사장이 들어가죠. 오늘날 우리가 제사장이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영광은 이 안에 있어요. 여기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 이 네 가지 듣고 있는 게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성품을 보여주는데 그 안에 있는 사람만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가 있는 거예요. 그 밖에서는 여기서는 아무리 번자단이 있고 물두멍이 있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여기 갔다가 여기까지 안 갑니다. 여기 갔다가 나갑니다. 여기서 제사 지내고 간다는 거죠. 애물. 애물 데리고 가버리잖아요. 애물 데리고 가버리잖아요. 제사장만 이리로 들어가죠. 그런데 요즘 우리가 제사장이죠. 그럼 이쪽으로 여기까지 가서 여기 가야죠. 바르시아. 그런데 바르시아 했나요? 교회에 와서 가버렸잖아요. 왔다가 가버렸잖아요. 애물투척하고 가버렸죠. 애물투척하고 가버렸죠. 영광은 여기 안에 있거든요. 그러니까 여기서는 영광 영광 애물 투척하고 주니까 영광 말은 했는데 그 영광은 여러분은 주로 여기까지 여기까지도 갑니다. 여기를 가면은 주로 회개하는 물두목에서 재를 싣는 곳이잖아요. 가서 회개도 하고 이런 거는 합니다. 그렇죠? 하는데 성경에 인도하신 거와 말씀을 먹고 성령의 조명함을 받아 인도함으로 사는 삶은 사셨나요? 나의 인도함을 받아 살았죠. 아직도 그래요. 내가 머리가 되어 인도하고, 그렇죠? 여기 와서 내가 옳은 대로 하나님이 내려와서 내게 뭔가 해줘야 하고 그렇죠? 그래서 일이 잘 풀리면 주님께 영광 밥 맛있는 거 먹을 때도 주님께 영광 맛없는 밥 먹을 때는 이렇게 하고 그렇죠? 영광이 어딨어? 거기 그게 영광이죠. 신앙생활 참 이상하게 했죠. 그러지 않나요? 그러니까 요건 그리스도 안에 여기 가지 안장막이 이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하고 들어온 거예요. 여기는 이방인들도 잔뜩 들어올 수 있었다니까요. 누구나 다 들어올 수 있는 거예요. 대문이 확 열려있어요. 여기는 여긴 막 들어와도 안 죽여 여기는 잘못 들어오면 다 죽어 그러니까 이거 두 개 안 갖추고 들어오면 죽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예수의 피를 이미 완전히 들어가죠. 그런데 여러분 들어갑니까? 피를 힘입으니 피나 열나게 뿌리고 나와버리네. 엉뚱한 데 피 뿌리고 나와버리네. 재수 없는데 피 뿌리고 나가고 그러지? 아니 그건 아니라고 그랬습니다만 오직 이 하나님의 영광은 성막 안으로 들어간 사람만 볼 수가 있었다라는 거 되게 중요한 내용이에요.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만 이걸 경험할 수 있다라는 거예요. 우리 지금 그리스도 안에서 하고 있죠. 얼마나 엄청난 거 하는지 아세요? 너무 많이 하니까 이제 질린 건지 사람들이 별로 이렇게 호응을 안 하는 것 같아요. 안 그래요? 물론 성소 밖에 있어도 불기둥과 구름 기둥은 볼 수는 있었죠. 이렇게 볼 수는 있었지만 실제로 그 완전한 영광 안으로 들어가 느끼는 것은 불가능했어요. 하나님 왜 영광 하면은 우리는 잘 모르잖아요. 영광이 뭔지 모르죠? 영광이 아직도 혹시 모르나요? 뭘 큰 걸 하고 주니까? 영광 이거 이제 아니죠. 영광이 뭐라고요? 하나님의 성품 됨됨이가 잘 나타나는 거죠. 이 밖에서 하나님의 성품이 뭔지 알겠어요? 안에 들어가 봐야 주고받고 해 봐야 알죠? 모세처럼. 그렇죠? 그래야 하나님이 오 하나님이 열받기도 하네. 오 하나님이 잘하니까 뭐 과자도 주네 이런 걸 알지. 밖에서 여기서 아무리 성경 읽어도 그거 몰라요. 그렇죠? 여기 옵니까? 집에 가서 이게 교회잖아요. 집에 가서 성경 아무리 읽어봐요. 이게 안 들어가면 모르지. 그런데 성경을 많이 읽으면 다 안다고 하죠. 기가 막힌 일이죠. 영광이 뭔지 말해보라. 그러면은 아무 말도 못 해요. 영광이 뭔지 기가 막히죠. 경험을 해봤어야지 영광을 경험하는 거. 생각이나 해봤나요? 영광은 그냥 돌리는 거지. 돌리는 거지. 누구한테 돌려? 영광이 물건인가? 굴려버리게 그러니까 성경도 모르고 신앙생활이 뭔지도 모르고 영광도 모르고 주님께 영광영광 하면서 그렇게 그거 엄청 입버릇처럼 많이 하는 분들이 있어요. 주님께 영광 주님께 영광. 그렇죠? 뭐 하나 하고 주님께 영광. 그러면 주님께 영광 돌리는 건 줄 아는데 그게 아니고요. 손해 봐줘도 할렐루야. 이게 주니깨 영광이야. 그게 하나님의 성품이잖아요. 그렇죠? 손해 보면서 주니깨 영광한 사람 있어요? 혹시 아이 재수 없어? 아이 재수 없어. 이렇죠? 그러고는 밥 먹으면서 주니깨 영광하고 먹고. 그렇죠? 그러니까 완전히 꽝이요. 뭘 배웠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대충 적당히 왔다 갔다 하다가 썩어버렸어요. 이 계시된 하나님의 영광은 이 안에만 있습니다. 그리스도 밖에서는 이건 절대로 알 수 없어요.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건 들어본 적도 없죠. 성경에 잔뜩 나와 있는데,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게 도대체 뭐야? 뭐야? 교회 다니면 그리스도 안에 밖에 나가면 밖에 교회 와 있는 동안 안에 있죠. 나가면 밖에 있는 거죠. 지금도 그렇게 알고 아니에요. 그래서 안에 있는 건 뭐예요? 그럼 아 이제 제대로 알고 계시네 이제 로마스 8장 일절에 생략된 부분 그리스도 안에는 임재를 말합니다. 어제 했던 거 기억나죠? 그 임재를 말합니다. 그 안에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살고 있는 걸 말하죠. 그리스도 밖에 살면서 여기 왔다 갔다 해서 교회 왔다 갔다 한다고 해서 안에 있는 게 아니잖아요. 영광은 절대 경험을 못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입으로 주니까 영광 주니까 영광 이거 많이 하는 거예요. 안타깝죠? 그건 주님께 영광이 아니고 주님을 놀리는 거예요. 놀리는 거예요. 종교 활동하면서 주님께 영광하는 순간 놀리는 거예요. 놀리는 거라니까요. 그게 무슨 영광이냐고 주님께 주님을 놀립시다. 우리 주님을 놀립시다. 이거하고 똑같은 거죠. 영광이 아니에요. 영광을 아는 사람들은 절대로 그럴 수가 없어요. 도저히 그 앞에서 그런 말조차 하기 힘든 게 영광입니다. 진짜로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마구 말할 수가 있죠. 그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과 보살핌과 모든 능력과 이유업의 속에서 이루어지는데 그걸 경험을 못 하니까 어떻게 그걸 말로 표현을 할 수가 있겠어요? 경험을 못 했는데 안타깝죠? 그래서 교회 다니는 영광 밖에 그리스도 밖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신앙생활을 헛되이 하고 있다라는 걸 우리는 볼 수 있어야 돼요. 여기 밖에서는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영광을 깨닫지 못합니다. 어둠 속에 여기 어둠 속에서 항상 있기 때문에 구원의 자리 안으로 못 들어옵니다. 여기는 그냥 누구나 오는 곳이에요. 뜰신항이라고요. 여기는 그걸 하나님이 구원이라 할까요? 예수님을 믿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은 예수를 믿고 제사함을 받는 여기서부터 시작이에요. 여기 유월절이잖아요. 이게 피를 흘려서 우리 구원이 시작한 거잖아요. 그럼 여기 안 가는 거죠. 들어가야죠. 영생구원까지 여기서 다 끝났죠. 왔다 갔다 이게 어떻게 이런 결의가 성립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언제부터 이게 이런 것들이 왔다 갔다 예술을 주로 고백하는 수준으로 그냥 교리적인 동의잖아요. 그러면서 예수를 믿는다라는 확신을 그래서 확신이 없는 거예요.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는 거예요. 없을 수밖에 없어요. 경험을 못 해봤으니까. 이게 또 여기 영생은 죽어서 가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니까 누구나 다 그렇게 다니니까 막연히 구원받았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어떨 때는 확실히 구원 못 받았다. 이런 생각도 많이 오는 거예요. 기분 좋을 때는 구원받은 것 같고, 기분 나쁠 때는 이거 넘어질 때는 이거 내가 구원받은 게 맞긴 하나 이런 생각을 하는 거죠. 하나님을 경험을 못 해봐서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눈으로 볼 수도 있어야 돼요. 그 은혜는 자비로심. 이건 직접 체험을 해야 돼요. 체험을. 그리스도 기독교는 체험신앙이에요. 그냥. 읽고 만족하는 영적인 만족을 누리는 그런 신앙이 안 돼. 그런 거 아니에요. 그래서 그 은혜를 영광을 보고 체험하기 위해서는 멀리서 이거 뭐 하냐고 불기불기둥 안으로 들어와서 그 하나님을 체험을 해야죠. 그러기 위해서는 맨 먼저 해야 될 게 안으로 들어와야 돼요. 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와야 돼요.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는 게 제일 먼저예요. 그래서 나의 아내 거하라 지금 하고 있는 중이에요. 이해 가시죠? 에베스 1장 7절 보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에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제사함을 받으시니 보세요. 그리스도 안에서 라고 분명히 나와요. 예를 들어서 1장에 그리스도 안에서 무지하게 많이 나온다고 그랬죠. 전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예요.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와 은혜가 풍성하고 구속함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재수함을 통해서. 재수함을 통해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거죠.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돼요. 그래서 첫 번째가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되는 걸 우리에게 절절히 보여주는 거죠. 그다음에 그리스도에 가까이 나아갈수록 하나님의 영광이 점점 우리에게 밝게 드러나게 돼요. 우리가 이제 점점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점점 개시가 되죠.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그 놀라움이 우리에게 피부로 와닿을 정도로 점점 알려지죠. 그러지 않던가요? 놀라운 거예요. 여러분. 진짜로 놀라운 거라고 그래서 4개의 막이 있는데, 이 막 중에 첫 번째 막이 가장 화려한 거예요. 화려하게 그게 우리가 겉에서 보면 그리스도가 해달의 해달 가죽처럼 이렇게 개다리 장막 순람미에 있는 개다리 장막이라고 그것처럼 예수님 볼품 없잖아요. 내 안으로 들어가 보니까 이렇더라는 거예요. 그 안으로 들어가니까 따뜻하고 평화롭고 포근하고 자유롭고 그렇죠? 마음이 그런 게 그 안에예요. 안에 밖에서 있는 사람들은 모르죠. 안에서 아무리 설명해도 뭔 말인지 못 알아듣고 안다고합니다. 성경을 읽었기 때문에 다 안다고 합니다. 머리로는. 그런데 체험한 적이 없어요. 그게 문제죠. 그게 지식적인 신앙이고 율법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이라는 거예요. 이게 네 가지 실로 짜여져 있으면서 금으로 수를 쫙 놓았어요. 한번 상상 해보세요. 이게 하얀 뱃실하고 청색, 자색, 홍색 이걸 잘 이렇게 조화롭게 무늬를 만들어서 짜놓은 걸 한번 상상해 보세요. 아랍에 가면 그런 카페트 같은 거 엄청 많잖아요. 그거 막 휘황찬란하잖아요. 그게 천사가 탁 수놓아져 있는 거. 누가 이거 시간 있으면 하나 만들어 볼래요? 잘 아시잖아. 만들어서 이불 하세요. 이불 원앙 검침하세요. 표사랑 집사님 요즘 원하는 검침이 필요할지 모르겠는데 저쪽에 예 깨가 넘치는 것 같아 쏟아지는 것 같아. 그게 그 정도로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면은 이게 화려한 거예요. 우리가 결코 교회 왔다 갔다 하면서 경험하지 못하는 놀라운 게 그 안에 있지 않던가요? 요즘은 많이 경험하잖아요. 말씀일기 하면서부터 한 게 전부 그거예요. 내 안에 거하는 거기 때문에 그 안에 거 연합해서 그 안에 거하는 거잖아요. 그렇죠? 자 어쨌든 막이 4개가 있으니까 그 안으로 뚫고 들어가기가 안 쉬워요. 그렇죠? 그 안에 거한다라는 게 밖에서는 고통과 괴로움 안에 보면 피가 물들어 있고 산 제사를 들이는 흔적들이 다 있잖아요. 우리가 그래서 맨 끝에서부터 이렇게 안으로 들어가는 걸 상상해 보세요. 고통과 괴로움, 십자가에 함께 죽고 부활하고 피 흘림이 이런 것들이 있은 후에야 그 안에 있잖아요. 연합되어서. 그렇죠?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 그게 믿음이라고 그랬죠. 복음이라고. 그럼 안에 들어가기 전에는 고통과 괴롭지만 들어가고 나면은 이 네 가지가 내 보호막이 되는 거예요. 놀랍죠. 우리의 시련과 고통이 결국은 우리를 덮는 에스크리스도의 보호막이 그 안에 거한다. 라는 거죠. 제가 가죽 안에서 심장 가죽 안에서 팔락팔락 뛰고 있는 걸 말씀을 한번 드렸죠. 마치 그런 것 같아요. 그 안에서 이렇게 탁 숨소리에 따라 내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실제적이더라고요. 그 안에 있다라는 게 이 안에 있는 걸 생각해 보세요. 그 안에 들어가면은 이것만 보이는 거예요. 이런 것들이다. 그래서 막 깊은 교재 안으로 들어가든지 성령의 막 강한 임재 안에 들어가면 막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혼자서 난리잖아요. 그렇죠? 좋아 죽어요. 뭐라고 뭐라고 하기도 하고 막 좋아 좋아 그러다가 푹 깨면 그런데 그 임제 안에 24시간 거 하면 되잖아요. 그게 우리가 아침에 하는 그 그것 때문에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하고 십자가를 지는 고통이 때로는 필요하고 오랜 기다림이 인내에도 필요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결국은 들어갑니다만 그 안에 들어갔을 때는 그것이 나를 완전히 지켜주는 능력이 되고 보호막이 된다라는 거죠. 그런 고난들이 오히려 나를 지켜주는 능력이 된다라는 거죠. 오 가슴이 너무너무 뜨겁지 않아요. 지금 엄청나게 뜨거워요. 지금. 그 안에 들어가면 그리스도 안에는 이건 어떤 바람이 광야의 거친 바람이 몰아치고 햇볕이 뜨거워도 안에는 항상 일정해요. 항상 불이 켜져 있고 항상 그 안에 성령의 인도하심과 말씀의 비추심, 그 말씀을 먹고 생명으로 충만해주는 그런 능력이 그 안에 다 있잖아요. 그게 바로 보호와 축복이에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보호와 축복. 세굴라 기억나요? 그 언약이 결국 그리스도 안에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말하는 게 언약이잖아요. 기도수 1장. 맞나? 티더스 일, 정이절 그거잖아요. 그리스도 안에. 그게 결국 핵심이거든요. 요한보고 17장에 나온 것처럼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어. 온전함. 그게 완성품이라고 이 안에 들어가 있는 게 완성품. 우린 여기서 노래 부르고 왔다 갔다 좋다고 기념식을 하고 무대 차려놓고 여기다. 그렇죠? 십자가 지금 왔다 갔다 하고 칸타타도 하고 별의별 거 다 하죠. 그렇죠? 칸타타 하면서 서로 소리 안 나온다고 찔러싸코 이러면서 니는 잘났다 이러고 좋아하고 난리잖아요. 그렇죠? 그리고 집에 가면 본성이 그대로 나타나죠. 영광이 안 나타나고. 그렇죠? 이런 걸 볼 수 있는데, 이게 안에 있다라는 건 엄청난 축복이에요. 그 안에 있는 걸 복이라고 욕을 복이라고 그래요. 그리스도 안에를 복이라고 그러고 하나님이 우리를 계획 가신대로 만들어진 완성품이라고 그래요.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한 것. 그렇죠? 영화법 17장, 21절 이하에 나오는 말이죠. 그런가요? 10편, 27편으로 가볼까요? 그래서 승마강에는 언제나 고요합니다. 밖에 아무리 태풍이 몰아쳐도 고요합니다. 폭풍이 치는 바다의 뱃속에 잠든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사도들은 다 그 밖에 있었죠. 얼마나 불안하겠어요? 여러분 혹시 불안한가요? 말을 할 수는 없겠고 하나도 안 불안하죠. 염려 근심이 전혀 이제 없죠. 아메 아니 그러니까 여기 안에 있으면 태풍이 불어도 안전하다니까 여기를 이걸 그냥 고정한 게 아니고요. 여기에 보면 주석을 박았어. 갈거를 해가지고 이걸 딱 껴서 연결했다니까요. 이걸 또 이걸 다 이렇게 이렇게 해서 못 날아가게 이 주석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춧돌이에요. 이건 절대 안 변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딱 연결해 놨다니까요. 절대로 안 움직이도록 절대로 이게 이렇게 박혀 있다니까요. 이렇게 이렇게 이것끼리도 근고리로 연결해 놨답니다. 아무리 바람 불어 봐요. 아무리 비가 들쳐 봐요. 안에서 불이 안 꺼져. 잠잠 아침에 잠잠하죠. 옆에 아무리 뭐라 해도 잠잠하죠. 뭐라 하면 성질이 확 올라오죠. 그 안에는 평강과 안식이 있는 거예요. 고요함, 영혼의 잠잠함이 있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의 성품이거든요. 시편 폈어요. 추편 4절 5절 내가 여와께 청했던 한 가지 일을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와의 집에 거하여 여와의 아름다움을 악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여하께서 활란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십시오.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뒤에 높이 두시리로다 이거예요. 딱 여기 딱 그 모양이에요. 여러분은 악망해요. 여기서 금덩어리를 악망하죠. 아닌가요? 지금도 혹시 여기서 애물투척하시고 금덩어리랑 하나요? 지금은 뭐해요? 뻔뻔스럽게 여기 안에 들어가서 이게 잘하는 거야. 그리고 여기 많이 갔다 왔다 하면 여기 갈 자격이 주어집니까? 아는 사람만 가는 겁니다. 오늘 와서 처음 거기 가면 된대 해서 뭣도 모르고 간 사람은 갈 수 있고 평생 여기 왔다 갔다 왔다 갔다 하면서 그런 게 있었어. 평생 왔다 갔다 하면 일등석에 앉을 자리를 주는 게 아니에요. 아시겠어요. 무식한 사람에게 자리를 무식하게 돌진을 하는 사람 여러분은 어디에 속하나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어정쩡하게 이런 게 있나 이런 게 있나 하다가 가버려 그러시죠? 그러다가 맛 좀 보다가 아이고 별거 없네, 그러다가 가버리고 아멘 갈 데 없어 안 가고 여러분 이시평 기자가 뭘 구했다고 그랬어요? 내가 구한 단 한 가지 한 가지예요. 그 안에 구하라고 여러분은 단 한 가지 구하라면 뭘 구하겠어? 이게 얼마나 엄청난지 아시겠어요? 이 안에 있으면요. 천국이라고 아무도 못 건드려요. 천사가 있잖아. 천사 천사가 딱 지켜봐. 믿는 자들을 지켜 보호하고 수정을 들고 말씀대로 이루어지게 하는 게 천사거든요. 여기에 예수님이 지켜보호하고 있는 거랑 우리를 지켜보호하고 있는 거랑 똑같은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이잖아요. 하나님의 아들 천사는 하나님의 아들을 수종될 의무가 있거든요. 진리에 따라서만 우리가 진리 안에서 진리대로 행하려고 하고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면 천사가 움직이는 거예요. 천사가 수종되는 예수님이 광야에서 시험 받고 나니까 천사가 그때부터 수종들었죠. 잘 생각해보세요. 광야의 네 과목이 날아갔죠. 그걸 시험을 통과했죠. 통과한 건 그게 내가 없는 거잖아요. 이게 시험 통과하는 거죠. 여기서 자아가 없어지는 거잖아요. 그리고 이 안에 들어가면 이제 천사가 수종들 천사가 우리는 이 밖에서 일주일에 5번씩 10번씩 왔다 갔다 새벽 기도부터 해서 새벽 기도에서도 투척하고 가야지. 아메 그러면서 천사가 보호하길 바라죠. 여기 밖에는 없어 여기 안에 이 수평 기자는 이걸 알았던 거예요. 그렇죠? 10편, 27편이 다윗인가요? 다윗인지 아닌지 제가 확인을 못 해봤네요. 맞나요? 다윗 말고 누가 이걸 쓸 수 있겠어요? 아사비 이걸 쓰겠어요? 성질 나니까 다른 애들은 잘 되는데 나는 열나게 잘 믿는데 왜 이 모양이 이런 거나 쓰지? 아사비 이건 다윗이나 쓸 수 있는 거예요. 완전히 매달린 사람만 쓸 수 있는 거예요. 다이스 이거 알았던 거예요. 그래서 뭔 일이 생기면 무조건 여우와만 구했던 거죠. 여러분도 그렇겠어요. 하려고 그래요. 아직도 안 하고 있어요. 뭐야? 그럼 밖에서 해풍을 맞고 있는 중이에요. 지금 비바람을 맞고 있어요. 불쌍해라. 거죠. 지금 아 그러구나 아유 내가 이렇게 짧아서 0이 여기 보세요. 나로 내 생전에 그랬어요. 내 일생 동안 그 안에 거하기를 우리 나이 안에 거하라. 지금 하고 있는데, 얼마나 엄청난 건지 아시겠어요? 그래서 구체적으로 그 안에 거하는 방법, 임재 안에 거하는 방법을 지금 하고 있는 이번 주에는 임재훈련으로 갈 거예요. 이제. 엄청 중요한 거예요. 그 안에 거하며 그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을 맛본 거예요. 맛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악망해요? 여러분? 뭘 악망하죠? 아멘 여기 와서 여기 와서 이 총리 그림을 그려놓고 이걸 바라보잖아요. 집에도 그거 어떻게 아셨어요? 이 집에도 이거 그림을 다녔으니까 거기 계속 안 다니고 여기 오셔가지고, 여기 여기 왔다 갔다 하면서 이거 악망하죠. 어떻게 바라보다 여기까지 여러분 뭘 바라보죠. 여기 안에 있는 걸 여러분 소망해야죠. 항상 그걸 바라봐요. 다윗은 그걸 바라본 거예요. 이런 것들이 다시 죄 가운데 있다가 나왔을 때 이런 시들을 많이 줘요. 많이 써요. 이렇게 우리도 뭔가 죄나 잘못된 행동이나 내가 내 생각으로 했다가 큰코다치면은 이제 그때 정신적 이런 것들이죠. 그래서 그 집에 거하며 여와의 아름다움을 악망하며 여기 보세요. 안에 이게 이게 얼마나 아름답겠어요. 이 4개가 이 4가지가 다음 시간에 말씀을 드리겠지만, 사복음서예요. 사복음서. 사복음서를 이 내막을 말하는 게 아니고 안에 있는 4가지 색이요. 그런 걸 말하는데 그 안에 우리가 말씀 안에 있는 거잖아요. 이게 그리스도 아니죠. 사복음선은 예수 그리스도거든요. 그 안에 있는 삶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가라는 걸 다윗은 그래서 알은 거예요. 말씀을 붙들고 있잖아요. 양쪽에서 안 놓잖아요. 그 안에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호와께서 환란 날의 나를 그 처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밖에서 아무리 환란이 몰아쳐도 그 안에서 우리를 지키는 이게 세굴라예요. 언약이 뭐예요?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되는 건데 어떻게 해야 되던가요? 말씀을 내 안에 새겨서 되는 거였잖아요. 그거는 상원해줘야죠. 결국은 연약이에요.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거예요. 안에 거하려면 내가 이걸 통과하고 그 안에 연합되는 거죠. 십자각을 통과하고 로마스 6장에 함께 죽고 함께 묻히고 함께 연합하여 그 안에 앉히는 거죠. 여배소스 2장에. 죽은 자를 죽은 우리를 살리자 우편에 앉히셨다 하다 그 안에 연합해서 요한모음 17장 21절 이하의 연합해서 그 안에 있는 게 언약이거든요. 언약의 완성이 그게 완성품이라고 이게 하나님이 말씀하신 완성이에요. 우리는 천국에 가면 여기 있을 거예요. 이게 천막이 천국에 있겠어요. 0이잖아요. 0이니까. 그런 상태 안에 항상 거하고 있겠죠. 그러니까 거기에는 평강과 이것이 떠날 날이 없는 거예요. 왜? 예수님이 우리의 성전이라고 분명히 그랬잖아요. 성전 안에 우리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걸로 덮고 루시 루시 보아세이 옷자락으로 나를 덮어 써서 그걸로 쑥 기어 들어갔잖아요. 그런 걸요. 그 상태를 말해요. 거기 들어가면 얼마나 따뜻하겠어요? 푸근하고 다 있잖아. 보아스가 보아스가 뭔 뜻이요? 능력이라는 뜻이잖아. 능력. 보아스 능력. 그게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거든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싹 들어가 있는 거죠. 아침에 하니까 그 안에 싹 들어가니까 기분이 어때요? 들어가 본 사람 많아 그 언약을 지킬 때 나는 내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내 백성 세굴라가 된다고 그랬죠. 그리고 제사장이고 나라가 되고 백성이 된다고요. 그렇죠? 조건을 만족하니까 그 안에 과하게 되는 거죠. 초막 속의 비밀을 지키시고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 바위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죠. 그 위에 높이 딱 이렇게 안전하게. 그러니까 그 안에서는 두려움과 공포가 없어요. 대적의 위험. 끄떡 없어요. 이런 상태가 그 안에 거하는 거예요. 여기서는 두려움과 공포, 대적의 위험 이런 것으로부터 자유로우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에녹성을 쌓아야지 마벨탑을 바벨탑을 쌓아 올려야죠. 그런데 올라가면 불어버리고 올라가면 훅 불어버리거든. 맨날 노출되는 거예요. 그런데 에녹성을 쌓고 그렇게 그 안에 거하면서 띵가씽가 할 줄 알았는데 그걸 뭐라고 그랬어요? 쉼 없는 방랑 유리방황이라고 그랬잖아요. 절대로 지켜주지 못하는 거예요. 밖에서 큰 성 쌓아놓으면 지진이 안전한가요? 비바람이 불면 거기만 피해 가나요? 아니 인간의 노력이 그런 거라는 거예요. 라고 여러분 그러니까 헛수고하지 말고 이하로 들어가세요. 그냥 여기서 아둥바둥 그만하시고 그냥 들어가세요. 바레시아 그리고 나오지 마세요. 볼일 볼 때 잠깐 나왔다가, 얼른 들어가시고 제발 그렇게 하세요. 그 안에 그거 하려면 이 4개 보를 통과해서 안에서 가야 되니까. 이게 십자가라는 고통이 따르죠. 그런데 그 고통이 얼마나 엄청난 걸 예배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래서 감사하는 거예요. 십자가를 칠 때마다. 이게 언약이죠. 그리스도 아내라는 바로 임재. 그 임재 안에는 나는 없는가. 내가 그 안에서도 살아있으면 염려 의심이 안 드나요? 그래서 우리는 완전하게 아내로 연합되지 못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아직도 그런 게 남아있지만 결국은 없어지죠. 그렇죠? 거기 안에 들어가면 말씀과 성령이 항상 나를 인도하거든요. 밝혀서 거기에는 어둠이 없어요. 해가 떨어지면 여기 환한데 여기는 물론 이제 불기둥과 구름 기둥이 이렇게 다 듣고 있긴 했지만, 어두워요. 그런 것들을 철저하게 하셔야 돼요. 이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가지고 있는 특권이에요. 특권. 그리고 그 안에 들어온 자가 누리는 축복이요. 이걸 축복이라고 그래요. 우리는 여기서 복 달라고 그러죠? 축복해 주시옵소서. 뭘 축복하라는 거지? 바벨탑을 쐈는데 돈을 좀 달라는 건가요? 아니면 비바람을 어떻게 좀 피할 수 있도록 이렇게 텐트를 따로 하나 달라는 건가요? 뭘 원하는 거죠? 참 답답하죠. 천사들이 나를 보아리니 두려움 없이 앞만 보고 앞이 보여야 따라가지. 앞을 보아도 뒤를 보아도 어디로 갈지 몰라요. 그거라니까요. 오직 말씀과 성령의 인도함만 받는 것이에요. 그 안에서는 번제단에 죽고 물두멍에서 나를 신는 육적 몸을 할례하는 거죠. 이 스크리스토를 믿고 내 육적 몸을 벗는 할례를 하고 나서야 여기 안으로 들어가서 연합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안 쉬운 거예요. 그래서 안 쉬운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열려 있잖아요.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는데, 여기 왔다 갔다 하던 신앙생활이 고착화돼 있어서 열어놔도 못 들어갑니다. 코끼리 발 묶어놓고 어릴 때부터 이렇게 있으면 풀어놔도 못 나간다고 그러잖아요. 고기만 뱅뱅 그거하고 똑같은 거예요. 여러분 그러니까 오랫동안 이 율법 아래서 지식적으로 이런 종교 형식에 매여서 신앙생활 하시는 분들은 이쪽으로 열어놓고 들어오라고 해도 거기를 왜 가냐고 왜? 왜 가냐고 그런다니까요. 여기 가면 완전히 다르거든요. 지금까지 한 거하고 완전히 다르거든요. 이상하죠? 여러분 이상하지 않아요? 왜 묵묵부답이시지? 이상하지 않는 건 이것도 제대로 안 한 거예요. 이런 것도 제대로 안 하고 그냥 와서 잘 몰라. 뭔 말인지 잘 모르겠다. 그런 거죠. 말씀과 성명 그렇죠. 떡상과 등잔 그다음에 말씀과 성령의 밝히심과 인도하심을 따라 분양단이 기도할 때 그 영광 안으로 들어가는 거죠.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체험하고 간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체험하는 게 바로 그리스도 안에예요. 그리스도 안에 얼마나 엄청난 걸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지 아셔야 돼요. 여러분 여기서 복타령 설교 들어오면 배 불룩하죠? 배가 아주 너무 기분 좋죠. 안심하세요. 여러분 다 잘될 겁니다. Amen, AMEN 이러면 금방 다 잘될 것 같잖아요. 슬슬 결론을 말씀을 드려볼까요? 이게 뜰이죠. 뜰에서 구원을 받았다고 아무리 열심을 내고 들락날락하면서 여기 번제단에서 막 재물을 태워서 자기는 안 죽고 대신 재물을 태우는 거죠. 우리의 헌신을 말해요. 외물을 말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또 회개도 합니다. 눈물도 흘리고 주님 잘못했습니다. 합니다. 합니다. 그렇죠? 그런데 태우진 않아요. 자신을 전부 형식으로 하죠. 여기에서 여러분 우리의 저기 율법적인 신앙에 얼마나 엄청난 오류가 있는지 아셔야 돼요. 제가 말씀을 많이 드렸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피로 구원하신 이유가 뭐라고 그랬어요? 왜 우리를 구원했다고요? 베드로 전사 318 여기 앞에 여길로 파레시아 하기 위해서 피 뿌림을 통해서 구원을 구원 시작이에요. 구원을 얻어서 여기 앞에 나아가기 나아가서 뭐하게요? 살기 위해서요. 여기 안이 생명이거든요. 여기 구원의 완성 지점이 여기거든요. 그런데 이걸 위해서 했다는데 여기서 멈춰 있는 거잖아요. 그렇죠? 얼마나 심각한가요? 그 성경의 그런 부분들이 뭘 의미하는지 잘 몰랐다라는 거죠. 그냥 인도함을 받아서 교제하면서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는 삶이 영생의 언약이죠. 영생이 영생. 그걸 천국이라고 이 안에 아까 보셨지만 천국의 삶이거든요. 여기 밖에가 아니고 여기라고요. 그게 천국의 삶인데 여기 안에 안 들어오고 여기서 열심을 내고 있긴 한데 마음이 항상 허한 거요. 만족함이 없고 가라한 거예요. 그래서 수고와 슬픔, 염려, 의심 이게 안 떠나는 거예요. 떠날 수가 없는 거예요. 불가능한 거예요. 보호막이 없는데 여기는 보호막이요. 황량한 사막이라고요. 광야. 우리 삶이 광야 같은 삶이잖아요. 영적으로 육적으로 보면 큰 빌딩도 있고 그 안에 들어가 버리면 태풍 안 먹고 그렇잖아요. 영적으로 그냥 지하 100m 뚫고 들어가서 그 안에 이렇게 파이프 갖다 놓고 숨 쉬고 있으면은 안전한가요? 먹을 거 먹으면서 평생 먹을 거 고기 안에 쟁여놓고 이렇게 살고 있으면 안전한가요? 염려 의심 안 해도 될까요? 여기도 뚫고 올 텐데 저 두더지 같은 놈들이 언제 뚫고 올지 모르잖아요. 매일 먹으면서 어떡하지? 또 뚫고 들어오는데 먹는 것 떨어질 때 됐는데 못 사는 거예요. 그러고 그 영적으로 보면 그게 광야라고요. 다 노출되어 있는 거예요. 다 노출되어 있는 거예요. 그럼 지하 100m에 있으면 귀신이 안 들어오나요? 어리석죠? 하나님이 왜 우리를 불렀다고 그랬어요? 예수나 예수님 안에 심어놓고 예수님과 함께 교제하기 위해서 불러놨다고 우리 지금 수요일날 오전에 하는 거 그거잖아요. 고려조선서 1장 9절, 1장 30절 여한일서 1장 3절 우리와 교제하기 위해서 불렀다고요. 교제하는 건 하나님의 뜻이에요. 거기 구원이라고 구원 우리 삶이라고 그랬죠. 이게 우리 삶인데요. 사실은 밖에서 안타깝죠. 그러니까 들에 출입하면서 제사만 지난 거예요. 예배라는 형식만 했던 거예요. 예배라는 형식만 갖췄는데 자기 원하는 대로 한 거죠. 전부 자기 원하는 대로 종교활동을 한 거죠. 그렇죠? 그런가요? 율법에 따라서 뜰에 있는 신앙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거예요. 예수님의 피를 흘리신 이유는 여기 머물라고 한 게 아니고 이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 흘린 피거든요. 그런 거 예수님의 피를 정면무시하는 거죠. 아닌가요? 잘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묵상하면 이런 게 나온다니까요. 전부 이런 게 나와요. 피를 헛되게 하는 거죠. 예수님은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거랑 뭐가 달라요? 그게 이사에서 1장에 보면 여기 나오죠. 이거 내용이 뜰만 왔다 갔다 마당만 밟는다고 그러면서 그게 재물을 외물을 투척하고 왔다 갔다 피를 뿌리고 하는 구역질 난다고 냄새난다고 가져오지 말라고 천천히 만만의 강수. 넌 뭐가 필요하냐고 다윗도 10편, 51편에 의뢰죠. 하나님께서 번져를 좋아했으면 매일 아침저녁 나도 할 것 없이 매일 계속 번져만 들었을 거라고 하나님 그걸 기뻐하는 상한 심령을 기뻐하는 여기에 들어가는 건 상한 심령이에요. 그걸 기뻐한다고요. 이게 은약 밖에 있는 거거든요. 은약 밖에 있으면 여러분 어떻게 돼요? 돌보심을 못 받기만 해요. 심판이 난다고요. 왜냐하면, 약속이잖아요. 하나님과 나와의 약속이잖아요. 피로 맺은 약속. 그러면 여기 밖에서 아무리 잘하는 걸로 알고 여기 왔다 갔다 하면 엄청 잘하는 줄 알거든요. 회칠 엄청 열심히 하는 줄 알거든요. 그런데 언약은 여기 안에잖아요. 이것도 언약이고 이것도 언약이죠. 읽고 안에 들어오는 게 언약이거든요. 언약 밖에 언약 안에 여기 가서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대접하면서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영생을 누리는 게 언약이죠. 여기서 하나님은 하나님을 대접하고 계셨나요? 여기 밖에서 하나님을 대접한 적이 있으신가요? 그게 내 멋대로 내가 복음 내 신앙이었죠. 그러면 심판이 올까요? 안 올까요? 심판이 오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심판을 받았고 여러분들도 다 심판을 받은 거예요. 지금도 이쪽이 비중이 높다 그러면 아주 힘들어요. 인생이 무지무지하게 힘들어요. 심판은 실시간으로 와요. 무시하기 힘든다니까요. 몸으로 오고 환경으로 오고 주변에 어떤 관계로 여러 가지로 온다니까요. 눈치도 못 채죠. 아주 작은 것, 터치 이런 것부터도 와요. 그럴 때 얼른 눈치를 쳐야 되는데 얼른 얼른 눈치를 쳐야 돼요. 저처럼 미련에서 계속 되어들다가 되어들다가 여러분 그 다음에 모들로 여기서 쫙 저는 그렇게 됐어요. 떠나서 주여주여 열심히 잘하는 줄 알았는데 지쳐서 돌아가는 신앙이었어요. 여러분 안 그런 것 같아요? 지금은 안 그러죠? 제발. 그렇죠? 지금은 언약 안에 있죠? 언약 안에 있잖아요. 언약 밖에 있으면 힘들어요. 반드시 심판이 옵니다. 분명히 심판을 해서 여기 안으로 들어오게 합니다. 심판의 이유는 그거예요. 게시록에 그 환란과 고난 심판이 오는 이유가 뭐든가요? 회계. 회계. 회계는 뭐예요? 돌이켜 들어오는 걸로 회개라고 그러잖아요. 그 회개케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심판이 오고 고난이 오거든요. 그런데 그러면 심판이 오고 권한이 오면 여기 있는 사람들은 뭐 해요? 주로 여기 뭐 합니까? 이 재단에 송아지 큰 걸 갖다 놔요 안 그러던가요? 영화 여러분 가끔 보면은 이단들 제사 지내고 이런 거 있잖아요. 그거하고 똑같은 거에 투석 시간왕이 우리 안에 있어가지고 막 안 되면 예물을 더 큰 거 아들도 갖다 바치고 그렇죠? 여러분 아들을 드립니다. 하고 서운하신 분 계시죠? 그렇죠? 몇 분 계신가요? 여기 하나 둘 셋 넷 네 분이나 계신데, 보세요. 이렇게 해서 이걸로 때우려고 그래. 이걸 때우는 걸 뭐라고 그랬죠? 히브리스에 나왔잖아요. 이 무익한 거라고 이게 어리석은 짓을 하는 거예요. 종교활동을 더 강화합니다. 더 강화한다니까요. 그렇게 호세에 보면 소를 떼로 몰고 온다고 그러죠. 때를 몰고 와. 소를 떼로 몰고 와라. 내가 봤는가? 소를 떼로 몰고 왔는데. 그러니까 하나님이 질려버린 거예요. 여기서 제사만 계속 도축만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 마음에 하나님이 하나님 되는 걸 꺼려하는 거죠. 맞나요? 여러분? 하나님이 하나님 되는 거 좋아해요? 솔직히 좋아합니까? 하나님이 일일이 간습하면서 오늘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저거 하면 맞는다 이렇게 하면 좋아합니까? 그래서 심판을 받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심판을 받아서 뭔 일이 안 되잖아요. 그럼 뭐예요? 소를 큰 소를 몰고 오는 거예요. 왜? 제일 많이 지었으니까 큰 소를 몰고 와야지. 큰 소를 몰고 갖다 놓고 또 돌아갑니다. 돌아가면서 또 큰 죄를 짓습니다. 그러면 이게 소 2마리 몰고 와야 돼. 큰 거. 4마리, 8마리 소를 떼로 몰고 온다고 그러는 거예요. 그걸 종교활동이라고 그래요. 그거를 율법 아래에서 행하는 종교활동, 형식적인 종교활동이죠. 그러면서 소 갖다 바치면서 내 몸을 치료해주세요. 내 사업을 일으켜주세요. 이렇게 하는 거죠. 그게 맞나요? 제가 그렇게 했어요. 그래서 막 끌어들여서 조금 될 만하니까 또 될 만하니까 또 될 만하니까 또 이렇게 여러분은 어때요? 한 번에 확 해버렸나요? 한 번에 하는 게 좋아요. 한 번에 저처럼 오랜 시간 동안 이렇게 이렇게 하면 진이 다 빠져버려요. 가족들 전부 다 이거 아닌 것 같아요. 여러분 이게 진리예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러면서 믿음 엄청 좋은 줄 알았어요. 자탁공인 믿음 좋은 사람이었어요. 믿음이 그렇게 좋은데 산을 옮긴다는데 요만큼만 있어도 왠 산을 옮겨? 개망신당했어요. 열심히 교회 왔다 갔다 하면서 온몸을 받쳐서 개망신당하는 신앙생활이 제 간증입니다. 본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니 이런 쉬운 길이 있는 줄 왜 안 가르쳐줘? 거짓 선지자들밖에 없어서 그래 이 대로가 열려있는데, 이렇게 이렇게 대로가 길 히스크리스토크 이거라고 이거 못 외우는 사람 있어요? 요 한 모금 17장 3절 교회 다니는 사람 중에 못 외우는 사람 이거 있어요. 못 외워도 최소한 집에 가면 액자는 다 있잖아요. 그래요. 뭔 예수 그리스도 길이다. 길을 가르쳐주나 보다. 이리로 가라. 진리가 뭔지는 죽어도 깨어나도 모르고 그렇죠? 생명은 또 뭐야? 살아있는데, 내가 이 영생이 영원한 생명 이 안에 들어가는 걸 말한다고 제가 수없이 말씀을 드렸는데 그래서 히브리스 읽다 보면은 담대하게 나아가라. 히브리스 안 읽은 사람. 여기 옛날에 어려우니까 안 읽었을 거야. 좀 읽다가 포기했을 거야? 아니면 얼른 넘어. 아이고 이런 성격이 다 있습니다. 접수 안 되잖아요. 접수됐어요. 목사님 접수됐어요. 확실하게 대답을 안 하시네. 세간의학에 알고 계시기는 했을 텐데 지식적으로 온몸으로 이걸 몰랐던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까지 오셨지? 괜히. 언제 하면 하나 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 안에 안 들어가고 밖에서 이걸 외우고 있는 거예요. 내 길이 되어 주소서 뭐야? 그게 도대체 그렇죠? 그리고 히브리스에 보니까 여기에 히브리스 사장 16절 담대하게 나가라. 그럼 뭐 한다고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여기 안에 준다고. 여기 들어가면 그 돕는 은혜를 받는다고. 그런데 여기서 도와주소서 도와주소서 주님 살려주소서 쌀. 이렇게 했잖아요. 그러니까 도와주던가요? 심판이 더 이만해. 왠일입니까? 당연한 거 아니에요. 언약대로 심판을 받은 거예요. 저도. 이 안에 들어가면은 7장 25절에 보면은 글을 힘입어 나온 자를 온전히 권하신대 그러니까 여기서 별의별 일이 다 다 겪고 있는데, 이 안에 들어간 자는 이 일로부터 완전히 권한다고요. 그런데 여기서 이 일에서부터 나를 권해주소서, 살려주소서, 도와주소서 여기서부터 벗어나게 해주소서 막 쏘아붙였죠. 송아지 큰 거 갖다 놓고 안 되면 굶어가면서 막 그렇죠? 막 하고는 안 온다고 이거. 뭡니까? 이거 아니 도와주고 보호하고 이건 언양 안에 있는 사람만 해당되는 거예요. 이 안에 있는 사람만 해당된다고 이거 이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해당이 안 되는 거예요. 이게 도움과 구원 해당 안 되는 거라고요. 이 밖에는 심판만 있을 뿐이에요. 그런데 믿지 않은 사람이 이미 끝난 거고요. 믿는 사람도 여기 밖에 있으면 심판만 해당되는 거예요. 심판을 받아서 이쪽으로 들어오게 하는. 그런데 여기서 심판을 받으면은 그리스도의 무덤에 연합하던가요? 내가 잘못했네요. 맞네요. 하는 사람이 있던가요? 왜? 나만 겪는 고냥이라고 불평하고 원망하잖아요. 그럼 어떠하겠어요? 이 집사께서 아직 정신을 못 차리셨군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중에 몇 명을 골라서 옥에 던져버립니다. 아니면 침상에 던져버린다고. 침상에 던지는 걸 뭐라고 그랬어요? 죽음이라고 그랬어요. 침상에 던지는 건 움직이지 못하는 거거든요. 그 상태로 가는 거예요. 그래서 침상에 누워서도 뭐라고 그러는지 알아요? 주님 한 번만 살려주시면 내가 주님께 멋지게 영광 한번 돌려보겠습니다. 이러면서 또 영광을 넣어야 돼. 그렇게 기도하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침상에서. 원망 불평하면서 속으로 이런 일이 벌어지는 웃지 못할 일이죠. 글쎄 이게 안에 나가면 상을 준다고 그랬잖아요. 상이 뭐예요?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그게 상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을 소유한다라는 건 엄청난 거예요. 우리 안에 그런 일이 일어나야 되는데 우리는 그냥 왔다 갔다 안타깝게도 이런 걸 시골에서 읽으면서도 몰랐어요. 거기 보면 이게 나아가는 게 그림자라고 그러고 실제는 연합하는 거라고 분명히 그 앞에 담대의 나아가는 거라고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가 담대의 그 앞에 나아가서 그걸 행하는 거라고 그랬는데도 언약 밖에서 형식만 계속하고 있었던 거예요. 영생을 몰랐던 거죠. 결정적으로는 죽어서 가는 게 영생. 이 안에 들어가서 이게 생명을 함께 누리는 거예요. 현재 시간으로 누리는 걸 영생이 있는데, 그걸 몰랐죠. 그리고 여기서 하나님을 다 아는 것 같았는데 하나님은 뭐 하나님 여기서 경험해야 알지? 몰랐던 거예요. 하나님은 하나님은 모르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하나님 대접하죠? 그러니까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 대접하는 방식을 각자 나는 일주일에 한 번만 온다, 충분하다, 새벽에도 온다. 올 때마다 나는 소 한 마리 가지고 온다. 아니면 올 때마다 나는 사람 좀 가져온다. 이렇게 전부 다 하나님을 하나님 대접하는 방법이 다른 거예요. 때로 해서. 떨어져. 그리고는 다 한 줄 알아요. 자기 한 걸 자기 소임을 이제 하나님 대접을 다 한 줄 여기 왔다 갔다 하는데 시간이 얼마? 1시간이 되죠. 그렇죠? 좀 먼 사람은 2시간, 3시간 그리고 나머지 6일 더하기 20시간은 내가 왕이 되어서 여기 와서도 내가 왕이 되어서 하는 거예요. 하나님께 적선을 베풀잖아요. 아닌가요? 그리고는 이제 종교활동을 다 필했다. 이제 복이 내려온 것만 이제 기다리면 된다. 그래서 인내로 심판을 마구 받으면서 인내로 기다렸죠. 아니면 죽어서 자손들에게도 복이 간다 이렇게 자손들까지 다 죽이는 거예요. 이 안에 다 싸그리 몰아넣어서 다 죽이는 거라고 알고나 신앙생활 하셨어요. 하나님을 대접한 적이 어딨어요? 여기 밖에서 만나야 하나님이 뭘 원하는지 알죠? 그러면 원하는 대로 아 네 이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는 거죠. 제가 아침에 오늘 3시 50분쯤 됐는데 눈이 떠지는 거야. 왜 떠지는 거야? 또 이런 시간에 일어나려면 아직 4시, 5시까지 1시간이 더 남았는데 그것도 1시간 줄여서 그렇게 된 건데 어쨌든 간에 그래서 자려고 그렇게 일어나면 또 나중에 헤롱헤롱 할 수도 있잖아요. 내 생각이지. 그것도 조금만 더 자볼까? 이러고 있는데, 일어나지 않을래. 그러는 거야. 그런 거 그래서 일어나서 앉았어요. 그랬더니, 마누라가 또 뿌듯뿌듯 일어나더라고. 그래서 하기 싫은 거 일어나지 않으려고 가서 앉으니까 뭔가 쏟아지던 내려오는 거예요. 쏟아부어버린 거야. 하나님이 뭔가를 그건 비밀이에요. 쏟아부어. 그러니까 하나님은 성경이면 다 예비하고 조금 일찍 깨워서 주려고 하는데 나는 조금 아직 아니잖아요. 이러고 있는 그 여기 매일 밖에 있으면 그걸 경험을 언제 하냐고 그러면서 하나님을 제일 잘하는 걸로 착각을 하고 계시잖아요. 교회 오래 다니시면 안 그래요. 오래 다니시면 어때요? 엄청 잘 알고 계셨죠? 여기 와서도 그러던가요? 아 저도 하나님 엄청 잘하는 줄 아세요? 저도 성경을 많이 읽었고요. 저기 막 쓰신 분도 막 여러 번 쓰신 분도 계시더라고. 그런데 제가 말씀드리기를 하면서부터 보니까 하나님을 하나도 몰랐더라고요. 깜찍스럽죠. 하나도 몰랐더라고요. 여러분 안 그랬어요? 어떻던가요? 제가 충격받았어요. 아주 충격 충격 엄청난 충격을 새언약 안에 들어와서 언약을 지키는 거 이거 없으면 심판받는 거 이런 내용 전혀 몰랐어요. 믿는 사람은 잘 믿는데 왜 심판을 왜 받아? 복을 받아야지 왜 심판을 받아? 복을 받아야지 확실히 복을 받았어요. 그래서 제가 그 심판에 의해서 받은 게 복이더라고. 결국은 놀랍게도 그래서 거짓 선지자에게 그때까지 속았던 거예요. 교회에 충성 봉사하고 신하고 목사를 잘 섬기고 그러면 자손 대대로 복을 받는 줄 알았어요. 그게 하나님을 잘 섬기는 건 줄 알았어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겠어요? 아멘 보이는 하나님이 계신 여기 와서 섬겨야지요. 아멘 하나님의 대리자를 섬겨야지요. 아멘 릴루야. 그래서 목사님을 우상으로 만들어드렸대요. 그러면서 성도는 아주 우민화되었어요. 그래서 소경들만 우글우글한 거 지금은 알아요. 그때는 몰랐어요. 폭타령에 속아서 인생 탕진했어요. 믿음 좋은 장집사. 아주 인생 탕진했습니다. 믿음이 그렇게 좋았는데 왜 이렇게 탕진했나? 몰라. 여러분 믿음 안 좋았어요? 믿음 엄청 좋았죠. 믿음 좋으신 분 저기도 계시잖아. 아메 그리고 왜 인생을 탕진해? 복타령을 그렇게 오래 들으셨는데 왜 복을 안 받고 여기 오셨어? 그래 그게 복이야. 피해관계 복타령에 속아서 인생을 탕진했다니까요. 제 인생을 그 거짓 선지자에게 교회와 목사를 위해서 온몸 바쳤어요. 그런데 그 신앙생활을 보니까 여기서 죄만 생산하는 거 깜짝 놀랐어요. 하나님은 언약 밖에서 율법에 따른 종교 활동을 너무 많이 하니까 언약 밖에 있잖아요. 하나님을 대접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교회 와서 예배를 철저하게 하고 신앙생활을 철저하게 하고 이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는 건 줄 알았어요. 하나님의 순기능 본질인 줄 알았어요. 그게 그래서 하루라도 새벽기도 안 나오면 큰일 났죠. 큰일 나. 가슴이 벌렁벌렁하고 큰일 났네. 어떡하면 좋아. 죽는 줄 알고 저 캐신 분 계세요? 큰일 났다. 하루 빠지면 땀이 삐질삐질 나고 진짜로 그랬다니까요. 여러분은 안 그랬어요. 비바람이 불어도 애 새끼고 요만한 거 들쳐업고 앵앵 하는 거 들쳐업고 가고 그래서 애들이 주기도 뭘 외우고? 할릴루야 할릴루야 하니까 멋진 애가 태어난 줄 알았어. 저는 뭐 멋진 멋진 애야 흉내 잘 내는 애지 아이고 바보 바보 바보 그 모든 종교 활동이 언약 밖에 있으니까 그래서 심판을 받았고 이건 그리스도의 피를 무시하고 헛되게 한 거였어요. 그래서 기존의 율법에 있는 교회들이 성도들을 율법으로 묶어놓고 종불이 다 하는 거예요. 교회와 자기를 위해서요. 딱 맞거든요. 그래서 언약대로 저도 심판을 받아서 그렇게 된 거예요. 여러분도 저처럼 심판을 받아서 여기까지 오신 거죠. 저만큼은 안 받은 것 같아요. 다행히 감사하지 않아요. 지금도 혹시 언약 밖에 있어요? 언약 안에 있어요. 언약이 뭔지 아직 몰라요. 하나님을 하나님 대접하고 있어요. 똘마니 대접하고 있어. 기분 좋을 때는 이 내갈의 왕자는 예수 그리스도고 그 안에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이 안에 있을 때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밖에서는 구원이 없어요. 예수 믿는 게 아니에요. 동의지. 그냥 지식적인 동의에 불과 예수를 믿으면 반드시 여기 안에 가 있어야 돼요. 믿고 구원을 얻는다고 그랬죠. 믿고 영생을 믿고 여기서 그냥 이름만 있는 구원이 아니고 영생을 얻는다고 그랬죠. 이게 영생이에요. 이거 영생이라고 그러지 않아요. 이건 그냥 때려 왔다 갔다 하는 이방인들도 하는 거고, 이걸 영생이라고 그래요. 믿고 영생 믿는 자는 여기 있어야 돼요. 여기 있다라는 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고 있다는 건데 일생을 대접한 적이 없죠. 그건 실수로 그렇죠. 그렇다고 여러분 지금까지 해왔던 그런 신앙생을 전면 부정하는 게 아니에요. 가끔은 이쪽으로 들어갔잖아요. 감동을 받을 때도 있고 너무 감동받아서 그렇게 한 적도 있고 그래요. 그렇지만 그게 항상 그러지 못했죠. 그래서 심판을 받는 거예요. 제정신을 차리고 그 안에 들어와. 이걸 누리라고. 누리라고 이게 엄청난 건데요. 이걸 누리라고요. 다 못 누리고 있다라는 것은 내가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우리가 오전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