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 12. 11. 오늘의 양식 : 사도행전 시대
삶의 터전에서 드리는 예배
표어 : 오직 예수. 재림 신앙. 땅끝 선교
1. 예배의 선포---------- 마음을 정돈하고 예배를 드리는 데 방해가 없도록 합시다. ------------
2. 찬양과 경배---------- 266 주의 피로 이룬 샘물
168 하늘에 찬송이 들리던 그 날
108 그 어린 주 예수 ----------------------------------------------
3. 신 앙 고 백---------- 사 도 신 경--------------------------------------------------------
4. 찬 송---------- 240 주가 맡긴 모든 역사 -----------------------------------------
5. 기 도---------- 주의 나라를 위하여
주의 동력자를 위하여
예배자를 위하여 ---------------------------------------------------
6. 하나님 말씀---------- 고린도전서 15 장 3 – 8 절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7. 설 교---------- 요한계시록
3] 사도행전 시대
사도행전에는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성전에서의 기적(행 3 장), 사마리아인에게 성령 강림(행 8: 14-25) 때 등장하나 모두 베드로의 보좌역이다. 아마 그는 예수님의 유언을 충실히 따라 마리아의 시중에 골몰하고 있었을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의 미문(美問)에서 앉은뱅이를 고쳐 주었을 때, 또 예루살렘의 대중에게 기탄없이 십자가에 달리신 나사렛의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증언했을 때, 표면에서는 베드로였으며, 그를 붙들어 세운 이는 요한이었다.
유대인들이 그들을 위협하여 앞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말며 가르치지 말라고 경계하자,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라고 대담하게 대답하였다(행 4: 19-20).
바울이 회심 후 14년 만에 예루살렘에 올라왔을 때(A.D. 50년경)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이었던 야고보, 게바, 요한. 이 세 사람은 바울과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했다고 갈라디아서 2: 9은 증언하고 있다.
그 밖에 요한복음에는 요한의 이름이 명기되어 있지 않으나, 다른 복음서의 기사, 혹은 전후 관계로 미루어 사도 요한에 대해서라는 것은 1: 35의 '세례 요한의 제자인 두 사람 중 하나', 18: 15의 '다른 제자 하나', 13: 22, 25, 19: 26, 20: 2, 21: 20, 24의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되어 있다.
요한에 대한 전설에 의하면, 요한은 십자가상에서 하신 예수님의 당부에 의해 마리아를 예루살렘에 있던 자기 집에 모셔다가 마리아가 죽을 때까지 11년 동안 보양했다. 요한은 바울의 활동에 의해 복음이 소아시아 지방에서 세력을 얻게 되자, 에베소 교회의 초빙을 받아 에베소로 갔다. 이 전설은 이레니우스(Irenaeus), 에베소의 폴리크라테스(Polycrates),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등의 저서에 근거한 것이다.
이레니우스(제 2세기 말 프랑스 리용의 감독)의 '배이단'(排異端)'에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세웠다. 요한은 그들과 같이 영주하여 트라야누스조(朝)에 이르렀다"(제 3권 제 3장). "주의 제자 요한은 전에 주의 품에 의지했던 사람인데, 아시아의 에베소에 살면서 일부의 복음서를 썼다"(제 3권 제 1장)는 기사가 있다. 폴리갑은 사도들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또 그리스도를 직접 목격한 사람들과 교제했을 뿐만 아니라, 사도들에 의해 서머나 교회에서 아시아의 감독에 임명되었다.
요한이 트라야누스(Trajanus, 53-117, 로마 황제, 재위 98-117) 황제 때까지 살았다면 극히 고령에 이르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에베소에는 감독 요한이 있었기 때문에 이 사도 요한을 장로 요한으로 보는 이도 있다. 여하튼 전설에 의하면, 그 후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 유배되었다.
에베소에 있는 요한의 무덤은 계 1: 9 - "나 요한은…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에 근거한 것일 것이다. 요한이 밧모 섬에 간 것은 묵상을 위해(와이스의 설), 또는 박해를 피하기 위함이었다는 설도 있다. 다른 전설에 의하면, 그는 고령에 달할 때까지 에베소에 있다가 거기서 조용히 죽었다고도 하나, 이와 정반대의 전설도 있다.
그것에 따르면 "히엘라폴리스의 파피아스(Papias) 감독은 '주의 교훈' 제 2권에 요한은 유대인에게 피살되었다고 밝히고 있다.("운운"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제 9세기에 생존한 게오르기우스 하다르톨로스(Georgius Harmartolos)의 저서에 있다고 한다. 여하튼 이와 같은 전설이 있었다는 것은, 예를 들면 수리아의 교회력에 12월 17일은 요한과 야고보의 순교 기념일로 되어 있다는 것 등에 의해서도 어느 정도 상상할 수 있다.
사도 요한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꾸며낸 이야기라고 생각되는 전설도 남아 있다. 그는 도미티아누스(Domitianus, 51-96, 로마 황제, 재위 81-96) 황제 때 박해를 받아 독배를 마셨으나 아무런 해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펄펄 끓는 기름 솥에 던져졌지만, 기적적으로 죽음을 면했다고도 한다. 아폴로니우스는 "사도 요한은 에베소에서 죽은 자를 소생시켰다"고 말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그는 타락한 신자로 강도의 무리에 빠진 자를 구출하기 위해 삼림에 들어가 마침내 그를 신앙으로 복귀시켰다"고 한다.
그 밖에 세린사스의 이단을 극복하기 위해 소아시아에서 제 4복음서를 썼다거나, 노경에 이르러서는 자고새를 벗 삼아 노는 것을 일삼았다거나, 또 입버릇처럼 "활을 늘 휘어 두어서는 안 된다"느니 하는 전설도 있다. 그는 종종 교회에 부축을 받고 출석했으나, 나이 많아 말도 변변히 할 수 없게 되어 겨우 "젊은 아들아, 서로 사랑하라"는 말을 한 데 불과했다고 제롬은 말했다. 그가 죽자, 그것은 죽은 것이 아니라 잠잔다고 전해졌다는 이야기도 남아 있다. 이것은 요한복음 21: 23의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를 반영한 것이리라.( From 메튜 헨리 주석 )
2. 수신자 : 아시아의 일곱 교회.
계 1: 11 아시아의 일곱 교회 -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사도 요한은 그가 보는 내용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는 음성을 들었다.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이었다. 주 예수께서 요한이 본 내용을 책에 기록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더 잘 보관하고 전파하고 성도들이 믿음에 더 굳게 서고 더 큰 위로를 얻게 하기 위함이었다.
여기에 성경의 필요성과 목적이 있다. 기독교는 책의 종교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과 온전함을 위해 성경책을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책을 사랑하고 가까이하고 주야로 읽고 묵상해야 하며 그 교훈에 귀를 기울이고 실천해야 한다.일곱 교회는 무엇을 말해 주는가?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가 각 시대를 대표한다고 해석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근거는 무엇인가?
여기에 언급된 일곱 교회는 요한 당시의 소아시아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었던 교회이다. 바울의 전도 활동으로 기초가 놓였을 이 교회들은 요한이 생애의 말년에 돌아보았고 사랑한 교회이기도 하다. 일곱 교회에 보낸 기별은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어 수신자와 발신자가 나타난다. 신약의 다른 편지와의 차이점은, 발신자인 그리스도가 수신자의 영적 상태에 따라 각각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다음에 칭찬 받을 만한 수신자의 영적 상태가 묘사되었고 책망과 견책도 뒤를 따른다. 그 다음 회개하라는 호소와 아울러 이기는 자에 대한 보상이 약속되어 있다.
이 교회는 요한 당시 소아시아에 있던 실제 교회들이고 편지도 실제 그 교회들에 보내져 회람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이 미래에 일어날 일을 요한에게 미리 보여주신 책이기에 일곱 교회는 그 시대뿐만 아니라 요한의 시대부터 세상 끝까지 일어날 각 시대 교회들의 특성을 예언적으로 부여주고 있다.
일곱 교회가 일곱 시대를 대표한다는 것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논쟁들이 있지만 맥스웰의 책 요한계시록 연구에 기록한 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맥스웰 요한계시록 141-143),
1) 다니엘 2장의 신상이 느부갓네살 왕의 때로부터 세상 끝 날까지의 세상 역사를 상징하고 있다.
그것이 성경의 해석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해석의 열쇠가 된다. 우리가 다니엘 2장의 해석을 인정한다면 요한계시록의 전반부 즉 역사적인 부분을 취급하고 있는 일곱 교회, 일곱인, 일곱 나팔 등을 기록자의 시대로부터 세상 끝까지의 각 시대를 상징한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2)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는 분명히 미래 예언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계 2: 10에서 서머나 교회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장차 고난을 받을 것”이라 하였고, 3: 10에서는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라고 하였다.
3) 서머나 교회는 10일 동안 환난을 당하리라는 경고를 받았다. (2: 10)
그것이 단지 열흘을 가리키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10일은 예언적으로 계산해서 10년이 되는데, 한 교회만 10년 동안을 핍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서머나 교회를 한 시대를 대표하는 것이라고 해석하여 서머나 교회 시대에 있었던 핍박을 생각하면 문제가 풀린다. (A.D. 303-313).
4) 그리스도가 속히 오신다는 약속은 여섯 번째 교회인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만 나타난다.
특별한 재림운동의 시대를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곱 교회가 일곱 시대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고 해서 라오디게아 교회 외에는 우리와 상관없는 기별인 것은 아니다. 요한이 일차적으로는 이 편지들을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냈을 것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일곱 교회의 기별은 각각 오늘날 우리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다.
에베소 교회의 기별은 첫사랑을 버린 우리에게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는 권면이오, 버가모 교회에 보내는 기별은 세속적인 세상에 살면서 발람의 교훈에 빠지기 쉬운 우리들에게 주시는 경고이다. 그러므로 일곱 교회가 시대성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엄격히 구별하여 그 시대의 기별은 그 시대에만 해당된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당시 소아시아에 일곱 교회가 도심에 존재했듯이 일곱 교회에 보내는 권면과 경고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동시에 해당되는 말씀임을 깨달아야 한다. 에베소(Ephesus)교회는 “바람직하다”라는 뜻이 있으며 그의 수고와 인내에 대해 칭찬받지만, 그 첫사랑을 버린 것에 대해 책망받는다. 몰약(myrrh)이라는 뜻을 가진 서머나(Smyrna)교회는 환난과 궁핍은 당하겠지만 실상은 영적으로 부요한 교회였다. 그들은 환난을 받을 것이지만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다.(2: 8-11).
버가모(Pergamon)는 아시아 도의 정치적 중심지임과 동시에 종교적으로는 환제 숭배의 중심지이기도 하였다. 사탄의 보좌가 있는 곳에 살면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은 충성스러운 교회였다. 그러나 발람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어 책망받았다. 버가모 교회에 보내는 기별은 교회가 정치적 세력을 업고 극성하게 되었으나 급속하게 타락의 길을 걸었던 4-6세기의 교회의 상태를 묘사한다고도 볼 수 있으며 세속적 세력과 타협하고 변질되어 가고 있는 오늘날 교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이 교회는 회개하지 않으면 그리스도께서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라는 경고를 받았다.
수고의 향기(sweet savor of labor)와 “고난의 희생”이라는 뜻이 있는 두아디라(Thyatira)는 자줏빛 옷감의 산지로 유명한 도시였다. (행 16: 14). 하나님의 아들은 “불꽃” 같은 눈으로 그들의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2: 18-19)를 바라보셨다. 그러나 간교한 이교 사상을 의미하는 이세별을 받아들여 행음하였기에 책망받았다. 그러나 진리를 굳게 잡는 자들에게는 “새벽별”이 약속되어 있다. 시대적으로는 6-16세기에 이르는 중세 암흑시대 교황권의 극성과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핍박이 묘사되어 있으며 그런 현상은 역사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사데(Sardis) 교회는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교회였다. 이 교회는 번영하는 것같이 보였으나 하나님 앞에서 그 행위가 온전치 못하였다. (3: 1-3). 그러므로 회개하라는 강력한 권면을 받고 있다. 시대적인 연속성으로 보면 중세의 암흑시대 이후 종교 개혁 시대에 해당한다. (16-18세기). 종교 개혁은 처음에는 크게 성공하는 듯이 보였으나 곧 신학과 교리 논쟁으로 처음의 순수성과 활력을 잃어버리면서 그 생명력을 상실하였다.
빌라델비아(Philadelphia)교회는 그 이름의 뜻대로 형제 사랑의 교회요 열린 문의 시대였다. 19세기 경견과 능력의 부흥과 함께 물밀듯이 복음이 전파되었다. 라오디게아(Laodicea)교회는 “심판받는 백성” 또는 “의로운 백성”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차지도 않고 더웁지도” 않는 하나님께서 토하고 싶으신 미지근한 교회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부요하다고 생각하고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 교회를 버리지 않으시고 사랑하셔서 그들이 그리스도로부터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되기를 원하시며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교회이다. 시대적으로 라오디게아 교회는 그리스도 재림 직전의 교회다.
일곱 교회는 요한 당시 소아시아에 있던 실제의 일곱 교회다. 따라서 일곱 교회에 보내는 기별은 일차적으로 그 당시의 일곱 교회에 해당되는 메시지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이 예언의 책이기 때문에 다니엘서의 신상이 각 시대를 대표하듯이, 신약 시대 이후 각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적 의미도 있다.
8. 기 도 ---------- 받은 은혜와 귀한 사명을 통하여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자가 되기 위하여 ------------------------------
9. 찬 송 ---------- 585 내 주는 강한 성이요 ------------------------------------------
10. 폐 회 ---------- 주기도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