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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 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그를 사고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 (호세아 3:1-3)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예레미야 애가 3:22-23)
1. 빗나간 욕망의 철학 : 우상숭배와 인간 내면의 파탄
인간의 역사는 본질적으로 ‘반역의 역사’입니다.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은 인간의 마음속에 "오직 하나님만이 채우실 수 있는 절대적인 빈 공간"이 있다고 통찰했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이 무한한 공간을 유한한 피조물로 채우려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고발하는 '우상숭배'의 본질입니다. 인간은 단순히 나무나 돌에 절하는 것을 넘어, 돈, 권력, 쾌락, 혹은 타인의 인정과 같은 부서진 웅덩이를 파고 그곳에서 생수를 구하려 발버둥 칩니다.
우리의 내면을 정직하게 들여다보십시오. 우리는 사랑받기를 갈망하면서도, 정작 완전한 사랑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는 끊임없이 도망칩니다. 마치 밑빠진 독처럼, 세상의 그 어떤 화려한 것을 쏟아부어도 우리의 영혼은 이내 다시 공허해지고 맙니다. 호세아서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모습, 곧 타인의 사랑을 좇아 음녀가 된 고멜의 모습은 특정한 시대의 패역한 무리를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서 존재의 의미와 쾌락(건포도 과자)을 찾으려 하는, 처절하게 망가진 우리 자신의 자화상입니다.
인간의 철학과 윤리는 이러한 배신 앞에서 '관계의 단절'을 선언합니다. 세상의 이치는 주고받는 교환 가치에 철저히 종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가치가 없으면 버려지고, 배신하면 응징하는 것이 인간이 만들어낸 합리적이고 당연한 정의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이 세상의 철학과 합리성에 갇힌 분이셨다면, 인간의 역사는 창세기 3장에서 이미 진멸과 함께 끝이 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절망의 심연 한가운데서, 이성의 한계를 산산조각 내는 신성한 스캔들이 선포됩니다.
2. 호세아의 스캔들 : 이성을 뛰어넘는 언약의 신비
호세아 3장 1절의 말씀은 인간의 도덕과 윤리, 합리적 이성을 완전히 붕괴시키는 파격적인 명령입니다.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집을 나가 다른 남자의 품에 안긴 아내, 철저히 언약을 짓밟고 배신한 자를 향해 다시 찾아가라는 이 명령은 고통을 넘어선 경악입니다. 심지어 호세아는 노예 시장에 팔려간 그녀의 몸값을 지불하기 위해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이라는 대가를 치릅니다. 왜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이토록 비참하고 이해할 수 없는 삶을 요구하셨을까요? 그것은 찢어지고 상처 입은 하나님의 심장, 배신한 백성을 향해 들끓는 창조주의 내면을 역사 속에 생생하게 계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의 감정적 애착이나 조건적인 호의와 얼마나 다른지를 목격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어떠함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향해 주먹을 쥐고 등을 돌리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자신이 맺으신 '언약(Covenant)'에 스스로를 묶으십니다. 언약이란 조건이 충족될 때만 유지되는 계약(Contract)이 아닙니다. 상대방이 신실함을 잃어버릴지라도, 내 쪽에서 끝까지 목숨을 걸고 그 관계를 지켜내겠다는 무서운 결단입니다.
3. 헤세드(Hesed) : 맹렬하고 고집스러운 은혜의 추적
이러한 언약적 사랑을 히브리어 원어는 '헤세드(Hesed)'라고 부릅니다. 흔히 인애, 자비, 긍휼로 번역되지만, 인간의 언어로는 그 깊이를 다 담아낼 수 없습니다. 헤세드는 한 번 택한 백성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고집'입니다. 영국의 시인 프랜시스 톰슨(Francis Thompson)은 그의 시 『천국의 사냥개(The Hound of Heaven)』에서 인간을 끝까지 뒤쫓아 오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묘사했습니다. 우리가 밤낮으로, 세월의 갈피를 숨어 도망칠지라도, 우리를 쫓아오는 그 거룩한 발소리는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예레미야 애가는 예루살렘이 처참하게 멸망하고 불타오르는 잿더미 한가운데서 울려 퍼진 절망의 노래입니다. 뼈가 꺾이고 살이 쇠하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 예레미야는 놀라운 진리를 깨닫습니다. "여호와의 인자(헤세드)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우리가 숨을 쉬고 있는 유일한 이유는 우리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오직 변함없는 하나님의 헤세드 때문입니다.
동역자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세상의 가치처럼 계산되어 '분배'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자격 없는 자의 영혼 깊은 곳까지 쏟아지는 압도적인 '공급과 충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려 발버둥 칠 때조차, 하나님은 십자가의 보혈이라는 가장 비싼 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다시 사오셨습니다. 음녀 고멜을 향해 지불되었던 호세아의 은과 보리는, 훗날 갈보리 언덕에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지불될 우주적 대속의 그림자였습니다.
4. 언약적 사랑의 거대한 승리
우리의 신앙이 흔들리고 내면의 허무함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 우리는 자주 자신의 도덕적 성취나 영적인 어떠함을 바라보며 좌절합니다. 끝없이 반복되는 죄악과 실패 앞에서 "과연 하나님이 지금도 나를 사랑하실까?"라는 뼈아픈 의심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선포된 헤세드의 언약은 우리의 그 모든 의심을 박살 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Martyn Lloyd-Jones)가 통찰했듯, 은혜는 우리의 가치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어지는 것을 넘어, 우리의 철저한 반역에도 불구하고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실패는 결코 하나님의 헤세드를 이길 수 없습니다. 인간의 반역이 아무리 깊고 끈질기다 해도, 그 반역을 덮고 씻어내며 끝내 우리를 되찾아 오시는 하나님의 추적은 더욱 맹렬하고 영원합니다.
이 견고한 언약의 반석 위에 설 때, 비로소 인간 내면의 지독한 불안과 방황은 끝이 납니다. 세상의 거짓된 매혹과 건포도 과자의 유혹을 내려놓고, 밤이 맞도록 우리를 기다리시는 그 십자가의 찢어진 품으로 돌아가십시오. 아침마다 새롭고 크신 주의 성실하심이, 변함없는 공급과 충만으로 우리의 남은 생애를 온전히 덮으실 것입니다. 이것이 피투성이가 된 인간의 역사를 뚫고 들어오신, 헤세드의 거룩하고 압도적인 승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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