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바울서신
에베소서와 바울서신의 관계는 매우 광범위한 유사성을 포함한다. 특히 에베소서와 바울서신 사이의 유사성은 에베소서의 저가 문제와 결부되어 비평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들이 제시하는 세 가지 유사성을 살펴보면 우선 그들은 다른 바울서신들 가운데 나타난 몇몇 구절들의 내용을 융합한 구절이 에베소서 안에서 나타났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특히 그들은 골로새서와의 관계에서 보다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였다.
두 번째로 그들은 다른 바울서신의 한 구절과 에베소서의 둘 이상의 구절들이 서로 대응 관계에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비교, 롬 1: 21-24과 엡 4: 17-19. 롬 3: 20 - 4: 2과 엡 1: 7, 19. 2: 5, 8. 롬 5: 1, 2과 엡 2: 17, 18. 3: 11-12. 롬 8: 9-39과 엡 1: 4-7, 11, 13, 14, 21. 3: 6, 16, 18, 19).
물론 전통적인 학자들도 이 점에 대해서 부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에베소서에서는 다른 바울서신들과는 달리 각 교회가 처한 특별한 문제들을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본 서신과 가장 밀접한 유사 구절들이 다른 바울서신들의 중요한 교리적 구절들이 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며, 또한 사실이 그렇다.
다만 전통적인 학자들은 본 서신을 위서의 하나로서 보려는 비평학자들의 비평적 관점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고 한다.
세 번째로 비평학자들이 내세우는 주장은 에베소서의 90% 이상이 다른 서신들 안에서 대응되어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이 점은 골로새서와의 관계에서 드러난 사실이다. 하지만 에베소서와 바울서신 사이의 관계는 단순한 숫자들로부터 결론에 이를 수 없다.
왜냐하면 각 서신들의 서로 다른 주제와 그 서신들의 다양한 문제 접근 방식까지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바울은 수신자의 특별한 사정을 염두에 두고 서신들을 썼던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그 서신들 사이의 어휘 중복 현상이나 주제의 중복 등을 자동적으로 감소시키는 요인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반면에 에베소서는 주된 주제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대한 교리적 실천적 적용'이며, 바울이 다른 서신들에서 특별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권면할 때 본 서신에서 발견되는 주제의 일부와 유사 어휘 및 유사 구절들이 반복되어 나타날 가능성은 매우 높다. 따라서 에베소서와 바울서신간의 유사성은 인정하되 그것에 따른 결론은 신약성경의 제서에 대한 고찰 이후로 미루는 것이 좋겠다.
(3) 요한복음 및 요한서신
에베소서와 요한복음 및 요한서신의 유사성은 요한의 신학과 용어의 영향을 에베소서의 저자가 받았다는 주장에서부터 유래하였다(Moffatt).
'모팻'은 에베소서의 저자가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들이 기록되었던 환경 속에서 살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또 에베소서가 다른 바울서신들에 비해 보다 실감 있는 내세론을 강력하게 내세우는데, 이는 요한신학의 영향이라고 하였다.
그 외에도 에베소서에서 요한의 어휘들이라고 생각되는 어휘들을 발견하여 제시하였다. 예를 들면 빛과 어두움, 생명과 죽음, 사랑, 지식 등이다. 더욱이 그는 에베소서에 나타난 교회의 통일성에 대한 강조는 다른 바울서신의 교리에서 온 것이라기보다 요 17 장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외에도 주제 면에서 요한복음과 에베소서간의 유사점은 광범위하게 발견된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생명을 발견하는 그리스도인(참조, 요 15: 1-7),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거하심(참조, 요 14: 20. 15: 4-7. 엡 3: 17),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예수(참조, 요 3: 35. 10: 17. 15: 9. 17: 23-26. 엡 1: 6), 교회를 깨끗케 하시고 거룩하게 하심(참조, 요 15: 3. 17: 17, 19. 엡 5: 26. 요일 1: 7), 그리스도의 강림과 승천(참조, 요 3: 13, 31. 7: 39. 엡 4: 9) 등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 있어서도 문자적인 유사성은 주장될 수 없을 뿐더러 바울의 저작성이나 본 서신의 진정성이 의심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위에서 언급된 거의 모든 유사 구절들은 요한의 저술들보다 훨씬 더 이전에 기록된 문헌들 안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유사 구절들은 결코 에베소서와 요한 저술들에만 나타나는 언어나 사상이 결코 아닌 보편적인 언어요, 사상들이라 하겠다.
(4) 베드로전서
베드로전서와 에베소서 사이에도 중요한 유사 구절들이 발견된다. 서두에 나오는 찬미가 비슷하고, 남편과 아내, 주인과 종의 관계를 다루는 방법도 비슷하다(비교, 엡 5: 22-33. 6: 5-9. 벧전 2: 18 - 3: 7).
또한 그리스도의 승천과 모든 권세들의 능력들이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일에 대한 언급도 유사 구절을 포함한다(비교, 엡 1: 20-21. 벧전 3: 22). 이 외에도 그리스도인의 영적 투쟁(비교, 엡 6: 10 이하. 벧전 5: 8-9), 창세전부터 계셨던 하나님의 목적(비교, 엡 1: 4. 벧전 1: 19-20),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비교, 엡 1: 14. 벧전 2: 9), 육체의 정욕, 그리고 순종과 불순종의 자녀(비교, 엡 2: 2-3. 벧전 1: 14. 2: 11), 전에는 숨겨졌으나 이제는 밝히 드러난 복음과 천사들과의 교제(비교, 엡 3: 5-6, 10. 벧전 1: 10 이하), 모든 악한 일과 모든 비방을 버리는 일(비교, 엡 4: 25, 31. 벧전 2: 1) 등의 주제에 있어서도 두 서신 사이에 유사점이 발견된다.
그러나 이 같은 유사점의 발견으로 인해 에베소서가 베드로전서를 차용했다거나 혹은 반대로 베드로전서가 에베소서를 의존했다고 주장할 수 없다. 왜냐하면 초대교회의 서로 다른 저자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행위에 대하여 말하기 위해 사용했던 용어들은 거의가 유사성을 띠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러한 주장을 내세우는 학자들조차 두 서신 사이의 차용 방향에 대해 아무런 일치점도 찾지 못하고 있다.
(5) 히브리서
히브리서와 에베소서의 유사점은 교리적인 면과 유사 구절 두 가지이다. 먼저 교리적인 면에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교회 숙정,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가는 성도들에 관한 내용들이 유사하다.
다음으로 유사 구절들은 에베소서와 다른 바울서신과의 관계에서 볼 때 두드러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유사 구절의 포함으로 인해 에베소서를 히브리서의 유사 저작이라고 보는 견해는 지나치다. 왜냐하면 신약성경 정경화 과정에서 에베소서보다는 히브리서가 더 정경성 시비 논쟁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에베소서는 바울서신을 비롯하여 복음서, 일반서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유사 구절 및 주제 등을 포함한다는 것을 알았다. 즉 에베소서가 다른 서신들보다 신약성경 제서와의 사이에 더 많은 유사 구절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은 에베소서가 논쟁적인 성격의 서신이 아니기 때문에 특별한 문제가 취급된 다른 서신들에 비하여 설교와 가르침에 사용되는 일반적인 기독교 용어가 많이 중복되어 나타나는 것은 매우 당연한 현상이라 하겠다.
더욱이 에베소서가 바울서신들 중에서도 후기 작품으로서 가장 원숙한 작품 중 하나라고 할 때 에베소서와 다른 신약성경과의 유사성은 오히려 본 서신의 원숙함과 신성함을 더해 주는 근거라 하겠다. 또한 이러한 유사성은 본 서신이 다른 바울서신에 비해 사색적인 서신임을 보여준다.
다른 바울서신이 특수한 환경에서 일어난 구체적 사건에 대한 대응으로써 쓰여진 서신들이었다면 에베소서는 비교적 안정된 분위기에서 지난 일들을 회고하면서 쓴 글이라는 느낌을 준다. 이 점에 대해서는 '루터'(Luther)가 갈라디아서를 좋아했고, '칼빈'(Calvin)이 에베소서를 좋아했던 이유에서 루터와 칼빈의 행동과 사색에 대한 실마리를 준다고도 하겠다.
(6) 골로새서와의 관계
마치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의 관계와 비슷하다. 혹자는 두 서신을 가리켜 쌍둥이 서신이라 부른다. 낱말의 선택과 어군이 비교적 상당히 일치한다. 그렇지만 두 서신의 주제와 목적이 서로 다르다.
골로새서는 교회에 들어온 거짓 진리에 대하여 교회의 머리이시오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붙들라는 것이 주제이다. 하지만 에베소서는 교회의 하나 됨을 말한다.
5. 에베소 교회와 에베소서
사도행전 19장에 바울이 에베소를 방문해서 교회를 세운 것이 나온다. 에베소 교회에 바울은 친히 약 3년간 머물며 성경을 강론하고 가르쳤다.
에베소서는 옥중서신으로서 신약성경 중 10번째 책이다. 본 서신은 전통적으로 에베소의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로 알려져 왔다.
18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본 서신은 많은 관심을 끌었으며 천사를 받았다. '칼빈'(Calvin)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서신이라고 말하였으며, '콜리지'(Coleridge)는 인간의 가장 신성한 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말하였다. 그는 본 서신이 기독교의 독특한 교리를 간직하고 있으며, 동시에 모든 종교가 공유하고 있는 교훈까지 포함한다고 하였다.
이처럼 에베소서는 분명히 바울 서신 중에서 독특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베소서에는 매우 구체적인 문제점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 문제점들은 18세기 말경부터 구체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문제점들은 극단적인 비평학자들에 의해서 제기된 것이 아니라 본 서신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문제점으로서 18세기 말경부터 시작된 비평학자들의 대두로 인해 구체화된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해결되었을 때 에베소서는 더욱 위대한 서신이 될 것이며, 서신 중의 여왕이라는 찬사에 어울리는 중요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 본 서신의 중요성은 바울 서신들과의 유사성으로 인해 더욱 주목받게 되었다.
에베소서는 골로새서와 디모데전후서 등의 다른 바울 서신과 유사한 표현과 주제를 보여준다. 이러한 서신들의 유사성은 에베소서가 내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일례로 골로새서와 본 서신이 유사하다는 점은 에베소서의 기록 연대를 상당히 정확하게 지시해 준다.
여하튼 에베소서는 승리하여 존귀하게 된 교회 속에서 그리스도의 화해의 역사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점에 그 초점을 맞추었다. 본 서신은 무엇보다도 오늘날 교회의 에큐메니칼(ecumenical) 입장에 대한 관심으로 말미암아 기독교 공동체의 삶과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1) 문체적인 특징
에베소서의 문체는 학자들에 의해서 매우 특징적으로 다양하게 묘사되었다. 예를 들어 '굿스피드'(Goodspeed)는 에베소서의 문체를 '찬송적 예배 의식적 문체'라고 불렀고, '캐제만'(Kaesemann)은 '묵상적 찬미적 문체'라고 하였으며, '바르트'(Barth)도 '기도가 충만한 예배 의식적인 문체'라고 극찬하였다.
이처럼 다양한 묘사에서 나타나듯이 에베소서의 문체는 다른 바울서신들의 문체와 상당히 다르다. 에베소서의 문체는 지나칠 정도로 길고 복합적이며 중복되어 나타나는 동의어들과 연결 어미를 사용하여 문장을 끝없이 연결시켜 나가는 것이 특징이다.
물론 다른 바울서신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나지만 복합적이며 중복되는 문장의 사용은 다른 바울서신에 비해 약 4배 정도가 더 많이 나타난다(Kuhn). 한때 학자들은 이러한 에베소서의 문체적인 특징을 근거로 본 서신에 대한 바울 저작성을 의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본 서신의 문체가 복잡한 만연체라고 하더라도 낯익은 바울적 어구와 사상 등이 나타난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때문에 에베소서가 다른 바울서신과 구별되는 점은 비 바울적인 문체가 사용되었다는 점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에베소서가 바울적인 예배 언어를 집중적으로 사용하였다는 특징에서 찾아야 한다.
(2) 다른 서신들과의 유사성
'굿스피드'나 '미튼'(Mitton) 같은 학자들에 의해서 에베소서는 '바울서신의 모자이크와 같은 작품'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에베소서는 초기 기독교 문헌들로부터 비롯된 많은 표현들을 포함한 데 연유한 것이었다.
'굿스피드'는 에베소서 내의 618개 어구들 중에서 550개의 어구들은 다른 바울서신들 속에서 단어나 혹은 내용에 있어서 확실하게 병행적인 어구들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미튼'도 '굿스피드'의 견해에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에베소서와 바울서신들 사이에서 병행구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그 근거로 약 250개 정도의 병행구를 제시하였다.
그러나 에베소서가 다른 서신들에 비하여 많은 병행구를 지닌 것은 분명하지만 '굿스피드'나 '미튼'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 유사성으로 인해 에베소서가 바울서신의 모자이크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일례로 빌립보서도 다른 바울서신들과 많은 병행구를 가진다. 그렇다고 해서 빌립보서를 바울서신의 모자이크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에베소서도 바울서신들과 유사성을 지니는 것은 분명하며 특징적이지만 본 서신의 진정성을 의심할 만한 사항은 아니다. 본 서신이 다른 바울서신들과 많은 병행구를 포함한다는 사실과 함께 에베소서의 특징적인 어휘의 사용 문제가 본 서신의 진정성을 의심받게 만든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특징적인 어휘의 사용조차도 에베소서의 진정성을 의심할 만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에베소서가 써질 당시와 에베소에 대한 바울의 특별한 배려와 관계 등을 고려해 볼 때 특징적인 어휘의 사용은 충분히 설명되기 때문이다.
(3) 구조
에베소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 부분은(참조, 엡 1: 1 - 3: 21) 간단한 서언으로 시작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아름다운 찬양으로 나아간다.
이 찬양 속에서 바울은 성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축복하신 그 모든 방법들을 인하여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는 성령에 의한 보증과 기도, 명상 등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특권에 대해 다룬다.
두 번째 부분(참조, 엡 4: 1 - 6: 24)은 매우 실제적인 실천 문제를 다루는데 바울은 네 가지 영역에서 훈계하였다. 즉 신자는 교회 안에서 하나 됨을 유지하여야 한다. 또한 사회 속에서는 순결하고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
셋째, 가정에서는 사랑과 존경을 나타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탄과 어두움의 세력에 대해서는 영적인 투쟁을 해야 한다는 등의 교훈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바울은 에베소서를 통하여 교회론의 신기원을 마련하였으며,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 상을 요구하였다.
6. 주제와 목적 : 에베소서에 나타난 신학적 주제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함을 입었다. 창세전에 예정하신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이 교회 안에 나타났다. 이렇게 그가 구원하심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행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둘로 하나를 이루는 일을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을 좇아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고, 교회가 그의 몸이니 만물을 충만케 함으로 자라가야 한다.
(1) 교회론
에베소서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취급된 교리는 교회론이다. 교회를 묘사하기 위해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참조, 엡 1: 23. 4: 3-16), '그리스도의 신부'(참조, 엡 5: 22-24), '성령의 전'(참조, 엡 2: 19-22) 등 세 가지의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였다.
본 서신에서 교회를 가장 잘 정의한 개념은 몸의 개념인데 그리스도는 그 몸의 머리이다. 그런데 비평학자들은 그리스도가 그 몸의 머리라는 구절의 첨가로 인해 에베소서가 바울의 기록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 표현은 분명히 바울의 사고방식과 언어 표현 방식에 발전이 있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으로 인해 비바울적 요소의 첨가를 주장하려는 의도는 무리한 주장이다. 왜냐하면 교회의 머리라는 표현은 골로새서에만 언급되어 있는데 골로새서에서 이 표현은 바울의 기독론 진술과 명백한 관련을 가지기 때문이다.
만약 그리스도가 우주의 머리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이시며, 또한 만물을 통치하시는 탁월한 분이시라면 그는 또한 교회의 머리이기도 하다. 따라서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주권은 특별한 중요성과 권위를 갖는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이 같은 권위를 십자가상에서의 그리스도의 몸의 죽음과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새로운 생명, 곧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의 생명에 의존하여 설명한다. 곧 성령에 의하여 새롭게 된 그리스도의 생명을 영접한 성도들의 공동체는 지상에서의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한다. 이것이 곧 교회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이 몸을 그리스도 자신의 생명으로 가득 채우시기 때문에 결국 그리스도는 지상적인 교회의 존재를 천상적인 교회의 존재로 승화시킨다. 물론 천상적인 교회라고 해서 더 이상 세상 중에서의 경험적인 삶을 살지 않는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교회의 영성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하였지만 그것 못지않게 윤리적인 실천 문제를 가르치기 위해 편지들을 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가르치는바 교회의 궁극적인 기원과 귀결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 속에 숨겨진 경륜 속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만세 전에 만물을 지으시고 충만케 하신 그리스도의 충만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바울은 이 점을 설명하기 위해 십자가상에서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신앙의 중심으로 삼으면서도 창조의 하나님의 경륜을 제시한 것이다.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제시하는바 교회의 사명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화해를 넘어서고, 또한 인류 속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불화의 치유를 넘어서며, 그 위에 인간들을 하나님께로부터 단절시켜 버리는 소외감을 극복하는 일 등이다. 이처럼 바울은 교회의 사명의 영역을 넓혀 감으로써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목적이 만유와의 결합이요, 일치요, 화해라는 점을 가르치려 하였다.
곧 만유는 교회 존재의 목적이며 교회의 머리로부터 흘러나오는 은총의 수혜자들이다. 심지어 엡 3: 10에서는 하늘의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알게 하는 것도 교회라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교회를 사랑하시며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에 합당한 그릇이 되도록 교회를 위하여 일하신다.
사도 바울은 이 일을 위하여 고난을 받았다. 그리고 성도들도 이 점에 있어서 일익을 담당한다. 즉 몸의 성장을 돕기 위하여 그리스도는 교회 위에 여러 은사를 주셨으므로 사도들과 전도자들과 성도들은 지체로서 각 지체가 각기 자기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각 지체들을 훈련하고 경계하여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충만한 분량에 이르도록 힘써야 한다. 다시 말해서 각 지체가 자기의 받은 은사에 따라서 그 독특한 활동을 수행할 때에 몸은 자라는 것이다. 그 머리에서부터 비롯된 공동의 삶을 누리기 때문에 몸은 사랑 안에서 함께 성장하여 주를 섬기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