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유신(1868)
* 에도 막부(도교 바쿠후) : 에도는 지금의 도쿄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계획도시로 거듭나게 된다. 도쿄는 천황이 기거하는 교토에 비하면 17세기 도쿠가와 시대에 등장한 신흥도시라 할 수 있다. 에도시대의 수도는 장군이 살고 있는 도쿄(에도)가 아니라 천황이 살고 있는 교토였다. 에도 막부 또는 도쿠가와 막부는 가마쿠라 막부, 무로마치 막부에 이어 일본사에서 세 번째로 나타난 최후의 막부이다. 1603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쇼군에 취임하고 막부를 창설하였을 때부터 시작되어, 1867년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정권을 천황에게 넘기게 된 것으로 막을 내렸다. 도쿠가와 가문의 쇼군들이 일본을 지배한 이 264년간의 시기를 에도 시대 또는 도쿠가와 시대라 한다. 에도 막부는 바쿠한(막번. 幕藩 = 막부와 번, 막부의 우두머리는 쇼군이고, 그 아래 번의 우두머리가 다이묘) 체제 밑에 사농공상의 신분을 고정하고, 기독교 금지를 구실로 쇄국을 하고, 후에는 유교적 교화도 이용하면서 전국 지배를 강화했다. 막부(바쿠후)의 장군(쇼군). 에도 시대를 막번(幕藩)체제라 부르는데, 막번이란 쇼군의 통치 기구인 막부와 다이묘의 영지인 번을 합쳐 부르는 말이다. 번은 17세기 말에 240개에 달했다. 막부는 자신의 직할지만을 통치하고, 번에 대해서는 간섭을 하지 않고 다이묘의 자치에 맡겼다.
(막부 정치)
천황은 있지만, 천황에게는 권력이 없고, 막부의 우두머리인 쇼군이 천황을 대신하여 실질적으로 일본을 통치하는 정치 형태이다.
쇼군은 땅을 매개로 지방 영주(다이묘)를 지배하고, 다이묘들은 사무라이(칼로써)를 이용하여 농민을 지배하는 통치방식이다. = 봉건제도.
천황은 권력이 없고, 막부의 유지는 땅과 칼에 의해서 가능했다.
개방으로 인한 상공업의 발달은 땅에 대한 지배력의 약화와 쇼군의 다이묘에 대한 지배력의 약화로 나타남. 또한 농민들이 도시로 나가면서 사무라이의 칼에 의한 농민 지배도 어려워 짐. 결국은 막부 체제는 유지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에도 막부(幕府. 군사 정부)의 개방으로, 열강과의 불평등 조약이 체결되면서, 외국 상품 수입과 물가 상승으로 상공업자들의 피해, 민생이 곤란 해짐 → 지방의 영주들(다이묘)을 중심으로, 에도 막부를 타도(打倒. 어떤 대상이나 세력을 쳐서 거꾸러뜨림) 하려고 함. 막부(幕府) 밑에 번(蕃)이 있었는데, 막부의 우두머리가 쇼군이고 번의 우두머리가 다이묘이다. → 지방의 다이묘(영주)들이 중심이 되어, 존왕양이(尊王攘夷. 왕을 높이고, 서양 오랑캐를 배척한다)를 명분으로 정변을 일으켰다. 일본 천황을 지지하고, 서구 열강은 배척할 것을 주장함 → 다이묘들이 쇼군을 버리고, 천황을 선택한 것이다. → 이로써 천황 중심의 새로운 정부가 수립되었다. → 메이지는 일본 천황의 이름이자, 연호이다. 유신(維新)은 새롭게 바꾼다는 뜻이다. 메이지 천황 시대의 개혁을, (메이지 유신)이라고 부른다. → 메이지 유신의 목표는 천황 중심의 중앙집권 체제의 강화와 그러한 국가의 수립이었다. → 그러기 위해서, 봉건제와 신분제를 폐지한다. 또한 서양의 기술을 도입하고, 조세 제도를 개혁하고, 상공업을 육성하고, 징병제(사무라이에 의한 쇼군의 군대가 아니라, 천황에게 충성하는 군대를 양성)를 실시하였다 → 핵심은 부국강병과 근대화이다. 근대화는 합리, 평등, 자유, 민주 등이 핵심 키워드이다. → 외교적으로 유럽과 미국에 사절(이와쿠라 사절단 파견)을 파견하여 외국과의 관계도 돈독하게 한다. 지식인들을 유학 보내어(일본의 근대화와 천황을 위해서 일을 할 관료가 필요했음. 관료는 정치에 영향력이 있는 직업적인 관리를 말한다), 새로운 문물을 배워서 일본에 전파하도록 하였다(후쿠자와 유키치 등은 문명개화론을 주장하여, 서구식 제도로의 개혁을 주장하였다) → 그러나(한계) 메이지 유신은 어디까지나 천황 중심의 국가 체제의 유지가 그 목적(천황이 절대적 권력을 갖는, 일본 제국 헌법을 1889년 제정하였다. 이를 메이지 헌법이라고 하는데, 그 중심에 이토 히로부미가 있었다. 이토는 일본 근대화의 영웅이지만, 우리에겐 침략의 원수이다)이었기에, 자유 민권 운동(참정권 요구)을 탄압하였고, 민주주의 제도의 도입과 민중의 생활 개선에도 소극적이었다. →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아시아 최초로 근대화에 성공하였고, 이로써 천황을 중심으로 한 일본식 입헌군주제(立憲君主制)가 수립되었다. → 근대화는 정치·경제·사회·문화·가치관 등의 모든 면에서 후진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이전 보다 향상된 생활조건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말한다.
* 문명개화론은 19세기 후반 동아시아에서 형성된 서양 문명에 대한 수용 논리로, 서양의 기술ㆍ기기만이 아니라 문화와 풍속까지 수용하여 낡은 폐습을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