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자녀의 심연과 통제의 환상 타파
제8강. 통제 (Control): 행동 통제라는 얄팍하고 이기적인 목표를 박살 내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마태복음 23:25-26)
우리는 지금까지 아이의 내면에 똬리를 튼 우상과 어리석음의 심연을 직면했습니다. 이제 그 수술칼을 다시 부모의 심장으로 찔러 넣을 시간입니다! 폴 데이비드 트립은 오늘 8강을 통해, 전 세계 모든 부모들의 뼛속 깊이 박혀있는 가장 거대하고도 지독한 우상, 바로 '통제(Control)의 환상'을 십자가의 망치로 산산조각 냅니다. 기독교 양육의 목표는 결코 아이의 행동을 내 입맛대로 통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첫째, 당신이 아이를 통제하려는 그 '이기적이고 추악한 동기'를 회개하십시오.
자녀가 말을 듣지 않을 때 부모가 미친 듯이 화를 내며 억압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이의 영혼이 지옥에 갈까 봐 두려워서입니까? 아닙니다! 부모의 심장을 해부해 보면 그곳에는 끔찍한 이기심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네가 말을 안 들으면 내 저녁 시간이 피곤해지잖아!", "네가 밖에서 떠들면 창피해서 내 체면이 깎이잖아!"
부모가 쥐고 있는 '통제의 지휘봉'은 아이의 거룩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나의 편안함, 나의 일정, 나의 통제력'이라는 우상을 지키기 위한 이기적인 무기입니다. 부모가 자신의 안락함을 위해 아이의 행동을 뜯어고치려 드는 순간, 양육은 거룩한 사명이 아니라 영혼을 질식시키는 독재로 타락하고 맙니다.
둘째, 행동 통제는 아이를 '가증스러운 바리새인'으로 찍어내는 공장입니다.
마태복음 23장의 예수님의 피 끓는 사자후를 똑똑히 들으십시오! 아이의 겉모습(행동)만 통제하려는 육아는 잔과 대접의 '겉'만 닦는 바리새인의 종교와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부모가 뇌물을 주거나, 무섭게 협박하거나, 물리적인 힘으로 아이를 짓눌러서 행동을 통제하면, 아이는 잠시 부모의 말을 듣는 '척'을 합니다. 그러나 그 순간 아이의 내면(잔의 속)은 어떻게 됩니까? 부모를 향한 분노와 하나님을 향한 거부감, 그리고 교만과 탐욕으로 시커멓게 썩어 들어갑니다! 부모의 압독적인 통제 아래서 겉으로만 순종하는 아이는, 부모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 가는 순간 그 억눌렸던 죄악을 폭발시킵니다. 행동 통제라는 얄팍한 목표가, 당신의 아이를 하나님이 가장 역겨워하시는 '위선자'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셋째, '통제의 환상'을 포기하고 마음의 '본질적 변화'를 갈망하십시오.
기독교 부모여, 이 거대한 착각에서 당장 깨어나십시오! 당신은 결코 다른 인간의 심장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시고 변화시키시는 '유일한 주권자(Sovereign)'는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우리가 이 통제의 환상을 십자가에 못 박아버릴 때, 비로소 가정에 진짜 기적이 일어납니다. 부모는 아이를 내 맘대로 뜯어고치려는 '경찰관'의 옷을 벗어 던지고, 아이의 굳은 마음을 십자가의 은혜로 녹여내기 위해 눈물로 호소하는 '목자(Shepherd)'로 거듭나게 됩니다. "주님, 제 힘으로는 이 아이의 겉모습만 위장시킬 뿐입니다. 오직 성령께서 임재하사 이 아이의 마음 중심을 온전히 뒤집어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영적 거장들이여!
당신의 육신을 편하게 만들기 위해 아이의 행동을 리모컨처럼 조종하려는 그 악독한 '통제의 우상'을 당장 부숴버리십시오!
우리의 목표는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를 만드는 얄팍한 도덕주의가 아닙니다. 겉과 속이 완전히 일치하여, 그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자발적으로 사랑하고 예배하는 진짜 생명의 변화입니다!
이제 이 얄팍한 통제의 껍데기를 깨뜨렸으니, 진정한 영혼의 수술칼인 하나님의 법을 어떻게 들이대야 할지, 가장 치열한 제3부의 9강으로 거침없이 돌진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