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귀를 알아듣고 오랫동안 들어주는것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오래 듣고 있지 못하게 하는 요인은 많다.
어려운말 , 늘어지는 말 , 듣기싫은 말 등등..
외국어로 회의를 할때,
아침 마다 뻔한 이야기로 다투며 지지부진한
회의가 길어질때 ,
당연한 소리를 중언부언하는 설교가 길어질때,
죽어라고 졸음과 싸워야 했던기억이 있다.
의무적으로 들어줘야 하는 직업이 있다.
신부, 법관 ,고객 불만 접수팀 등등
매일 신도들의 시시콜콜?한 고해성사를 들어주거나
말도 안되는 주장이나 진심인지 알수없는 반성을
듣고 판단해야 하거나, 성난 고객의 불평을 들어야 하는 직업.
확실히 들리지는 않지만, 억지로 알아들어야 하는
외국어를 공부하는것은 거기에 비하면 취미생활
이라고 할수있다.
경청이 힘들다는것을 알면 사람들에게 말하는것도
스트레스 라는것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말이, 표현력이, 알맹이가 부실하다고 느낄때
또는 상대편이 말도 안되는 이유로 반박할때.
기분 나쁘게 반응할때 ,무시 당할때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아니 죽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나름의 이유로 소통을 해야한다면?
생계와 목숨이 걸려있다면?
많은 이들이 귀를 닫고 입을 닫고 살고자하는것이
납득이 간다면 , 차라리 고독하게 혼자갈수있는것이
오히려 행운이라고 느껴진다면?
하지만 눈귀입닫고 홀로하는것은 말미잘이나 해파리같은 원시생물의 삶이다.
진화된 고등동물에 어울리지않는
퇴하된 삶을 선택하는 꼴이된다.
홀로 고고히 존재한다는것은 가상의 삶이다.
살아서 신선이나 부처가 되는것은 어쩌면
헛된 상상속의 삶일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