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1697년에 작지만 큰 사건 하나를 겪었다. 그해 호주에서 ‘Black Swan', 그러니까 백조는 백조인데 검은 색인 백조가 발견됐다. 그때까지 Swan은 모두 하얀 색이었기 때문에 백조(순우리말은 고니)로 불리었는데 이제 黑鳥(흑조)가 더해진 것이다. 그때부터 흑조는 ‘진귀한 것’,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나 불가능하다고 인식된 상황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이라는 뜻으로, 조류학자 등 일부 사람들이 썼다.
하지만 요즘은 흑조를 뜻하는 ‘블랙스완’이란 말을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듣고 쓰게 됐다. ‘블랙스완 신드롬’이라고까지 할 정도다. 흑조가 발견된 지 310년 뒤인 2007년에 나심 탈렙이라는 사람이 『The Black Swan(블랙스완)』이란 책을 쓰고 나서부터였다.
◆모든 게 잘 풀릴 때 ‘블랙스완’을 생각하라
탈렙은 과거 경험으로 확인할 수 없는 기대 영역 바깥쪽의 관측 값으로, 거의 알려지지 않아 예측이 불가능하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장을 가져오는 것을 ‘블랙스완’이라고 불렀다. ‘블랙스완’은 사전에 예측이 불가능하므로 왜 일어났는지 원인도 알 수 없지만 일단 발생하고 나면 그럴듯한 설명과 ‘그럴 줄 알았다’는 후견지명(後見之明)이 뒤따른다. 희귀성, 극도의 충격, 예견의 소급적용이 그 특성이다.
블랙스완의 대표적인 예로는 9.11테러(2001년), 미국발 금융위기(2008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1914년) 등이다. 이보다 약한 블랙스완으로는 2019년에 일부 투자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DLS(파생결합증권)이 있다. 우리은행이 판매한 DLF는 독일국채금리가 -0.2% 아래로 떨어지지 않을 경우 4.2% 수익을 얻지만 -0.2%를 밑돌면 하락폭에 200을 곱한 원금손실이 발생하고 -0.7%를 밑돌면 100% 손해 보는 구조다. KEB하나은행은 미국의 이자율스왑(CMS)와 영국의 CMS에 투자하는 DLF를 팔았다. 독일 미국 영국 금리가 급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없는 믿음으로 투자자들은 ‘블랙스완 폭탄’을 맞은 것이다.
누가 블랙스완 폭탄을 맞을까. 탈렙은 ‘플라톤적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지적한다. 어떤 목적지와 거기에 도달하기 위한 지도를 혼동하는 플라톤적 태도를 마음속에 똬리로 갖고 있는 사람은 깔끔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대상을 도외시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이 복잡한 현실과 만나 폭발하기 쉬운 경계지대가 ‘플라톤 주름지대’인데 검은 백조는 이곳에서 잉태된다는 설명이다.
◆최선에서 최악이 나온다, ‘루시퍼 원리’
블랙스완은 아놀드 토인비가 말한 ‘휴브리스(Hubris)’와 닮은꼴이다. 휴브리스는 신의 영역까지 침범하려는 정도의 오만을 뜻하는 그리스어로, 과거에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능력과 방법을 우상화함으로써 결국 실패하는 오류를 빠진다는 것을 가리킨다. 수에즈운하 건설을 성공시킨 페르디낭 레셉스가 파나마운하 건설을 맡아 실패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레셉스는 수에즈운하 때 개미가 침대를 기어 올라와 인부들에게 전염병을 퍼뜨리자 침대 다리를 물주머니에 넣어 해결했다. 파나마운하 때도 전염병이 돌자 똑같은 방법을 택해 전염병을 창궐하게 했다. 파나마지역에서 전염병은 모기가 옮겼는데, 수에즈운하 때 성공경험만 믿고 상황을 악화시킨 것이다.
휴브리스는 험난한 조건을 극복하고 성공을 일궈낸 사람들에게 나타나기 쉽다. 무에서 유를 일군 자수성가형 창업가나, 독재에 항거해 민주화를 이룩한 투사 등이 그들이다. 소 판 돈을 갖고 가출해서 현대그룹을 일궈낸 고 정주영 회장이 말년에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서 고생한 것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도 휴브리스에 빠져 블랙스완을 만들어 내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중도하차한 뒤, 대통령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국민들은 이런 약속에 80%가 넘는 지지율(국정수행 잘한다)로 화답했다. 하지만 2019년 9월에 문 대통령 지지율은 40% 초중반대로 추락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과 그의 부인 및 딸을 둘러싼 문제들이 기회가 평등하지도, 과정이 공정하지도, 결과가 정의롭지도 않은 모습을 보여준데 따른 것이다. 반대로 못한다는 의견은 52%로 과반수를 넘어섰다.
하워드 블룸은 『루시퍼 원리』에서 “더 나은 선을 추구하는 데로부터 가장 나쁜 악행이 나온다. 이상의 실행에서 허튼 증오가 나온다”는 역설을 제기했다. 동기와 의도가 좋다고 해서 결과가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고, 오히려 좋은 동기가 폭력을 합리화해 최악을 초래한다는 지적이다.
◆厥宗噬膚; 친할수록 엄히 다스려라
루시퍼 원리로 휴브리스와 블랙스완을 겪지 않으려면 겸손해야 한다. 이 세상에는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알 수도, 할 수도 없는 일이 많다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그런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플라톤 주름지대’를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하다.
『주역』 38번째 화택규괘는 이를 위한 가르침을 제시한다. 육오효는 “뉘우침이 없어진다. 그 당파를 엄히 처벌하니 나아간들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悔亡 厥宗噬膚 往何咎)”라고 했다. 여기서 종(宗)은 정당집단을, 살갗을 씹는다는 서부(噬膚)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처벌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다른 사람에게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대하고(對人春風) 스스로에게는 가을서릿발처럼 엄하게 다스리는 것처럼(持己秋霜),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평등하고 공정하고 정의롭게’ 다스려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문호를 활짝 열어 인재를 등용해야 길하며(同人于野亨), 자기 당파끼리만 어울려서는 좋지 않다(同人于宗吝)고 경고한 천화동인 괘와도 일맥상통한다. 문호를 열려면 선입견을 버리고 없는 것을 보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돼지가 진흙은 뒤집어쓰는 것은 더러운 것이 아니라 살갗에 붙은 기생충 등을 제거하기 위해 목욕하는 것이며, 수레에 귀신이 가득 있다고 여기는 것은 볼 수 없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다른 사람의 처지에 공감하는 지혜와 어짊과 용기가 필요하다. 지혜가 있으면 현혹되지 않고 어짊이 있으면 걱정하지 않으며 용기가 있으면 두려워하지 않는다.
군자는 쉬운 도리에 맞춰 살며 천명을 기다리고 소인은 위험한 일을 하면서 요행을 바란다고 했다. 위험한 일을 하면서 요행을 바라는 것이 위험한 DLF에 투자하고, 궐종서부하지 않고 동인우종함으로써 루시퍼 원리를 불러들여 휴브리스와 블랙스완이란 난국을 초래한다는 것을 새김질해야 한다.
https://blog.naver.com/hongcs0063/221665620736
첫댓글 "持己秋霜" 당연하지만 지키기는 매우 어렵죠.
그래도 지도자는 그런 자세를 지켜야지요. 반대로 하니 큰일입니다요...
나만이 적임자라는 콘크리트신념이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제 內城에 外城까지 둘러쳤으니 더욱 견고해지는 모양새입니다.
고요한 마음을 잃어서 그렇게 된 것같습니다.
說得의 大家요 오늘날 민주주의에 걸맞는 인물이라 할만한 天子 盤庚의 유명한 한마디가 기억납니다.
"그대 마음속에 중(中)을 베풀라(設中于乃心)"
고요한 마음을 되찾으면 정확한 판단이 나올 것인데..
설중우내심. 감사합니다
고상한 분들은 그들만의 자리를 만드시는것이 이윤숙선생님에게 누를 끼치지 않는것이라는 생각이 안드시는지요
궐종서부하지 못하고 이익으로 무리지으니 무리수를 둡니다.
늘 좋은 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