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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부 : 말씀의 계시(1)
하나님께서는 자기 양들을 찾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양들에게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길 원하십니다. 하지만 자녀들이 잘못된 길로 갈 때, 선한 일꾼을 통해서 바른 방향을 향한 말씀으로 양들을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악한 목자들을 심판하실 것을 위해 말씀을 전하십니다.
1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1)
에스겔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가운데에 위치한 25-32장에는 민족들에게 선포한 말씀이, 1-24장에는 유다가 멸망하기 전에 선포한 심판의 말씀이, 33-48장에는 멸망 이후에 선포한 회복의 말씀이 수집됐습니다.
현재의 위치에 따라 읽자면, 1-10절의 말씀은 유다가 멸망한 이후에 선포된 말씀입니다. 왕정 시대를 되돌아보는 회고적 말씀일 수도 있지만, 이 경우에는 멸망의 심판이 이미 성취됐기에 2절의 화 선포(‘이스라엘 목자들은 화있을진저’)가 무의미해집니다.
본문의 시점을 현재로 이해하는 것이 좋지만, 이때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목자들’이 누구를 가리키는지가 불분명합니다. 목자들의 무능력과 탐욕 때문에 양 떼가 사방으로 흩어져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음은(5-6,8) 목자들이 유다가 멸망하기 전에 통치하였던 왕들임을 시사해주고, 목자들에게서 그 직분을 빼앗으리라는 미래 시점의 심판 선언(10)은 목자들이 유배기 공동체의 정치 지도자들임을 전제합니다. 이 모호성은 왕정 시대의 목자들과 유배기의 목자들을 한통속으로 만들어 고발하기 위한 ‘의도된 모호성’입니다.
에스겔은 ‘목자들’ 대신 ‘이스라엘 목자들’을 사용해 화를 선포했는데, 이 표현은 구약성경에서 34:2에만 두 번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당신의 양떼를 돌보도록 목자로 고용한 모든 통치자가 고발 대상이 됩니다. 하나님의 양 떼를 돌보지 않는 불의한 목자란 점에서 왕정 시대의 통치자들과 유배기 지도자들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왕정 시대의 악한 목자가 양 떼를 포악으로 다스리며 잡아먹었던 것처럼, 유배지의 목자들도 자기만 먹고 양 떼를 먹이지 않았습니다.
악한 목자 : 이스라엘의 통치자(2-10)
목자가 되려면 희생을 감수해야 합니다.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양 떼를 돌봐야하기 때문에 매우 피곤한 일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자신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점점 희생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 결과로 양 떼들도 교만해져서 자신의 지도자를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목자들의 형태를 지적하시고 그들을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2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에게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자기만 먹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3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 떼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4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 주지 아니하며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포악으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5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고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6내 양 떼가 모든 산과 높은 멧부리에마다 유리되었고 내 양 떼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 7그러므로 목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8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내 양 떼가 노략 거리가 되고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된 것은 목자가 없기 때문이라 내 목자들이 내 양을 찾지 아니하고 자기만 먹이고 내 양 떼를 먹이지 아니하였도다 9그러므로 너희 목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10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목자들을 대적하여 내 양 떼를 그들의 손에서 찾으리니 목자들이 양을 먹이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이 다시는 자기도 먹이지 못할지라 내가 내 양을 그들의 입에서 건져내어서 다시는 그 먹이가 되지 아니하게 하리라(2-10)
하나님께서는 양들을 돌보지 않고 이용하기만 하는 목자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친히 대적하실 것입니다. 이제 그들이 굶주릴 ㅊ례입니다. 이제 그들이 버림받을 시간입니다.
(1) 탐욕스러운 목자들(2-4)
여호와께서 먼저 ‘자기만 먹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에게 화를 선포하십니다. 양 떼를 먹이는 일이 목자에게 맡겨진 사명임에도 이들은 제 배를 채우는 일에만 열심이었습니다. 주인의 양 떼를 돌보도록 고용된 일꾼들이 소유주의 양 떼를 임의로 처분했습니다. 불행하게도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운 자들이 그처럼 불의한 목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통치 권력을 이용해 제 잇속만 차렸습니다. 이들에게 백성은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착취의 대상이었습니다.
화 선포에 뒤이어 고발의 말씀이 주어집니다(3-4). 이스라엘의 목자들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은 하고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세 가지 악행이 언급됩니다. 양의 기름을 먹고 양털로 옷을 해 입고 살진 양을 잡아먹었습니다. 양의 기름을 먹으려면 먼저 양을 죽여야 하니 내용상 세 번째 악행과 같고, 또 기름을 먹기 위해 양을 죽이지도 않습니다. ‘기름’이 원래적이라면, ‘기름진 것’을 즐기려고 양을 임의로 처분하는 목자의 난폭성을 보여주려는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악행은 도둑질에 해당합니다. 양털은 주인의 몫이며, 1년에 한 번 봄에 양털을 깎는 행사는 기쁨이 넘치는 축제였습니다(참조. 사무엘상 25:28; 13:23-24). 세 번째 악행은 더 질이 나쁜 도둑질로 목자라면 해서는 안 될 범죄였습니다. 짐승의 공격을 받아 양을 잃었을 경우에도 이를 입증하지 못하면 목자가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출애굽기 22:13). 다음으로는 직무유기를 다섯 항목으로 고발합니다. 이스라엘의 목자들은 여호와의 양 떼에 최소한의 관심도 없었습니다. 이들은 약한 양의 원기를 북돋아주지 않고, 병든 양을 고쳐주지 않고, 상처 입은 양을 싸매주지 않고, 흩어진 양을 찾아 데려오지 않고, 잃어버린 양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목자들은 포악(폭력과 강압)으로 양 떼를 억압했습니다. 통치 권력을 사유화한 목자들의 불법과 무능력이 양 떼에게 치명적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2) 흩어진 양 떼(5-6)
목자들의 돌봄을 받지 못한 양 떼는 흩어진 채 들짐승들의 먹이가 되거나 산에서 헤매며 온 세상에 흩어졌습니다(5-6). 보금자리를 빼앗기고 황무지로 도망하거나 이방 나라로 쫓겨 갔습니다. ‘모든 산과 높은 멧부리에마다 유리되었고’는 일차적으로는 길 잃은 양의 절망적 처지를 묘사하지만, 여기서 우상숭배의 함의를 읽어내는 것도 가능합니다. 20:28에서 에스겔은 이스라엘이 모든 높은 산과 모든 무성한 나무를 보고거기에서 제사를 드렸다고 고발했습니다(참조. 6:13). 양떼의 운명에 관심을 두는 자가 아무도 없기에 양 떼의 처지는 더욱더 절망적이었습니다. 뿔뿔이 흩어져 길을 잃고 헤매다가 기운이 다해 죽는 일만 남았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양 떼의 주인이 개입합니다. 여호와께서 ‘양 떼’(2,3)를 ‘내 양 떼’로 부르시며 연민과 연대성을 내보이십니다.
(3) 고발과 심판 선언(7-10)
돌봄을 받지 못하고 흩어진 양 떼의 절망적 운명에 주인이신 여호와께서 개입하십니다. 심판 선언에 앞서 다시 한 번 당신 양 떼를 멸망으로 이끈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고발하십니다(8). 고발은 내용상 앞에 나온 것의 요약입니다. 양을 먹이지 않고 자기들만 먹는 양 떼가 온 지면에 흩어져도 찾지 않는 악한 목자들로 인해 여호와의 양 떼가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됐습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니’는 에스겔이 즐겨 사용하는 표현이며 이 사안이 중력하고 고발이 엄중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거듭 나오는 ‘내 양 떼’와 달리 ‘내 목자들’은 한 번 등장합니다. ‘여호와의 양 떼’가 그분이 고용한 그분의 목자들에게 버림을 받고 멸망에 떨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의 목자들은 양 떼의 주인이신 여호와 앞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제 여호와께서 당신의 양 떼를 사지로 몰아낸 독자들에게 엄중히 책임을 물으십니다(10). 이스라엘의 독자들은 더는 여호와의 목자들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이들에게서 목자의 직분을 빼앗아 이들이 양 때를 제 먹이로 삼지 못하게 하실 것입니다. 백성을 돌보지고 제 배만 채우려는 자들은 하나님 백성을 다스릴 자격이 없습니다. ‘그들의 입에서 건져내서서’는 목자들을 들짐승(5,8)처럼 묘사합니다. 들짐승의 공격에서 양 떼를 지켜야 할 목자들이 들짐승이 되어 양 떼를 노략질하기에, 참 목자이신 여호와께서 이들의 등과 폭력에서 당신의 양 떼를 지켜주십니다.
참된 목자 : 여호와 하나님(11-16)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선한 목자를 찾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 가운데 오셔서 참된 선한 목자로서의 삶을 감당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공허함과 헐벗음과 빼앗김을 살아가는 것은 진정한 지도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너무 풍요로운 삶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풍요 속에 빈곤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 지도자인 목자를 갈망하며 찾고 있습니다.
11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12목자가 양 가운데에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 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 13내가 그것들을 만민 가운데에서 끌어내며 여러 백성 가운데에서 모아 그 본토로 데리고 가서 이스라엘 산 위에와 시냇가에와 그 땅 모든 거주지에서 먹이되 14좋은 꼴을 먹이고 그 우리를 이스라엘 높은 산에 두리니 그것들이 그 곳에 있는 좋은 우리에 누워 있으며 이스라엘 산에서 살진 꼴을 먹으리라 15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6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기는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진 자와 강한 자는 내가 없애고 정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11-16)
하나님께서는 자기 양을 찾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풍성하게 먹이실 것입니다. 홀로 흐리고 캄캄한 곳에서 불안에 떨고 있을 양들을 모으실 것입니다. 타국에서 흩어져 설움을 당한 양들을 모으실 것입니다.
(1) 당신 양을 찾으신 하나님(11-1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목자들의 잘못으로 민족들 가운데 흩어진 당신 양 떼를 찾아서 구해주실 것입니다(11-12). 참된 목자가 성심껏 자기 양 떼를 돌보 듯 여호와께서 흩어진 모든 곳에서 당신 백성을 구해내 돌보아주십니다. ‘흐리고 칼칼한 날’(‘구름과 짙은 어둠의 날’)은 민족들을 심판하는 ‘여호와의 날’을 가리킵니다(30:3). 여호와께서 민족들의 손아귀에서 당신 양 떼를 되찾아 고향으로 데려와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좋은 풀밭에서 꼴을 먹이실 것입니다(13-14). 이스라엘의 유배 생활이 끝나고 여호와의 보호 아래 가나안 땅에서 평안히 살게 됩니다. 가나안으로 돌아온 양 떼는 삯꾼 목자들의 손에 맡기지 않고 주인이 직접 돌봅니다.
(2) 이스라엘의 목자 여호와(15)
15절은 독립인칭대명사 ‘나’를 두 번 사용해 여호와의 개인적 돌봄을 강조합니다. ‘내가 친히 내 양 떼를 먹이리라. 내가 친히 그들을 누워 쉬게 하리라.’ 악한 목자들로 인해 양 떼가 다시 흩어지지 않도록 주인이신 여호와께서 몸소 목자가 되셔서 양 떼를 돌보십니다.
(3) 참된 목자의 역할(16)
과거 폭력과 탐욕에 시달리던 양 떼가 앞으로는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쉬게 됩니다. 좋은 목자의 임무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는 16절은 악한 목자들의 탐욕스러운 행위를 고발하는 4절에 대응합니다. 전반 절은 4a절의 순서를 역으로 바꿔 기술하면서 대조를 한층 강조합니다. 후반절의 요약도 대조적입니다. 이스라엘의 목자들은 ‘포악’으로 다스렸지만, 목자 여호와께서는 ‘정의’로 이들을 돌보실 것입니다. 정의와 공의를 거절하고 폭력과 강압으로 양떼를 압제한 악한 목자들을 대신하여 그분께서 직접 이스라엘을 공의로 다스리십니다. ‘살진 자와 강한 자는 내가 없애고’는 다음 단락(17-22)을 예비해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며,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갈 때 진정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불의와 부정이 결국 우리에게 상처와 고통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며, 하나님께서는 이를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그분의 은혜를 깊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웃을 사랑하고 돕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믿음과 행동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도록 다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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