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시니,
정성을 다하여 찬양하여라.
[시편 47:7]
시편 47편은 매년 이스라엘에서 행해지던 '하나님의 대관식'에서 불려지던 찬양시로 추정된다.
개역성경 6절의 번역은 이렇다.
"찬송하라 하나님을 찬송하라 찬송하라 우리 왕을 찬송하라."
1~5절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기억하는 것'이 찬양의 근거임을 알 수 있다.
세상살이에 파묻혀 살면서 하나님을 잊고 사는 이들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다.
잠시 멈추어 서서(시편 46편),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만을 위해서 일하신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평화로운 세상으로 하나되도록 창조하셨다.
그리하여 '대동세상'을 열어가신다.
대동세상이란,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세계, 하나님 나라다.
그 세상은 인간의 노력을 필요로 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이 작용해야만 이뤄진다.
하나님 없는 대동세상, 하나님 나라는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대동세상, 하나님 나라를 완결시키시는 분이요, 그런 점에서 유일한 분이시요, 진리이시다.
이것이 찬양의 근거다.
찬양이란 무엇인가?음악적인 요소를 갖춘것만 찬양이 아니다. 오늘날 찬양집회에서 불려지는 찬양은 왜곡된 측면들이 많다. 때론, 감성적인 측면이 필요하지만, 반복적인 자극을 통해 삶의 변화없는 구원의 확신을 갖는 일은 마약 중독과 다르지 않다.
1980년대 후반 용산에 있는 온누리에서 '목요찬양집회'가 열리면 수많은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다.
찬양집회의 모습은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상상이 갈 것이다. 풍성한 사운드, 반복되는 후렴구...인도자와 참여자들의 열광적인 찬양이 교회에 가득하다. 두 손을 올리고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치고 결단한다.
5월의 어느 목요일(5월 18일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그때 전도사로 청년들과 함께 집회에 참여했다.
그날은 전국적으로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을 밝힐 것을 요구하는 집회가 곳곳에서 열리는 날이었다. 그러나 집회 내내, 그에 대한 단 한 마디의 언급도 기도도 없었다. 교회 안에는 찬양이 울려퍼지고, 은혜받은 성령충만한 이들이 눈물을 흘리며 전쟁을 찬양하는 가스펠송을 부르고 있었다. 그 시간,거리에서는 젊은이들이 광주민주화 운동의 진상규명과 민주주의를 외치며 최루탄에 눈물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하나님은 어떤 찬양을 기뻐 받으셨을까?
그 이후 나는 목요찬양집회류의 찬양을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 류의 찬양은 지양할 바가 많다. 특히, 감성적인 신앙에 머물게 하는 부작용은 지양이 아니라 극복해야한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그래서 그분을 온 세상의 왕으로 모시는 일은, 그의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 마침내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안에서 하나된 대동세상을 이루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민하자.
'하나님' 그분은 누구신가? 어떤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는가? 성경에 나오는 이름뿐 아니라 절대자, 신비, 도, 초월자, 내재하시는 분...하나님은 이름이 아니다. 왜 그런지는 도덕경 1장의 '名可名 非可名'을 묵상하라.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는 그를 기억해야만 한다.
그가 행한 일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면서 찬양한다고 착각하는 것은 그의 이름을 모독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