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어제 부터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우산을 쓰고, 카메라를 메고 집을 나섰다. (오전 8시 30분에 출발, 창경궁에 9시30분 도착)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는 10시30분이 지나면서 그치기 시작했다.
창경궁은 '만추' 그 자체였다.
가을이 더 깊어지기 전에 다녀오시길.
창경궁은 매주 월요일 "휴장" 입니다.
춘당지 가는 길
춘당지
빈 공간은 그냥 비어 있는 듯 그냥 '비어 있다'고 말하는 듯 고요할 뿐인데 그 고요 때문에 불안을 느낀다. 불안 속에 놓인 채 나는 잠시 공간과 대립한다. 그 속에서 사물은 더욱 분명해 보이지만 저 공간을 건너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 막막함이 가을바람처럼 나를 스산하게 한다. 그 순간 내 존재가 몹시 고통스럽게 느껴진다.그럴 때면 희망때문에 말을 걸고 싶어진다.
존재가 있기 때문에 고통이 따른다고 누군가 말했지만 나도 한 존재이므로 홀로 고통을 지고 가야 하는 것이다. 가는 길도 모른 채 가야 하는 내 존재가 무겁게 느껴진다. 그래도 지금이 지나가야 다음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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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보면 길이 되는 그것이 희망이라 믿어본다. 내게도 찬바람을 쐬고 젖은 몸이 있어서 희망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하늘에 절을 해서라도 고통을 덜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다. 고통에 대한 공포가 마음을 누를 때 나는 포르투칼 항해사 톨로뮤 디아스와 거지 성자 프란체스코를 생각한다. 디아스는 심한 폭풍 속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희망봉을 발견했고, 프란체스코는 사람들에게 베푼 것이 없으니 고통이라도 함께해야 한다며 추위 속에서 벌거벗고 서 있던 사람이다.
"인생을 절망해보지 않고는 진실한 삶을 모른다" 던 카뮈의 말은 고통 없는 축복이란 있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고, 절망한 만큼 희망도 있다고 말하는것 같다. 존재가 고통이라면 삶은 존재의 수난이다. 수난에 비쳐진 존재의 고통 ! 존재를 말할 때면 "왜 아무것도 있지 않고 무엇인가 있는가?" 라는 말도 생각하게 된다.
천양희 작가 / 첫 물음, '견딜 수 없는 존재의 고통' 중에서 (165,1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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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산다는 것에 대하여 :) 원문보기 글쓴이: 미네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