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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호] 2009년 08월 12일 (수) | 박지웅 (도서출판 호미 편집부 차장) |
휴가철, 소걸음으로 움직이던 자동차들이 진부령 옛길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아예 멈춰버렸다. 끝없이 늘어선 차량 행렬과 클랙슨 소리. 주말을 죄다 길에 쏟아버리고 나니, 책 두어 권 챙겨 경북 성주군 수륜면 작은동(鵲隱洞)으로 향하던 작가 이지누의 여행이 떠올랐다. 맑은 개울에 발 담그고 책을 읽고, 저녁상 물린 뒤 마당에 모깃불 피우고 평상에 앉아 백 살 농부 문상의 옹과 정담을 나눈다. 이지누의 여행에는 도시인이 그토록 원하는 진정한 마음의 휴식이 있다.
이지누가 <뭐라, 내한테서 찔레꽃 냄새가 난다꼬>에서 밝힌 문옹과의 인연은 1999년 가을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북 성주군 지방 산골의 언어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열다섯에 시작한 농사일만 평생 고집해온 문옹.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낫·호미 같은 연장 몇 개로 농사짓는 문옹은 말과 몸짓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 뒤로 작가는 2002년 여름까지 작은동을 드나들며 “꿩 새끼마냥 문옹을 뒤따라 논틀 밭틀 걸으며” 그가 몸으로 익힌 삶의 지혜를 엿보았다. 그 놀라운 느림과 단순 소박한 삶이라니! 해를 거듭해 똑같이 되풀이되는 (그러나 늘 새로운) 문옹의 일상을 몇 해 동안 담아낸 이지누의 글과 사진은 몹시도 순정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그 깊은 울림을 책 한 권에 오롯이 담기 위한 편집 과정은 지난했다. 작가는 제 살점 도려내듯 원고를 절반이나 쳐내고, 편집자는 책의 틀을 네댓 번 뒤집고 엎은 뒤에야 글과 사진을 과감히 따로 두는 틀로 잡았다. 그렇게 작가와 문옹이 구수한 사투리로 나누는 정담으로 이어지는 ‘글 책’과, 문옹과 그의 열아홉 살 된 소를 담은 100장의 흑백 ‘사진 책’으로 나누어, 두 권이면서 한 권인 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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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나온 얼마 뒤에 영화 <워낭소리>가 독립영화로서는 사상 초유의 흥행 대박을 터뜨렸다. 매체는 다르지만, 농부와 소를 중심 소재로 몇 해에 걸쳐 그들의 삶을 담은 점에서, <워낭소리>와 <뭐라, 내한테서 찔레꽃 냄새가 난다꼬>는 닮았다. 영화가 고공비행을 이어가는 동안, 책 판매 부수는 소걸음이었으니 편집자로서 속앓이가 적잖았다. 공들여 만든 책을 독자가 미처 알아보지 못한 것은 부족한 마케팅 탓이려니 싶어 더없이 미안하고 아까운 책이다. 그러고 보니 영화에서는 마흔 살 먹은 소가 먼저 죽었지만, 이 책에서는 백 살 농부가 먼저 흙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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