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정리: 2003.6.5~6.6
6.5(목):04:50성삼재-05:45노고단고개-06:25돼지평전-07:00임걸령조식-08:15노루목-08:47삼도봉-09:25화개재-10:05토끼봉-11:30총각샘-12:20연하천대피소-14:05삼각봉-15:00형제봉-15:50벽소령대피소
6.6(금):06:40벽소령-07:40선비샘-08:50칠선봉-09:45세석대피소-10:40촛대봉-12:00연하봉-12:15장터목대피소-13:50제석봉-14:15통천문-14:30천왕봉-15:15천왕샘-16:15로터리대피소-16:50망바위-17:30칼바위-18:00중산리
작년에 이어 산우회팀과 지리산 종주를 떠난다. 올해는 작년과 같이 출발 때부터 월드컵 축구의 열기는 없었지만 그래도 직장 동료들과 함께 지리산 종주 산행을 떠난다는 마음에 다시 또 설렌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올해는 45인승 관광버스를 대절하여 지리산으로 가는 것이다. 산행 인원 16명을 기준 잡을 때 기차 편을 이용할 때와 교통비가 거의 비슷하거나 저렴하므로 버스로 낙점을 하였다. 6월 4일 밤 모두 교정에서 밤 11시 30분에 만나 자정에 출발한다. 올해도 출발 직전 연락이 닿은 어진 뫼 산악회 이O은 선생이 꼭 참가하고 싶다고 전화를 걸어와 산우회팀과 같이 지리산행에 합류를 한다.
항상 그렇듯이 차 뒷좌석에서 홍 선생이 술로 분위기를 잡는다. 홍 선생이 준비해온 양주를 서너 잔씩 돌리며 지리산 종주는 시작된다. 소풍을 떠나는 아이들처럼 가슴이 뛴다. 동심의 세계로 되돌아간 우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버스는 질풍같이 어둠을 가르고 남쪽으로 내달린다.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버스가 이미 달궁마을을 지나 하늘 아래 첫 동네 심원마을을 향하여 힘을 쓰고 있다. 모두 잠에서 깨어나 자신들의 장비를 점검한다. 성삼재에 도착하니 새벽 4시 30분. 날이 밝아 오며 우리들의 첫발과 함께 지리산의 아침이 열린다.
1차 목적지인 노고단 대피소로 향한다. 버스를 이용한 이번 지리산 종주 산행은 시간에 여유가 있어 산우회 대원들에게는 특히 느긋한 걸음으로 산행을 하도록 당부를 했다. 노고단 대피소에서 시원한 약수로 뱃속을 달래고,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한 후 노고단 고개를 오르니 흐린 날씨 속에 천왕봉이 까마득하다. 노고단 고개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드디어 종주 능선길을 따라 숲속으로 들어서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벽소령을 향한다.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촬영지와 원추리꽃으로 유명한 돼지 평전을 지나면서 남쪽으로 쭉 뻗은 왕시루봉을 바라보며 조만간 그쪽으로 다녀와야겠다고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피아골로 내려서는 임걸령을 지나 샘터에서 준비해온 김밥으로 아침을 먹는다.
임걸령에서 노루목을 지나 삼도봉까지는 고도를 다소 높여야 한다. 노루목에서 뻗어 오른 반야봉 때문이다. 삼도봉에서 널널하게 휴식을 취한 후 550여 개의 계단을 걸어내려 화개재에 도착한다. 화개재에서는 제법 큰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등산로 유실에 따라 정비를 하는 듯하다. 나무로 만들어진 다리를 놓고 그 길로만 등산객들을 다니게 하려는 모양이다. 아마 다음에 화개재에 올 때는 변화가 기대된다.
화개재에서 토끼봉까지는 기나긴 오름길. 화개재가 주능상에서 가장 낮은 안부이기 때문에 토끼봉 쪽이나 삼도봉 쪽이나 어디로 가든 굵은 땀방울을 흘려야만 한다. 내 생각으로는 지리산 종주 길에서 영신봉 구간에 이어 힘이 드는 구간이 바로 화개재-토끼봉이 아닐까 한다.
뒤에 느긋하게 오던 홍 선생이 동료들이 쉬는 틈을 이용해 토끼봉을 단숨에 치고 오르고자 선두로 빠진다. 후미 그룹과 대열을 같이 하다가 나 역시 홍 선생을 뒤쫓는다. 토끼봉에서 오랫동안 조망을 하기 위해서이다. 토끼봉을 오르니 편평한 헬기장은 최근 들어 돌을 깔아 흙의 유실을 막았고 밧줄로 울타리를 쳐놓아 토끼봉 정상을 지나가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늘에서 잠시 쉬고 있으니 일행들이 도착한다. 예상 밖으로 작년보다 동료들이 쉽게 올랐다. 토끼봉에서 한 시간 가까이 퍼질러 앉아 담소를 나누며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다가 다시 길을 떠난다.
총각샘이 있는 바윗길을 지나 명선봉을 우측으로 우회하여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하니 많은 산님들이 그늘에서 식사하며 휴식을 취한다. 연하천의 샘물은 펌프질할 때마다 나오는 물처럼 수량이 풍부하다. 커다란 물통 안에 있는 시원한 캔맥주와 음료수가 유혹한다. 80년대에 지리산 종주산행을 하다 연하천산장 앞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기도 했었다.
이제 연하천 대피소에서 벽소령대피소까지는 쉬엄쉬엄 걸어도 2시간. 지금의 시각이 2시니까 4시에는 오늘의 숙박지 벽소령대피소 도착이 가능하다. 다소 가파른 형제봉까지의 오름길만 있을 뿐, 오늘 산우회팀의 컨디션으로 볼 때 아주 무난하다. 삼각고지에서 화개동천을 바라보며 멋진 조망을 즐긴 후 형제봉을 지나니 능선 좌측으로 대피소가 빼꼼히 보이며 지척이다. 주능길을 걸으며 빗점골과 덕평 능선, 삼신봉, 악양의 성제봉과 화개동천을 바라보며 조망을 즐긴다. 드디어 모두 여유 있게 벽소령대피소에 도착. 첫날의 미션을 완수한다. 날씨가 좋아 취사장 밖에 자리를 잡았다. 저녁준비를 미리 해놓고 술안주로 준비해간 고기를 굽고, 오늘의 노고와 성공적인 지리 종주를 위하여 건배를 청한다.
올해는 대피소 예약이 늦었었다. 아니 작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던 모양이다. 한 달 전에 대피소 예약을 하려 했건만 자리가 없어 매일 지리산 국립공원관리공단 홈페이지에 연결하여 사이트를 기웃거렸다. 10자리만 확보했을 뿐 나머지 6자리는 구하지 못한 채 대피소에 도착한 터였다. 오후 7시가 되어서야 예약 취소자의 자리를 배정을 받았는데 좁은 공간에 더 많은 인원을 배정하며 일행들을 당혹하게 만들기도 하였으나 어찌하랴. 날이 어둡지는 않았지만, 동료들을 일찍 쉬도록 하게 하고 밖으로 나온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벽소령대피소는 점차 많은 산님들로 붐빈다. 늦게 도착한 산님들로 대피소 앞마당도 입추의 여지가 없이 비박 준비를 하는 산님도 많다. 3일 연휴 탓인지 벽소령대피소에 이렇게 많은 산님은 처음이다. 지리산이 날이 갈수록 산님에게 사랑을 받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벽소령대피소는 지리산의 품속에서 고요하다. 벽소명월이라 했는데 서쪽 하늘엔 샛별과 아쉽게 그믐달이 걸려있다. 보름달이 아니라도 좋다. 9시가 되어서 박 선생과 홍 선생, 윤 선생을 꼬드겨 안주꺼리를 만들고 2차 술자리를 만들었다. 인생사, 산 정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리산의 밤이 깊어 가는 줄 모른다.
다음날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대피소 밖으로 짐을 싸 들고나오니 부지런한 홍 선생은 벌써 일어나 아침 준비에 여념이 없다. 홍 선생과 함께 식사 준비를 하는데 박 선생과 윤 선생도 합류한다. 얼큰한 부대찌개를 끓여 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마치고 7시가 못 되어 벽소령을 떠난다. 이제 둘째 날 지리산 종주의 최대의 난코스인 칠선봉과 영신봉 구간만 돌파하면 천왕봉까지는 그리 어려운 여정은 아니다. 선비샘에서 약간의 휴식과 물를 보충하고 칠선봉을 향한다. 칠선봉 직전의 조망하기 좋은 망바위에서 일행들과 자세를 취하며 깊은 지리산을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추억으로 남긴다.
칠선봉을 넘었으니 이젠 영신봉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작년 종주 때는 벽소령에서 세석대피소까지 4시간 30분이나 걸렸었다. 뒤에 처진 동료 배낭을 들쳐메고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칠선봉과 영신봉을 넘다 보니 세석대피소에 도착한 시각이 8시가 되었다. 힘들었던 작년 생각에 웃음이 나온다.
일행과 함께 세석대피소에 도착하니 산님들이 모두 떠나간 한가로운 오전 시간이다. 어제 세석대피소에서도 많은 산님으로 붐볐을 것이다. 세석대피소에서 40여 분의 충분한 휴식시간을 보낸 후 촛대봉에 올랐다. 서쪽으로는 반야봉이 동쪽으로는 천왕봉이 가깝게 보였지만 가스가 차올라 멋진 조망을 보여주지 못한다. 저 멀리 서북 능선도 아스라하다. 올망졸망한 촛대봉에는 역시 많은 산님들. 오늘이 현충일이고 내일 토요일 휴무에 쉬는 직장들이 많아 일요일까지 연휴고 보니 지리산에 산님으로 넘치는 것이다.
장터목대피소로 가는 주능길 역시 오가는 산님들로 붐비고 있다. 깊고 깊은 도장골의 지세를 살펴보고 연하봉 직전에서 속력을 내어 대피소로 향한다. 동료들의 점심 준비를 하기 위하여 홍 선생과 함께 속도를 낸다. 장터목대피소에는 백무동과 중산리에서 올라온 산님들과 천왕봉을 다녀온 산님들로 혼잡하다. 점심을 맛나게 먹었으나 피곤해하는 동료들이 있어 격려하며 제석봉을 지나 통천문을 지나는데 날씨가 갑자기 흐려져 빗방울이 날릴 것만 같다.
드디어 천왕봉. 날씨가 좋지 않아 일망무제의 천왕봉이건만 조망권은 형성되지 않는다. 바로 아래 중봉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나마 비가 오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30여 분을 머물다 3시가 되어 하산을 한다. 중산리까지는 대략 우리의 산행속도로 3시간 이상 예상된다. 천왕샘에서 목을 적시고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서는데 몇몇 동료는 하산길에 무릎 통증을 느끼나 보다. 지금까지 정신력으로 버텨왔던 이O숙 선생이 많이 지친 듯하다. 부축하려고 동료들이 거들었건만 그녀의 탄탄한 자존심이 허락질 않는다.
종주 후 하산길에서는 대부분의 산님들이 무릎 통증에 시달린다. 윤 선생도 천왕봉까지는 아픈 무릎을 참고 잘도 왔지만, 하산하면서 통증이 심한지 힘을 쓰지 못한다. 그들과 고통을 함께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만 더해간다. 이 선생이 힘들어해서 로터리대피소까지 내려가면서 몇 번이나 쉬었는지 모른다. 힘이 빠져 풀썩 앞으로 쓰러질 것 같은 몸짓이지만 조그만 도움도 원치 않는 그녀이다. 곁에서 호위하며 내려가는 박 선생이 각별히 신경을 써주어 안심된다.
로터리대피소에 먼저 도착하여 휴식을 취하고 있는 권 선생님과 행정실장님이 역시 이 선생을 보더니 걱정스러워한다. 이곳에서 중산리 하산길은 아직도 우리에게 멀고도 멀었다. 내려가면서 몇 번을 더 쉬었던 것 같다. 칼바위를 만나니 비로소 안심된다. 커다랗게 들려오는 계곡 물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곧 지리산 종주가 끝이 난다는 기쁘고 아쉬운 생각보다는 이 선생이 최선을 다했던 모습에 먼저 고마운 생각뿐이었다.
중산리 매표소 앞 식당에는 많은 산님들의 하산 주로 자리마다 붐볐고, 우리는 그곳에서 대형버스 주차장을 이십여 분 더 내려가서야 산행을 정리한다. 시간이 다소 지체되어 동료들과 상의 끝에 덕산에서 목욕을 생략하고 간단히 몸을 닦은 후 주차장 앞 식당에서 하산 주와 저녁 식사를 하였다. 이틀 동안의 노고에 서로 격려를 보낸다. 컨디션이 매우 좋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한 이 선생과 윤 선생에게 박수갈채를 보낸다. 이제 모두 차 안에서 피곤함에 깊은 잠에 빠지겠지. 그리고 우리는 내일부터 일상의 생활로 돌아가 어머니의 품 지리산이 다시 그리워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