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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틋한 후회
아침 일찍 조반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서울역엘 나가니 대합실에는 그날따라 웬 사람들이 그리도 많은지 표를 끊으려는 사람들이 가드라인을 넘어서까지 줄을 서고 있었다.
지난 가을에도 한번 부산을 가려고 나왔다가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한참동안을 기다린 적이 있어서 오늘은 일찍 나오느라 하였지만 평소에 전화를 길게 하는 친구인 옥희가 전화를 걸어오는 바람에 30분은 허비를 하였다.
전화내용이래야 살아가는 이야기와 요리하는 방법에 대해서 묻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학교 다닐 때에 나는 틈틈이 요리강습을 받아서 웬만한 요리는 거기에 소요되는 자료라든가 양념까지도 비율을 잘 맞추는데 비해서 옥희는 둔자라는 별명이 붙은 것과 마찬가지로 무슨 요리를 집에서 하게 되면 전화통을 들고 내 지시에 따라서 요리를 해왔다.
한번은 남편이 조반을 얼른 먹고 나서 출근을 해야 하는데 밥하고 국은 차려왔으면서도 호박전을 한다고 하더니 가지고 오지를 않아서 부엌엘 나가서 보니 호박전은 한쪽으로 타고 있는데도 옥희는 전화통만 붙들고 말을 하더라는 것이었다.
“ 여보 호박전이 타고 있는데.”
“ 어마. 내 정신 좀 보아. 금녀의 호박전에는 들기름을 넣어야 칸다캐서 기름을 찾다 보이 전이 다 타 뿌렸네.”
남편은 국 한 그릇에 반찬도 없는 아침밥을 먹고서 출근을 하였지만 워낙 말이 없는 사람이라 그냥 넘어가긴 하였다.
오늘 아침의 용건은 다른 것이 아니고 그것이 한 달째 없는데 이유가 무엇인지 혹 경험한 바가 있으면 알려 달라는 내용이었다.
“ 얘야 너가 지금 초등학생이가. 그런 것을 묻게.”
“ 얘야. 나가 정신이 지금 있게 생겼냐. 지금까지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어야. 여북하면 체멘 불구하고 그런 일에 대해서 너한테 묻겠냐. 나 사정 좀 봐주라.”
“ 옥희야. 내 지금 부산 갈 일이 생겨서 떠날라카는데 니가 전화를 한기라. 그라고 언제 너
가 체멘을 차린 적이 있다꼬. 지집아야 개가 다 웃갓따. 아무 소리하지 말고 기다리꾸마. “
“아니다. 금녀야. 너 나 죽는 꼴 볼라꼬 그러냐. 나 지금 겁이 나서 죽을 맛이란 말이다.
어이하면 좋을지 그 말 한마디만 하고 가그라. “
“ 옥희야 .참말로 몬 말리겠니라. 오늘 다른 일은 고마하고 산부인과부터 가그라. 알았재.
혹시 거기 감은 옷을 벗으라 칼지 모른다. 그때는 의사가 카라는 대로 하그라. 왜 옷을
벗으라캄니까. 당신이 우리 냄편도 아닌데 예. 라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데이. 알았재. 평상
시의 너의 성격으로 봐 그리 나올 것 같아 미리 말을 해두는 기라. 그라문 나 바빠서 이만
끊는데이. “
“ 야야. 아무리 바빠도 한마디만 더 묻자 안카나."
“………….”
대답도 하지 않고 그냥 나오다 보니 30분은 족히 옥희로 해서 시간을 빼앗겼다.
억지로 표를 끊고 나서 차에 오르니 그제야 한숨이 휴우 하고 나갔다.
금녀가 오늘 아침 갑작스레 부산을 가게 된 것은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인 경희가 이번에 전
셋집을 얻으려 하는데 와서 봐 줘달라고 하였다.
동생이 저렇게 언니에게 매달리는 것은 두 남매만 남기고 부모님이 한꺼번에 연탄사고로 돌
아가시게 되자 당시에 일곱 살인 동생을 언니가 돌보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언니와 동생의 나이 차이는 열다섯 살이나 나고 언니는 그때 객지에 나가서 유치원교사 근
무를 할 때라 할 수없이 동생을 누구에게 맡길 수가 없어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내
내 동생의 뒷바라지를 하였다.
동생을 기르다 싶이 하느라 늦도록 결혼도 하지 못한 채 살고 있는 것이 어떤 때는 한심할
때도 있지만 혼자 사는 것이 자유로운 면은 있어 일장일단을 겪으면서 살고 있다.
경희는 학교 다닐 때부터 달리기를 잘 하여 배구선수로 활약을 하더니 고등학교 3학년 때
에는 체육대학에 선발이 되어 장학금까지 타게 된다고 해서 당분간 학비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더구나 경희는 대학을 다닐 때 줄곧 기숙사 생활을 하여 주거비용도 들지 않았으니 그것만
도 다행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대학졸업을 1년을 남겨두고 어느 날 밤중에 기숙사에서 전화가 왔는데 동생이 혹시
집엘 가지 않았느냐고 물어왔던 것이다.
“ 뭐라꼬 예. 동생이 없어졌다 그깁니꺼.”
언니는 그 전화를 받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으니 지금까지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
기 때문이다.
더구나 기숙사의 규정은 밤 9시까지 들어와야 하고 그렇지 못할 때에는 퇴출을 한다는 규
정에 따라서 누구나 그 규칙을 준수하지 않은 학생은 없었는데 동생이 외출한 뒤에 들어 오
지를 않아서 연락을 했다니 언니는 그러면 당장 경찰에라도 신고를 하였느냐고 물을 수박에
없었다.
언니는 그 다음부터는 동생이 어떻게 되었는지가 궁금하여 도무지 잠이 오지를 않아서 뜬눈
으로 밤을 새우고는 아침에 바로 기숙사로 향하였다.
언니는 가면서도 동생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을 하다가 고등학교 입학을 하고 나서의 일이
떠올랐다.
사실 동생은 얼굴이 예쁜 편이고 학교 다닐 때에 성적도 우수하기도 하였지만 친구들과의
사이도 원만할 정도로 모든 친구들이 다 좋아하였다.
특히 남자애들 몇 명은 동생을 가까이 하려고 무진 애를 쓰는 가운데 아이 두 명은 집에 까
지 따라온다는 것을 억지로 말리기도 하였다. 는 말을 들은 언니는 동생의 인기가 남다르다
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혹시 남자들 꼬임에 빠져서 밖으로 나간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
도 하였다.
마침내 기숙사에 도착을 하여 기숙사 사감을 만나게 되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거기에는 뜻
밖에도 동생이 사감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용을 알고 보니 이날 동생은 친구들과 함께 리포트작성을 위해서 시내에 나갔다가
마침 저녁때가 되어 간단히 저녁을 먹고 들어가자고 하여 모두가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 한
그릇씩을 먹고는 기숙사로 돌아와서 잠을 자던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경희의 배가 아프기 시작을 하는데 참을 수가 없었다.
마침 친구들은 다 잠이 들어 깨울 수도 없고 사감님도 주무시는 시간이라 말을 할 수도 없
어서 그냥 병원의 응급실로 갔더니 식중독이라고 하면서 치료를 해주면서 입원을 해야 된다
고 하여 하룻밤을 입원을 했다가 식전에 기숙사로 돌아와서 사감님께 사정 말씀을 드리게
되었다고 하였다.
언니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집으로 돌아왔지만 동생이 수무 살이 넘도록 철이 들은
것 같지를 않아서 언니는 그것이 늘 걱정이었다.
동생의 과거에 대해서 말을 하자면 늘 불안을 안고 살아온 것이 사실이었다,
동생이 고등학교 3학년 때에 언니는 잠시 지금 살고 잇는 집이 아닌 시골에서 살던 때가
있었다,
이때 그 부락에는 큰 기와집으로 유명한 집이 있었는데 이 댁은 농사를 지어도 많이 짓고
머슴도 세 명이나 둘 정도로 큰 부자 집이었다.
집안이 그렇게 잘 살다 보니 이 댁 어르신의 생신날이면 온 동네 사람들을 불러서 생일상
을 차리고 음식을 대접을 하니 이날이야말로 온 동네 사람들의 즐거운 날이고 마음대로 음
식을 먹을 수 있는 날이었다.
먹는데 대한 말이 나왔지만 옛날에는 마을마다 어려운 사람들이 많아 때를 제대로 에우지
못한 잡 안이 많았기에 동네에서 잔치라도 벌리게 되면 모두가 그 집에 가서 삼시 세끼를
해결하였다.
이 부자 댁에는 외아들인 윤 한백이라는 학생이 있었는데 학교 다닐 때부터 친구들이 많아
서 방학 때가 되면 이 집에는 학생들이 와서 들끓었다.
한백이 아이들을 거느리고 다닌 다기 보다는 아이들이 한백을 뒤따라 다닌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한백은 머리는 비상하지는 않지만 아버지가 돈을 넉넉히 주면서 친구들을 잘 사귀라는 말씀
을 여러 번 하셨기에 한백은 친구들이 다가오면 내치지를 못하고 혹시 어디를 갔다가 때가
되면 국밥 한 그릇이라도 사주었으니 어쩌면 그런 멋에 그의 주위를 맴도는 아이들이 많
았을 것이다.
그중에는 한백을 이용하려는 아이도 있었으니 이른 봄에 학교마다 미팅을 하는 계기가 되
면 몇 아이들은 한백에게 미팅장소며 거기에 소요되는 비용을 대달라고까지 하였던 것이다.
그러면 한백은 마음에는 없으면서도 체면상 비용을 대주었으니 그때마다다 친구들은 역시
한백이야 할 정도로 인기는 상승하였다.
한백이 그런 인기를 타다 보니 남자아이들도 그렇지만 일부 여학생 아이들도 한백에게 다가
서려 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한백에게는 남다른 점이 한 가지가 있었으니 학교 공부는 등한히 하면서도 나팔을
잘 불어서 교내 밴드부에서 활약을 하였다.
날마다 밤늦도록 악기 연습을 하느라 집에 돌아오는 것은 밤중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한백은 저녁 늦게 연습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인데 마침 앞에 가는
여자가 한 부락에 사는 경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까지 경희는 그 오빠가 한 동네에 살긴 하지만 어려워서 별반 말도 하지 않았는데 이날
오빠는 너무도 친절하게 대해주어 가슴이 떨리기까지 하였다,
사실 이때가 경희에게는 사춘기가 와서 이성에 대한 호기심을 은근히 가질 때여서 그런지
그날 밤 경희는 그 오빠의 인상이 매우 좋다는 것을 느끼었다.
그런데 이날을 계기로 한백은 경희의 책가방도 들어다 주고 때로는 저녁 늦게 집으로 함께
돌아오게 되다 보니 경희가 점점 예뻐지고 이 아이를 사귀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어느 날 .한백은 경희에게 저녁을 사주겠다고 하였는데 경희는 한백의 마음과는 다
르게 바쁜 일이 있어서 안 된다고 거절을 하였다.
그러자 한백은 속으로 생각하기를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을 떠올리면
서 황소가 웃듯이 희죽이 웃고 말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 공교롭게도 다시 만나게 되자 한백은 경희의 손목을 잡고는 송아지처럼
끌고는 중국집으로 들어서니 안 따를 수가 없었다,
“ 경희야. 미안해. 말로 해서는 안 될 것 같아서 이리 왔는데 예상외로 내가 생각컨대
그대는 속으로는 매우 좋아하는 것 같은데. 내 말이 틀려. “
‘오빠가 무지막지하게 끌고 와서 한다는 소리가 기분이 좋을 것 같다라니. ‘
세상에 이런 경우가 어디 있느냐고 항변을 하고 싶었으나 경희가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엊
그제까지도 오빠에 대해서 어떤 환상을 그리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 경희야 심각하게 생각할 것 없어. 우리는 결국 무척 좋아하는 사이가 될 터인데 뭐. 그
러니 저녁이나 맛있게 먹자구 알았지. “
오빠가 속사포처럼 말을 하는데 경희는 할 말이 막히었다,
“ 대답은 두었다가 한꺼번에 해도 돼. 단 이 말은 빠트리면 안 될 거야. 오빠를 사랑해 하
고 말이야. 하하하. “
경희는 그 말에 대해서 송아지가 어미 소의 젖을 빠는 것을 볼 때에 배시시 웃음이 번지듯
이 한껏 기분이 좋긴 하였지만 그렇게 표정을 지울 수는 없었다.
‘ 대답을 두었다가 한꺼번에 하라는 소리는 언니한테도 듣지 못한 보석 같은 귀한 말이어
서 속으로 놀라기도 하였다.
속담에 말 한마디에 천 냥이 오르내린다는 말처럼 오늘 오빠는 경희를 자기의 소유물처럼
울타리 안으로 가두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서 묘한 감정이 일었다
그 후 경희가 학교를 갈 때가 되면 언제나 한백은 미리 집 앞에 나와서 기다리다 경희가 집
에서 나오게 되면 경희의 책가방을 빼앗다 싶이 하고는 들어다주니 경희인들 부득부득 책가
방을 뺏을 수도 없어 그냥 따라다니다 보니 둘의 사이는 점점 가까워져 나중에는 경희도 그
를 좋아하게 되었다.
오빠는 경희의 그 눈치를 알아차렸는지 일요일이면 경희를 불러서는 산으로 들로 데리고
다녔다,
“ 오빠를 따라다니게 되면 손해될 게 하나도 없어. 밥 사주지 떡 사주지 사탕도 물론 사
주지만 때로 업어달라고 하면 이렇게 넓은 등으로 얼른 업어도 줄거야. 핫하. “
그러면 경희는 속으로 그것이 진정일까 하는 생각을 하였으니 친구들의 얘기를 가끔 들으면
남자애들의 마음은 종잡을 수가 없다는 말을 몇 번 들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지금으로서는 오빠가 무슨 말을 해도 곧이들리고 있으니 너무 그에게 마음이 기
울어서 그런 것은 아닌가.
한번은 여름더위가 한창 심할 때에 동해안엘 같이 갔다가 돌아오자는 말에 따라 아침 일찍
그를 따라 나섰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과 같이 그날 모처럼 탄 버스가 중간에
서 고장이 나는 바람에 한 시간이나 길가에서 지체를 해야 했다.
두 사람이 강릉의 경포대 해수욕장엘 가서 해수욕을 하려고 했는데 얼마나 사람들이 많이
바다에 들어가 있는지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라서 천막 안에서 기다리다가 잠이 깜박 들었
다가 깨어나니 벌써 해는 서산으로 기울어 해수욕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가자고 하여
서울로 돌아갈 차표를 사려고 하였는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막차까지 예매가 끝나서
그날 도저히 돌아올 수가 없게 되어 난감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한백은 그렇게 되자 어차피 오늘은 여기서 잘 수밖에 없으니 여관을 찾아서 들어가자고 하
였다. 경희는 당초의 계획이 틀어져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자 어찌 밤을 보낼지가 매
우 불안하였다.
경희는 지금까지 살면서 친구들 간에 어디를 놀러가도 당일로 집으로 돌아왔지 한 번도 외
박이라는 것을 한배가 없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오늘은 어찌하다가 집으로 돌아가지를 못하게 되었으니 도무지 발걸음이
가볍지를 않았지만 한백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찾은 여관은 횟집을 운영하는 집으로 둘은 모처럼 저녁을 먹게 되었는데 경희는
이날 난생 처음으로 회 맛을 보게 되었다.
“ 이것은 오징어 회이고 이것을 우럭 회라는 것으로 먹어보면 쫄깃쫄깃한 것이 얼마나 맛
이 있는지 몰라. 어서 많이 먹어. “
“ 나는 회라는 것을 먹어보지를 않아서 미역국에 밥을 말아서 먹을게.”
“ 그게 아니라니까. 이것 한 점 눈 딱 감고 먹어봐.”
한백은 그 말을 하더니 회를 상추에 싸서 경희의 입에다가 반강제적으로 넣어주는 바람에
억지로 받아서 씹어 먹는데 식초냄새가 나고 처음에는 욕지걸이가 날 것 같았지만 겨우 넘
기고 난 다음에 촉감은 짭짜름하면서도 상쾌한 기분이 돌았다.
" 어쭈. 제법 회를 잘 먹으면서 엄살을 하였구먼. “
“ 아니야. 억지로 먹었다니까. 그러네.”
“알았어. 이다음에는 속초의 대포 항엘 가서 더 맛있는 회를 먹어보자구.”
한백이는 경희가 회를 잘 먹는다면서 모처럼 예쁘다는 소리를 처음으로 하였다.
경희는 그를 사귀는 동안 한 번도 칭찬이라는 것을 듣지 못하다가 듣게 되니 이상하기까지
하였다.
한백은 그러고 나서 회를 먹을 때에는 소주를 곁들여야 비린내를 가신다면서 이번에는 경희
에게 술을 마시라고 하였다
“ 난 술을 한 번도 입에 대지를 않아서 못 먹으니까 한백씨나 들어요. “
“ 원래 술이라는 것은 혼자 먹는 것이 아니라 서로 권하면서 먹게 되어 있으니 딱 한잔만
해봐. “
“ 난. 술이라는 것은 못 먹는다니까.”
"뉘 집이나 엄마가 술 빚으시면 딸에게 맛을 보라고 하셨는데 그런 경험도 없단 말이야. “
” 엄마가 그러셨다구. “
경희는 한백이 엄마가 술맛을 딸에게 먹였다는 말을 듣다가 지금까지 한 번도 엄마 소리를
해보지 못하고 언니 소리만 했던 자신을 생각하니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다는 생각에 눈물
이 왈칵 쏟아졌다.
학교 다닐 때에 간혹 친구네 집엘 가게 되면 걔네 엄마가 어서 오라면서 여러 가지 음식을
해주는 것을 보고 자기도 엄마가 계신다면 얼마나 좋을 까 하는 생각에 그만 그 집에서 맛
있다고 하는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돌아섰던 생각이 나기도 하였다.
그러고 생각을 하니 경희는 지금까지 언니가 그런대로 잘 챙겨주었기에 엄마에 대해서는 깊
은 애정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아왔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엄마의 정을 느끼지는 못했다고 해도 엄마는 초등학교 입학을 시키고
그 다음해에 돌아가셨다.
학교 입학을 하던 날 엄마는 손수건을 가슴에 달아 주시면서 학교 잘 갔다 와 하시던 모습
은 또렷이 기억이 나지만 워낙 철이 덜 들어서 그런지 엄마를 사랑한다는 애틋한 말 한마디
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한백의 뼈있는 말 한마디에 경희는 지금까지 엄마에 대해서 너무도 소홀히 대해 드
린 것이 크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한식이나 추석 때 엄마의 산소를 갔을 때도 엄마에게 다정한 말 한 번도 하지 못한 채 지금
까지 살아온 생각을 하면 엄마에게 너무 미안한 생각만 들었다.
한백의 말 한마디에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나게 되니 지금까지 먹던 음식의 맛이 싹 달아나고
눈물만이 주르륵 볼을 적시었다.
그러자 한백은 놀라면서 갑자기 왜 그래 하면서 어디가 아파서 그래 하였다.
“ 아니에요. 공연히 기분이 언짢아서 그래요.”
경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는 어서 저녁을 먹자고 하였다.
그러자 한백은 술잔을 입에다가 대더니 경희도 한 잔 하자면서 술잔을 들어주니 경희는 겨
우 한 모금을 억지로 마시다 보니 목구멍이 타는 듯하여 술을 넘기지 못하고 뱉았다.
그러자 한백은 그것은 연습이고 이제 술을 마시게 되면 기분이 좋아질 것이라고 하면서 다
시 권하였다
경희가 술을 못 마시겠다고 하자 이번에는 한백이 술잔을 들고 있으면서 같이 마시지를 않
으면 밤새 술잔을 들고만 있겠다고 하니 경희는 할 수없이 술을 홀짝 마시다가 보니 괘종이
밤 12시를 치고 있었다.
시간이 그렇게 흐르다 보니 한백은 술이 잔뜩 취했는지 나중에는 횡설수설하더니 경희의 손
을 잡고 정해 놓은 방으로 들어서더니 바로 경희를 자빠트리려고 하였다,
경희는 한백이 덤비자 슬쩍 몸을 피하면서 잘 시간이 되었으니 어서 자자고 함과 동시에 불
을 꺼버렸다,
“ 경희야 불을 켜야지. 왜 불을 끄는 거여.”
" 밤이 너무 늦었으니 우리 그냥 자요. “
그러다 보니 한백은 술이 많이 취한 상태였다. 사실 한백은 경희를 여기까지 데려온 데에는
다른 계획이 있었지만 여러 가지가 뜻대로 되지 않다보니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바람에 그
냥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경희는 그 날 밤을 생각하면 허무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아찔하다는 표현밖에 할 수가 없
었다,
한백은 이후 대학을 다니면서 경희를 만날 때마다 맛있는 음식을 사주기도 하고 때로는 선
물을 사주어 경희는 그것이 늘 부담스러웠다,
그렇지만 워낙 언니 밑에서 자라다 보니 용돈을 달래지 못해서 누구에게 무엇을 사준다는
일은 생각지도 못하였다,
그런데 5월 어느 날이 한백 오빠의 생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경희는 큰 마음먹고는 백화
점에서 예쁜 손수건 한 장을 사가지고 있다가 생일날의 선물로 주었다.
그런데 손수건을 받고 좋아할 줄 알았는데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 넌. 무얼 이런 시시껄렁한 것을 사오냐. 품위 없게.”
그 말을 들은 경희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한참동안이나 그를 바라보다가 한마디를 하였다.
“ 뭐라구. 시시하고 품위가 없다구.”
경희는 한마디를 하고는 눈물이 확 쏟아지고 지금까지 믿었던 오빠의 정이 산산조각으로 흩
어지었다.
그러고 생각을 하니 그는 매사가 늘 그런 식으로 사람을 무시한다고 할까 하여튼 상대방의
감정은 조금도 생각지를 않는 사람처럼 말을 함부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언젠가 따뜻한 봄날 등산을 간다고 해서 자기 딴에는 김밥을 싸가지고 그의 뒤를 따라나섰
는데 그때가 그를 사귄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그를 대하는 것이 매우 조심스러웠다.
산 정상에 올라서 저 아래 바다를 내려다보니 가슴이 확 트이는 기분이어서 혼자 “야호”하
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한백은 경희를 바라보면서 하는 말이 여자가 산엘 올라와왔으면 물부터 줄 생각을
해야지 어째 그렇게 사람이 무디냐고 하였다.
경희는 그 생각을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고 하자 그는 그 소리에는 대꾸도 하지
않은 채 “ 어서 물부터 달라니까.” 하고 짜증을 내었다.
경희는 얼른 물 컵에다가 물을 따라서 주자 물을 마시고는 “ 아이 시원하다.” 하고는 컵을
돌려주었다.
경희는 그가 시원하다는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 “나는 아직 시원하지 않은데요” 하자 그는
“ 여자는 원래 감각이 둔해서 그런 것을 잘 느끼지 못 할 거야. 그래서 옛날부터 .조선의
여자들은 송아지처럼 남자에게 매어서 살아왔던 거지. “
경희는 그 말을 들으면서 우리네 할머니들이 그렇게 살아오셨단 말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집안에 어르신이 안계시다 보니 그런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 후 차츰 그를 더 가까이 하게 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느끼는 것은 지금까지 한백
은 무엇을 시키기만 하였고 자기는 그 말을 들어만 주었다,
그러고 생각을 하니 이 사람은 부자 집의 외동아들로 그가 원하면 무엇이나 다 들어 주었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자기만 알고 남을 배려하는 것은 부족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 사람과 장차 결혼이라도 하게 되었을 때에 아내를 무시하는 발언을 한다면 만날 부
부 싸움이 계속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하였다.
사실 경희로서는 그가 사는 최초의 선물이고 그는 앞으로 오래도록 그를 사랑할 것이라는
마음을 다지면서 산 물건인데 그것을 가지고 하찮은 물건으로 여기고 가슴을 찌르는 듯한
말을 해버리니 경희는 그 순간 속이 상해서 자리를 뜨고 말았다.
“ 어딜 가는 거야.”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경희는 발 닿는 대로 걸음을 옮기고 나니 바깥바람이 시
원한 감이 들었다.
그러고 생각을 하니 그는 지금까지 언니에게 얹혀서 살고 있는 철없는 동생이라는 것을 새
삼스럽게 느꼈다.
경희는 그 후부터 오빠가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고 만나자고 해도 만나 주지를 않았는데 나
중에 들리는 소리는 한백은 여러 여자아이들을 사귄다고 하였다.
경희는 그것도 모르고 지금까지 때로는 무안을 당하면서도 그를 너무 믿고 좋아한 것이 지
나쳤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 후에도 오빠가 만나자고 하였으나 전화도 받지 않은 채 1년이 지난 후에 경희는 학교
졸업을 하고나서 어느 스포츠센터에 취직이 되어 다니는데 어느 날 학교 다닐 때에 별반 친
하지 않은 함 정덕을 만났는데 그는 그전과는 다르게 반색을 하면서 어디 가서 차라도 마
시면서 이야기를 하자고 하였다.
“ 야. 너 학교 다닐 때는 인기가 많아서 우리 같은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지. 그렇지.”
정덕이는 그 말을 서슴없이 하는데 경희는 그 말을 듣고는 소스라쳐 놀랐으니 자기가 그렇
게 친구들에게 비쳤다는 것이 믿기지를 않아서였다.
“ 넌. 나를 어떻게 보고 그런 소리를 하냐.”
“ 야. 너 정말 학교 다닐 때 너는 친구들에게 많은 질투를 당한 것 몰라.”
경희는 여자아이들이 그전부터 질투를 한다는 소리를 듣긴 하였지만 그렇게 심하게 아이
들이 경희를 미워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 경희야 .지금은 다 지난 일이고 너 한백이 소식 들었니. 한때 가가 너를 많이 쫓아 다녔
는데 그 후에 들리는 소식을 들으니 헤어졌다고 하더라. 맞는 말이냐. “
경희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어떻게 친구들이 그렇게 자세히 아는지가 궁금하였다.
“그런데 그 한백이 지금 입원을 하였어. 무슨 암이라고 하지. 아마.”
“ 걔가 암이 걸렸다구,”
“ 그래 오늘내일 하면서 사경을 헤맨다고 하더라.”
경희는 정덕이의 뜻밖에 말을 듣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리고 생각이 나는 것은 손수건을 사다가 주었을 때에 그가 하찮게 생각을 하여 화를 내고
해어진 생각이 났으며 그런지 벌써 1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경희는 그 소릴 들은 것이 마음에 상처가 되었는지 정덕이와 헤어지고 나서 여러 가지 생각
을 해보았다.
한때는 경희도 무척 한백이를 좋아하고 사랑하였다.
한백이는 처음에 경희가 요구하는 것은 다 들어줄 것이라면서 결혼까지 하자고 하는 것을
경희는 결혼이란 이다음에 생각해 보자고 하였던 생각이 나기도 하였다.
이날 밤 경희는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내일쯤 한번 병원엘 가볼 생각을 하면서 잠을 청하
자니 도무지 잠이 오지를 않았다.
경희가 병원엘 들어가서 병실을 알아보니 6인 실에 입원하고 있다고 하여 문을 열고 들어
가보니 창가의 침대 곁에 한백의 어머니가 오도카니 앉아 계셨는데 침대는 비워져 있었다,
경희는 두 번을 한백의 어머니를 노상에서 뵙고 인사를 드린 적이 있어서 금방 알아볼 수가
있었다.
경희가 인사를 드리자 처음에는 알아보시지를 못하더니 잠시 후에는 경희라는 기억을 하셨
는지 어떻게 알고 왔느냐고 말씀을 하시더니 눈물을 주르륵 흘리시었다,
경희는 한백은 어디를 갔느냐고 묻자 방금 엑스레이를 찍으러 갔다고 하면서 경희의 손을
잡으시었다.
어디가 아파서 입원을 하였느냐고 여쭙자 말씀을 하시는데 힘이 하나도 없었다,
“ 우리애가 위암에 걸렸어요.”
“ 언제부터 그런데요.”
" 1년이 지나 3기에 접어들어 이제는 가망이 없다고 해요. 술을 너무 많이 먹은 게 원인이
래요. “
경희는 그 말씀을 듣고 나니 가슴이 먹먹하고 그동안 왜 치료를 하지 않았는지가 궁금하였
다. 1년이 지났다고 하면 경희가 한백이를 멀리하고 다시는 사랑이라는 것을 하지 않겠다고
한 시점이었다.
어쩌면 한백이 병이 난 것은 경희로 해서 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경희의 가슴은 두
방망이질을 하고 가슴이 떨리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그가 한없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는 것을 주체하지
못하였다.
경희가 조금만 참았더라면 아니 남자는 여자와는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 주고 그가
자란 환경이 경희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였더라면 그와 그렇게 쉽사리 헤어지지 않
을 수도 있었을 것을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 한백은 절대로 병이 날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 한백을 실은 침대가 병실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눈을 꼭 감고 있는 한백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고 늠름하던 그의 모습은 앙상하리만치
수척해 있었다,
병실로 들어온 것을 알았는지 번히 눈을 뜨다가 어떤 여자가 어머니 곁에 서있는 것을 보면
서 눈을 크게 뜨더니 상체를 일으키려다가 이름을 불렀다,
“ 경희야.”
한백이 그 소리를 하는 순간 그의 눈에서는 샘이 솟듯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경희 역시 마찬가지로 그의 수척한 얼굴을 보자 안타까움의 눈물이 저절로 나왔다,
한백의 손은 부드러우면서도 맥이 하나도 뛰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렇게 만날 때마다
반기던 옛날의 활짝 웃던 모습은 수척해진 얼굴에서 찾아 볼 수가 없었다.
“ 어서 일어나요. 요즘에는 의술이 발달하여서 곧 회복할 수가 있을 거니까…….”
경희가 진심어린 마음으로 위로의 말을 전하자 한백은 한참 후에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었
다.
한백을 만나고 병원 문을 나서는 경희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무겁기만 하였다.
김 두 수 21.4. 26. 8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