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용보살의 자각으로 광포에 전력을
적(迹)이란 수적(垂迹)을 말하며 임시의 얕은 모습, 또는 그림자의 모습을 뜻합니다. 본(本)이란 본지(本地)를 말하며 본체 또는 진실한 모습을 뜻합니다.
발적현본(發迹顯本)이란 적(迹)을 열어(밝히고) 본(本)을 나타낸다라는 뜻입니다. 즉 부처가 임시의 모습을 열어서 진실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을 말합니다.
석존은 인도에 출현해서 처음으로 성도한 시성정각(始成正覺)의 모습은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한 수적(垂迹)이며 그 본지(本地)는 오백진점겁(五百塵点劫)이래 삼세상주의 부처이지만 이전경에부터 법화경 적문까지는 그의 본지(本地)를 밝히지 않았고 법화경 적문 방편품제2에 와서 십여실상(十如實相), 이승작불(二乘作佛)을 설해서 이(理)의 일념삼천을 밝혔으나 아직도 시성정각의 모습을 열지 않았습니다.
본문의 수량품제16에 와서 구원실성 즉 오백진점겁이라고 하는 구원의 옛날에 이미 성도하고 있었다고 그의 본지를 밝혔습니다. 이렇게 시성정각의 모습을 버리고 구원의 본지를 밝힌 것을 발적현본이라고 합니다.
日蓮대성인은 1271년 9 월 12일 가마쿠라(鎌倉)에 있는 다쓰노구지(龍口)의 사형장에서 그전까지의 상행보살(上行菩薩)이라고 하는 석존의 사자(使者)로서의 모습을 열어 말법의 어본불로서의 구원원초 자수용보신여래의 본지를 나타내셨습니다. 이것이 말법부처의 발적현본입니다.
1253년 4월 28일 입종선언의 날로부터 탁악의 말법에 혼자 일어서신 대성인님은 고뇌에 허덕이는 민중을 구제하시기 위해 묘법의 홍통에 전혼을 기울였습니다. 그 모습은 참으로 지용의 보살의 도사인 상행보살의 행위였습니다.
고로 경문의 예언대로 대성인님은 비판과 중상의 폭풍 속에서 생명에 까지 미치는 박해를 및 번이나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국가의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에 의해 참수의 현장에 앉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본불의 생명을 빼앗을 수는 없었습니다. 대성인님의 목을 치려할 때 공만 한 크기의 빛나는 물체가 나타나서 망나니는 눈이 보이지 않아 쓰러져 버렸습니다.
그간의 양상은「사도초」등에 명백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발적현본의 시각은 삼세시방(三世十方)의 제불이 성도(성불)한 시각이라고 하는 자축(子丑)의 끝 인시(寅時)였습니다. 그것은 대성인님의 범부로서의 생명 속에서 종으로 과거, 현계, 미래의 삼세를 관철하고 횡으로 우주대의 넓이를 가지는 어본불의 생명이 개현(開顯)되셨다고 하겠습니다.
망나니의 눈이 안보이게 한 빛나는 것이 나타난 것은 참으로 대우주 그 자체가 제천선신 (諸天善神)의 작용을 나타냈음을 뜻합니다. 당시의 최고 권력과 무력을 가지고도 대성인님의 생명을 빼앗을 수는 없었습니다.
불법이야말로 세상의 모든 법이나 힘을 초월하며 또한 일체의 근원이 되는 대법칙인 것입니다.
대성인님의 생명을 직접 빼앗으려다 실패한 권력자는 그 후 대성인님을 사도(佐渡)에 유배했습니다. 사도라는 곳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조건이 나뿐 곳이었습니다. 그런 속에 계시면서도 대성인님은 어본불이시기 때문에 유유히 살아 계실 수가 있었습니다.
대성인님은 스스로 사실의 모습으로써 불법의 위대함을 증명 하셨습니다. 이 사실이야 말로 백만의 이론보다 뛰어난 증명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대성인님은 말법 만년 미래영겁에 걸쳐 전 민중을 구제하시기 위해 대어본존을 도현(圖顯)하셨습니다. 대성인님의 발적현본의 근본 뜻은 어본존의 도현에 있으며 전 민중을 고뇌로부터 해방시키는데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 발적현본을 우리들의 입장에서 적용해 본다면 어떻게 생각해야 될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지용의 보살로서의 본지를 자각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오직 어본불을 믿고 있으면 된다는 손쉬운 일은 아닙니다. 본지를 열에 나타내어 진실한 자각에 서기 위해서는 대단한 신로(幸勞)가 요구됩니다. 대성인님의 경우도 생명에까지 미치는 난이 있었다고 하는 것을 명심해야만 하겠습니다.
우리들의 전도에는 여러 가지 비판이나 중상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그 이상의 난이 일어나는 일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가령 어떠한 장해가 가로 막는다 해도 강한 신심을 분기시켜 기꺼이 일어서지 않으시렵니까? 자신의 타약한 생명을 극복하고 어두움과 미혹의 경애를 불계(佛界)로 전환하려면 불석신명(不惜身命)의 실천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또 이 발적현본을 우리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찾아본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일상생활은 자칫하면 안일과 타성에 흐르기 쉬우며 왕왕 스스로가 법을 구하며 향상한다는 엄한 자세를 잃기 쉽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가령 우리들의 생활이 일상성 속에 매몰되어 추한 측면이 나와 있더라도 생명의 내오에는 깨끗한 부처의 생명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어본존을 배례하여 진지하게 근행과 창제에 면려할 때 우리들의 생명에는 불계가 용현합니다.
일상생활에서 더러워진 생명을 근행과 창제로 정화하며 대성인님의 제자로서의 사명을 자각해서 묘법 홍통의 결의를 굳게할 때 거기에는 단순히 자기만의 이익과 행복을 추구한다고 하는 낮은 인생관은 크게 전환되어 갑니다. 그것은 참으로 지용 보살의 권속으로서 본지(本地)의 개현(開顯)이며 우리들에게 있어서의 발적현본이다. 라고 하겠습니다. 그런 뜻으로 우리들은 매일 매일 발적현본이 있어야만 하겠습니다. "앞이 막히면 발적현본"을 착실히 지속하는 사람이 스스로의 성장과 행복의 실증을 나타내 보일 수가 있습니다.
첫댓글 좋은어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일일어서가 매일 기제해주니 불법을 따로 공부할필요가 없읍니다.
신심이 강성하기에 좋은어서가 나온것같슴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