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쓴 글 고쳐 다시 올렸어요, 담주까지 정리해보려구요
옛집에 대한 추억
귀남이는 자그마한 마당이 있는 기와집에 살았다. 방 앞엔 툇마루가 있고 방 왼편엔 부엌과 뒤꼍, 오른편엔 재래식 화장실이 있다. 마당엔 장독대와 펌프가 있는 우물가가 있다. 귀남이 아버지가 직접 나무로 만든 평상이 마당에 놓여있는데 동네 아주머니들과 아이들이 모여드는 사랑방 구실을 했다. 아마 일자형 초가집을 개조한 것으로 추측된다. 화장실은 입구가 길고 어두웠다. 화장실 가는 긴 공간은 겨울을 대비해 연탄 삼백여 장을 들여놓는 연탄광 구실을 했다. 화장실에 전기세를 아끼려 해서 그런지 빨간색 작은 전구를 끼워 놓아 유난히 무서웠다. 긴 복도 같은 골목을 지나 나무계단 몇 개를 올라가야 볼일을 볼 수 있었다. 대변 누러 올라갈 때면 나무판자에서 삐걱 소리가 나곤 했고 똥통이 밑에 있었다. 두 달에 한 번 정도로 정화조를 치는 큰 차가 와서 검은 호수를 넣어 주욱 빨아들여 비우곤 했다. 정화조 청소를 할 때쯤 한두 뼘 정도면 똥이 손에 다을 것 같았고 구더기가 위로 올라올까 불안하기도 했다. 신문지로 밑을 닦을 때면 ‛빨간 손 줄까’ ‛파란 손 줄까 ‛무서운 이야기가 떠올라 소름이 돋아 급히 뛰어나오곤 했다. 툇마루에 사기 재질의 파란 색으로 난이 그려있는 흰 오광이 있었다. 그나마 잘 사는 집에서는 스테인리스스틸 재질의 가벼운 오광을 썼다. 밤이 되면 머리 맡 윗목에 오광을 가져다 놓았다. 자다 일어나 아이들이 오줌을 넣었고 아침이 되면 엄마가 우물가로 가져가 물로 부셔서 툇마루에 놔뒀다.
귀남이 부모님은 월세로 두어 집 정도 살다 내 집을 마련했다. 처음엔 방 한 칸을 세를 주다가 첫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게 되었을 무렵에서야 방 2개를 쓰기 시작했다. 부엌에는 연탄아궁이와, 불을 때 쓰는 큰 검은 가마솥이 있었다. 아궁이 맞은편엔 나무로 된 긴 선반이 바닥에서 1미터 높이 정도로 짜 있었다. 거기에 음식을 차려놓고 상을 올려놓곤 했다. 부엌에서 방으로 들어가는 창호지를 바른 미닫이문과 마당으로 나가는 여닫이문이 있었다. 부엌 한가운데 끝엔 3칸 정도의 미닫이 찬장이 있었다. 대장금에 나오는 부엌을 연상해도 될 시골집 부엌 같은 모습이었다. 귀남이는 엄마가 어디 가셨을 때 마당에 나가 설거지를 하고 설거지 한 그릇을 행주질 하여 찬장에 넣었다. 찬장 안을 구석구석 닦고 나무평상 같은 선반 위를 어린 키엔 약간 높아 발을 돋아 행주로 닦아냈다. 마지막으로 부엌 바닥을 싸리 빗자루로 쓸면 부엌 청소가 끝이다. 하루는 아버지가 "참 깨끗이 청소 잘한다" 하고 칭찬을 해주시니 귀남이는 더 신이 났다.
마당에 펌프는 마중물을 부어야 물이 나오기 시작한다. 펌프질도 요령이 있어, 처음엔 잘 안 나오다가 나오기 시작하면 고무다라에 물을 가득 채워놓는다. 귀남이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이사 왔을 때는 우물이었다 한다. 귀남이 부모는 펌프로 바꾸고 시멘트로 정사각형의 공간을 만들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여름에는 그곳에 들어가 놀 수도 있는 욕조 같은 구실을 했고 김장할 때는 큰 통 역할을 했다. 물을 바꿀 수 있도록 구멍을 걸레로 막았다가 치우면 되는 상설 다용도 공간이었다. 옆에는 하수구로 통하고 물이 잘 내려가도록 시멘트로 길을 냈다. 그곳에 앉아 귀남이는 빨래를 하는 게 재미있었다. 아마 소꿉놀이 다음으로 귀남이가 즐겼다.
부엌 옆으로 난 뒤꼍은 그늘이 지고 음침했다. 술래잡기 놀이할 때 숨을 공간으로 딱 좋았다. 엄마는 포도주를 작은 항아리에 담가 뒤꼍에 두곤 했다. 어른이 없고 아이들만 있었던 어느 날이었다. 언니와 귀남이는 항아리 뚜껑을 열고 포도 껍데기의 달짝지근함이 너무 맛있어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달고나 먹는 것처럼 맛이 들어 몇 번을 퍼다 방으로 가져와 표 안 나게 조금만 먹으려 했다. 결국 엄마가 집에 돌아왔을 때는 둘 다 포도 껍데기에 취해 머리가 빙빙 돌고 몇 시간을 누워 일어나지 못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첫댓글 1. 이 글 초고를 보고 말했지만, 선생님은 저와 유사한 경험이 많아요. 그것은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다는 것인데, 그걸 글로 표현하니 제 감정이입이 잘 되어서 공감이 가고 감동이 있어요.
2. 고치기의 힘이 나오네요. 묘사가 정밀해지면서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서술이고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