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정년퇴임 둘 다 뜻있는 일입니다. 한 길의 마침이며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 되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졸업은 저 세상으로 떠나는 거지만, 삶 속에서는 인생길의 맺음과 동시에 전환점이 되는 순간으로 이해가 됩니다. 오늘 8월의 마지막 날, 더위가 두손 들고 물러나고 비가 서늘한 바람과 함께 몰아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25일 37년간 교직에 계셨던 선배님을 위해 하버파크 호텔에서 시 한 편을 낭송해 드렸습니다.
천년의 숲에서 지월공(地月公)이 말한다
- 기원서 교장선생님의 정년퇴임을 축하드리며
들어 보았는가
살아 있어도 죽어 있는 혼들이 가득한
이 세상을 뛰어넘어
꼿꼿한 선비들의 정신 속에서만 피어난다는
천년 고도(千年 古都)의 반석 위에 흐르는
서른일곱 개의 현(絃)으로 새겨 놓은
가녀리면서도 굵은 숨소리를
달에서만 핀다는 꽃잎들의
숨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어둠에 잠겨 있는 골짜기 사이에서
새벽이 오는 길목까지 여린 싹을 돋게 하며
나무가 되어 꽃을 피게 만드는
그 싱싱하며 맑게 흔들리는 초록빛 칠판 위로
일어서는 목소리를
마음의 눈을 뜨고
송도(松都)의 숲 속에서 들어 보아라
뿌리 깊은 나무에 열린 문자들이
하이얀 분필가루를 털어내며
오늘은 내일의 소리가 된다
천년을 이어온 아이들 마음속에 들어가
향기를 머금은 소리가 된다
지나온 날들에는 아름다운 생각들이
우리들 곁에 풍경화가 되어 늘 함께 있었으니
같이 있어 주어서 고마웠다
지나온 길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평범한 이야기도
진리의 꽃으로 피어나는 향기였구나
길가의 작은 풀꽃도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혼의 따뜻한 울림이었다
이제 숲에다가 서른일곱 해를 울려 온 목소리를
그림자로 남기며 떠난다
송도(松都)의 숲 속에 언제나 푸르게 자라나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솔향기, 그 가볍고도 무거운
숨소리를 이 땅 위에 심어 놓고
천년의 숲 사이로 시간의 소리가 되어
떠난다
그리하여, 땅과 달과 신선의 목소리로 말한다
아이들아, 쳐다볼수록 빛이 나는 나무의 소리가 되어라
이 숲에는 영원히 따스한 눈빛만이 있어야 한다
서로의 마음을 위로하며 이 땅의 향기가 되어라
소나무 우거진 송도의 숲속에 늘 푸르게 서서
바라보고 있겠다
천년을 이어온 아이들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