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집 속의 시 소개
손톱 / 유미애 -꽃잠*
망초 붓꽃 패랭이 흘러간 사랑의 비린내를 핥아먹는 저녁 아~하고 상처를 연 순간 색의 덩어리가 쏟아진다
여러 날을 늙은 나무의 그늘에 얹혀 지냈다 새장이 흔들리는 나무 밑, 고양이와 나눠먹는 앵두 한 접시
나비야, 마실 가자! 붉게 번진 입술을 문지르며 따라가던 애인과의 마지막 꽃구경
누군가는 이 열망이라는 짐승과 할퀴며 뒹굴고, 또 누구는 고양이의 눈에 비친 황금나무를 꺾어 달빛 속으로 노 저어갔지만 나는 늑대의 시를 읊기 위해 사내라는 벼랑을 탔다 타들어가는 환부를 열어젖히고 새의 허공을 흘러 다녔다 일생, 조용한 꽃나무의 묘지기로 살자던 비밀을 엎지르고 장미와 고양이의 로맨스를 탐닉했다 초승달 신부가 부풀고, 신랑이 거친 몸을 가렸던 옷을 찢었을 때 그믐에 죽은 꽃을 부르며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떠난 자의 눈물이 푸른 손톱을 다시 물들일 때까지 새들이, 장미가 낳은 앵두의 눈을 다 파먹을 때까지 내 안의 주홍빛을 비워내지 못했다
*깊이 든 잠. 신랑 신부의 첫날밤의 잠
고강동의 태양 / 유미애
푸르고 붉은 지붕들 태양연립 은하슈퍼 바람 돌아가는 모퉁이 금성여관 턱밑에는 노인이 꽝꽝 못 박아 걸어둔 전구가 있다 560번지 사람들은 그 아래서 부고장이나 밀린 고지서 등을 읽는다 바람 속에 한숨 넣어주며 비행기들이 낮게 나는 하늘 한 쪽 새들과 같은 방을 쓰는 노인을 보고 개가 짖는다 저 울음을 따라 흘러가고 오던 빛들 그을린 얼굴의 해가 천정으로 숨어들면 잠시 벗어놓은 어깨의 푸른 멍울이 별 대신 뜨는 이 곳, 02호 지하방에 서식하는 내가 어둠을 퍼올릴 때도 전구는 얼어붙은 길을 풀어내고 있었다 떠나 있던 새들이 빈 방으로 모여든다 일성전기 전깃줄에 감긴 사십 년 시간을 지나 복지회관 쪽방에 남은 박노인 눈 속의 일렁거리는 불빛, 그 등 앞세우고 노인은 70년동안 걸어온 길을 되돌아갔다 새들이 찍어놓은 발자국들이 뒤를 따랐다 손에 든 부고장에는 지상에 없는 주소가 적혀 있다 누군가 그리우면 사람들은 달은 두고, 금성여관 턱 밑에 달랑거리는 전구를 바라본다
뱀가죽 부츠 / 유미애
누군가 내 멱살을 잡고 가 구둣방 한쪽에 던졌다 저녁의 잇몸 사이로 진분홍 향기가 빠져 나가고 별빛 아래 춤추던 정강이의 음률이 사라지고
구두공은 반짝이는 에나멜 구두에 홀려 신과의 서약에 쓰일 내 발굽을 고쳐놓지 않았다 밤새 오두막 굴뚝 위로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딸기맛이 배인 발자국을 벗겨 냄새를 맡았다
질질, 또 누군가 끌고 가 길 가운데 세웠다 구름계단이 흔들리는 골목을 지나 까치산 비탈로 베르네 천변으로 긴 그림자를 끌고 가는 나는 게으름뱅이 구두공의 연인
그만, 울지 말아라 붉은 목젖
무심한 구두공은 푸른 이무기가 품었다는 꽃신을 메고 장거리로 나간 뒤 돌아오지 않고 승천할 듯 내 발은 몇 번이고 허물을 벗었지만
다시 꽃 피지 말아라
사랑할 땐 온몸이 자궁이 되어 친친 애인을 감는 이 발칙한 모가지
■ 약속되지 않은 땅 ㅡ 유미애 신작시집 『손톱』 읽기 ㅡ
허 혜 정(시인, 문학평론가)
유미애의 시는 낙원에서의 타락과 추방이라는 성서 속의 이야기를 커다란 상상력의 골격으로 삼아 방황과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존재의 근원적인 비극성에 대한 심문을 내보이고 있다. 『손톱』을 관통하는 시적 서사는 신과 자연, 남녀의 일체성이 파괴됨으로써 인간이 겪게 되는 혼돈과 불안, 고독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 유미애의 시집에서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인간타락의 근원이자 무수한 삶의 비극을 낳는 욕망의 문제다. 특히 사랑에 대한 욕망은 이성의 주파수로는 잡아낼 수 없는 복잡미묘한 감정과 예견할 수 없는 상처들로 이어진다. 그것은 불가해한 한때 완전한 행복의 거처로서 주어진 낙원의 상실과 함께, 영원히 되찾을 수 없는 낙원회복의 여정으로서의 사랑의 거처들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인간이 신의 무한한 사랑을 배반하고 무한한 혼돈만이 반복되는 역사의 시간으로 내던져졌듯이, 현대인의 사랑은 사랑에 대한 지고한 신뢰를 배반한 채 관계의 불균형과 무수한 불행을 예비한다. 시인은 현대인의 삶을 관통하고 있는 일그러진 관계나 지배와 폭력으로 점철된 삶의 문제들을 낙원으로의 복귀라는 모티프를 바닥에 깔고 다양한 상처의 이미지로 주조해낸다. 특히 자연에 대한 파괴의 역사나 여성에 대한 범죄의 집단적인 망각은 이른바 개인적인 “상처의 재구성”을 통해 철저히 응시된다는 점에서 그녀의 시집 속에 드러난 비극적인 이미지들을 종합하고 통합시킨다. 그리고 시적 화자의 심리구조 속에서 인류가 관통해온 고통과 참화를 드러내는 시적 작업을 통해 시인은 분열된 존재들의 조화로운 회복을 집요하게 추구하는 것이다. 사랑은 현실의 공간에 잠시 안식의 거처를 만들지만 그 사적 낙원은 늘 이기적인 욕망과 악마적인 지배욕에 의해 더럽혀진다. 온전히 합일을 이루었던 관계는 파괴되고, 존재는 순수함을 잃어버린 채 구원이 “약속되지 않은” 땅으로 떠난다. 그녀의 시 속에서 신이 온갖 식물과 과실들로 축복한 에덴은 사랑의 꿈이 가득하던 공간에 다름 아니며, 이러한 낙원의 공간으로 귀환하고자 하는 욕망은 시인의 긴 고독과 방황, 글쓰기를 움직이는 동력이다. 유미애는 『손톱』의 자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참 낡았다 집도 언어도 사랑이라 불렀던 그대들도 상처투성이 세상에 나를 남겨둔 세 남자들께 이 시집을 바친다 비린내 나는 모퉁이를 돌아 나는 또 걸어갈 것이다 살아야 할, 사랑해야 할 당신들의 몫이 고스란히 내게 남아 있으므로.
위의 자서에서 우리는 ‘집’과 ‘언어’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 혹은 순진한 로맨스를 벗어난 한 존재의 상처를 응시하고 해독하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를 엿보게 된다. 시인은 “상처투성이 세상에 나를 남겨둔” 존재들, 어쩌면 따스한 얼굴로 그녀를 호출했던 신이고 부모이며 연인일지도 모를 세상에 시집을 바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왜 모든 것들로부터 버려져 이토록 고통스러운 노래를 짓게 된 것일까. 그녀의 고통의 출발점은 아래의 시에 선명하게 나타난다.
내 최초의 슬픔은 벗겼다는 것이다 나는 바람을 사랑했다 붉은 어깨에 새를 앉히고 파이프오르간을 연주하는 저녁 바람을 사랑하여 신성한 머리를 바쳤다 내 두 번째는 금기를 어겼다는 것이다 나는 벗겼다 당신도, 바람의 셔츠 속으로 손을 넣어 물컹한 넋을 꺼내 가는 폭우 속의 광녀를 보았을 것이다 황혼 무렵 전봇대를 흔들고 간 물결무늬 속옷과 그의 저녁을 버린 새의 눈을 보았을 것이다 사내들은 내 머리칼을 뜯으며 노래했다 애인이자 어머니인 여인들은 그네들의 한 철 정거장일 뿐 나는 바람의 두개골이 붓도록 울어주었다 날마다 나는 신의 아들을 범했으며 지하방, 어둠 속으로 끌어들여 그를 욕되게 했다 달의 눈썹으로 빚은 금줄 은줄이 끊어지고 소리의 검법을 익히던 호메로스의 악보는 흩어졌다 그는 폭풍 속으로 떠난 뒤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정녕 나탈리 망세가 되고자 함이 아니었다 벽장 속에는 목이 부러진 기타가 있다 열여섯 앳된 생이 꺾인 채 건들건들 늙어가는 내 애인 깊은 밤 수술을 마치고 잠든 그의 곁에 활처럼 눕는다 나의 비극은 바람 소리를 기억하는 새의 심장을 가졌다는 것이다 ―― 「나의 비극」 전문
시를 끝까지 읽어나가다 보면 그녀의 고통은 어떤 가식의 외피로 무장하지 않은 벌거벗은 인간의 순수에서 출발함을 알 수 있다. 바람을 사랑하고 신성한 사유를 사랑했던 그녀의 머리는 비극의 제물이 되었다. 이미 세상이 계율로서 내주었던 “금기를 어겼”던 그녀의 도발은 결코 행복한 결말을 예비하지 않는다. 벌거벗은 자아의 순수는 세상에서 광기로 받아들여진다. “폭우 속의 광녀”와 같은 그녀를 버리고 떠나간 ‘그’ 혹은 세계는 자기의식 속에서 끊임없이 회오리치는 자기분열의 통증과 슬픔의 언어를 낳는다. 시적 자아는 욕망으로 인한 계율의 위반이 고통과 죄악, 죽음을 낳게 된다는 성서적 복선을 통해서, 서로를 의심하고 파괴하고 떠나가야 하는 불길한 연애의 운명을 암시한다. 화자는 “신의 아들을 범했으며/지하방, 어둠 속으로 끌어들여 그를 욕되게 했다”. 그녀의 세계는 혼돈으로 뒤덮였고 세상은 사랑을 찾아 유랑하는 집시들이 노래와 욕망의 모닥불을 피우며 잠시 머물렀다 가는 황무지와 같다. 이렇듯 욕망은 ‘안전’한 울타리를 고수하지 않는다. “울렁증이 시작되자 애너벨은 벼랑으로 갔습니다”(「초경」) 같은 다른 시의 구절이 암시하듯이 화자는 연인들과 안전하고 따스한 공간을 벗어나 위태로운 삶으로 자신을 내몬다. “누군가는 이 열망이라는 짐승과 할퀴며 뒹굴고 또 누구는/고양이의 눈에 비친 황금나무를 깎아 달빛 속으로 노 저어 갔지만/나는 늑대의 시를 읊기 위해 사내라는 벼랑을 탔다”(「손톱」)는 구절이 암시하듯이 시적 자아가 평범한 일상의 세계에 적응하길 거부하는 이유는 노래에의 욕망과 맞물려 있다. 그녀는 더 이상 세상의 계율과 금지를 주입하는 목소리를 믿지 않는다. “지붕을 발랑 뒤집어놓은 그녀의 노래 소리, ‘뒤돌아보지 마’ ‘돌아보지 마아아’ 새빨갛게 타는 그런 날은 내 속 페튜니아, 몸통보다 커진 입술을 믿지 않게 되”(「밥집의 에우리디케」)었던 것이다. 유미애의 시는 이렇듯 내면의 부름을 따라 떠나가는 화자들을 통해 남성의 지배욕이나, 육체와 정신을 학대하고 파괴하는 세상의 잔혹한 메커니즘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않는다. 특히 시인은 강렬한 여성의 시선을 통해 존재를 상처입히는 사랑의 문제를 욕망을 중심으로 해부해간다. “건달의 주머니는 뜨거워/지퍼를 내리면 밀림을 뚫고 온 코끼리가 걸어 나온다/움막을 떠난 사내의 삶이란 얼마나 거침이 없었더냐”(「늙은 건달의 블루스」)라는 시귀에서 엿보이듯 시 속에 등장하는 여성 화자들에게 남성은 자연의 야성과도 같은 지배욕을 가지고 그녀를 상처입히는 존재들이다. 한 채의 집을 세우고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사랑의 거처를 떠나가는 남성들의 행로는, 끝없이 사랑의 거처를 수선하며 그들을 기다려야 하는 시적 화자의 불행과 겹쳐져 있다. 한 번 떠나간 연인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의 말뚝박기는 어디든 거침이 없어서/서너 명의 여자에게 같은 말뚝을 친 적도 있었”(「말뚝」)던 것이다. 남성의 말뚝박기는 세상에 대한 지배의 표현이자 영역의 표시이다. 그러한 남성의 영역에 갇힘으로써 여성 화자는 자신의 목소리와 꿈, 본연의 자아를 앗긴 채 성적 질서로 편입된다. 남성의 지배와 정복을 위해 만들어진 사랑의 문법은 여성으로 하여금 일상의 전체적인 질서 안에서 고정된 역할과 지위를 갖게 하고 자연스런 사회적 질서로 고착된다. 그녀의 시 전체를 통해 보면 남성들의 영역이 군대, 공장, 대장간 같은 위기나 전쟁, 생산을 지속하는 영역이라면, 화자인 나, 즉 여성의 영역은 투쟁과 생산을 위해 희생되는 장소임과 동시에 그 물질세계의 몰락을 재촉하는 영역이다. 화자의 떠남과 글쓰기의 출발점은 사랑이 곧 이기적인 지배의 문법으로 귀착하게 된다는 슬픈 깨달음에서 비롯된다. 유미애의 시는 이러한 사랑의 문법 속에서 인간과 자연, 현실과 꿈, 남자와 여자의 합일이 왜 그토록 힘든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구한다. 시인은 완강한 사랑의 영역에 갇혀 불안과 절망에 허덕이는 수많은 시적 자아를 통해 사랑의 이념이 감추고 있는 희생의 논리를 폭로하고자 한다.
태양신전에 바쳐진 장미, 그 빛은 거두어지고 방문에 걸려 울던 처녀의 흑요석 눈동자도 사라지고 색과 향, 자결만이 허락된 적국의 땅 꽃이라는 감옥에 유배되어 온 분홍 손톱의 역사, 우리들의 이야기 ―― 「꽃의 역사」 부분
위의 시에 덧붙여진 시인의 각주에 의하면 아스텍 사람들은 죽은 처녀의 손가락을 방패에 붙이면 그 손가락이 자신을 지켜 준다고 믿었다. 전사의 방패를 장식하는 처녀들의 손가락에 대한 아스텍의 이야기를 빌려 쓰고 있는 위의 시는 문명이라는 ‘태양신전’에서 희생되어간 여성들의 역사를 환기시킨다. 신전을 적시던 핏물은 여인의 ‘분홍손톱’ 속에서 욕망과 희생의 이미지를 간직한다. 끝없이 가시처럼 “손톱을 세운 장미”는 역사 속에 희생된 여성의 육체성과 남성의 공격적인 속성을 한몸에 통합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의 논리로 미화되어 왔지만 실제로는 “색과 향, 자결만이 허락된 적국의 땅”에서 견뎌내기 위해 그녀가 선택한 것은 끊임없는 존재의 확인, 즉 글쓰기이다. 시집 속에서 그녀의 시는 “슬프고 유려한 꽃의 문장”(「장미수 만드는 집」)으로 상징된다. 반면에 남성적인 세계는 꽃을 꺾고 숲을 벌채하는 벌목꾼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녀의 시를 관통하는 식물성과 동물성은, 문명의 두 속성인 여성적인 면과 남성적인 면모를 각각 대변하는데, 이 두 가지 속성은 현실을 지배하는 권력과 제도 속에 내재하는 복잡한 갈등의 단면을 반사한다. “사내들의 자루를 빠져나온 연장은 건들건들 모험담을 늘어놓”(「부부차차, 마지막 벌목꾼의 노래」)고 있다. 남성의 문법이 지배하는 세상은 “우물에 못을 치고 나무의 밑동에 칼을 꽂”는 ‘계부’(「풍금」)의 세상과도 같다. 늑대, 코끼리, 북극곰 등 큰 짐승으로 표상되는 사내들은 신화적이고 목가적인 공간을 파괴하며 “달의 몰락”을 가져오는 힘으로 표상된다. 식물성의 지대가 꿈과 글쓰기가 지향하는 순수와 무구의 공간이라면 동물성의 공간은 지배와 정복의 논리가 관통하는 타락된 현실을 반영한다. 이러한 분열적인 영역과 관계는 자본주의 공간에서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역사를 통해 점차 공고해지는 사랑의 문법은 조직화되고 기능화된 집이라는 영역에서 한결같이 정신의 무력증을 앓고 있는 여성들을 만든다. 시집 속에 등장하는 화자들은 일상 속에 고갈되고 물질처럼 닳아가며 끊임없이 갈등을 겪고 있다. 그 공간을 탈출하려는 욕망을 포기당하거나, 왜소한 구석에서 고독하게 죽어가며 이 고독한 현실이 사랑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은 끔찍하고 고통스럽다.
누군가 내 멱살을 잡고 가 구둣방 한쪽에 던졌다 저녁의 잇몸 사이로 진분홍 향기가 빠져 나가고 별빛 아래 춤추던 정강이의 음률이 사라지고
구두공은 반짝이는 에나멜 구두에 홀려 신과의 서약에 쓰일 내 발굽을 고쳐놓지 않았다 밤새 오두막 굴뚝 위로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딸기맛이 배인 발자국을 벗겨 냄새를 맡았다
질질질, 또 누군가 끌고 가 길 가운데 세웠다 구름계단이 흔들리는 골목을 지나 까치산 비탈로 베르네 천변으로 긴 그림자를 끌고 가는 나는 게으름뱅이 구두공의 연인 ―― 「뱀가죽 부츠」 부분
불행한 구두공의 연인에 비유된 화자는 ‘구두 만들기’라는 일상의 노동 혹은 집단적인 생산이 곧 여성착취로 뒤바뀌는 부조리를 냉철하게 응시한다. 학대와 착취의 증거는 그녀를 짐승처럼 구두방 구석에 거칠게 내던지는 폭력적인 손길에서 읽을 수 있다. 그녀의 삶이란 피냄새가 배어 있는 걸음을 확인하는 것뿐이다. 그녀는 “딸기맛이 배인 발자국을 벗겨 냄새를 맡았다” 구두는 여성의 삶을 남성을 위한 생산의 토대, 자기욕망의 자원이자 물질로 환원시키고자 하는 남근적 자본주의의 속성을 암시한다. 결코 구두공장에서 만들어진 구두는 그녀의 걸음을 도와주지 못한다. 오히려 그녀는 신이 허용했던 구두조차 앗기고 망가진 구두굽으로 “까치산 비탈”에 서 있다. 이렇게 그녀가 “신과의 서약에 쓰일 내 발굽”조차 망가진 채 외롭고 고단한 삶의 비탈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남성의 절대적인 구속력 속에서 안정된 삶을 살고 남성으로부터 인정받는 물화된 행복의 이미지를 거부하는 데서 비롯된다. 정형화된 일상의 틀 속에서 여성자아는 늘 고독하고 불안하다. 왜냐하면 세상의 계율과도 같은 사랑의 문법은 결코 견고하지도 않고 자신을 위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신화처럼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사랑의 해악성을 시인은 경고한다. “아직 젊거나 이미 늙었거나/낙타의 봉처럼 내려놓을 수 없는 짐을 진 저 여자들/모래바람 속 또 다른 별로 흩어지고 있다/내 어깨 위로 발굽소리 지나간다”(「노새들」)는 구절 등은, 낙타같이 사랑의 짐을 지는 여성의 희생에 의해 유지되는 현실, 그 희생과 억압의 고리 속에서 세상이 가동되고 있음을 폭로한다. 그녀들이 배회하고 있는 곳은 고독한 사막이며, 일상의 캄캄하고도 텅 빈 구멍이다. 그녀들은 삶의 아름다움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껴안는 대신 누추하고 허망한 몸짓들을 반복할 뿐이다. 그녀의 시는 낡은 유행가의 일부처럼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는 순애보가 낳은 허름한 폐허들을 집요하게 환기시켜준다.
드문드문 가내공장이 있는 변두리 정류소 건너편 여인숙이 숨은 골목에 수리점이 있다 가끔은 은발의 사장이 부르는 옛노래나 어린 직원의 순애보가 눈물겹지만 나를 흔드는 건 언제나 버스가 쏟아놓은 부푼 풍선 같은 연인들 옛 코드를 알까 구석의 턴테이블이 돌면 백구두 나팔바지, 두근거리던 시절이 있었음을 기억해줄까 퇴근길, 선술집을 나온 사장은 베고니아 등이 켜진 여인숙 모퉁이를 서성대고 노랑머리 직원은 형광빛을 좇아 시내로 간다 내게 연애는 버스 꽁무니의 여운 같은 것 몇 박자씩 목을 꺾은 버스가 내리막을 달릴 때면 울렁이는 상처에 땡강땡강 금이 가기 시작했다 매캐한 울림은 또 다른 흉터를 만들었다 서넛의 남자를 만나고 이별하는 동안 난 소리로부터 멀어져 갔다 가방을 열면 엠피쓰리가 만져지지만 다시 소리내어 울기엔 너무 많은 고개를 넘어온 것이다 ―― 「살랑살랑 뚜루뚜루뚜」 부분
시 속의 화자가 듣고 있는 것은 철지난 “어린 직원의 순애보” 같은 노래이다. 사랑은 버스처럼 다가오고 떠난다. “버스가 쏟아놓은 부푼 풍선 같은 연인들”의 음악을 따라갈 것인가. “서넛의 남자를 만나고 이별하는 동안/난 소리로부터 멀어져갔다/가방을 열면 엠피쓰리가 만져지지만/다시 소리내어 울기엔 너무 많은 고개를 넘어온 것이다” 이제 그녀가 따라가는 것은 통속적인 사랑의 문법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시적 자아가 안정적인 일상의 공간을 뿌리치고 선택한 글쓰기는 자발적인 자유의 영역이다. 꿈꾸기는 현실의 논리를 전복하고, 삭제된 여성의 기억과 욕망은 고요하고 평화로운 일상에 균열을 내면서 침묵으로 가려진 죽음과 광기와 폭력을 드러낸다. 그녀는 때로는 광폭하고 파괴적인 표현을 통해 자신을 주장하고 싶어한다. 고립되고 일그러진 사랑의 공간에서 벗어나 싱싱한 야수성과 자기만의 벌판을 되찾고자 하는 글쓰기의 중요한 동기이다. 이러한 강렬한 갈망의 뒤켠에는 그녀의 존재를 침묵으로 사장시킨 채 고요히 진행되는 섬뜩한 폭력이 자리한다. 그녀는 여성의 침묵을 인어공주의 이야기에 빗대어 조롱하고 있는데, 이는 여성자아의 소멸을 강요하는 남성세계의 폭력을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나는 슬픈 부족, 먼 섬에서 왔지 노래하는 푸른 애인과 아기 코끼리가 사는 그곳 지금은 회색 도시, 내 몸에서나 피어나는
분갑을 놓치면, 달리는 상아색 다리도 나팔수를 보며 웃던 연분홍 목울대도 녹아내리고 없을 ―― 「인어」 부분
인어는 왕자를 찾아 현실세계로 나오지만 궁극적으로 정체성의 무화라는 공기의 운명을 수납한다. “연분홍 목울대도/녹아내리고 없을” 인어의 운명은 현실 속에서는 아름다운 동화로 물론 예찬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지우고 스스로 박해받는 순교자이기를 선택하는 여성들을 지고한 도덕적 상징의 자리로 끌어올리기까지 한다. 하지만 시인은 “당신은 내 문을 나갈 때/히아신스의 보랏빛과 염소의 순진함을 가져갔나요/또도도 똑똑 물고기의 타자 소리/그 낭랑하고 다정한 모음도 데려갔나요”(「서커스」)라고 묻는다. 아무리 아름다운 이야기로 치장된 동화라도 “사내를 보내고 나는, 죽어가는 꽃들을 지켜봤”(「붉은 방」)던 그녀의 비통한 기억을 지울 수는 없다. 이렇듯 그녀를 인어공주처럼 ‘무’의 제물로 삼는 사랑의 논리 혹은 남성의 집단적인 망각은 세대를 통해 상속된 행복의 이념이다. 남성이 건네준 “멧돼지털 브러쉬”로 긴 머리칼을 빗질하며 착한 인어공주의 노래를, 유혹적인 사이렌의 노래를, 더 나아가 미친 광녀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화자들은 시집 곳곳에서 출몰한다. 남성은 “세상에 나가 있는 동안은 처녀의 둥근 방을 잊”는다. 그녀가 들고 있는 “브러쉬는 그에게 갑옷을 입히고 창을 들게 했”(「브러쉬」)다. 사랑이 공생적 합일을 떠나 이기적인 자기애의 수단으로 변질될 때 자연의 질서는 망가지고 궁극적으로는 타자를 파괴한다. 시적 화자들의 고독과 반항은 소유의 논리 속에 돌고 도는 역사 속의 재앙, 즉 낙원을 맛보았으되 다시는 낙원과 구원을 약속받을 수 없는 존재의 비극과 맞물려 있다. 분명 유미애 시의 화자들의 광기와 고통은, 여성이 겪는 부당한 폭력에 무관심하거나 알면서도 용인하는 세상과 인간들의 비겁함을 탄핵한다. 사실 신과 자연으로부터의 분열과 대립에서 출발한 문명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이러한 불화와 대립적 관계가 본질적인 차원에서 해소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인간이 저주처럼 자신의 욕망을 발견한 뒤 운명처럼 수납한 바로 이 부조화의 관계를 문제삼는다. 더 나아가 시인은 이러한 논리 속에 포섭되어가는 착실한 삶에 거칠게 반항한다. 그녀는 “흔들리는 사생활을 간섭 마라” 혹은 “내 눈 속의 당신들을 후벼팠다”(「큰 입 물새의 유서」)는 공격적인 문장으로 잘못된 관계를 거절한다. 물론 이러한 거절의 제스처는 지나치게 단순하고 평범한 해답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폭력들로 가득한 세계에서 어떤 희망의 불씨를 찾으려는 갈망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간곡한 호소력을 발휘한다. 시인은 “천형의 환부를 드러내는 아름다운 릴리스*/에덴을 떠난 낯선 자여 돌아보지 말아요”(「불멸의 원피스」)라고 말한다. 한없이 스산하고 누추한 황무지의 삶을 선택한 릴리스의 선택은 사랑에 대한 절망으로부터, 그리고 그 절망들을 공유하고 있는 목소리들의 연대의 가능성을 예비한다. 폭력에 대해 현실적으로는 무력하지만, 폭력과 맞서는 가장 도덕적인 방식이 바로 ‘거절’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야윈 내 손은 시인이 빚어놓고 간 새 한 마리를/꼭 쥐고 있다”(「시인의 사려 깊은 고양이」). 고통 받는 자만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고통으로 무너져본 자만이 그 고통에서 솟아나는 진정한 희망의 전언에 귀 기울일 수 있다. 유미애의 시는 서로의 고통을 향해 열리는 소통 공간에서만 새로운 낙원이 ‘약속’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 시인의 말
참 낡았다 집도 언어도 사랑이라 불렀던 그대들도 상처투성이 세상에 나를 남겨둔 세 남자들께 이 시집을 바친다 비린내 나는 모퉁이를 돌아 나는 또 걸어갈 것이다 살아야 할, 사랑해야 할 당신들의 몫이 고스란히 내게 남아 있으므로.
유미애 시인
경북 문경에서 출생. 2004년 《시인세계》 신인상 수상작〈고강동의 태양〉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손톱』(문학세계사, 2010)이 있음. 현재 계간 『시인시각』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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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수 만드는 집
- 유미애
옛집 감샤르*가 신기루처럼 떠 있던 시절 나는 새의 저녁을 훔친 죄로 형틀에 묶여 있었던 것 고하노니 나는 저녁에 우는 새와 비린 복숭아뼈를 가진 장미나무일 뿐 이 성의 오래된 발작과 고열을 지켜온 건 병사들 몰래 피어난 처녀들과 순수한 혈통 덕분 장미의 이름으로 할미는 꽃의 목을 잘라 솥에 던지고 어미는 초록의 문자들로 불을 지펴 즙액을 짰던 것 고하노니 한 잔의 피를 홀짝이며 나는 장미의 경전을 넘겼던 것 처녀들의 이름을 거두며 노래를 불렀던 것 위대한 꽃말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온몸의 레이스를 깁는 동안 한 생이 흘러갔던 것 고하노니 마루메죤**의 가마솥은 저녁 새와 할미마저 삼켰던 것 나는 사막의 붉은 시간에게 몸을 맡겼던 것 천천히 오아시스의 아침과 복숭아향 체취를 잊어갔던 것 장미의 칼날이 쇄골 뼈에 박혀 와도 내겐 더 이상 신성한 사냥감과 흘릴 피가 모자라 레이스를 벗기면 마지막 책장을 열고 끼룩끼룩 뱀 한 마리 울었던 것 고하노니 나는 어느새 유혈목이보다 슬프고 유려한 꽃의 문장을 읊고 있었던 것
* 장미수 만드는 곳으로 유명한 이란의 마을. **나폴레옹의 왕비 조세핀이 머무르던 궁. 조세핀은 장미 수집 광이었다고 함.
손톱달 - 유미애 그믐밤, 손톱을 깎는다 하모니카 불던 저녁엔 누군가 향낭을 빠져나가고 이른 아침 내 손가락은 붉게 피어 있었다 쇄골이 드러난 달은 내가 한쪽 허리에 품고 살던 당신의 옛 이름 당신이 흘리고 간 머리칼이 친친, 국화 베개를 감았을 때 빛을 쓸어 담듯 자루 가득 손톱 조각을 모았다 꽃의 몸 어디엔가 조용조용, 무언가 자라고 있어 작약 뿌리를 먹고 눈 먼 뱀이 달을 향해 울고 새들은 또 한 세상을 부수며 날아갔다 당신을 생각하지 않아도 물컹 꽃 냄새가 묻어나는, 새로 보름 푸른 뱀의 눈물자국이 사방으로 번져 갈 때 국화도 작약도 잠든 화단, 당신의 허물 위에 앉아 하모니카 분다 다시는 아프지 말자고, 톡톡 움푹 깎여나간 달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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