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3장은 일곱 가지 천국의 비유들을 집대성해놓은 곳이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도 몇 가지 천국의 비유들이 중첩적으로 나오지만 천국을 일곱 가지로 체계적으로 열거한 곳은 마태복음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그만큼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시는 천국의 도래에 대해서 집중하고 있으며, 다윗의 왕위를 회복하시는 이스라엘의 메시아에 초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 천국에 대해서 가르치실 때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다. 비유들을 통해서 말씀을 수용하느냐 마느냐의 결단은 각자의 몫에 달려 있다.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선지자의 예언대로 된 것이다(13:13-15).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들은 복 있는 자들이다.
일곱 가지 천국의 비유들은 각각의 의미를 살펴보아야 하는데, 거기에 앞서서 13장 전체의 개요를 먼저 아는 것이 유용하다. 『톰슨Ⅲ 주석』에 개요가 잘 나와 있으므로 이를 소개하며, 이어서 『베이커 성경주석: 신약편』, 『IVP 성경배경주석』도 곁들여 소개한다.
<톰슨Ⅲ 주석>
본서의 5대 강화(discourse) 중 제3강화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이 제3강화는 한마디로 ‘천국 비유집’이라 할 수 있다. 모두 일곱 가지의 천국 비유가 나오는데 이 천국 비유들은 천국의 현재성에서 미래성까지를 종합적으로 망라하고 있다. 즉 예수의 탄생과 함께 이 땅에 도래한 천국이 최종적으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몇 가지로 나누어 비유한 것이다.
먼저 천국 복음의 전파 단계가 ① 씨 뿌리는 자의 첫째 비유(3-9절)로 제시되고 그 결과 이 땅의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백성과 세상의 백성이 함께 섞여 살게 된 상황이 ② 가라지 비유(24-30절)로 설명되었다. 그 후 점점 더 확장되어 가는 천국(교회) 운동의 외적 측면이 ③ 겨자씨 비유(31,32절)로, 내적 측면이 ④ 누룩 비유(33절)로 보여지고 나서 참 천국을 그 마음에 소유하는 자의 기쁨이 ⑤ 감추인 보배 비유(44절)와 ⑥ 진주 비유(45,46절)로 묘사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세상 끝날 참 교회의 성도와 세상의 백성들 사이를 완전히 구분짓게 되는 대사건이 ⑦ 그물 비유(47-50절)로 암시되고 있다.
이러한 천국 비유에는 유의할 점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 일곱 가지 비유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7’은 유대인에게 있어서 완전성과 거룩성을 상징하는 숫자였다<계 서론, 성경에 나타난 숫자의 상징적 의미>. 따라서 7이라는 숫자에 맞추어 천국 비유를 집대성한 마태의 의도는 천국의 절대성과 완전성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천국 비유의 소재는 농경 생활이 셋, 상업이 둘, 고기잡이 및 일반 가사가 각각 하나씩으로 되어 있어서, 천국도 일상생활처럼 분명하고 확실한 실재의 삶인 것을 강력히 암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 이 부분의 문장 구성을 보면 일곱 가지 비유 사이사이에 비유의 목적을 두 번 밝혔고(10-17절; 34,35절),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대한 해설(18-23절)과 가라지 비유에 대한 해설(36-43절) 그리고 도입부(1,2절)와 결론부(51,52절)로 되어 있다.
* 천국 비유들의 특징(13:1-58)
본장에 기록되어 있는 비유들은 분명히 천국에 관한 비유들이다. 그러나 단순히 본장의 비유들을 그렇게만 설명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 비유들은 천국의 선포에 대한 청중들의 반응과 필연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천국은...와 같으니’(24,31,33,45,47절)는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며 그의 뜻과 목적이 성취되었을 때 일어나는 청중들의 다양한 반응을 포함하고 있다. 청중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양분된다. 그것은 좋은 토양과 열매를 맺지 못하는 척박한 토양, 좋은 씨와 가라지, 좋은 물고기와 나쁜 물고기, 보물과 진주를 발견한 자들의 행위와 발견하지 못한 자들의 행위, 옛 것을 내 오는 집주인과 구분된 제자들 등이다. 이렇듯 본장의 비유는 천국 복음과 천국 복음을 대하는 자들의 자세를 말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천국 비유가 모두 현재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본장에 언급된 여덟 개의 천국 비유는 모두가 현재 천국 복음을 들은 자나 발견한 자들이 응답하는 현재적 자세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현재성이 강조되는 여덟 개의 비유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인식하는 것처럼 먼 장래에 올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이미 우리 가운데 도래한 천국을 말하고 있으며(12:28),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의 긴장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천국 복음을 들은 자들이 취하는 태도는 종말론적이다. 따라서 산상 수훈의 결론부에서 언급한 두 건축자의 비유 중에서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건축자의 삶의 자세가 요청된다 하겠다(C. H. Dodd, Parables of the Kingdom, 1935).
<베이커 성경주석: 신약편>
예수님의 비유 여덟 개(또는 마 13:52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일곱 개)가 나오기 때문에 비유 강화라 불리는 이 부분은 비유라는 형태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듣는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숨기고 드러내는 비유의 효과를 강조한다(각 비유는 “천국은......같으니”라는 서론적 말 다음에 나온다; 13:24, 31, 33, 44, 45, 47: 참고. 13:52).
13장의 개요는 짝을 이루는 비유들 및 두 개의 구약 인용문, 뿐만 아니라 전반부의 초점과 후반부의 초점-전자는 무리에게(13:1-35) 후자는 제자들에게(13:36-53)- 등 대칭 구조를 강조하도록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IVP 성경배경주석>
랍비들은 보통 설교의 예화에 해당하는 비유를 사용하여 가르치고자 하는 논점을 전달했다. 이러한 팔레스틴 유대교의 교수법은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에서만 발견되므로, 팔레스틴 밖에 있던 후대 교회의 창작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로마 제국 주민의 대부분은 시골에서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쳤다. 교육받은 소수의 특권층은 종종 이들 민중을 무시했지만, 예수님의 예화들을 보면 예수님은 이 계층을 위해 자주 사역을 하신 것을 알 수 있다. 갈릴리에도 세포리스와 디베랴 두 대도시를 비롯해 상당한 인구를 갖춘 촌락이 많았지만,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갈릴리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예수님은 북적거리는 군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목적으로 배에 올랐지만, 그로 인해 사람들이 그분의 말씀을 더 잘 들을 수 있는 효과도 얻었다. 물가에 있는 청중을 향해 연설하는 것은 음향학적으로 매우 이상적인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첫댓글 좋은 글이네요. 성경과 함께 잘 읽어 보겠습니다.
네, 결국은 성경을 잘 읽고 이해하게 만드는 것이 이런 글의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코뱅 공감합니다.
이 포스팅을 읽고 마음을 비워 "천국"이라는 단어를 찾아 보았습니다. 개역개정을 기준으로 찾아보니
"천국"이라는 단어는 마태복음에만 37회 등장을 합니다(개역개정). 저의 작은 검색 결과의 쾌거(?)입니다^^
천국의 복음을 알고 천국의 백상이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노베 아멘!
@노베 아멘22
하늘, 하늘나라, 낙원 등도 어의와 용례를 보면 같거나 비슷한 뜻이지만
개역개정으로 "천국" 영어성경으로 "the kingdom of heaven"은 마태복음에만 나오는 것을 보면, 마태복음은 '천국의 복음', '왕국(kingdom)의 복음'으로 불리워도 과장이 아닙니다
네, 알겠습니다. 4복음의 각 책별 특성도 알면 좋을 것 같습니다.
@노베 공감합니다.
마태복음의 주요 주제 중 하나는 왕, "왕이신 예수님"입니다. 이와 관련 <IVP 성경: 복음서> 설명을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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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신 예수님
이 복음서는 족보로 시작한다. 족보는 다윗계보의 참된 왕이신 예수님께 초점을 맞춘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군주제를 온전히 성취하신 분이다. 그래서 1:18-25은 예수님이어떻게 '다윗의 자손'(20절)인 요셉에 의해서 공식적으로 '입양되어' 왕의 신분을 확보했는지를 설명한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을찾는 외국인들이 '유대인의 왕이신 그분을찾았다(2:2).
그러나 22:41-45이 분명히 하듯이, 예수님의 역할은 '다윗의 자손'으로서 한 민족에만 국한되는 인물을 훨씬 넘어선다. 그분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이루기 위해 오셨다. 그러나 또한 만유의 왕 역할을 지니신다.오직 마태복음에서만 하나님의 왕권을 말하는 구약의 용례에 못지않은 언어로 인자의 나라에 대해 들을 수 있다(13:41; 16:28; 19:28; 25:31-34).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하실 때 마귀로부터 전 세계의 왕권을 손에넣으라는 제안을 받았다(4:8-9). 그러나 그분은 거절했고 아버지를 순종하는 길을
따름으로써, 마침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28:18)라고 선언하실 수 있는 위치에 이르셨다. 그분이 십자가에 달려서 실패한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조롱당함으로써 하늘과 땅의 왕으로서 참된 운명을담당하신 것은 역설적이었다.
이 역설적인 왕의 진정한 위엄은 복음서의 시작과 끝에서 이 복음서를 묶어 주는두 어구에서 드러난다. 서두에서 그분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고 선언된다. 그 뜻은'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1:23)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분은 친히 '내가 너희와항상 함께 있으리라'(28:20)라고 선언하신다.이렇게 마태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 안에서, 이스라엘의 메시아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는 분을 바라보도록 해준다.
<IVP 성경주석: 복음서>, p.38.
@장코뱅 왕이 있어서 왕국이 있고 진정한 왕의 위엄은 복음서의 시작과 끝에서 드러납니다. 다른 주석을 첨부해 주셔서 이해에 도움이 더 됩니다.
@노베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도 이해에 도움을 받습니다. 주석의 내용이 좋네요. 이스라엘의 실패한 왕으로 여겨졌으나 그것이 오히려 만왕의 왕, 만유의 주가 되시는 길로 인도한 것이 되었고, 마태가 복음서의 서두와 말미를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임을 적시함으로써 이스라엘의 메시아를 뛰어넘는 분으로 바라보게 해준다는 설명이 감동을 줍니다. 감사합니다.
@코람데오 네, 주석은 개별목사나 개별성도보다 더 객관적이고 안정적인 지식을 제공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복음을 막는 객관적 교훈이 들어 있어서 좋습니다^^
이 포스팅을 읽고 천국에 대해서 마태복음에 대해서 더 알 수 있게 된 것이 감사합니다. 성경을 더 진지하고 세밀하게 읽어야할 필요성을 또한 느낍니다.
공감합니다.
천국의 백성으로서 이 포스팅을 잘 읽고 진리와 복음을 더 잘 알고 믿어야 하겠습니다.
네,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