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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화가 진상용 원문보기 글쓴이: 높은산
현대 한국 수묵화의 힘 장준석(미술평론가)
수묵화는 중국과 한국의 대표적인 회화의 한 영역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의 수묵화는 중국의 수묵화에 비해 담박하고 투박하여 더욱 그 맛이 깊고 오묘하다. 이러한 담박함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이는 우리 선조의 삶에서 비롯된 우리의 미감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백자는 조선왕조전 시대를 통하여 만들어졌는데 소박하고 은은한 색감은 서민적 정취를 느끼게 한다. 이처럼 우리 문화는 다분히 서민적인데 이는 화강암을 투박하게 쪼아 내거나 혹은 아가리가 잘 맞지 않는 사발에 텁텁한 막걸리를 부어 마른 목을 적시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삶의 배경들이 은연중 수묵이라는 하나의 매개체를 통해 그림으로 승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수묵은 이미 조선 후기에 들어오면서 겸재 정선 등에 의해 한국화된 전통의 회화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이후 한국적 수묵은 강희언 등 여러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하겠다. 수묵의 바탕에는 우리 민족이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며 세계를 관찰하는 순수미의 방식이 내재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근대 이전부터 한국적인 수묵의 문화가 존재하여 왔었고, 담박함을 지닌 우리의 수묵은 선비 그 자체로 대변되는 중국의 수묵화와는 또 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이러한 요인들이 한국의 수묵화가 형성되기 시작하는데에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다.
본래 고대 수묵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문기와 예술 철학이 내포되어 있다는데 있다. 따라서 수묵을 즐기는 선인들의 경우는 대개 학덕과 풍격을 겸비한 경우가 많았다. 전문 화공들이 상당한 인덕과 학식을 갖춘 경우도 적지 않았던 것은, 수묵이 지니는 특성이 다른 그림에 비해 철리적이며 고고할 뿐만 아니라 정아하고 지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수묵에는 가난한 선비들이 텁텁한 막걸이 한 사발을 마시면서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소박하고 구수함이 배어 있다. 여기에 비해 현대의 작가들이 그려내는 수묵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점점 다변화하고 과학적이면서도 복합적으로 변모하면서 다소 냉철해지고 섬세해져 필묵이 더욱 경직된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다.
이는 삭막한 현대인의 정서가 초래한 당연한 결과라 생각되기도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현대수묵은 과거 우리 선조가 행했던 고대 수묵과는 많은 차이를 지닐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대 수묵은 고대 수묵이 지니는 학덕과 풍격 있는 특성을 추구한다기보다는 보다 자아 중심적이며 무의식적이고, 자율적, 실험적이다.
열악한 상황속에서도 수묵화의 발전에 뜻을 둔 작가들은 수묵에 대한 예술론을 전개시키며 거기에 걸맞은 작업을 하기보다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간략한 지론 정도를 피력하면서 보다 실험적인 작품을 전개시키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대 수묵화는 고대 수묵화와 다른 이러한 특성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도를 전개해 나가는 데서 그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수묵화는 그 장르가 다양하게 전개될 수 있다. 그만큼 고대 수묵화와는 다른 새로운 틀을 지닌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수묵익문기를 추구하는 것도 아닐 수 있으며, 시적, 언어적 창출도 아닐 수 있다.
이러한 것은 여전히 현대수묵화에서도 중요한 근간이다. 다시 말해 현대수묵화에서 중요한 것은 고대수묵화를 대신할 수 있는 폭넓은 소재의 발굴과 자유성의 발현, 즉 자유스러운 사고방식과 정신성, 창의성의 창출 등이다. 예를 들어 현대수묵은 전통수묵, 추상수묵, 변형된 관념수묵, 실험수묵, 매체를 수반한 수묵 등 다양한 양식으로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필묵의 정신이 그 바탕이 되어야 한다.
다양한 수묵화의 장르적인 실험은 매우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화 전문화 시대에 부응하기 위한 하나의 자구책으로 볼 수 있다. 전 세계가 하나로 되는 세계화의 구호 속에서 각 지역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서 우리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한국화라는 호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는 중국화나 일본화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는 우리와는 달리 자신들의 전통회화를 잘 활용하여 나름대로 세계적인 미술의 반열에 올랐다는 것이 자체적 평가이며 지배적인 분위기이다.
우리는 중국과는 상황이 다르나 우리 아름대로 서양미술을 흡수하여 한국적인 미술에 융화시키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는 등 여러 가지 노력을 강구하여 왔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우리의 현대수묵은 예전에 비해 많은 발전을 해 왔다고 평가되며, 특히 현대수묵의 경우는 한국적 특성을 나름대로 유지 발전시켜 왔다.
따라서 수묵화는 과거에 비해 많은 변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는 한국 미술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라 하겠다. 예를 들어 이재승의 <산동의 봄)과 같은 경우는 개성있는 필력을 바탕으로 덤덤하게 물가의 한 정경을 표현하였는 데 한국적인 먹 맛과 형상이 조화를 이룬다. 하철경의 <채석강 소견>라는 작품과 같은 경우 형태에서 감성적 이미지에로의 전이가 돋보이는 작품이라 할만하다.
한국의 산수화를 보다 새롭게 창출하여 주목된다. 또한 조용백과 같은 경우는 수묵이라는 매체를 사용하여 형태를 단순화시키면서도 음영의 표현을 시각적으로 극대화시킨 경우로 이전의 수묵화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조형성을 갖추었음을 볼 수 있다.
여백의 이미지를 새롭게 극대화시킨 경우로는 왕형렬을 들 수 있다. 왕형렬은 창의력이 있는 작가로서 미완의 저력이 숨어있는 작가로 한국화의 발전을 위해 기대되는 작가라 할만하다. 박성태의 철망을 소재로 한 작품은 한국 미술의 또 다른 약진으로 보인다. 무엇 보다도 그의 작품성이 인정되는 것은 독특한 조형성이라 할 것이다.
그의 작품은 독창적인 이미지를 확보하면서도 형상적인 전달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인체나 동물의 이미지 자체를 완벽하게 소화해 내면서도 서양의 미술처럼 격이 떨어지지 않는 형태미를 지닌다.
물론 서양회화가 대세를 이루는 지금의 한국화단의 분위기로 볼 때 한국의 현대수묵화의 전개는 매우 어려운 환경 속에 처해 있기는 하지만, 서양화의 관점에서 보아진 서양적 회화를 의식하여 인준을 받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전통적인 예술 체계를 추구하여 그 가능성을 모색하고 찾아내면 그만이다. 박성태의 철망 작업들이나 조용백의 형태적 이미지 극대화, 왕형렬의 여백의 새로운 창출처럼 말이다. 그러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여전히 서양의 회화의 폭넓은 포용력이 현대수묵화의 진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서양의 현대회화는 다양한 실험정신과 새로움을 무기로 수묵이 지니는 강점을 희석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부분에조차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영향을 굳이 배척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삶의 양식의 변화와 환경의 변화, 사상의 변화 등에서 기인된 자연스러운 산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현대수묵화가 지니는 강점과 필묵 운용에서 생기는 다양한 회화적 방법들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사고라든가 언어학적 측면 혹은 음식문화, 생활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전통문화의 큰 틀을 유지해 왔으며, 그것을 우리 나름대로 보다 발전적인 면으로 수용 · 변화 · 전개 · 발전시켜 왔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전통문화나 동양의 사고방식, 역사의식에 은연중에 젖어 있으며, 이를 토대로 우리문화의 보편성에 공감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화 의식은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것이며 우리 삶의 원동력 가운데 하나이다.
수묵은 우리문화의 한 면을 볼 수 있는 회화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수묵화의 바탕에는 도 사상이 내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동양의 핵심 사상이자 우리 삶의 본질이라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의 수묵화는 서양의 예술문화나 예술사상과는 근본이 다른 우리의 정서를 대변하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