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Date 2013. 5. 19
Text Tts 3,5-8
(5)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6)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7)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8)이 말이 미쁘도다 원하건대 너는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1. 전 대통령 노태우, 전 문화부 장관 이어령, 탤런트 오연수 한혜진 김승수 신애라 조승우 유호정씨, 성악가 김영미, 팝페라 가수 정세훈, 국악인 문재숙, 방송인 박나림 주영훈, 미스유니버스 이하늬…. 모두 자신들의 분야에서 최고 영역을 경험한 인사들입니다. 이들은 또한 그들이 확고하게 구축하고 있던 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특히 노태우 대통령과 이어령 전 장관은 오랜 세월 비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에 대해 독설을 퍼붓던 사람들이었는데 자녀들의 끈질긴 전도로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입니다.
현대 기독교의 전반적 분위기는 진지한 신앙심의 퇴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몇 주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현대인들은 ‘죄사함’이라든지, ‘오직 믿음’이라든지, ‘순교’라든지 하는 진지한 신앙의 자리로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부담스러워할 뿐입니다. 그냥 아픈 다리 고침 받는 것 정도에 머무르려고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지붕을 뜯고 내려온 병자와 그의 친구들에게 “인자가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알게 하려 하노라”(막2,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표피적인 관찰과 관심보다 신앙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요청하셨습니다. 이런 ‘진지한 신앙심’의 퇴조는 현대 기독교 위기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이런 극렬반대자들이 진지한 회개와 진지한 신앙태도는 오랫동안 닫혀 있던 방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는 것처럼 신선함을 느끼게 합니다. 이런 회개의 은혜와 역사가 오늘 우리들 신앙도 신령하게 하고 진지하게 만드는 역사를 만들어 주기를 희망합니다.
2. 오늘 ‘성령강림주일’이면서 동시에 ‘웨슬리회심기념주일’인 오늘 우리가 나누고자 하는 성경 딛3,5-8 말씀은 첫째로, ‘사람은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왜 오셨습니까?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오셨지요. 구원하러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결국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왜 그러셨을까요? 능력이 모자라거나 판단착오를 하셨거나 한 것이 아니라 죽고 심판 받을 인생을 대신하는 희생제물, 속죄제물이 되시려고 그렇게 죽으셨지요. 죄 값을 대신 치러주시어서 사람을 구원하신 것을 믿고 마음속에 주님을 구원자로 영접해야 합니다. 이렇게 믿고 영접하는 것은 성령의 사역으로만 깨달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성령세례라 합니다. 이는 예수님을 유일한 자신의 구원자로 모셔들이는 체험이 있어야만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교회에 나오는 많은 교인들이 이 은혜체험에 대하여 관심도 없이 교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 체험 없이 목사도 됩니다. 장로도 됩니다. 하지만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됩니다. 꼭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원자로 모셔 들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정말 그러냐고요? 정말이고 말고지요. 그런데 이 믿음이 없는 사람 꽤 많습니다. 꼭 이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으니 이 내용에 관심조차 없습니다. 그냥 예수님의 고결한 삶을 흠모하며 닮아가려고 노력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주장하면서, 구원을 말하고 천국을 말하며 지옥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넌센스라고까지 생각하며, 자꾸 심각하게 말하면 자신은 교회에 출석하는 것도 그만두겠다고, 완강하게 회개를 거부합니다.
죤 웨슬리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었습니다. 웨슬리는 친가와 외가 모두 3대째 목회를 하고 있는 집안에서 태어난 모태신자였습니다. 성경을 읽으며 글자를 깨쳤고 세상생활을 알기 전에 교회생활부터 배웠습니다. 그런 분위기를 거절하거나 하지도 않았습니다. 도리어 자신은 그런 성경적인 삶을 살려고 더욱더 노력하겠다고 다짐을 하는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신학교까지 갔고 성직자까지 되었습니다. 그런 자신의 교회생활에 대하여 아무런 의혹도 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의 생각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주어졌습니다. 항해 중에 풍랑을 만나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어졌을 때였습니다. 죽음의 공포로 떨고 있을 때, 그 정황에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도리어 찬양하고 있는 무리들을 보았습니다. 웨슬리는 물었습니다. ‘당신들은 두렵지 않소?’ ‘네~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입니다.’ ‘나도 예수를 믿는데 왜 나는 당신들과 같은 그런 평안이 없을까요?’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구원자이심을 믿으십니까?’ ‘나는 그 분이 세상의 구주이신 것을 믿습니다.’ ‘아니요,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당신의 구원자이심을 믿느냐 말이오?’ ‘나는 그분의 말씀대로 살려고 무척이나 노력하고 있다오.’
웨슬리는 그 경험으로 자신의 신앙에 중대한 결함이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닫습니다. 그때부터 시작된 의문은 그로부터 7년이 지났을 때는 심각한 고민이 되어 있었습니다. 끙끙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수요일(1738년 5월 27일) 밤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어떤 교회에 갔다가 한 사람이 루터가 쓴 로마서 주석 서문을 읽는 것을 듣고 있다가 마침내 그 은혜와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의미를 깨달은 것입니다. 한 사람의 착실한 종교인에서 갓 태어난 신앙인으로 탈바꿈한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종교인에서 신앙인으로 달라졌습니까?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시고 믿게 하시며 구주로 영접하게 하시는데 그 은헤를 경험하셨습니까? 성령 안에서 중생의 씻음이 이루어졌습니까?
3. 둘째로, 바울 사도께서는 목회하고 있는 제자 디도에게 ‘성령을 풍성히 부어주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풍성하게 누릴 수 있게 한다는 것을 새삼 강조하고 있습니다. 첫째가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새사람 되는 것이었다면 둘째는 ‘성령을 풍성하게 부어주시는 깨달음 내지는 체험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 본문의 뜻입니다.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구원을 확신하게 된 1738년 5월 24일의 체험이 있고 난 후에 죤 웨슬리는 새로운 신앙적 고민에 빠졌습니다. 분명히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함으로 분명히 참 신앙인이 되었는데 그의 영혼에는 지속인 평안과 기쁨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고민을 하며 많은 신앙인들의 책을 읽고 기도합니다. 그렇게 새로운 영적 고민을 가지고 씨름하던 웨슬리는 마침내 점차 답에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성령충만’ 바로 그것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성령을 풍성히 부어주사 (7)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을 풍성히 부어주시는 것, 그것을 간단히 말하면 ‘성령 충만’입니다. 깨닫게 되자 곧 그 문제로 기도하였고 이번에는 그리 많은 세월도 가지 않아 성령을 풍성하게 부어주시는 은혜를 체험합니다. 그것이 1738년 12월 31일, 즉 마지막 날 밤, 페터레인이라는 기도처소에서 기도하고 있던 깊은 밤중이었습니다. 몇몇 신앙동지들과 함께 철야하며 기도하던 중 새벽 3시부터 성령의 부어주심, 다른 말로 심령에 성령의 불이 붙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혀가 꼬부라지며 알 수 없는 말이 입에서 터져나왔습니다. 바닥을 뒹굴며 웨슬리는 마가의 다락방에 내렸던 성령의 부어주시는 그 은혜를 체험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질문> 사도 바울은 어디서 성령충만 경험을 하였다고요? 네~ 페터레인이라는 곳입니다. 하여간 중요한 것은 성령을 풍성히 부어주시는 은혜 체험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7)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 속에 들어갈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던 인생이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했지요. 그런데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얻은 그 구원이 죄인에서 의인으로, 마귀의 사람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달라진, ‘신분의 변화’를 의미한다면, 성령을 풍성히 부어주심으로 그분의 상속자가 된다는 말은 변화된 신분의 사람에 걸맞게 살 수 있는 힘, 즉 거룩한 삶의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영적 권능이 다시 살아나 악한 영들의 미혹과 유혹과 도전으로 생기는 모든 갈등에서 이길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사는 신령한 기쁨과 평안과 만족을 만끽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성령충만은 간절히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들을 때, 뜨겁게 찬송할 때에, 자신의 악한 생활을 철저히 회개할 때에, 성령충만을 강력히 원할 때에 나타납니다. 부어주십니다. 불을 붙여주십니다. 요즘 특히 금요일 밤에 이 불을 붙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오셔서 불을 붙이십시오. 신령하고 풍성하며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하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4. 사도바울께서는 제자 디도에게 한 가지 당부를 덧붙이고 있습니다. 8절, “이 말이 미쁘도다 원하건대 너는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이 말, 즉 오직 성령의 씻음과 풍성한 부으심이 구원을 얻게 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풍성히 누릴 수 있게 한다는 말은 확실하고도 틀림없는 말이니 굳세게 말하라는 당부입니다. 당부하여 디도의 가르침을 받는 성도들이 성령 충만한 가운데 선한 일에 힘쓰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저도 이 시간 여러분에게 확신을 가지고 당부드립니다. 오직 성령의 씻음과 풍성한 부으심이 구원을 얻게 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풍성히 누릴 수 있게 합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으면 절대로 제대로 된 신앙생활은 불가능합니다. 우리 모두는 불붙일 수 있다면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하여야 합니다. 항상 노력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제발 심각하게 받아들이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