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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과 강안의 사랑이야기■
송강 정철은 우리 국문학사에서도 매우 특별한 인물로서 관동별곡, 사미인곡 등 한글문학을 끌어올리는 작품을 만들어 낸 불세출의 문학가이다.
송강의 사상이 중세 봉건군주에 대한 충심(忠心)이었다 하더라도 송강은 조선 선조 시기 서인의 정치가이기도 하며, 그의 정치적 잔인함은 '정여립 역모사건'이라는 것에서 나타난다.
그때나 지금이나 당파 정치에 이 나라는 편안할 날이 없다.
그는 정치적 잔인함도 있었지만 강아(江娥)라는 여인과 아름다운 로맨스를 펼친다. 이런 아름다운 사랑 또 있을까.
후대 사람들은 '정철과 강아' 두 사람의 사랑을 "살송곳과 골풀무사랑"이라 부른다.
강아가 입을 열고 어린 시절 정철에게서 듣고 외웠던 ‘사미인곡’과 ‘장진주’ 가사를 노래 부르기 시작한다
그때 정철은 강아라는 여인의 시구를 듣고 지금으로 얘기하면 'second wife' 말 그대로 '두 번째 부인'으로 삼는다.
“그것을 네가 아직도 외우더냐?” 정철이 물었다.
“예, 나으리께서 배워 주신 것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나으리가 그리울 때면 가야금을 타고 마냥 불렀던 노래이옵니다.” 강안의 뺨은 홍시처럼 물들고 있었다.
술상을 마주하고 거나해진 정철이 입을 열었다.
"진옥아~, 내가 한 수 읊을 테니, 너는 화답하거라. 지체해서는 안 되느니라.
「옥(玉)이 옥이라 커늘 번옥(燔玉)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진옥(眞玉) 일시 적실(분명)하다. 나에게 살송곳 있으니 뚫어볼까 하노라.」
탁월한 시인이었던 정철은 강아에게 흠뻑 빠져 노골적인 음사(淫辭)를 시의 옷을 빌어 읊었다. 번옥이란 분명 진옥을 은유한 것으로 남녀 간의 육체적 합일을 바라는 정철의 육정이 배어 있는 시인데 지체 없이 강아가 화답한다.
「철(鐵)이 철(鐵)이라거든 석철(錫鐵)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정철(正鐵) 일시 분명하다 마침내 게 골풀무 있으니 녹여볼까 하노라.」
가이아의 시는 당대의 대 문장가인 정철을 깜짝 놀라게 했다. 강 아는 정철을 쇠로 비유하며 멋지고 견고한 남성을 만나면, 자신의 골풀무로 녹여 놓을 수 있다며 응수했다.
'골풀무'이란 불을 피우는데 바람을 불어넣는 풀무인데, 강아는 이를 '남자를 녹여내는 여자의 성기(性器)'로 은유하는 게 아닌가! 이만하면 강 아는 '명기(名妓)'요, 뛰어난 시인이었던 것이다.
이윽고 살송곳을 가진 멋있는 사내와 뜨거운 골풀무를 지닌 기생의 하룻밤은 뜨거운 정염으로 깜깜한 밤이 새하얗게 무르익어 갔다.』
그날 이후, 정철의 적소생활은 조금도 괴롭거나 우울하지 않았다. 마음이 울적할 때면 강 아는 강 아는 늘 그의 곁에서 기쁨을 주었고 가야금을 연주해 주었다. 그러면 헝클어진 정철의 마음에 한 줄기 빛이 흘러들었다. 강 아는 단순한 생활의 반려자 혹은 기녀가 아니었다. 정철에게 강 아는 그 이상의 존재였으며 예술적 호흡을 가능케 만들어주는 지혜로운 여인이었던 것이다. 정철은 유배지에서 부인 안 씨에게 서신을 보낼 때면 강안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적어 보냈다.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는 정철을 서울로 부른다. 정철은 유배지의 생활을 청산하는 기쁨과 나라에 대한 우국, 강아와의 이별 때문에 마음이 복잡했다. 정철을 보내면서 강 아는 아쉬운 마음을 이렇게 읊었다.
『오늘밤도 이별하는 사람 하, 많겠지요. 슬프다! 밝은 달빛만 물 위에 지네 애닯다! 이 밤을 그대는 어디서 자오 나그네 창가엔 외로운 기러기 울음뿐이네.』
부인 안 씨는 가이아와 함께 한양에 올 것을 정철에게 권했지만, 강 아는 거절하고 강계(江界)에서 혼자 살며 정철과의 짧은 사랑을 되새기며 외로운 세월을 보냈다.
이듬해 선조 26년(1593) 12월 18일, 정철이 강화의 우거에서 생을 마쳤다는 이야기를 들은 강아는 이 세상에 정철이 없다는 가혹한 슬픔 앞에 몸부림치다가 홀연히 강계를 떠났다. 그 후, 강안의 소식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철과 강아의 사랑이야기'에서
별이 빛나는 밤에
[노트]
송강 정철은 조선 선조 때 우의정, 좌의정, 전라도체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문인이자 학자였다. 관동별곡을 비롯하여 사미인곡, 성산별곡 등을 지은 가사문학의 대가로서 시조의 윤선도와 함께 조선시대 문학의 최고봉으로 일컬어진다.
'정철과 강안의 사랑이야기'는 월탄이 쓴 '자고 가는 저 구름아'(全5卷)에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