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서생원의 고발
김현주
인간을 고발합니다.
인간 세상에서 어떤 사람들은 나를 ‘쥐새끼’라고 부릅니다. 어이가 없어요. 내가 뭘 어쨌다고 나보고 쥐새끼라니요. 모욕적입니다. 나도 어엿한 이름이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지어준 이름입니다. 귀하디귀한 아들이라고 <귀남>이라고 하셨죠. 좋은 이름 아닙니까? 내 이름으로 부르지는 않더라도 ‘쥐새끼'는 너무합니다. 하기는 화가 나면 자기네 인간끼리 ‘개새끼’라고 부르기도 하니 쥐보고 쥐새끼라고 하는 건 양반이다 싶기도 합니다. 강아지들이 놀랐을 거예요. 자기네들끼리 화가 나서 욕을 하며 왜 나를 들먹이나 할거예요. 미니 마우스니 미키 마우스니 귀여운 이름으로 우리를 불러줄 때도 있어 드디어 우리의 진가를 알아주는 세상이 왔나, 함께 공존하는 세상이 왔나 생각될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건 오산이었죠. 미키 마우스영화를 파는 마켓에서 쥐덫을 같이 팔기도 합니다. 인간들은 그런 모순된 행동을 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살아가지요. 이해가 안 됩니다. 휴머니즘을 부르짖으면서 우리들에게 하는 일을 보면 이해가 안 갑니다. 혹은 우리를 서생원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존재하기는 합니다. 그게 조금 낫기는 해요. 그러나 서생원은 왠지 쫌생이를 생각나게 합니다. 좀 더 나은 이름을 생각해서 보급해야겠어요. 더 나은 이름으로 불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쥐들 사이에서는 나를 꽤 알아줍니다. 용감하고 영리하다고 말한답니다. 얼마 전에 실수로 끈끈이 덫에 걸려들었다가 그곳을 어렵게 빠져나온 후로는 더욱 유명해졌어요. 정말 온 힘을 다해 사투를 벌이다가 겨우 빠져나왔습니다. 온몸이 볼품 사납게 뜯겼고 한참 동안 요양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역사적으로 끈끈이 덫에서 다시 빠져나온 쥐는 얼마 안 됩니다. 레전드가 되었다고나 할까요. 죽을뻔했는데 살아 나왔거든요. 검은 끈끈이가 함정인지 모르고 올라갔었습니다. 부엌으로 가려면 그리로 갈 수밖에 없었고요. 역시 먹을 건 부엌에 있는 법이라 잠깐 다녀올 생각이었습니다. 그랬다가 끈끈이 덫에 걸려 그곳을 빠져나올 수가 없었어요. 빠져나오려고 애쓸수록 끈끈이에 붙어서 절망적이었습니다. 단념할 수가 없어서 다시 도전했고 죽을힘을 다해 공포의 끈끈이에서 벗어났을 땐 거의 동이 틀 무렵이었습니다. 기나긴 싸움으로 만신창이가 되긴 했어도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집에 가서 한참을 쉬어야 하겠지만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경고해 주어야 했어요. 검은 끈끈이를 보면 절대로 올라가지 말라고 알려야 한다는 일념을 가지고 필사적으로 탈출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참 억울합니다. 그 집터엔 우리 가족이 먼저 살고 있었습니다. 인간들은 이미 우리가 먼저 살던 집을 자기네끼리 돈을 주고 팔고 사고 이사가고 이사 왔습니다. 우리의 동의를 구한 적도 없습니다. 우리의 존재 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 그거죠. 우리를 발견했을 땐 미안해해야 하는게 도리 아닙니까? 오히려 온갖 방법을 동원해 우리를 잡아 죽이려 했습니다. 우리는 조용히 평화롭게 살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많이 먹지도 않아요.
이번에 인간 한 가족이 이사라는 걸 하고 우리가 이미 살고 있던 곳에 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좀 불안했어요.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속이 좁지는 않아요. 같이 살 수도 있잖아요. pantry 안에 먹을 걸 잔뜩 사들이더라고요. 드디어 우리의 필요를 이해하는 인간이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현미에 땅콩, 호두, 콩, 대추까지. 어쩌면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해졌어요. 드디어 쥐의 존재를 인정하고 우리의 필요를 이해하는 사람이 왔나보다고 생각하며 모두 행복했습니다. 드디어 꿈같은 일이 현실이 된 거지요. 모두 공존하면서 서로를 존중하면서 사는 삶 말입니다.
처음으로 안주인과 만났을 때 너무 놀랐습니다. 인간 사회에서는 그렇게 큰 덩치라고 할 수 없다 해도 나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큰 크기의 몸을 가진 그 여자가 놀라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여보, 쥐 나왔어요” 한번도 아니고 계속해서 놀라서 소리를 지르며 뒷걸음을 쳤습니다. 그 바람에 나도 놀라서 잽싸게 도망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 여자의 남편이 놀라서 나오며 한마디 했습니다. “시골에서 그렇게 많이 봤는데 아직도 쥐를 볼 때마다 놀라면 어떡해” 어이가 없었습니다. 나한테 비하면 집채만 한 덩치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놀라다니요. 누가 보면 오히려 조그만 내가 커다란 몸집의 안주인을 잡아먹기라도 하려는 줄 알겠다 생각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의 불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집안 곳곳에 끈끈이가 놓이고 우리의 친구 친지들이 참혹한 일을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Pantry에 있던 콩과 현미 등이 우리가 갉아내어 구멍을 낼 수 없는 두께의 그릇 안에 들어가고 뚜껑이 굳게 닫혔습니다. 집 안 청소를 그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우리가 조용하고 편하게 살던 곳들이 들쑤셔지고 탈탈 털렸습니다. 내 생각에 인간들은 그 큰 덩치를 가지고도 마음을 쓰는 건 나보다 못합니다. 우리가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그렇게 꽁꽁 싸놓질 않나. 우리가 좀 같이 살면 어떻다고 우리를 잡지 못해 그렇게 끈끈이와 독약이 섞인 과자를 곳곳에 두나 모르겠습니다. 고마운 과자 선물인 줄 알고 독이 든 과자를 먹었다가 비실대며 죽어가는 친지들이 늘어 갔습니다. 끈끈이 덫이 여기저기에 놓였습니다. 우리들의 동선을 파악한 지능적인 계산까지 있었어요. 미처 모르고, 다니던 길로 그냥 갔다가 낭패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나도 끈끈이 덫에 걸려들었던 겁니다.
요사이엔 고양이가 나타납니다. 이웃집 고양이라는데 왜 여기까지 오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루에 몇 번이나 와서 우리를 위협합니다. 인간들은 내 땅 네 땅 하며 영역 만들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 고양이는 왜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두는지 모르겠습니다. 대체 우리의 삶이 앞으로 어떻게 되려는지 알 수 없어요. 갈수록 태산입니다. 이런 위험과 위협 속에 사는 건 굉장한 스트레스를 유발합니다. 건강에 막심한 유해 요소가 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인간들에게 완전히 졌다는 건 아닙니다. 우리는 꽤 똑똑하다고 자부심을 갖고 삽니다. 도망할 때 아직 인간들이 모르는 많은 루트를 알고 있습니다. 언제나 도망갈 수 있는 구멍들에 대한 지식이 대대로 전해져 내려옵니다. 인간들은 아직 우리가 어느 동선으로 움직이고 집에 드나드는지 모릅니다. 도망갈 길은 수없이 많아요. 우리가 먼저 이곳에 살았던 것을 생각해 보면 놀랄 일도 아닙니다. 우리가 훨씬 빠릅니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은 우리지만 그래서 어디로든 빨리 도망갈 수 있어 유리합니다. 낙망하지 말고 지혜롭게 살아가야 한다, 희망을 버리면 안 된다고 마음먹습니다. 계속 번식하고 계속 투쟁하면서 살자, 언젠가 위험도 위협도 없이 우리의 자녀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을 때까지 꿈을 잃지 말고 살자고 다짐합니다.
첫댓글 참 재미있는 글 잘 읽었어요.
조금 읽다 공희진샘 글인가 싶어 확인했답니다.
쥐의 세계를 들어가 그들의 애기를 들으니 공감이 되기도 해요.
어떻게 이런 깜찍한 소재를 글로 표현하셨는지 대단하세요.
아이들에게 들려주어도 좋을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