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뜻밖의 증인
사마리아 여인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수십 킬로미터를 걷고 있었다. 해는 높이 떠 있었고,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그분의 피곤한 발은 먼지에 덮였고 뜨거운 바람은 몸의 수분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예수님은 목이 마르셨다. 그분께서는 들판 한가운데 있는 우물 곧 야곱의 우물가에 앉아서 기다리고 계셨다. 제자들이 먹을 것을 구하러 사마리아의 수가로 갔지만 그분에게는 반드시 해야 할 아주 중요한 일정이 있었다.
한 여인이 우물에 물을 긷기 위해 왔다. 하루 중 가장 더운 시간에 혼자 온 것이다. 아마도 그 지역의 기준으로 볼 때 현재의 삶이 썩 바람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1 그 우물은 공동 구역이었기 때문에 남자가 거기 있어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어서 그 여인은 우물에 물동이를 내릴 준비를 하였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말씀하셨다. “나에게 물을 좀 달라.”
있을 수 없는 이야기
요한복음 4장의 이 이야기는 여러모로 사회적·문학적 예상에서 벗어나 있다. 첫째, 유대인이자 메시아로 여겨지는 예수께서 사마리아로 가신 것이다. 사건의 장소가 중요하기에 ‘사마리아’ 또는 ‘사마리아인’이라는 표현이 여섯 성경절에 여섯 번이나 언급되어 있다(4~9절).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기 이후 사마리아 지역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그 지역으로 추방된 비이스라엘 사람들과 섞였다. 그들은 서로 혼인했고 종교도 혼합되었다. “그들은 그리심산에 세운 성전에서 예배드리면서 모든 예언서와 지혜의 글들을 배척하고 오직 모세오경만을 따랐다.”2
유배지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 성전 재건 사업에 사마리아인들의 참여를 배제시키자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의 불화는 더욱 커졌다(스 4:2~3). 수 세기가 지난 후에도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은 서로 맹렬하게 적대적이었다. 어떤 유대인들은 할 수 없이 사마리아로 지나가기도 했지만 엄격한 유대인들은 그 지역을 완전히 피하기 위해 더 먼 길을 택하여 돌아갔다.3
사회적 통념을 깨뜨린 두 번째 모습은 예수께서 사마리아인과 대화를 나누신 점인데 그 대상도 평범한 사마리아인이 아니라 이미 남편이 여럿 있었고 지금도 남자가 있는 여자였다.
셋째로 예수님은 자신의 행동이 우연이 아님을 그 여인과 나눈 대화에서 분명히 드러내셨다. 그분은 이 여자에 대해 이미 알고 계셨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녀를 찾고 계셨다. 그리고 만민의 메시아가 될 자신의 정체성까지 드러내셨다.
그 대화는 “물 좀 달라”(요 4:7)라는 단순한 요청으로 시작됐다. 유대인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여인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었는데 그녀에게 무언가를 부탁까지 하셨던 것이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9절). 예수님은 그녀의 민족이 분열된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그녀가 왜 자기에게 물을 요청하지 않는지 물으셨다. 그분이 선물로 베푸시는 물은 생명을 주는 물이었다. 그분은 끊임없이 그녀의 민족적 정체성과 과거의 상처로부터 그녀 자신의 영적 기갈과 그것을 채워 줄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 관심을 갖도록 그녀를 이끌고 계셨다.
그 여인이 그분의 신기한 제안의 진실성을 파악하고 물 좀 달라고 요청하자 그분은 갑자기 그녀에게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셨다. 그녀의 대답은 간단했다. 자기에게 남편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는 현재 남편이 아닌 사람과 살고 있었고 예수님은 그 사실과 그녀의 결혼 스토리를 이미 모두 알고 계셨음을 드러내셨다.
그분이 자신의 개인적인 삶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에 여인은 깜짝 놀랐고 예수가 선지자임을 그녀는 곧 깨달았다. 그러나 그 여인은 자신의 사생활에서 다시 사마리아인 대 유대인이라는 주제로 화제를 돌렸다. 예수는 그것을 기회로 새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언하셨다. 이제 유대인이나 사마리아인을 막론하고 모든 참된 예배자는 “아버지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것이니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23절).
대화 초반부터 예수께서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의 민족적·종교적 갈등에 기반한 그녀의 세계관을 깨뜨리셨다. 그 여인은 자신이 유대인의 적대자 혹은 반대자라고 생각해 왔고 우물가의 그 유대인 남자에게도 그렇게 표현했지만 그분은 그녀와 대화를 나누고 그녀를 존중하면서 그 틀을 깨뜨리셨다. 그 여인은 야곱과 조상들을 자기 삶의 방식, 종교적 신념, 예배 장소 등에 관한 근거로 삼았다. 이제 예수님은 그것들도 재해석하고 개혁하셨다.
마침내 여인은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 동의하는 한 가지 사실로 대화를 옮겨 갔다.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25절). 그녀의 믿음과 소망의 진술에 대한 그분의 대답은 간단하고 놀라웠다.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26절).
파종과 수확
제자들은 아마도 예수님의 그런 깜짝 선언에 뒤이어 침묵이 감돌고 있는 순간에 돌아왔을 것이다. 일시적으로 갈증을 해소해 주는 물에 대해 더 이상 관심이 없었던 그 사마리아 여인은 마을로 달려가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유대인 남자를 만났다고 외쳤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29절).
예수님은 다시 그 우물에서 제자들의 염려에 응답하셨다. 예수께서 여자와 이야기하시는 모습을 보고 제자들은 놀랐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그들이 그분께 잡수시기를 청했으나 그분은 거절하시며 그들이 알지 못하는 양식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그들이 그 여자와 그 양식에 대해 혼란스러워하자 그분은 자신의 사명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34절).
그런 다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셨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35~38절).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 그 여인의 말에 흥분한 사람들이 그 성읍에서 우물 쪽으로 몰려왔다. 그 여인은 전문적인 신학 교육을 받지도 않았고 종교에 대한 이해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기 동족의 전통에 의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예수님과 만난 일은 온 마을의 관심사가 될 만큼 충분히 효과적이었다. 씨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에 관한 예수님의 그 비유가 제자들의 눈앞에서 벌어진 것이다.
제자들에게 수가는 음식만 구입하면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가 없는 동네였다. 또 홀로 사는 그 여인이 유능한 선교사가 되리라고도 기대하지 않았다. 엘렌 화잇은 이렇게 진술했다. “그 여자는 그분의 제자들보다 자신이 더욱 능률적인 선교사임을 입증했다. 제자들은 사마리아가 훌륭한 선교지라는 아무런 증표도 보지 못했다. 그들의 생각은 장래에 이루어져야 할 큰 사업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 바로 주변에 수확해야 할 영혼이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이 멸시하던 그 여인을 통하여 온 동네가 구주의 말씀을 들으러 나왔다. 그 여자는 그 빛을 즉시 자기 이웃들에게 전했다.”4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그들의 마을로 초대했고 그분과 제자들은 수가에서 이틀을 머물렀다. 요한복음 4장 39절에 따르면 수많은 마을 사람이 여인의 증언을 근거로 예수를 믿게 되었지만 예수께서 방문하신 후에는 더 많은 사람이 믿게 되었다.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42절). 유대인들 사이에서 예수님은 메시아라는 자신의 정체를 공개적으로 선언할 수 없었지만 사마리아인들은 그분의 신성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목마른 사람을 위한 물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선사한다.
첫째, 복음은 듣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언제 어디서나 전파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잘 홍보된 집회에 많은 청중이 참석하기만을 기다리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물을 긷는 일상적인 일에 종사하는 죄 많은 여인과 대화를 시작하셨다. 그리고 그 여인은 자신의 만남에 대해 동네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때 ‘완벽한 순간’을 기다리지 않고 듣고자 하는 누구에게나 곧바로 말해 주었다. 자신이 받은 메시지가 너무나 중요해서 그 여인은 망설일 수가 없었다.
둘째, 우리는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거나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또 아무개는 복음에 합당하지 않다고 단언해서도 안 된다. 예수님께서 심고 거두는 많은 비유에서 설명하셨듯이 복음의 씨는 좋은 땅과 나쁜 땅에 다 뿌려진다. 잡초는 밀 옆에도 자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악인에게서 의인을 구별해 내실 것이다. 우리의 임무는 단순히 씨를 뿌리고 거두는 것이다.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돌보실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시작하면서 예수님은 자신이 선사하는 물을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14절)이라고 하셨다.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받아들이자 그녀 자신이 생수로 가득한 샘이 되었다. “생수를 마시는 자는 생명의 샘물이 된다. 받는 자는 주는 자가 된다. 영혼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은혜는 사막의 샘물과 같아서 모든 것을 소생시키며, 멸망해 가는 이들에게 생명수에 대한 갈증을 일으킨다.”5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생수의 선물을 받아들이자. 그리고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이 생수를 건네자. 우리가 나누는 모든 대화는 그 물을 전할 수 있는 기회이다. 목마른 이들에게 우리는 이 선물을 주어야 한다.
1 Victor H. Matthews, “Conversation and Identity: Jesus and the
Samaritan Woman,” Biblical Theology Bulletin 40, no. 4(2010):
219, 220
2 Gary M. Burge, NIV Application Commentary: John(Grand Rapids:
Zondervan, 2000), pp. 140~141
3 Andreas J. Köstenberger, John, in Zondervan Illustrated Bible
Background Commentary: John, Acts(Grand Rapids: Zondervan,
2002), vol. 2, p. 42
4 엘렌 G. 화잇, 『시대의 소망』, 195
5 앞의 책
묵상을 위한 질문
1. 하나님은 무너뜨리거나 변화시키려는 분일 수도 있다고 생각되는가?
2. 정치 성향, 인종 차이 등으로 대화의 상대를 제한하는가?
3. 오늘 생수를 마셨는가?
발문
복음은 듣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언제 어디서나 전파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