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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와 성령 – 라준석 목사
큐티는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합니다. 베드로후서 1장 20절을 보면 “성경의 모든 예언은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21절에는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을 때는 해석해서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성령님이 역사하시면 말씀을 받는 것입니다. 큐티는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 말씀을 받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또 고린도전서 2장 11절에는 “만일 사람 속에 있는 그 사람의 영이 아니면 누가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영이 아니면 아무도 하나님의 생각을 알 수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생각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큐티시간은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의 생각을 받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비전과 꿈, 나를 향한 격려, 좋고 나쁨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을 듣고 하나님의 계획을 듣는 시간입니다.
12절을 보겠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들을 깨달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은 성령님에 통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보고 듣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을 통해 받는 하나님의 말씀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것은 가능한 일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큐티를 하겠다고 결심하게 만드십니다. 스스로 큐티를 하겠다고 결심하기는 힘듭니다. 큐티를 하는 자리에 가기도 힘듭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역사하실 때 우리는 큐티를 하겠다고 결심합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큐티를 해야지’하고 결정하게 만드십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시면 큐티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몇 가지 문제점 때문에 큐티를 하지 않습니다. 첫째는 게으름 때문입니다. 둘째는 바쁜 일정 때문입니다. 마지막은 부족한 믿음 때문입니다. 이것은 곧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을 치러야 하면 주일예배에 참석하지 않고 아버지 장례식에 참여합니다. 결혼식이 있는 날은 아무리 바빠도 결혼식에 참여합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생각을 받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우선 큐티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 큐티를 할 수 있도록 마음을 정해 주십시오.”
큐티를 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큐티를 통해 성령님이 역사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게 하십니다. 큐티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 사이에서 고민합니다. 큐티란 그 사이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메시지가 올 때는 여러 가지 형태로 옵니다. 깨달음으로 옵니다. 어떤 때는 충격과 찔림으로 옵니다. 명령과 결단으로 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분명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을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큐티는 나를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묵상하지 마십시오. 자신을 묵상하다 보면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묵상해야 합니다. 바다를 가르시며 40년 동안 만나를 내리시고 죽은 자를 살리신 하나님을 묵상하면 하나님의 메시지가 우리에게 옵니다. 사탄은 나를 묵상하게 만들고 내 형편을 묵상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하나님을 묵상하게 만듭니다. 큐티는 직통 계시를 받는 것과 다릅니다. 환상을 보는 것과도 다릅니다. 큐티는 성경이라는 텍스트를 통해서 메시지를 듣는 것입니다. 텍스트가 보여 주는 세계로 들어가서 그 세계를 보는 것입니다. 독자의 입장에서 텍스트를 보고, 거기에서 나의 상황에 맞는 메시지를 찾습니다. 그래서 큐티의 결과는 날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릅니다. 오늘 나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잘 듣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큐티는 적용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적용도 성령님이 역사하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받은 말씀에 순종할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메시지가 무엇이든 감사함으로 받으십시오. 그리고 실천하십시오. 우리가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두려움과 짧은 기억력과 욕심 때문입니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에 대한 불신입니다. 깨달음에서 실천으로 가는 길은 참 멀지, 결단할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나눔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
마지막으로 나눔입니다. 나눔에 성령님이 역사하셔야 합니다. 하용조 목사님과 조용기 목사님의 대화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두 분의 대화 중에 제 가슴을 치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나는 설교하기 위해 말씀을 읽지 않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 말씀을 읽습니다. 나는 그 말씀 때문에 살았습니다. 나를 살렸던 그 말씀을 성도들에게 전해 주니 성도들이 나처럼 살았습니다. 그것이 제 설교입니다.”살기 위해 말씀을 읽고, 그 감동이 된 말씀을 주일에 전하니 성도들도 살았다는 것입니다.
큐티 설교란 바로 큐티를 하는 사람이 하는 설교입니다. 전도 설교도 전도하는 사람이 하는 설교입니다. 큐티를 하는 것은 나누는 것입니다. 꿈도 나누고 슬픔도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시당할까 봐 부끄러워서, 욕먹을까 봐 두려워서 큐티를 나누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내가 깨달은 것을 나눌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부름 받았습니다. 목사든 전도사든 교사든 죽는 날까지 우리는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것입니다. 죽을힘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또 받고 그 말씀에 자기가 감동받아야 합니다. 자신도 감동하지 않는 설교에 누가 감동합니까? 말씀을 읽을 때 자기가 감동을 받아야 남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열심히 감동받고 남에게 감동을 주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출처 : 『큐티와 목회의 실제』두란노, 53-5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