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
이상국
나 고등학교 졸업하던 해
대학 보내달라고 데모했다
먹을 줄 모르는 술에 취해
땅강아지처럼 진창에 나뒹굴기도 하고
사날씩 집에 안 들어오기도 했는데
아무도 아는 척을 안 해서 밥을 굶기로 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우물물만 퍼 마시며 이삼일이 지났는데도
아버지는 여전히 논으로 가고
어머니는 밭 매러 가고
형들도 모르는 척
해가 지면 저희끼리 밥 먹고 불 끄고 자기만 했다
며칠이 지나고 이러다간 죽겠다 싶어
밤 되면 식구들이 잠든 걸 확인하고
몰래 울 밖 자두나무에 올라가 자두를 따먹었다
동네가 다 나서도 서울 가긴 틀렸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낮엔 굶고 밤으로는 자두로 배를 채웠다
내 딴엔 세상에 나와 처음 벌인 사투였는데
어느 날 밤 어머니가 문을 두드리며
빈속에 그렇게 날것만 먹으면 탈 난다고
몰래 누룽지를 넣어주던 날
나는 스스로 투쟁의 깃발을 내렸다
나 그때 성공했으면 뭐가 됐을까
자두야
끼니도 잇기 어려웠던 시절, 언감생심 온 동네가 다 나서도 안 될 대학 진학을 갈망하는 한 농촌 청년이 벌이는 사투가 눈물겹습니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는데. 아들의 비장한 단식을 대책 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는 어머니의 마음은 또 얼마나 아팠을까요. 세월이 흘러 장성한 아들은 가방끈이 짧아 세속적 성공을 하지 못했을지는 몰라도, 이렇게 진솔하고 따뜻한 시를 쓰는 시인이 되었습니다.
자두야!
이 정도면 까짓 대학 안 나와도 잘 살아온 것 맞지?
https://www.youtube.com/watch?v=Gj3kR86Fv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