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남긴 어두운 그늘
기억과 추억 사이/옛날 고향 이야기
2006-02-22 19:20:18
참혹한 전쟁이 끝난 지 오래됐지만 동네어귀 산야에는 그 때의 상흔이 깊게 얼룩져 있었다. 외형적으론 아늑한 산이고 평화로운 들녘이었지만 전쟁의 잔재들이 곳곳이 흩어져 있었다. 친구들은 가끔 산에 갔다. 특히 동네 아래녁 들판을 감싼 작은 야산에 올랐다. 숨바꼭질을 하거나 진달래를 꺾으면서 온 산을 헤맸다.
다른 산도 많았지만 그 산을 주로 간 것은 무엇보다 산이 낮고 무더기로 핀 진달래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산에서 내려다보면 군용 트럭이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가는 비포장도로가 보였고 동네에서 도로까지 아늑하게 연결된 황토빛 들길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늘 마음이 편했다. 바라보면 도로요, 들길이요. 논과 밭이라 분주하게 일하는 사람들의 다정한 모습을 늘 볼 수 있어서였다.
덩굴에 감기고 가시에 찔리면서 산을 헤매다 보면 요상한 물건을 만날 때가 있었다. 탄두에 팔랑개비가 붙어있고 새까맣게 녹이 슬어 잠자듯 누워있는 물건, 그것이 바로 팔랑개비 대포였다. 탄두에 팔랑개비가 달렸다고 해서 친구들이 막무가내 붙인 이름인데 가끔 그것이 팔랑개비로 바람을 파르르 일으키며 날아가 폭발하는 상상을 했다. 이상한 모양과 녹이 쓴 폐품 같은 몰골이었지만 무섭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손대지 않으면 터지지 않는다는 진리가 늘 머릿속에 박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군데 만이 아니었다. 군데군데서 녹슨 대포가 발견되었다. 두툼한 솔잎 위나 연분홍 진달래 그늘아래 누워 덧없는 세월을 한탄하고 있었다. 대포에 대한상식은 전혀 없으면서도 서로가 우길 줄은 알았다. 큰 돌로 대포를 때리면 터진다는 둥, 팔랑개비를 빼면 터진다는 둥, 서로 입씨름을 했지만 실행에 옮기는 간 큰 친구는 없었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군데군데서 대포를 만났지만 그냥 지나치는 일이 많았다. 대포가 그만큼 흔한 탓이기도 했다. 대포가 터져 사고를 당한 사람들도 없을뿐더러 그냥 놔두면 눈 맞고 찬비 맞아 녹슬고 상해 그냥 세월 속으로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야산만 전쟁의 상흔이 얼룩진 것이 아니었다. 언덕배기 우리 집 아래 도랑을 따라 펼쳐진 다랑논이나 밀서리를 해먹던 밭도 마찬가지였다. 산에 대포가 많이 뒹굴고 있었다면 논밭은 탄약의 보고였다. 마치 대포 속에 들어갈 탄약처럼 보였다. 쟁기로 논, 밭을 갈아엎으면 흙 속에서 탄약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연탄빛깔을 띤 탄약은 아주 요상하게 생긴 것들이었는데 마음 놓고 주우면 금방 한 고무신을 채울 수 있었다.
그렇게 주운 탄약을 동네 변두리에서 불을 붙이며 가지고 놀았다. 여기저기서 불꽃이 일었다. 탄약에 일단 불이 붙으면 탄약은 쉬익 김빠지는 소리를 내다가 쀼웅하고 밝은 꼬리를 내며 타올랐다가 이내 꺼져 버렸다. 김빠지는 소리를 내며 절정으로 타오르는 불꽃은 황홀했다.
그러나 그 불꽃이 사람들을 수없이 죽인 주범이란 걸 알지 못했다. 화르륵 타오른 절정의 순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산화가 되었는지를 알지 못했다. 전쟁 때는 죄 없는 사람들을 쓸어버리는 대포의 재료가 되었지만 아이들이 장난감으로 가지고 노는 걸 보면 탄약이란 존재도 이중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활 놀이에 비하면 탄약 놀이는 아주 사내다웠고 전투적이었다.
두 가지 놀이 다 동작을 필요로 했지만 탄약 놀이는 재빠른 동작을 필요로 했다. 혹시 불붙인 탄약을 집어 던져 초가집에 불이 붙을 까 싶어 신경을 곤두 세웠다. 물론 그런 불상사는 없었지만 난 어느 날 탄약의 위력을 실감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운악이 형이 불을 붙여 던진 탄약이 쉬익 소리를 내며 공중을 날으더니 그만 나뭇단에 떨어진 것이었다.
우리 집 언덕배기 아래 도랑 옆에 누군가 재워놓은 나뭇단이었다. 나뭇단이 불이 붙을 찰나 운악이 형이 쏜살같이 뛰어 내려가 불을 끄서 위기를 모면했지만 한동안 불안한 마음을 쓸어 내려야 했다. 만약 그것이 나뭇단이 아닌 초가지붕에 떨어졌다면 삽시간에 불길에 휩싸일 건 분명한 노릇이었다. 그런 위험이 있는 탄약을 심심하면 몸에 지니고 다니며 불을 붙이고 놀았으니 철없던 시절의 용감성은 그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것 이었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고 초등학교 6학년이 되자 탄약놀이도 시들해졌다. 산에서 보았던 팔랑개비 대포가 녹이 슬어 가는 도중에 친구들은 제 앞가림을 할 나이가 된 것이다. 중학교 입학시험을 치르려면 그 따위 놀이는 이제 한 물갈 수밖에 없었다. 그냥 추억으로 마음 속 한켠에 진하게 묻어 두는 일이 도리어 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