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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뒤늦게 첩자의 소식을 듣게 된 사도명과 오련회의 수뇌부들은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모용우는 재빨리 사람들을 시켜 화린을 빼내올 것을 지시했고 그
자신도 대기실이 있는 곳을 향해 직접 움직였다. 여러 사람들이 첩자
의 등장에 긴장해 있는 것과는 반대로 사도명은 처음부터 코방귀를
뀌며 신경조차 쓰질 않았다.
‘그까짓 첩자 나부랭이 따위에 이 몸이 직접 움직일 필요는 없지!
아버지께서 알아서 잘 하실 테니까! 하하하! 어떤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놈인지 얼굴이 궁금하긴 하군! ‘
자만심에 가득 차 있는 사도명과는 대조적으로 모용우는 재빠른 움직
임으로 추남과 화린을 대기실에서 가장 먼저 빼내올 수 있었고 지금
그들과 함께 자신의 처소로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추남과 화린은 모용우의 그런 배려들이 전혀 달갑지 않았지만
대놓고 싫은 기색을 보일 수는 없었기에 잠자코 그의 행동을 지켜볼
뿐이었다.
모용우의 처소 즉, 모용세가를 비롯한 오련회의 핵심 인물들만을 위한
처소로 발걸음을 옮기던 중 모용우는 뜻밖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뭐라? 그 말이 사실이냐? “
전음성으로 자신에게 소식을 전해온 수하에게 다시 한번 확인을 한
모용우는 일이 아주 재미있게 돌아간다는 생각에 한쪽 입꼬리를
살짝 치켜들었다.
“진소저! 일이 아주 재미있게 돌아가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런 흥미로
운 일에 이 모용우가 빠져서는 아니 되겠지요. 하하하! “
“예? 무슨? “
영문을 모르겠다는 화린을 향해 모용우는 그만의 특유의 느끼한 웃음
을 지어보이며 왔던 길로 몸을 돌렸다.
“하하하! 진소저도 궁금한 모양이군요. 하긴 화운문에 이런 말도 안 되
는 일이 일어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저도 아직 정확한
정황을 모르고 있으니 일단 같이 현장에 가보면 제 말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남기며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가는 모용우를
바라보는 추남의 시선이 곱지가 않았다.
‘정말 마음에 안 드는 놈이라니까!’
화린에게 뭔가 수작을 부리려는 그 태도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자신이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 대한 모용
우의 태도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모용우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고 힘이 없어 보이는 상대는
벌레 쳐다보듯 깔보는 경향이 아주 심했다. 추남도 그런 깔보는 대상
에 속해 있었는데 화린의 일행이 아니라고 한다면 모용우는 추남을
결코 동행시키지 않을 인물이었던 것이다.
화린 역시 모용우가 추남을 대하는 태도를 보며 그의 성격을 대충 파
악할 수 있었고 안 그래도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 겉모습과 더해 거
부감이 더욱 심해졌다.
기분이 나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잠자코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지
금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추남
은 화운문의 견고한 경비체제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분이 확실한 모용우에게는 그런 경우가 없었지만 대기실로 가는 도
중 여러 번의 검문이 있었는데 자신과 화린을 쳐다보는 시선이 매우
날카롭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러 검문 과정을 거치며 대기실 근처에 도착했을 때 아직 거리가 상
당히 많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대기실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포진되
어 있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저마다 긴장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병장기를 꼭 부여잡고 있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처음에 모용우의 이상스런 말을 들었을 때부터 무슨 일이 터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지금 온통 피범벅이 되어 들것에 실려 나가는
화운문의 제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추남과 화린은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첩자가 화운문에 침투했다는 사실은 이미 그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
고 또한 그 일로 인해 별로 따라가고 싶지 않는 모용우를 따라가고 있
던 것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지금 이들을 이 지경으로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화운문에
침투한 첩자일 가능성이 거의 확실했고 당금 무림에 있어 화운문에
이토록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인물이 누가 있는가에 대해서 관심
이 쏠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설마 마교의 교주라는 작자가 정면으로 도전해온 것인가? 에이.. 설
마 아무리 마교 교주가 제 정신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미치지 않은 이
상 어쩌자고 이런 짓을 하겠어..앗! 설마 지금 이 일을 시발점으로 전
면전으로 돌입한다는 경고의 의미란 말인가? ‘
그 동안 사천행 길을 따라오면서 추남과 화린은 알고 싶지 않아도 주
변에서 쉼 없이 떠들어대는 무림인들의 입을 통해 무림의 사정을 자
세하게 파악하고 있었고 화운문의 첩자, 그리고 엄청난 유혈 사태를
불러일으킨 현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자연스럽게 마교와의 전면전이라
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오라버니..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는 것 같은데요.. 어떡하죠? ]
약간의 근심어린 표정의 화린의 전음성을 들으며 추남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주먹을 꽉 말아쥐며 무언가를 다짐하는 모습을 보였다.
[걱정하지 마. 별일없을 거야.. 그리고 만약 전면전이 벌어진다고 하더
라도 우리 몸은 스스로 지킬 능력이 있잖아? ]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을 하는 추남의 듬직한 모습에 화린은 저절로
마음이 놓이는 듯한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거리가 점점 가까이 좁혀짐에 따라 대치 상황은 보다 분명하게 들어
나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사람들이 대기실을 포위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던 그들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이 들어났다.
대기실에서 조금 앞으로 떨어져 나온 공터를 중심으로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한 인영을 포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부
상자들이 실려 나오는 것을 보면 뭔가 대단한 격전이 일어난 듯 보였
기에 추남과 화린은 긴장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