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묘 앞에서, 시간을 줍다
서울 광장 시장에서 도보로 가면 약 15분 정도 소요되고, 지하철 1호선과 6호선이 교차하여 대체로 교통편은 양호하다. ‘동묘앞역’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사람들은 대개 도깨비시장, 벼룩시장을 연상한다. 하지만 동묘시장은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장터 문화와 서민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역사적인 근대사의 한 장면이다. 조선시대 보부상들의 발걸음이 빈번한 것은지근거리에 위치한 광나루 포구와의 영향도 많이 받았을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풍물시장 등 수식어가 많이 등장하는 관심지다. 수년 전만 해도 할아버지들과 가끔 눈에 띄는 노숙자들이 등장하여 썩 좋은 이미지보다는, 중, 고 시장이라는 강력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시골 장터처럼 노점상들이 주변을 지배하여, 다양한 헌 옷이나 아주 낡은 물건을 팔고 고성 등, 흔히 도깨비시장이고 부른다. 요즘은 외국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와, 관광명소나 만남의 장소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그러나 내게 이 시장은,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는 발자취로 잠시나마 추억을 열어 볼 수 있는 보석과 같은 창고이다.
동묘는 임진왜란 후 1599년 (선조 32년) 에 명의 요청으로 동서남북 중, 1601년 이곳에 있는 동묘(동관왕묘)만이 완성되었고, 서울시 유형 문화유산 1호로, 중국 건축양식이 일부가 보존된 것은 다행이다. 현재 서울 문화제의 일부로 유교 행사나, 무속 유적지로 이용되지만, 지금은 완전히 개방되었다. 이는 조선과 명나라 군사와의 연대를 기념하고 전쟁 참여에 대한 감사의 표시라고 하지만, 자유로운 의사 결정은 아닐 것이다. 관우는 후한 말기 유비와 의형제를 맺은 촉한의 무장으로 동오에게 붙잡혀 사망했으나 그는 충, 의, 신으로, 한국 사람들한테는, 의리의 상징으로 가끔 사내들이 술좌석이나 잡담할 때 자주 이용한다. 제례일 자는 매년 음력 6월 24일로( 관우가 죽은 날로 추정), 관우와 그의 측근인 관영, 주창 등 4위를 함께 모시는 행사다. 행사와 홍보는 거의 종로구 국가유산청 주관으로 진행하는데, 일반 시민들도 참관하여, 전통 장터의 흐름과 시민 문화 공간으로 사용하는 기능도 한다.
동묘는 조선 광해군이 관운장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 즉 그 당시 동관왕묘(東關王廟)에서 비롯한 이름이다. 그동안 일제강점기를 지나고 한국전쟁의 폐허를 겪은 곳으로. 도시의 이미지와는 잘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시민들의 이목을 받지 못했다. 하여 서울의 중심 종로의 끝자락에 있는 외로운 섬처럼 존재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사당보다 더 강렬하게 기억되는 것은, 우선 주변 환경과 동묘 건물의 희미한 단청도 한몫하고, 그 앞에 펼쳐진 ‘풍물시장’ 때문이다. 풍물시장의 범위는 동대문역에서 동묘와 신설동역까지 완전히 점령되고 있다. 대략 6km가 훨씬 넘는 지역으로, 종로 상권과 연결된 청계천, 광장시장 등을 포함하면 상당히 방대한 동북부 상권을 갖추고 있다. 현재 개인적인 관리보다는, 좀 더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은 개인적인 소견이다.
서울 동묘 앞 풍물시장은 소개한 그대로 별의별 물건이 진열되어 많은 인파로 북적인다. 이곳은 삶의 퇴적물들이 한곳에 모여 역사를 볼 수 있는 산물들이 즐비하다. 낡은 라디오, 놋그릇, 먼지를 뒤집어쓴 LP판, 유행과 거리를 둔 헌 옷들, 미군 부대에서 흘러들어온 군복이며, 조잡한 물건마다 사연이 있고, 누군가의 인생이 묻어 있다. 나는 아주 가끔 가방을 메고 이곳 동묘를 찾는다. 일주일에 최소 한 번 이상은 계획을 세우지 않고 정처 없이, 아무런 이유 없이, 산책이 필요해서도 아닌, 마음이 쓸쓸함도 아닌, 그저 세월의 흐름이 궁금할 때, 이 골목과 운장이 나를 부르면 어김없이 불려 온다. 늦가을 햇살이 이마에 내려앉은 어느 오후에, 바람을 훔쳐본다. 아낙네와 노인이 작은 돗자리에, 이별의 물건들을 펼쳐놓으며 잠시 주춤거린다. 어느 중년 남성은 수첩 같은 것을 손에 쥔 체 그 물건들을 살핀다. 어떤 이는 정체 없는 골동품을 들고 흥정하고 흔드는 광경은, 오래전에 사라진 지 오래된 연극을 보는 한 장면이 연상된다. 바로 옆의 중절모의 노인도 손때묻은 잉크와 펜촉, 붓, 초등학생용 누런 공책을 판다. 그는 옷 입은 행색과 복장이 나와 유사하여 관심을 가져본다. 이거 어디서 나온 거요? 비루한 행색의 영감이 자세히 설명한다. 자기 고향이 숭인동이라며, 많은 사설로 나의 관심을 사려한다. 이 물건은 자기가 사용하던 것이라며, 피식 웃어 보이지만, 그 웃음엔 지난날의 그리움과 아련한 회한이 섞여 있다. 나는 지갑을 열어 영감의 물건을 몽땅 샀다. 감사 표시로 천원을 깎아주어 고맙게 받았다. 얼마 되지는 않지만, 그 물건 안에 담긴 시간과 공간을 어찌 돈이라는 작은 가치로 따질 수 있는가. 우리 집사람은 지저분하다며 휴지통에 모든 흔적을 통합한다. 그러므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관념들은, 우리가 죽는 순간 우리의 의식은 육신에서 빠져나가 융화하여 사라진다. 시인은 주절인가. “무심한 풍경에 머문 발걸음이, 오래된 기억은 중고 물건보다 따뜻했다.”. 문장이 숨 쉬는 동묘는 그렇게, 지나간 인생의 삶을, 조용하게 시, 공간을 위해 전시되었으며, 그곳을 서성이고 모인 사람들 또한, 단순한 교환의 소비자가 아니라, 서로의 추억을 팔아주는 관념의 존재였을 것이다. 중고 시장의 다양한 모습은 매일 변한다. 어느 날은 추억도 아련한 풍로와 어른들의 베개인 목침, 또한 옛적에 어머니의 슬란 치마의 화려함, 동정 저고리도 눈에 아련하다. 이런 것들은 마치 오래된 앨범을 뒤적이듯이 손끝으로 시간을 넘기며 만져보는 감성의 배려다. 그래서 이곳은 일반 중고 시장이나 벼룩시장의 기능보다, 과거를 말해주는 기억 보따리를 사주어 중요시간을 회생시키는 상점. 돈을 벌기보다는 무엇 하나라도 다시 살아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많다. 손때묻은 그릇, 누더기가 된 군복, 금이 간 컵 등은, 전쟁과 삶을 통한 증표이자 요즘 젊은 청년들에게도 배움을 주는 역사 서적으로 손색이 없다.
내가 동묘를 자주 가는 이유는 필요한 중고 서적이나, 새로운 물건을 찾기 위함도 있지만, 시장의 구석구석을 지나면서 거니는 그 자체가 한 줌의 詩와 글이 된다. 동묘의 거리에는 오래 익은 자명종 소리가 아직도 시간을 깨운다. 팔고 사기 위함보다, 돌아 볼 수 있는 시선이다. 여기에서는 자명종 소리도 천천히 울리고, 행인들의 발걸음도 적당히 느리다. 노인들이 건네는 말에는 조급함이 없고, 돗자리에 앉은 풍경은 누군가의 기다림과 삶의 마지막 장면이 된 그것처럼 고요해 보인다. 지친 다리와 함께 동묘를 나서는데 허기가 밀려온다. 나는 붕어빵 하나를 사서 입속에 넣으니, 겉은 바삭하고, 속은 달콤하여 단맛이 강한 여운을 남긴다. 좌판에는 몇 개 남아있는 붕어가 갈색으로 변하여 갈 곳을 찾고 있다. 사람의 인생도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오래 남지 않은 시간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서울 중심의 끝자락 풍물시장에는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다. 아니, 그곳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방식’을 지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