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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학명
녹나무과 |
Cinnamomum camphora |
이글거리는 열대의 햇빛 아래 짙푸름의 나무들 사이를 비집고 아름드리의 우람한 몸집을 자랑하는 아열대의 대표적인 큰 나무가 녹나무다. 한자 이름은 장(樟)이며, 예장(豫樟), 향장목(香樟木)이라 고도 하여 예부터 좋은 나무로 널리 이용되었다.
키 40~50미터, 줄기둘레가 장정 10명이 팔을 뻗어 맞잡아야 될 정도로 15미터가 넘게 자란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굵고 키가 큰 나무 중 하나다. 원래 자라는 곳은 열대와 아열대이며, 일본이나 중국의 양쯔강 이남에서도 자라고 있다. 제주도를 비롯한 남부 섬 지방은 녹나무가 자랄 수 있는 최북단 경계의 가장자리에 해당한다.
녹나무는 크게 자라고 목재는 비교적 단단하며, 물속에서도 잘 썩지 않으므로 예부터 배를 만드는 데 널리 쓰였다. 1991년, 진도 벽파리라는 옛 항구의 갯벌에서 길이 19미터, 중앙 지름이 자그마치 2.3미터나 되는 녹나무로 만든 송·원(宋·元)시대의 중국 통나무배가 발굴되었다. 또 1986년, 신안 앞바다에서 인양된 같은 시기의 중국무역선에서도 선체의 격벽(隔璧)을 녹나무로 만들었다. 일본의 역사책 《일본서기》에 보면 그들의 잡다한 시조(始祖) 신은 신체 각 부위의 털을 뽑아 여러 가지 나무를 만들었는데, 그중에서 눈썹 털로 녹나무를 만들고 배를 만드는 데 쓰라고 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선박은 물론 여러 가지 용도로 녹나무를 썼다. 그들이 자랑하는 백제관음을 비롯하여 많은 불상도 녹나무로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녹나무를 선박재로 사용한 예는 없으나, 거북선을 비롯한 우리 전함의 외판을 보강하기 위한 재료로 녹나무가 가장 적당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2004년, 경남 창녕에서 발굴된 6세기경에 축조한 가야고분의 목관이 녹나무였다. 일부에서는 무덤의 주인이 평소 배를 타고 다니다가 죽어서 관으로 재활용했다는 주장도 있다. 발굴된 관의 모양이 마치 배 밑바닥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녹나무는 배 만들기 이외에도 여러 가지 쓰임새가 있었다. 고려 원종 14년(1273)에 원나라에서 황제의 용상을 만들 녹나무를 요구하였고, 이어서 10여 년 뒤인 충렬왕 9년(1283)에는 특별히 탐라도의 녹나무를 보내 달라는 기록이 있다. 유럽까지 정벌하여 한때 세계에서 가장 큰 왕국을 만들었던 원나라 임금의 용상을 만드는 재료가 될 만큼 녹나무는 우량재였다. 나무속에는 ‘장뇌향(樟腦香, Camphor)’이라는 일종의 방충제가 들어 있다. 덕택에 녹나무로 만든 옷장은 좀이 옷을 갉아먹지 않으므로, 예부터 고급 가구재로도 이용되었다. 의약용으로는 강심제로 쓰이고, 무연화약의 제조 등 공업원료로 이용되기도 했다.
제주도에서는 육지에서의 복숭아나무와 마찬가지로 녹나무를 집 안에 심지 않는 풍습이 전해온다. 녹나무가 있으면 귀신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조상의 제사를 모실 수 없다는 믿음 때문이다. 또 녹나무 잎은 예로부터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고 널리 알려져 있는데, 갑자기 위급한 환자가 생기면 녹나무 잎이 깔린 온돌방에 눕히고 불을 지핀다. 강심제로 쓰이는 장뇌(camphor)가 나와 환자에게 충격을 주어 깨어나게 하는 것이다. 부처님오신날 전후에는 녹나무 잎을 넣어 시루떡을 만들기도 했다. 향기도 좋지만 더 오래 떡이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잎은 어긋나기로 달리며 긴 타원형인데, 윤기가 있고 두꺼우며 가장자리에 톱니가 없거나 희미한 물결모양의 톱니가 있다. 어린가지는 황록색이고 윤기가 자르르하며 어긋나기로 달린다. 어린 잎은 붉은빛이 나므로 봄부터 초여름까지 전체가 특이한 붉은빛으로 보인다. 잎맥은 아래쪽의 세 개가 가장 뚜렷하게 보이고 뒷면은 약간 희끗희끗하다. 열매는 콩알 크기 남짓한데, 처음에는 초록색으로 달려 있다가 가을이 되면 흑자색으로 익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