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양자역학 등 첨단물리학 이론으로 자주 인용되는 이론이 '카를로 로벨리'의 여러 저서들로 소개되어 있더군요.
존재란 개념은 인간만이 가진 고유개념으로 여기서 Self(자아)가 탄생했고 이 자아가 경험하는 세계는 실재가 아니라는 등등의 이론.
佛法을 공부하는 저와 또한 불교에 대해 진지하신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 중 하나가 이 주제인듯 합니다. 현재까지 진화된 과학주의는 우주의 기원으로부터 거시세계의 물리법칙 그리고 우리 생명체의 형성에서부터 양자역학과 같은 미시세계에 이르는 참으로 대단한 앎의 영역을 확장 해 왔습니다. 또한 물리학자들의 지향점 인 見의 방향이 순수한 한도 내에서는 이러한 궁극의 구조와 원리를 드러내는 앎의 영역을 앞으로도 더 확장 해 가리라고 봅니다.
그러나 제 관점에서는 이미 붓다께서 다 알고 계셨던 부분에 해당되는 사실들을 그간 2600여년이 지난 지금에사 알게 되었다고 과학주의자들은 흥분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까지 파악된 물리학의 결론도, 존재가 아니라 관계 뿐이라는 둥, 무한과 연속이라는 허상에 기반한 관념이 만든 한 단면 속에서 자아라는 인간의 상징언어(어행)가 만든 허구세계가 탄생 했다는 둥, 이미 붓다께서 보고 계셨던 실상의 구조를 지금에서야 물리학이 11차원 우주에 도달했다고 무슨 대단한 발견이나 한 냥 떠들고 있더군요.
이미 붓다께서는 지금 우리가 생명현상에서 마코프블랭킷이라고 이해하는 현상들을 경계와 法으로 설파 하셨고 두겹 및 '內로와 外로', '식과 명색'의 호연연기 등등(즉 세계와 인식의 불가분성 등)을 통찰하여 실체를 보도록 훨씬 쉽고 보편적이고 친절 하기까지 한 방식으로 설파 하셨지요.
다만, 물리학의 앎의 지향점은 여전히 생존의 세계에 메달리는 반면, 붓다께서는 인간이 이 생명현상이라는 국소우주적 고리를 빠져 나오는 궁극의 과제를 가르쳐 주신 것이라고 봅니다.
이미 상대성이론 이나 중력장 등등은 과거의 유산이 되었고 양자세계부터 11차원의 존재계를 설명하는 현재의 이론들이 동원하는 용어(특히 수학적 방식이라는 과학도들의 고유 상징기호)들이 이해가 안되어 헷갈리는 것이나 佛法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붓다의 말씀을 이해를 못하는 것이나 매 한가지라고 보며, 과학주의자들은 Outsight를 바탕으로 내달리고 있으나 붓다께서 보시는 Insight의 차원에는 영원히 도달하지 못하리라고 봅니다. 즉 見의 방향이 다르다는 것이지요.
인터넷을 보면 물리학의 진화로 드러난 여러 사실들이 불교의 내용과 일치 한다는 둥 하며 호들갑을 떠는 것을 보면 한심하고 웃기기까지 합니다. 불교에 대한 이해를 이미 가지신 분들은 붓다의 정설을 따르므로서 현상을 직관하고 있는 큰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봅니다. 현대물리학의 과제 중 하나가 '물리적인 것과 현상적인 것 사이에서 이를 연결하는 관계를 푸는 것'이 과제라고 하던데 우리는 色과 名이 어떻게 상호관계 속에서 접점을 찿았는지에 대한 답을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