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미나의 추억 (제1회 / 정광희)
어둑어둑한 동네의 뒷길에서 쓰레기 봉지를 찢어 먹을거리를 찾던 미나는 어떤 아저씨의 발길에 채어 멀리 나가떨어졌습니다. “바로 네놈이로구나, 우리 집을 지저분하게 만드는 놈이.” 미나는 옆구리가 아프고 눈에서는 수많은 별들이 번쩍이었습니다. 한참 동안 꼼짝을 못하던 미나는 천천히 일어나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미나는 자기가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무작정 걷고 또 걸었습니다. 먹은 것도 별로 없이 걷다 보니 다리도 아프고 피곤하기도 해서 미나는 잠자리를 찾았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작은 나무가 보이자 억지로 나무 밑까지 걸어 가서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앉아서 하늘을 쳐다보니 하늘엔 별들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지만 처음 집을 잃었을 때와 같이 무섭지는 않았습니다. 미나는 배고픔 때문인지 잠이 오지 않았고 ‘내가 왜 이렇게 힘들게 살게 되었을까? 전에는 행복했었는데….’ 이런 생각이 들자 그래, 그날 아침 이었어. 미나의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미나는 집을 잃어버리 던 날 아침을 떠올렸습니다. 그날 아침도 미나는 잠에서 깨어나자 기지개를 켜고 기분 좋게 아래층으로 내려갔습니다. 주인 아저씨와 아줌마는 아침 식사를 하시다가 환 하게 웃으시면서, “미나야 잘 잤니?” 말씀하시면서 뒷마당으로 나가는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미나는 야아웅 야아웅 아저씨와 아줌마에게 인사를 하면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미나야, 맑은 공기 마시고 곧 들어오너라, 우리 출근하기 전에….” 미나는 비 오는 날을 빼고는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오면 아저씨 아줌마는 출근을 하십니다. 이때부터 커다란 집은 미나만의 집이 됩니다. 미나는 아줌마가 미나 밥그릇에 담아 놓은 밥을 먹고 우유를 홀짝거리면서 아저씨 아줌마를 기다립니다. 커다란 집 안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기도 하고 창가에 놓인 미나의 의자에 앉아서 낮잠을 자기도 합니다. 아저씨 아줌마는 딸이 둘이 있습니다. 큰딸의 이름은 은혜이고 작은 딸의 이름은 다혜라고 부릅니다. 두 딸들은 모두 집을 떠나 따로 살고 있습니다. 미나는 아주 어릴 때 다혜 언니네 집으로 왔습니다. 그때 언니네 집엔 나이 많고 심술궂은 고양이 졸리가 있었습니다. 졸리는 항상 미나를 귀찮게 했습니다. 틈만 나면 미나를 때리고 미나 밥도 다 빼앗아 먹으면서 잠을 자려면 아프게 건드렸습니다. 어느 날 다혜네 집에 오신 아줌마가 졸리와 미나를 보시고, “다혜야, 미나는 내가 데려다 기르겠다. 그냥 놔두면 미나가 너무 불쌍하구나.” 그날 밤 미나는 아줌마네 집으로 왔습니다. 밖으로 나온 미나는 다시 한 번 기지개를 켜며 푸른 하늘을 쳐다봅니다. 하늘은 푸르고 맑은 공기는 상쾌했으며 싱그러운 잔디 냄새랑 꽃밭 꽃향기가 미나의 마음을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미나는 뒷마당을 어슬렁거리다가 날아가는 파리를 쫓아가기도 하고 빨갛게 익어가는 방울 토마토를 건드려 보다가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울타리 밖에서 떠들썩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미나는 집안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깜빡 잊고 울타리 틈으로 밖을 내다 보니 옆집에 사는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지 여행 가방을 들고 차를 타고 있습니다. 아이들도 세 명인데 모두 예쁜 옷을 입고 싱글벙글 웃으며 차를 탑니다. 매일 집 안에만 있는 미나는 나도 어디든지 먼 곳에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하다가 아! 참, 집 안으로 들어가야지, 하는 생각이 떠오르자 재빨리 나왔던 문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미나는 아저씨 아줌마를 불렀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아저씨 아줌마는 미나를 기다리시지 못하시고 그냥 출근을 하셨습니다. 미나는 잔디밭을 왔다 갔다 하다가 그늘진 잔디밭에 앉아서 졸다가 다시 잔디밭을 뛰어다녔습니다. 배도 고파지고 목도 마릅니다. 미나는 자기를 부르지도 않고 출근하신 아저씨 아줌마가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미나는 혼자 집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었는데 여행을 떠나던 이웃집 사람들이 생각나자 집 밖으로 나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나는 울타리 위로 훌쩍 뛰어올랐습니다. 그리고 울타리 밖 땅으로 살포시 내려앉았습니다. 미나는 슬슬 길을 따라 걷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작은 강아지의 목줄을 잡고 걸어오십니다. 작은 강아지는 공연히 미나를 보고 으르렁거립니다. 미나는 다혜 언니네 집에 살 때 미나를 괴롭히던 졸리 생각을 했습니다. 이때 자동차가 옆으로 지나갑니다. 그런데 그 차가 얼마나 빠른지 미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이런 큰길을 한번도 혼자 걸어 본 적도 없었고 길을 나서면 항상 차를 타고 아줌마 무릎 위에 앉거나 뒤 의자에 앉아서 갔기 때문에 차가 무섭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습니다. 동네길이라 차가 많지도 않았고 차들이 빨리 가는 것도 아닌데 혼자 길을 나서고 보니 길에는 웬 차가 그리도 많고 그 차들은 왜 그렇게 빨리 달리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멀리서 오는 차만 보여도 집 옆으로 바짝 붙어 서서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찻길을 건너가는 것도 아니고 옆으로 지나가는 차가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미나는 자기가 어디에 와 있는지도 모르게 되었고 이젠 자기가 살던 집이 어느 집인지도 모르게 되었습니다. 미나는 차를 피하다 보니 차가 잘 다니지 않는 뒷길로 들어섰습니다. 차도 사람도 잘 다니지 않는 뒷길로 걷다 보니 차에 대한 무서운 생각도 조금 없어졌습니다. 어디 앉을 자리도 마땅치 않았고 마음은 불안해서 계속 걷다 보니 어느덧 해가 지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걷기만 한 미나는 한 발짝도 더 걷고 싶지 않아서 커다란 봉지 옆에 기대앉았습니다. 졸려서 눈을 감고 잠이 들려는데 음식 냄새가 코를 건드렸습니다. 미나는 눈을 번쩍 뜨고 두리번거렸습니다.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음식 냄새는 계속 풍겨 옵니다. 미나가 기대앉아 있는 봉지는 쓰레기 봉지였습니다. 아줌마네 집에 살 때는 깨끗한 그릇에 담긴 깨끗한 음식을 먹었지만 지금 미나는 음식 냄새 때문에 배는 더 고파지고 먹고 싶은 생각만 간절합니다. 미나는 쓰레기 봉지를 입으로 물어뜯고 발톱으로 찢었습니다. 캄캄해 서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온갖 더러운 것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미나는 냄새만으로 먹을 것을 찾아 먹었습니다. 말라 버린 빵 쪼가리랑 딱딱해진 튀긴 감자랑 맛이 변해 버린 깡통 참치는 이제까지 먹었던 어떤 음식보다 맛이 좋았습니다. 하루 종일 걷고 금방 먹은 음식 때문인지 미나는 졸음이 쏟아져서 쓰레기에 묻혀서 그냥 잠이 들었습니다. 눈앞이 환해서 눈을 뜨고 보니 아침 해가 떴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흩어진 쓰레기로 엉망진창입니다. 뒷길이라 사람들이 없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미나는 얼른 그곳을 떠났습니다. 오늘도 미나는 아무 생각 없이 걷고 또 걸었습니다. 이렇게 미나 혼자 만의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여름이 가고 겨울을 지나면서 미나의 통통했던 몸은 바짝 말라 갔고 더러워졌으며 사람들이 무서워서 피해 다니는 길고양이가 되었습니다. 뜨거운 햇볕 아래서 걷고 있는데 길가에 이상한 것이 보였습니다. 조심스럽게 가까이 가 보니 아주 더럽고 조그마한 고양이가 쓰러져 있습니 다. 미나는 여기도 나 같은 집 잃은 고양이가 또 있네,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속으로는 반가웠습니다. 미나는 쓰러져 있는 고양이를 발로 건드려 보았습니다. 쓰러진 고양이는 억지로 눈을 뜨고 미나를 보더니 다시 눈을 감고 벌벌 떨기 시작했습니다. 미나는 부드럽게 물었습니다. “얘, 너 어디 아프니?” “아니야, 난 아프지 않아, 난 너무 배가 고파.” “그럼 일어나서 우리 먹을 것을 찾아보자.” 미나는 왠지 모르게 힘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자기보다 힘없는 누구를 도와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이제까지 추운 겨울을 두 번 지내는 동안 혼자 지내면서 항상 무섭고 외로웠었는데 이제부터는 저 작은 고양이와 함께 다니면 훨씬 힘이 생길 것 같았습니다. “너 일어나서 걸을 수 있겠니? 넌 이름이 뭐니?” “일어나 볼게, 내 이름은 흰 구름이야.” “네 이름이 흰 구름이라고? 무슨 흰 구름이 이렇게 검고 더러우니? “지난여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목욕을 못 했으니 더러워졌겠지.” “미안해, 내가 흉을 보아서. 내 이름은 미나라고 한단다. 오래전에 우리 아줌마의 작은 딸 다혜가 지어 주었어.” 이렇게 서로 이름을 알려 주면서 말을 하게 되자 흰 구름도 힘이 생기는지 벌떡 일어났습니다. 두 고양이는 함께 걸어가면서도 혹시 먹을 것이 없나 살피고 있습니다. 미나가 누가 떨어트렸는지 커다란 삶은 고구 마를 발견했습니다. “흰 구름아 여기 고구마가 있네, 이 고구마 나누어 먹자.” “고마워. 내가 없었다면 언니 혼자 다 먹을 수 있었을 텐데 미안해.” “그렇지만 우린 함께 있고 이렇게 나누어 먹는 것이 좋지 않니? 먹을 것은 또 찾으면 되니까.” 미나와 흰 구름은 고구마를 나누어 먹고 나니 서로 의지하는 마음이 들고 힘도 생겼습니다. 미나가 물었습니다.” “흰 구름아 너는 왜 집을 잃고 혼자 다니고 있니?” “오래전이었어, 우리 아줌마의 엄마가 많이 편찮으셔서 병원에 입원 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할머니가 입원하신 병원으로 가던 중 하이웨이에서 차가 고장 났어. 그래서 아저씨가 견인 트럭을 불렀어. 견인 트럭은 아저씨 아줌마를 트럭 앞자리에 태우고 차를 끌고 가까운 도시의 자동차 정비소로 갔지. 아저씨와 아줌마는 할머니 생각과 고장 난 차 걱정에 나를 잊으신 것 같았어. 정비소에 차를 맡기신 후 아저씨 아줌마는 차를 빌려 타시고 서둘러 할머니에게로 떠나셨어. 내가 차 안에서 아무리 불렀지만 듣지 못하신 것 같았어. 정비소에서 일하던 사람이 나를 보고 문을 열어 주어서 차 밖으로 나왔지만 아는 사람도 없고 일하는 사람들은 내게 관심도 없고 모두 자기들 일에 바빴어. 나는 정비소를 떠나서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랐고 너무 너무 무서웠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가 되고 보니 이 세상이 무섭기만 했어. 사실은 지금도 사람들이 지나가도 무섭고 지나가는 차들도, 가끔 만나는 커다란 짐승들도 모두 무서워.” 흰구름 이야기를 들으면서 미나는 나도 너와 똑같은 마음이었단다. 지금도 너와 똑같은 마음이란다,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미나와 흰 구름은 날이 어두워지자 잠잘 곳을 찾아야 했습니다. 오늘은 운이 좋은지 쓰러져 가는 빈 헛간을 발견했습니다. 미나와 흰 구름은 헛간 안에 들어가자마자 그냥 쓰러져서 잠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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