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려는지 흐린 날의 아침 몇 년째 월급이 없는 밤을 자고 나간 남편의 구겨진 이불 같은 아침 밤새도록 공부하다가 비몽사몽간에 알바하러 간 딸의 잠옷 같은 아침 가족이 잠든 밤에도 홀로 깨어 컴퓨터 앞에서 웅크리다가 아침에 노랗게 잠든 아들의 양말 같은 아침을 세탁기에 넣고 돌리는 아침입니다 나는 지난 일 년간 강사로 쌀값이나 벌었을까 긴 겨울방학 강사료 끊기고 피부양자 인정 요건 상실에 따른 의료보험료 납부통지서를 보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울화병을 선사하는 아침 아들의 입영통지서를 받아 든 아침 배워야 잘 살 수 있다는 말 더는 할 수 없는 검은 아침입니다 생략된 아침을 사는 아들의 아침 시래기 주워 팔던 할머니가 대통령 팔 붙잡고 우는 아침 나도 누군가의 팔 잡고 싶은 아침 미친 세상이 미친바람으로 지나가기를 기도하는 아침 나의 기도가 늘 턱없이 부족한 아침 하나님은 아직도 아침을 사랑하시는지 환한 햇살을 쏟아붓는 이 찬란한 아침
- 시의 행간 하나하나가 잘 읽힌다. 감정의 과잉이나 과장이 없다. 내용으로 보자면 한없이 아픈 이 시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도 얼마쯤은 놀라울 만한 감정절제에 힘입은 것이리라 읽으면 읽을수록 이 시의 비유가 놀랍다. 화자의 삶과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적절히 조화시킨 점도 훌륭하게 느껴진다. 더구나 이 시는 일련의 상황들이 남의 이야기 같지 않게 만드는 힘이 있다.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한없이 여리고 약한 화자의 심성이 엿보인다. *시 해설/ 강원대 교수 시인 한명희
검은 꽃 / 안명옥
봄날 병원을 가다가 문득 길가 꽃들을 본다
귀 바퀴 안에 삶의 소음들을 뒤집어 쓴 채 살아가는 저 꽃들
귀 속을 들여다보던 의사는 높은 격음을 잘 듣지 못하는 청력 꽃송이 하나 지고 말았단다
병원 유리창이 머금고 있던 울음을 왈칵 쏟아버리고 있다
귀에 핀 꽃을 통해 보니 나는 이제 내가 잘 보인다
내가 사랑한 사람들은 아픈 사람들뿐이었다 놓치는 음만큼 세상 돌아가는 것이 어두워진다 어두워지는 건 휴식이 주어지는 것
넝쿨처럼 뻗어나가는 웅크린 꽃잎 귓바퀴처럼 도르르 말려있다
자귀나무 / 안명옥
밤이면 잎새가 꼭 껴안은 자귀나무 아래 서면
각방 쓰느냐? 자귀나무 꽃을 꺾어다가 방안에 꽂아두어라. 할머니 목소리가 달각달각 바람으로 흩어지는데
자귀나무 그늘에 앉으면 오래 아프던 가슴께 화기가 도는지 조금은 간질간질거리고
올봄에 다른 나무들은 잎이 다 돋아나는데도 자귀나무만 잎이 돋지 않는다 영 죽은 나무인 줄 알고 베어 버리려는데
첫댓글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보내세요
좋은글
감사 합니다,
선생님
잘 계시죠?
새해도
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