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 해도 되며 하지 않아도 되는데 하게 되면
모두 의리에 손상된다.
군주가 신하의 병에 수염을 자르는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다. 수염이 아니면 병으로 필경 죽게
되는데, 나라 안에 오직 내 수염만 있다면 자를 수가 있다.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수염이 아니라도 충분하고 자를 수염이 내가 아니라도 많이
있는데, 하필 내가 수염을 잘라야 하는가. 이는 권모술수이며, 인정에 가깝지 않은 일이다.
수염을 자르는 것이 참으로 옳다면,
요순(堯舜)이 팔원(八元)과 팔개(八凱)에 대해서나 상(商)나라 탕(湯)과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이윤(伊尹)과 여상(呂尙)에 대해서
틀림없이 수염을 잘라도 여러 번 잘랐을 것이다. 수염을 자르는 마음은 곧 이적(李勣)을 내보내 도독(都督)을 삼고 고종(高宗)을 올려 발탁하려는
마음이었다.
이적이 폐하의 집안일이라면서 순순히 따랐던 것은 곧 수염을 잘라 약을 만들어 준 데 대해 보답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개자추(介子推)가 허벅지살을 벤 일, 오기(吳起)가 종기를 핥았던 일, 역아(易牙)가 자식으로 음식을 만들어 바친 일, 태종이 수염을 잘랐던 일은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망명자가 개자추의 살을 얻으면 살고 얻지 못하면 죽는다면 베어도 된다. 베지 않아도 망명자가 살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하필
허벅지살을 벤 뒤에야 충성이 되겠는가. 무슨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라면, 상을 준다고 해도 사양해야 할 것이다.
하물며 궁문에 글을 거는 일이겠는가. 더구나 어머니가 무슨 죄인데 함께 타 죽는다는 것인가. 이는 충효가 둘 다 어그러진 것이다.
오기
이하는 모두 사심 때문에 의도가 있어서 한 자들이다. 그렇게 의도가 있어서 하는 일은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군자는 본보기로 여기지 않는다.
더구나 반드시 좋지도 못한 일이겠는가. 공자(公子
진 문공)의 굶주림도 차마 그대로 두지 못했으면서
어머니가 불타 죽는 것을 어찌 차마 보았다는 말인가. 군졸들이 장차 죽는 것도 차마 보지 못한 사람이 어머니가 죽었는데 어찌 차마
분상(奔喪)하지 않을 수 있으며
멀쩡한 아내를 어찌 차마 죽일 수 있는가. 그 임금이 아름다운 음식 맛을 보지 못하는 것도 차마 모른
체하지 못한 사람이 어린 자식을 어찌 차마 삶을 수 있는가. 공신이 장차 죽는 것도 차마 그대로 두지 못한 이가 한 젖을 먹은 형제를 어찌
살해할 수 있는가. 그 마음을 알기란 어렵지 않다. 그래서 모두 그 끝에는 낭패를 보고, 세상 사람들에게 큰 욕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