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날씨가 하도 샤방샤방 했었기에 오늘 아침, 아무런 대책 없이 급히 짐 싸들고 집을 나서며 문득 올려다본 하늘. 그 잿빛 하늘색이 어째 심상치 않아 보이더니만 이천 도립리산수유 축제 현장에 도착하니 비가 투락투락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다. 스마트폰에 일기예보 기능이 있으면 무엇하고 뉴스를 숫하게 들으면 무슨 소용일까? 생각자체가 없으면 그것이 바로 牛耳讀經인 것을……. 스스로의 無心함을 탄식하며 행사장까지 한참을 걸어 오르니 어느덧 투락거리던 비도 멈추었고 오히려 그 비에 황사까지 씻겨 내려간 듯 세상은 맑고 청아해졌다.
마을사람들 말에 의하니 지난겨울 혹한으로 산수유나무가 많이 죽었다 하더니만 그래서 그런 건지 산수유가 만개한 마을의 전체 위용이 예전만 못한 느낌이다. 방사능비가 내리든 황사비가 내리든 죽고살기로 노는데 우리 백성만큼 깡다귀있는 민족이 또 어디 있을까보냐. 산수유 꽃 색은 환경에 의해 이리저리 퇴락해가도 우리 賞春客의 옷 색깔은 오히려 보란 듯이 더 울긋불긋 알록달록하여져 과연 이곳이 그 어느 축제 현장인 것은 확실하게 알겠다.
총무이사가 카페를 통해 알려준 명당자리가 어디인지 알 수도 없거니와 밀려다니는 사람들 등쌀에 이도저도 다 귀찮아져서 그냥 발걸음이 닿는 대로 버릇처럼 오르막을 향하다 문득 발견한 파란지붕의 다 쓸어져가는 황토집. 아! 이 세상에 세월만한 예술가가 또 어디 있어 저런 고즈넉한 지붕 색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일까? 기둥을 보라! 이리저리 세월 따라 구부러지고 휘어진 소나무가 아무런 마감질 없이 잘려와 그대로 자연석에 올라탔다. 기둥사이에 채워진 황토벽 역시 많은 세월이 핥고 지나간 흔적이 역력하여 주위에 이리저리 수줍게 피어난 산수유와 썩 잘 어울리는 것이고 보면 더 다니며 살펴볼 것도 없겠다. 그대로 그 자리에 이젤을 펴서 캔버스를 걸어 놓고는 붓 몇 자루 힘차게 움켜쥔 채 저만치 떨어져 구도를 잡아보기 시작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여기까지 와서 산수유주 한 잔 들지 않고 그림을 그려서야 어디 될 말이겠냐는 김동선이사. 이 세상에 이보다 더 끈적거리고 확실한 유혹이 어디 또 있을까? 옆에 있던 유재성이사와 함께 셋이서 따스한 양지쪽에 앉아 빨간 산수유 동동주에 파전 빈대떡을 곁들이고 있으려니 참으로 임금하나 부럽지 않은 상팔자가 된다.
‘산수유 ~ 남자한테 참 좋은데……. 어떻게 말로 표현할 길이 없네~’하는 C. F도 있지만 그 말마따나 참 보긴 좋은데 표현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운 것이 바로 이 산수유 꽃이다. 매년 봄이 되어 이곳 산수유 마을을 찾아와 그림을 그리곤 있지만 아직도 작품 하나 건져 본 적이 없으니, 역시 표현할 방법이 없는 게 산수유인 게 틀림없이 맞는 이야기다.
그림이 되든 말든 완성되지도 않은 그림을 심사해 달라 내놓는 손이 부끄러워 애꿎은 막걸리만 동을 내고 있을 즈음 심사가 끝나고 발표가 진행됐다. 김원중 회장님 작품이 대상, 박주경이사 김재주님 작품이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인사동 대청마루에서 축하파티가 벌어졌다. 맥주 좋아하는 근철형도 오늘만큼은 마음 놓고 맥주를 시켜 마실 수 있는 기분 좋은 축제가 밤늦도록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선 또 그 황사비 방사능비가 투락투락 떨어지고 있었다.
2011.4.10
첫댓글 건강검진 때문에 못 마신 막걸리가 눈 앞에 오락가락... 글에 취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리 ^^
막걸리의 유혹을 못 이기고 그냥 내년으로 건강검진을 미루어 놓는 인물도 가끔은 있습디다.
기분 좋은 하루였어요~~~우리 ~~*
공공의 카페에서 우리의 관계를 밝히면 어찌하란 말이신지요? 아예 이 판에 공공의 적이 되어보겠다는 뜻?
ㅎㅎㅎ ~~~ 뭔지 모르지만, 저도 기분 좋습니다 ~~~ 우리~~ ^^*
낮부터 체내에 그 유혹이 축적되고 있었는데... 저녁엔 즐거운 분위기에 모든걸 잊고 그만 빠져 버렸지요... 까만 기억속을 헤쳐나와 보려니 아직도 식은땀 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