梅谷來書(매곡래서)
梅社顚末備悉言之細垂察焉當日剏社之初䨦巖公始發紙牌行事之論王考以愼重難行爲言列堂中諸論當初設施專爲此事而今則堂齋庖廩次第告成物力頗優且吾輩朝暮之年今而不爲列西林之感寓慕無地累累敦迫不已龜勉許之者宲非王考之本意也
(매사전말비실언지세수찰언당일창사지초방암공시발지패행사지론왕고이신중난행위언열당중제론당초설시전위차사이금칙당재포늠차제고성물력파우차오배조모지년금이부위열서림지감우모무지누누돈박불이귀면허지자포비왕고지본의야)
前後書中互相疑惑東西分奉主梅祖等句三年之外敃在其中之語隱然有抵逼於王考而一生積費精力苦心血誠之事反爲後世口舌之資爲子孫之心不能無慨而君言之如是者亦未知其穩當也且未成所云者只是廟宇祠版末造兩件事而已其外祭禮香祝唱笏等節目與已成之所少無差等而位序之東西分奉間一間列父子之等級定矣
(전후서중호상의혹동서분봉주매조등구삼년지외민재기중지어은연유저핍어왕고이일생적비정력고심혈성지사반위후세구설지자위자손지심불능무개이군언지여시자역미지기온당야차미성소운자지시묘우사판말조양건사이이기외제례향축창홀등절목여이성지소소무차등이위서지동서분봉간일간열부자지등급정의)
來喩紙牌暫行時間一間廟宇已成而後行配食之禮者宲未知其合於禮也臆度先輩之意也若然列紙牌行祀時依配食禮乍陳旋撤爲皮日明證而先父老不此之爲講究義理忝酌禮典而分奉東西隔間空位列可見先父老之遺意矣若如君言而先父老空頓之位謂之非禮倫序顚倒東遷西徙七十年各祝已行之規任敃無祝則當日敦事之諸父老將敀於何等地也
(래유지패잠행시간일간묘우이성이후행배식지례자포미지기합어례야억도선배지의야약연열지패행사시의배식례사진선철위피일명증이선부노불차지위강구의리첨작예전이분봉동서격간공위열가견선부노지유의의약여군언이선부노공돈지위위지비례륜서전도동천서사칠십년각축이행지규임민무축칙당일돈사지제부노장 박어하등지야)
爲其後裔者其可謂孝子慈孫乎且會奠後幾百年之內諸父諸兄在世之日幷配可否之論了無聞而若有違禮則何不爲於非禮享不多之歲月而始發於廟宇營建之時乎仍窃念吾派長德已盡零落只有迷愚孤躬無知輩似有來虛墟札爲之者然雖云變禮先輩定頓之規所當死執固守之外更無他道矣
(위기후예자기가위효자자손호차회정후기백년지내제부제형재세지일병배가부지론료무문이약유위례칙하부위어비례향불다지세월이시발어묘우영건지시호잉절념오파장덕이진영락지유미우고궁무지배사유래허허찰위지자연수운변례선배정돈지규소당사집고수지외경무타도의)
左右每以札之常變爲言然幷享之札非徒此社在宋朝列太中祠列西程韋齋廟列朱子至於我東則文獻丹山靑俟烏川比比有之列矣獨於此社忽生無事中生事使至密至親各相岨峿駿悖之丮及於先社此非子孫保先社之道也設或此社草刱於今日其於幷配之禮惟當採之公議添以古禮一席爛確無有餘憾可也
(좌우매이찰지상변위언연병향지찰비도차사재송조열태중사열서정위재묘열주자지어아동칙문헌단산청사오천비비유지열의독어차사홀생무사중생사사지밀지친각상저어준패지극급어선사차비자손보선사지도야설혹차사초창어금일기어병배지례유당채지공의첨이고례일석난확무유여감가야)
不爲此而其所論禮有若透見前人之所未見而自作一副當道理以此而同室之內議論各歧風色不佳若使二祖之靈有知其肯曰予有後乎宲非所望於左右者也言念及此不覺仰屋長吁來書中噬昉無及之示宲所顊聞幸望以是益加及省勿有迷復之悔切仰仰
(불위차이기소논예유약투견전인지소미견이자작일부당도리이차이동실지내의론각기풍색불가약사이조지령유지기긍왈여유후호포비소망어좌우자야언념급차불각앙옥장우래서중서방무급지시포소이문행망이시익가급성물유미복지회절앙앙)
매곡마을에서 자천마을로 온 편지
매곡종가에서 이 일로 인하여 갖추어진 전말에 대하여 고찰한 것을 세밀하게 모두 말씀드리면, 당시 문중에서 최고어른이셨던 방암공(雱巖公)의 지패(종이에 적힌 글)가 발단이 되어 비롯되었으며 이 일에 대한 돌아가신 할아버지(방암공)의 의견은 문중에서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본 후 신중하게 고민하면서 행하라는 말씀이셨는데, 당초 이 일을 시행하게 된 동기는 지금의 규칙에 의거 오로지 이번 기회에 당재(堂齋:정자, 제실 등을 총칭)의 부엌과 곳간(살림살이)에 대한 자재(物力)를 자못 넉넉하게 할 것을 알리고자 하는 것으로 우리들(매곡마을 사람들)은 연중에 이를 전개하지 않았는데, 서림(西林:선원마을 사람들)의 마음이 한목소리로(無地:한 가지 색으로 무늬가 없음) 여러 차례 재촉하면서 권하기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본래의 뜻인지라 허락하는데 힘을 보태기로 이미 일치를 보았던 일이니 숨긴 것이 없습니다.
전후의 글 중에서 주된 의혹은 신위를 받드는 것에 있어 동쪽마을(매곡)과 서쪽마을(선원)이 서로 나누어져 있는 것입니다. 매산 선조의 격(格)을 정하는 문구에 있어서는 뜻이 확고하여 두 마을이 3년이나 밖에 떨어져(의견차이가 크다는 뜻임) 있는데, 그 말은 은연중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배척하고 핍박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일생동안 정력을 축적하여 고심하면서 참되게 정성을 기울어야할 일에 반대한다면 후세에 구설수에 오를 밑천이 될 것이며, 자손들의 마음에 슬픔을 없게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현인(방암공)의 말씀이 이와 같은지라 그 온당함을 알지 못한다면 말씀하신 것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사당의 신주는 두 방식 중 여론이 쇠퇴하여 맨 끝에 남는 것이 옳은 방안일 것입니다. 그밖에 제사예법과 향과 축문, 홀(笏:의식을 거행할 때 손에 쥐던 기구)에 대한 주장 등에 대한 항목에는 조그마한 차이도 없으며, 위계질서의 순서를 정함에 있어서 동서쪽 마을이 구별되는데 그 차이는 한 칸의 반열로 부자(父子)간의 등급을 정하는 일에 대한 것입니다.
지패가 가르쳐준 깨우침 이후로 잠시 기회를 엿보고 있던 차에 한 칸의 사당이 이미 완성되었는데 이후에 행할 배식(제사에 음식을 올림)에 대한 예법문제가 대두되었으나 그것이 선배어른(방암공)께서 지니신 마음속의 뜻에 적합한 예법인지 알 수 없는 형편입니다. 만약 제사 때 배식에 대한 예법에 있어서 일시적이나마 지패에 대한 가르침을 베풀고자 이를 우회하여 수용한다면 그것은 앞서간 어른께서 강구하신 올바른 도리가 아니기 때문에 조만간 제사를 지낼 때 술잔이 더럽혀져 있음이 증명될 것이며 아울러 동쪽과 서쪽이 공허한 명분으로 나누어질 뿐입니다. 앞서 살다 가신 어른께서 남기신 뜻을 알고 있다는 것은 어른께서 남기신 말씀과 같은지라 공허하고 우둔한 위상은 인륜의 질서를 전도시켰기에 예법이 아니라고 지적하실 것입니다. 70년 동안 모두가 축하해온 관례를, 동쪽으로 움직이고 서쪽으로 옮겨져 돈독해야할 당일행사에 하례가 없다면 이것은 장차 여러 어른들을 핍박하게 되어, 처신을 함에 있어 그 폭이 좁아질 것입니다.
후예자(핏줄을 이어온 후손)가 하는 것은 자식과 사랑스런 손자에게 효를 알리는 것인데 문중모임에서 제사를 받든 후 수백 년 내에, 여러 어버이와 형제들의 생애에 있어서 시비(옳고 그름)가 나누어지는 논쟁에 결말이 있었음을 듣지 못했고, 비록 예법에 어긋남이 있었다하여 어찌 예가 아니라고 할 수 있으랴. 세월이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사당이 처음 출발하여 건물이 지어지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따랐는데 우리 문중의 유구한 덕(德)이 바닥을 들어내어 영(零)으로 떨러지니 혼미하고, 고루함(고집)이 끝이 없어 무지한 무리들이 본받으니 공허한 구렁텅이 명패를 지닌 자들이 보이는구나. 비록 변형된 예법이지만 이를 따른다고 하여, 어찌 앞선 시대에 정한 세련되지 못한 규약을 마땅히 죽음으로써 고수하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고만 할 수 있겠느뇨?
위패를 상시 좌우로 각각 존치하는 것을 두고, 위패를 나란히 향유하게 한다며 말을 변형하는 것은 우리 문중에 소속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송나라 조정에 나아가 반열에 오른 태중대부 사당은 서정(西程:서쪽배열 규정)에 따라 배열하였으며, 사당에 대한 기존의 관례를 위반하여 배열한 주자로부터 우리 동방(조선)에 이르기까지 규칙에 대한 문헌은 오천의 단산청사(丹山靑俟) 에 흔히 있는 배열입니다. 근거 없이 유독, 우리 사당에만 홀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며 예법에 대하여 노력하다 보니 그 가운데 자연스럽게 따름으로써 가깝고도 친하게 된 제도입니다. 서로가 각각 어긋나서 울퉁불퉁하고, 험하게 되어 혼란을 초래하여 이것이 조상의 제사에 영향을 미친다면 선조의 제사를 보위하는 도리가 아닐 것입니다. 설혹, 문중사당에 대한 금일의 글로 인하여 각각 나란히 배열되는 예법은 마땅히 공론으로 채택할 생각이오니, 옛 예법에 대하여 굳건하고도 화려한 좌석 하나를 보태주신다면 섭섭함이 남아있던 마음은 없어질 것입니다.
예절에 관한 논쟁을 함에 있어서 꿰뚫어 보지 않는다면, 앞 시대 사람들의 참모습은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하나의 부차적인 방안을 내가(이 글을 쓴사람) 스스로 지어냈다면 마땅히 토론을 벌이는 같은 방실에서 도리로서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제각기 옆길로 빠지게(논리에 설득력이 없다는 뜻임) 되고, 남 보기에도 좋지 못한 기색이 되어 아름답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두 분 선조의 신령스런 영혼께서 그것을 알고 계신다고 긍정적으로 가정하면 “내가 뒤를 숨겼기에 위패를 좌우로 배치한 것을 희망하지 않았으며, 조상의 명령도 깨닫지 못했다.”라고 마음속의 말씀을 언급하시면서 이 글을 가운데 두고 길게 탄식하실 것입니다. 찾아가 음미하고, 턱을 귀 가까이하여 듣고 나면 이 사람이 숨기는 것이 없음을 알 것이며, 절절히 우러르고 뉘우치는 것을 반복한다면 미혹함은 사라지고 성찰을 보태게 되어 행복한 소망은 이루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