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의 외주화를 멈추는 것이
진정한 안전 실천 마스터플랜이다
노동자 6명의 사망하고 25명이 부상한 노동절 크레인 참사가 발생한 지 3개월이 지난 오늘(8월 4일), 삼성중공업은 보도자료를 통해 안전 실천 마스터플랜을 발표했다.
▲안전경영위원회, 안전경영본부 신설 등 안전관리 조직 확대∙강화 ▲안전리더십 교육, 컨설팅 등을 통해 회사 고유의 新안전문화 조성 ▲크레인 충돌사고 예방대책, 잠재 위험요인 발굴 및 제거방안 등 삼성중공업이 발표한 안전 실천 마스터플랜은 한마디로 겉만 번드레한 ‘빛 좋은 개살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크레인 참사의 핵심 원인으로 다단계 하청구조에 따른 ‘위험의 외주화’를 지적했지만, 삼성중공업의 마스터플랜에는 위험의 외주화에 대한 아무런 고민도, 조금의 대안도 담겨있지 않다.
마스터플랜에 따르면 “크레인 운전수와 신호수의 보수 교육 주기를 2년에서 1년으로 단축하고, 크레인 운영부서의 자체 교육도 매분기마다 실시하도록 하는 등 크레인 운영역량 및 안전관리 역량을 지속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고가 난 골리앗 크레인 운전수와 신호수는 정규직이고 타워크레인 운전수와 신호수는 하청노동자인 고용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 크레인 등 대형 장비를 운용하는 노동자들의 하청고용구조 개선 없이는 교육 주기 단축도, 자체 교육 강화도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
마스터플랜에 따르면 “새로운 개념의 위치∙형상 기반의 충돌방지 시스템을 개발하여 2018년까지 단계별로 적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기술 혁신이 회자되는 지금까지 크레인 충돌방지 시스템이 전혀 없이 크레인 작업을 해왔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어쨌든 마스터플랜대로 충돌방지 시스템이 마련된다면 크레인 충돌 사고는 크게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고가 난다면?
이번 노동절 크레인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서는 “왜 크레인 사고가 났는가?”보다 “크레인 사고가 났는데 왜 그렇게 많은 노동자가 죽고 다쳤는가? 또한 그들은 왜 전부 하청노동자였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크레인 사고가 아닌 다른 사고가 날 경우에도 이번 노동절 참사와 같은 대형 인명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고가 난 해양플랜트 구조물에서 직접 일을 한 하청노동자는 평소에 노동자들끼리 “여기서 불나면 다 죽겠다”는 말을 주고받기도 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또 실제로 노동절 크레인 참사 얼마 뒤인 5월 17일 냉각설비 근처에서 화재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렇듯 ▲위험의 외주화와 원청의 책임 회피를 가능하게 하는 다단계 하청구조 ▲공사기한에 쫓긴 무리한 공정진행과 위험천만한 혼재 작업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또 다른 대형 참사가 발생할 가능성은 여전하다. 그러나 삼성중공업이 발표한 안전 실천 마스터플랜에는 이 같은 문제의식과 개선 방안이 전무하다.
삼성중공업 노동절 크레인 참사로 목숨을 잃거나 부상당한 노동자 31명은 모두 하청노동자다. 처음엔 이들이 8개 하청업체에 각각 소속되어 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그나마 하청업체에 직접 소속된 노동자는 14명뿐이고, 나머지 17명 노동자는 또 다시 8개 물량팀 또는 불법 인력업체 소속이었다. 그 결과 애초의 8개 하청업체 중 강우기업, 동양산전, 성도기업, 유니온 등 4개 업체는 부상 노동자에 대한 산재신청을 물량팀과 불법 인력업체에 떠넘기고 책임을 회피할 수 있었다.
그렇게 사고의 책임은 삼성중공업에서 하청업체로, 하청업체에서 다시 영세한 물량팀과 불법 인력업체로 떠넘겨지고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하청노동자들이 떠안게 되었다. 위험의 외주화가 아니라 위험의 외주화의 와주화의 외주화라고 불러야 맞는 것이 조선소의 현실이다.
노동부의 작업중지명령 기간에 대한 휴업수당 역시 마찬가지다. 삼성중공업은 하청업체에게 떠넘기고 하청업체는 다시 물량팀과 불법 인력업체에 떠넘겨 2만 명이 넘는 하청노동자가 받지 못한 휴업수당이 무려 40~5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중공업은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없다. 우리는 아무런 책임 없다”며 발뺌하면 그만이다.
며칠 전 경찰이 앞서 법원에 의해 구속영장이 기각되었던 삼성중공업 조선소장 등 3명의 영장을 재청구했지만 이번엔 아예 검찰 단계에서 기각되었다. 결국 경찰은 크레인 신호수 1명을 구속하고 24명을 입건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역시나 삼성중공업 박대영 사장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게 되었다.
이제, 삼성중공업은 안전 실천 마스터플랜 발표를 통해 노동절 크레인 참사를 이제 그만 덮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위험의 외주화를 멈추려는 어떠한 노력도 없다면 참사는 또다시 발생할 수 있기에 우리는 철저한 진상조사와 대책 마련을 위한 노력과 활동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위험의 외주화를 멈추는 것, 그것이 진정한 안전 실천 마스터플랜이기 때문이다.
2017년 8월 4일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철저한 진상규명과 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