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7 일 (2018. 11. 05. 월) 하노이 - 사파
5시에 일어나 대강 씻고 컵라면으로 요기를 하고 6시 10분 체크아웃 후 Sapa – Express 앞으로 가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차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탈 버스는 8번으로 좌석은 27과 28번이니 제일 뒷자리였다. 리무진으로 총 28명 정원이라 좌석도 넓고 뒤로 재끼고 잘 수 있어 좋았다. 도중에 휴게소에 들러 패션 플루트 주스를 마신 후 소변을 보러 가니 2,000동의 돈을 받는다. 중국 여행에서 돈을 주고 소변을 본 것이 언제인지 모를 정도로 까마득한데, 아! 그러고 보니 인도네시아에서도 돈을 준 적이 있다. 관광지에서 화장실 사용에 돈을 받다니 돈의 크기를 떠나 후진 느낌을 금할 수 없다.
< 화장실 가다가 만난 접시꽃 모양의 꽃인데 씨방의 모양이 접시꽃과는 다르다. >
사파는 지도에서 보듯 하노이에서 북서쪽으로 350㎞에 있는 해발 1,600m – 1,800m에 걸친 고산도시로 주변의 고산족이 많이 살고 중국과 거의 국경을 접하고 있는 도시다. 과거 프랑스 식민지 시절 프랑스인의 휴양지로 개발되었고 동남아 최고봉인 판시판산(3143m)의 등반 기지로 이용되기도 했다. 과거 사파에서 판시판산 정상까지 사흘이 걸렸다고 한다. 라오까이 근처까지는 길이 좋으나 라오까이 초입에 좌측으로 난 길부터는 38㎞의 오르막길이다. 길은 꼬불꼬불한 이차선 포장도로인데 5톤 트럭보다 길고 큰 컨테이너 차와 같은 대형차, 유조차, 대형 관광버스, 중형 노선버스, 그리고 승용차, 오토바이 등이 줄을 이어며 올라오고 내려가는데 그 옆 계곡은 갈수록 높아지는, 눈이 닿지 않는 절벽이다. 가드 레일이 있으되 급커브 도로의 가드 레일은 어떤 차가 밀었는지 휙 굽어 뒤로 재껴져 있다. 그런 길을 추월하며 차를 운전하는 것을 보니 일상이 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미친 운전같이 보였다. 그러나 바깥에 펼쳐지는 고산의 다랑이 논밭의 풍경은 아마 이곳이 그 규모면에서는 세계 최고일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대단하였다. 인도네시아 디엥고원의 다랑이 밭도 보았고 스리랑카의 해발 1889m 누와라 엘리야의 엄청난 차밭도 보았지만 여기와 비교할 규모는 아니다.
< 왼쪽 아래 다리를 보면 다랑이논의 규모가 짐작이 될 것인데 이런 엄청난 풍경이 계곡을 올라가는 동안 끝없이 계속되었다. 버스에서 찍은 사진이라 전깃줄이 눈에 거슬린다. >
12시 30분경에 사파에 도착을 하니 좁고 비탈진 도로에 고산족은 몰려와 물건을 사라고 하고 버스에서 짐도 내려야 하고 정신이 없다. 일단 좀 비탈 위쪽으로 올라와 정신을 차린 후 보니 “Green hotel”이 눈에 보인다. 주변에 공사하는 곳도 없고 깨끗하게 보여 들어가 가격 흥정을 하는데 기본 100만동부터 시작을 한다. 내가 예상하는 50만동보다 가격이 너무 센 편이다. 게다가 창문이 없는 방, 창문이 있으나 시내 쪽, 창문이 산 쪽으로 있는 방으로 구분해 가격이 올라갔다. 그래서 일단 생각해 보마하고 나와 식당부터 찾았다. 여행할 때 가급적 식사 시간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일정한 시간에 식사를 하는 것이 건강 면이나 스케줄 면에서나 좋기도 하지만 안선생의 경우 약한 당뇨가 있어 당이 떨어지면 예민해지기 때문에 점심은 조금 일찍 먹어도 상관없지만 가급적 오후 1시를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 그래서 다시 큰 건물(Sapa - Station)을 옆에 끼고 내려오니 음식점이 몇 개 보였다. 어느 집이 나은지 모르니 거리상 가까운 집을 선택했는데 알고 보니 이 집이 사파에서 최강 맛집이었다. 호텔에서 제공되는 조식을 제외하고 갈 곳이 별로 없으면 이집으로 왔다.
메뉴에서 쌀국수는 채소,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채소와 버섯 쌀국수 이렇게 5종류를 팔고 있었는데 채소와 버섯 쌀국수가 5만동이고 나머지는 4만동이다. 시골이라 하노이보다 1만동 저렴한 편이다. 나는 소고기 쌀국수를 시키고 질긴 소고기를 즐기지 않는 안선생은 닭고기 쌀국수를 시켰다. 그리고는 바로 “아고다 앱”으로 들어가 호텔 검색을 시작했는데 “아고다 앱”의 좋은 점이 현재 우리 위치에서 검색하는 호텔까지의 거리가 나오고 각종의 필터가 있어 적합한 호텔 선택하기에 좋았다. 가까운 거리에 트윈 베드가 있는 호텔 중 대강 하루 50만동 정도를 찾으니 “Sapa Unique hotel”이 있다. 거리가 100m 이내니까 사파 중심지에 가깝고 가격도 적당하여 급하게 예약을 했다. 일단 캐리어를 끌고 거의 비포장 가까운 비탈길을 다니기가 불편하고 주변의 호텔도 대강 그 가격이어서 우선 심리적 안정을 꾀하기 위해 숙소가 안정되어야 했다. 4박에 107,000원으로 결재하고 나니 이제야 눈에 쌀국수가 보인다. 대단하다. 양도 많거니와 안에 든 소고기의 양이 질릴 만큼 많다. 당연히 맛도 좋을 수밖에. 이게 2,000원이니 참 싸다.
< 한 5분 비탈길을 내려오니 호텔이 보인다. 초라해 보이는 입구 유리문에 투숙객들의 후기를 A4용지에 적어 붙여 두었다. 한글도 몇 장 보이는데 좋다는 이야기겠지. >
여기서도 우리가 예약 때 지불한 돈은 창문과 베란다가 없는 방 값이고 창문만 있는 방은 하루 10$, 창문과 베란다를 다 갖춘 방은 15$ 추가 금액을 받는다는 것이다. 나흘 분으로 60$를 추가 지불하니 결국 1박에 약 40,000원 정도 되는 셈이다. 부산 사상에서 묵은 V1모텔에 비하면 같은 가격에 조식을 줄 뿐만 아니라 앞서 흥정하던 “Green hotel”보다는 20,000원 정도 싼 편이다. 물론 비싼 돈을 주고 5성급 호텔에 묵으며 좋은 조식에 깔끔한 서비스를 즐기는 것도 좋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는 않는다. 물론 일본여행 중 북해도 민박이나 규슈 게스트 하우스 같은 곳도 들어가서 불편을 겪은 적도 있다. 그러나 그때는 정말 다른 숙소가 없어 들어간 것이지 여비를 절약하고자 한 것이 아니거니와 나는 최소 3성급 숙소면 대강 만족을 한다. 2층의 106호 열쇠를 받아 방에 들어가니 정말 전망도 좋고 밤에 한잔할 베란다의 탁자와 의자가 마음에 든다.
< 짐정리를 마치고 귤 한 봉지와 맥주 6캔을 구입하고 돌아와 낮술을 한잔했다. 바나나 2개는 호텔 제공, 오이는 하노이 Vin Mart에서 사가지고 온 것. 이외에도 깍두기, 김, 멸치, 볶은 고추장 튜브, 프링글스, 과일 믹스 등의 기본 안주가 있다. 뒤에 있는 백포도주와 적포도주는 값을 치러야 하는 것. >
술을 한잔하며 문득 하노이 Vin Mart에서 사온 깍두기 생각이 났다. 이제 여기서 나흘을 잘 텐데 깍두기를 개봉해 먹어야 할 것 같았다. 또 창문과 베란다가 넓어 냄새 걱정을 크게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칼로 봉지를 개봉하다가 깜짝 놀랐다. 아니, 이게 누구람. 나는 봉지 사진의 인물이 요즘 선전의 트렌드인 깍두기 회사 사장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에서 판매하는 깍두기 김치의 광고 모델이 될 줄이야. 참, 열심히 산다. >
저녁은 점심 먹은 식당에 가니 저녁 메뉴는 좀 다른지 구이를 많이 팔았다. 우선 눈에 보이는 대로 닭 꼬치, 돼지고기 꼬치와 맥주를 주문해 생수병에 넣어간 보드카로 간을 하여 마셨더니 낮술에 이은 술이라 상당히 취한 듯하다.
♠제 8 일 (2018. 11. 06. 화) 사파
어제 일찍 잠자리에 들어 잠이 일찍 깨었다. 오늘은 구체적으로 할 일이 있는 날이 아니고 또 어제 술을 과음했기에 늦잠을 자야 되는데 출근을 하지 않으면 몸이 일찍 일어나게 예약이 되는 모양이다. 할 일이 없으니 밥이라도 일찍 먹는 것이 좋겠다 싶어 7시경에 일층 호텔식당으로 내려가니 일인당 음식 2가지와 음료수 2가지를 주문할 수 있단다. 나는 비프 쌀국수와 파인애플 & 허니 팬케이크, 수박주스와 아이스 요구르트를, 안선생은 치킨 쌀국수와 커피, 오믈렛, 일반 요구르트를 주문했다. 그런데 오믈렛은 빵과 오믈렛 치즈 & 버터를 포함한 개념이었다. 그래서 엄청난 식탁이 펼쳐졌다.
메뉴는 크게 네 종류인데 첫째, 베트남식 조식으로 쌀국수와 볶음밥이 있고 이것들은 각각 소, 돼지, 닭, 채소 4가지 종류, 인스턴트 국수(라면)은 돼지 대신 계란이 있어 역시 4종류였다. 두 번째 팬케이크는 레몬 & 슈거, 파인애플 & 허니, 바나나, 바나나 & 초콜릿, 바나나 & 허니 팬케이크까지 5종류가 있었다. 세 번째 빵 종류는 빵과 함께 버터 & 잼, 오믈렛 햄 & 치즈, 프라이 에그 버터 & 잼, 채소 오믈렛, 에그 스크램블, 버터 잼 토마토 & 오이(cucumber), 오믈렛 치즈 & 버터 7종류가 제공 되었다. 마지막으로 음료수 종류는 과일주스는 귤, 수박, 사과, 파인애플, 망고 등 5종류가 있었고, 커피는 밀크, 블랙, 연유를 넣은 아이스커피가 있었다. 요구르트는 아이스 요구르트와 일반 요구르트, 홍차는 꿀과 레몬, 우유, 연유를 넣은 것이 있었고 그 외 차 종류는 녹차, 자스민, 박하, 생강 등이 있었다. 이 중에 베트남식 조식과 빵 종류에서 둘을 고르고 팬케이크와 음료수 중 둘을 고르면 되니 결국 조식으로 네 가지 음식을 먹는 셈이다.
< 비프 쌀국수와 워터 메론 주스. 수박을 아무 첨가물 없이 갈아 단맛대신 풋풋한 채소 냄새가 나서 신선하였고 국수는 양이 적당하여 숙취에서 덜 깬 위장을 압박하지 않았다. >
지금까지 봐온 호텔 조식의 일반적 방법은 뷔페식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조식 방법은 상당히 재미가 있고 생각할 점이 있는 것 같다. 호텔의 입장에서 보면 뷔페식에서 낭비되는 요소를 줄일 수 있고 손님의 입장에서는 주문과 함께 바로 조리해 따뜻한 음식을 먹으니 좋다. 물론 호텔의 규모가 커서 한꺼번에 많은 손님이 몰리면 불가능하겠지만 작은 호텔의 입장에서는 인건비 면이나 재료 면에서 경제적이고, 손님도 불필요한 식탐을 줄일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다시 방으로 와서 휴식을 취했는데 어느 덧 잠이 든 모양이다. 사파는 이제 막 관광지로 부각되는 단계라서인지 거리에는 증축과 개축하는 공사 때문에 큰 트럭이 늘 오가서 먼지가 날리고 길바닥은 공사장에서 흘러나온 물로 흥건하여 다니기가 불편하다. 게다가 물건을 팔려는 고산족 아이들도 따라 붙고 여기도 베트남 아니랄까봐 오토바이가 어디서든지 튀어 나온다.
< “선플라자”건물에서 본 경치. 사파 중심부에 해당하는데 둥근 광장이 있고 성당이 보인다. 성당 좌측에 버스 정류소가 있고 오토바이가 가는 쪽에 맛집이 있다. >
< 사파 성당 뜰에서 본 “선플라자” 건물, 광장은 아래라 보이지 않는다. “선플라자” 시계 아래에 “사파 스테이션”이라 적혀 있다. 여기 무슨 철도가 있다고 “스테이션”이라 했을까 궁금했지만 혼자 생각에 아마 “station”이란 단어에 “복합 몰”이란 뜻도 있늠 모양이란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건물 안에 들어가 보니 아직 입점이 덜 되어 많이 비어 있었지만 기념품 가게, 옷 가게, 선물 가게 등 상점이 밀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
< 공원 옆 카페 거리. “레 게코”도 보이고 “콩 카페”도 보인다. >
10시 반 쯤 일어나 느긋하게 시내 구경을 나갔다. 사파는 광장을 중심으로 광장 옆에 사파 성당이 있었고 그 앞은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사파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건물인 “선플라자”가 있다. 사파에는 뚜렷한 맛집이 없어 Le Gecko에서 나폴리 피자 한판(190,000동 – 9,500원)과 콜라(2병-6만동 –3,000원)를 시켜 점심을 때웠다. 사파 호수를 거쳐 시장까지 걸어가 시장구경도 하고 버스 터미널을 찾았지만 없었다. 시장에서 며칠 전부터 무얼까 궁금해 하던 과일 4개를 우리 돈 5천원에 샀는데, 이름을 물으니 “비아”라고 한다. 배를 의미하는 “pear”를 말하는 것 같았다.
< 고원지대임에도 불구하고 넓은 호수가 있고 주변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
< 많은 열대 과일 중 복숭아가 보였지만 딱딱해 보였다. 대추도 아주 크다. 과일들의 당도가 예상 외로 낮아 그리 달지도 않고 싱겁다. >
< 짧은 오이와 귤, 그리고 바나나. 그리고 먹음직하게 사과 같이 붉은 과일이 “비아”인데 알고 보니 배였다. 우리나라 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분이 적고 과육 안 목질이 씹힐 정도로 딱딱하고 많아 퍽퍽한 느낌이다. 당도도 그리 높지 않다. 하루에 숙제처럼 하나씩 먹었다. >
별로 구경거리도 없고 해서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와 어제 맡긴 세탁물을 수령했는데 1.5㎏이라니 7.5만동이란다. 바로 지불하려니 체크아웃 때 계산한다고 한다. 방에서 휴식 겸 낮잠을 자다가 식사하러 쌀국수 집으로 가던 중 안선생의 왼쪽 엉치뼈가 여전히 좋지 않아 등산지팡이를 10만동에 구입했다. 지팡이를 짚으니 조금 낫다고 한다.
< 쌀국수 집은 저녁에는 이처럼 다양한 종류의 꼬치구이로 손님을 유혹한다. 각종 고기에 생선과 채소, 버섯, 수제 소시지 등이 있는데 원하는 것을 바구니에 담아주면 구워 상으로 가져온다. >
< 메뉴에 “Grilled chicken eggs”라 되어 있고 “10,000 / 1 eggs”라 되어 있어 시켰더니 계란을 숯불에 구워 이렇게 가지고 왔다. >
< Rice noodle soup with pork – 4만동짜리 돼지고기 쌀국수를 시켰더니 같은 가격의 채소 쌀국수를 가져왔다. 이 가게 남자들은 대부분 좀 어리하다. 채소 쌀국수의 채소는 어린 호박잎처럼 보였다. >
< 안선생은 현명하게 7만동짜리 ‘Fried rice noodle with meat & eggs – 고기와 계란이 들어간 볶음국수를 시켰는데 면발도 굵고 계란이 특히 맛있다. 그 외 몇 개의 꼬치까지 해서 15만동으로 훌륭한 저녁식사를 마쳤다. >
이제 이 식당의 메뉴에 대해 연구해 보자.
< 사파 스테이션 맞은편 첫 번째 식당이 음식이 맛있다. 사파에 있을 때 늘 이 집에서 식사를 했다. 간판의 “Co Lich”가 식당 이름이다. >
< 왼쪽은 음료수와 맥주 종류인데 식당에서 물을 판다. 한 병에 1.5만동이다. 오른쪽은 면류인데 국수는 베트남 말로 “퍼”라고 하고 국수와 볶음의 두 종류가 있다. 국수는 “rice noodle”과 “noodle”의 두 종류로 구분하고 있다. 위의 오른쪽 아래 볶음국수에서 보면 잘 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쌀국수는 4만동인데 무슨 고명을 얹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그래 봐야 가장 비싼 것이 10만동, 우리 돈으로 5천원이니 물가가 참 싸다고 하겠다.>
< 왼쪽 1번의 대통 밥은 1통이 약 지름 3㎝에 길이가 15㎝정도인데 꼭 찹쌀밥 같기도 하고 인절미 같기도 한데 양념가루에 찍어 먹는다. 우리 돈 250원인데 적어도 1,500원 가치는 한다. 2번은 닭발, 3번은 닭 날개, 4번이 내가 시킨 달걀구이, 5번부터는 꼬치 요리인데 실제 꼬치 종류는 이보다 훨씬 많다. 오른쪽은 볶음밥 종류인데 쌀국수보다 만동이 비싼 5만동부터 시작이다. 7번의 “Duongchau”라고 적은 것은 베트남어이기 때문에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여기서 주의 깊게 봐두어야 할 것은 8번의 “Steamed rice”인데 쉽게 말해 “밥”이다. >
< 두 명이 “Steamed rice” 1그릇을 시키면 냉면그릇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 한 그릇을 가져온다. 그러면 9번과 10번 같은 두부요리 1개와 그 아래 각종 수프 메뉴 중 두 가지 정도를 시켜 먹으면 된다. 물론 그 옆에 “Hot pot”을 시켜도 되지만 인원이 적다면 “클래식 호텔”의 “Hot pot”을 상기해 주기 바란다. >
나도 잇몸이 다시 부으려 하고 안선생도 엉치뼈 부분이 아프다고 해서 오늘밤은 술을 마시지 않고 자기로 했다.
♠제 9 일 (2018. 11. 07. 수) 사파
< 유니크 호텔 조식 풀 버전. 어제 아침에 먹은 파인애플 팬케이크가 내 스타일이 아니어서 “fried egg”를 시켰더니 메뉴에 있는 버터&잼과 빵이 따라 왔다. 소고기 쌀국수에는 매운 베트남 고추 썬 것과 라임을 짜서 넣어야 맛이 완성이 된다. 아이스 요구르트에는 초콜릿 가루가 뿌려져 있고 오늘은 파인애플 주스를 주문했다. >
7시에 식사 후 9시 50분에 사파성당 옆에서 라오까이 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절벽을 낀 내리막길을 겁도 없이 질주하는 버스에서 나는 올 때 본 풍경 중 놓친 장면이 있어 그걸 찍기 위해 창문에 딱 붙어 흔들리지 않으려고 온힘을 다해 버티고 있었다. 이곳은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인간성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베트남의 경우 평지에는 논이 있는 곳은 모두 평야라고 해야 할 만큼 넓고, 논 주변은 수로가 나 있든지 아니면 양식장이 있어 물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는데 왜 이런 고산지대에 와서 농사를 짓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도 잘못되면 다랑이 논 전체가 산사태로 내려앉는 위험을 감수하고서 말이다. 실제 그런 사태가 난 곳이 있어 보는 내가 안타까웠다. 그 노력이 얼마인데 그게 무너져 내리다니. 산의 제일 윗부분에만 나무가 조금 있을 뿐 나머지는 모두 다랑이 논으로 개간되어 있었다.
< 나무가 있는 곳은 계곡을 낀 절벽이라 손을 못 댄 모양이다. 나는 저걸 보면서 의문이 생겼는데 위에서부터 깎아내려 왔을까, 아니면 아래서부터 개간해 올라갔을까 ? 두 가지 다 장점이 있는데 어느 것이 답인지는 모르겠다. >
< 이 사진은 사파 관광 사진에도 나오는 곳인데 아예 작은 산 전체를 뱅뱅 돌려가며 깎아 농경지로 만들어 버렸다. 저 다랑이 논을 만든 농부의 속마음을 헤아린다면 삶의 무게가 저만큼 처절하다고 할 것이요, 가지런한 동심원의 겉모양만 본다면 농부가 예술적 감각이 있다고 할 것이다. 제일 윗부분의 평평한 부분의 한쪽에 농부가 쉴, 그늘 하나 지어줄 나무 한 그루 있었으면 좋을 텐데. 내려서 사진을 찍었다면 좋은 사진이 나왔을 텐데 가린 부분도 있고 해서 아쉽다. >
< 라오까이 역에서 바라본 버스 터미널 방향. 왼쪽의 대로를 따라가면 라오까이 버스 터미널이 나온다. 박하 가는 버스는 그곳에서 출발한다. 정면의 건물 1층 초록색 간판이 “Terminus restaurant -종점식당”이다. 우리는 터미니우스에서 나와 우측에 보이는 길로 들어가 좌측의 큰길로 돌아왔다. >
국경도시인 라오까이로 오는 버스 안에서 대략 스물 두서너 살 되어 보이는 남자 차장이 우리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 “한국”이라 했더니 아주 반가운 표정을 짓는다. 요즘 베트남에서는 한국의 위상이 상당히 높은데 삼성과 LG같은 대기업이 여기 청년들이 취직하기를 바라는 최애(最愛) 직장이며, 또 박항서 축구 감독이 서로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못해 늘 저조한 성적을 내던 남베트남 선수와 북베트남 선수를 하나의 베트남 팀으로 화합시켜 돌풍 같은 성적을 내다보니 거의 영웅 취급을 받아 덩달아 모든 한국인에 대한 선입견을 좋게 가지고 있는 듯하다. 박항서 감독이 깍두기 선전에도 나오지 않던가 말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월남전 참전의 찜찜한 추억으로 가해자의 죄진 기분이 없지 않은데 이들은 전혀 그런 뒤끝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차장이 다시 라오까이의 어디에 가느냐고 물은 듯한데 안선생은 한국 어디에서 왔느냐로 듣고는 “부산”이라고 하니 어느 스트리트로 가느냐고 다시 물었지만 이미 대화가 뒤틀린 것을 안 안선생은 대화를 거부하고 말았다. 하긴 라오까이에 무슨 거리가 있는지 낸들 아나? 그래도 이 아이는 친절하게 창 밖의 높은 산을 가리키며 “차이나”라고 한다. 라오까이는 중국과 접경지역이라 1979년 발발한 중월 전쟁 때 란손市와 함께 중국에 점령되어 처참히 부서진 도시이다. 그러한 파괴 후 새로 지어진 도시라서 그런지 길이 넓고 곧은 계획도시의 면모를 보인다. 다만 걱정이 길가에 음식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관광객이나 음식을 사먹을 유동인구가 적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 대합실에는 우리 둘밖에 사람이 없었다. 너무 쓸쓸한 라오까이 역. >
우리 버스는 라오까이역 앞이 종점이었다. 내려서 역 안에 들어가 봤지만 40대 여성 한 명이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고 그 밖에 개찰을 한다든지 청소를 하는 역무원도 없었다. 대합실은 텅 비었고 바깥 선로에 승객 없는 기차만 서 있었다. 갑자기 무료해져 괜히 화장실에 갔더니 사람이 없다고 낮인데도 불을 꺼두었다. 바깥으로 나와 봤지만 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고 따가운 햇살을 피하려는 듯 몇몇 사내들은 역 옆 카페에서 베트남 차를 홀짝이고 있다. 시간은 11시 정도밖에 안 되었고 할 일은 없어 가까운 카페에 들어가 커피라도 한잔하기로 했다. 카페는 오른쪽 호텔 2층, 우측 상가가 있는 곳에 한 집, 그리고 정면 역 광장 건너편에 한집이 보인다. 이런 경우 오랜 경험과 날카로운 관찰력을 바탕으로 선택을 해야 한다. 가장 땅값이 비싼 곳에 오래 버틴 듯한 느낌이 들고 유동인구가 많아 손님이 자주 들어가는 집을 찾으니 정면의 “Terminus”라 적힌 곳이었다.
예상은 정확하여 매니저가 정확한 발음으로 영어를 구사하여 주문을 받아 갔고 베트남에서는 제법 괜찮은 “아메리카노”와 “카푸치노”가 나왔다. 8.5만동을 지불하고 뒷길로 버스 터미널로 가 보았다. 원래 대로(大路)에는 재미있는 것이 없고 대로 다음 길이 사람 사는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 작은 길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작은 시장이 펼쳐지면서 구경거리가 제법 있었다. 그러나 원래 라오까이 인구가 적은지 아니면 시간대가 오전이라 그런지 시장에는 간간이 상인은 보이는데 물건을 사려는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그냥 사파에서 시간을 때우려 나온 것이 분명해 보이는 두 사내가 호기심으로 기웃거리며 지나갈 뿐, 조롱 안에 갇힌 닭마저도 무료한 듯 자고 있었다. 우린 사파 버스 정류소에 들렀지만 그곳도 아무도 없어 잠시 앉았다가 이제 큰길로 돌아 왔다. 아예 도시에 나온 김에 “Terminus”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 라오까이 맥주에 양파와 버섯을 곁들인 닭볶음과 해물을 곁들인 그린 파파야 샐러드와 밥을 주문하니 음식이 깔끔하기도 하고 맛도 좋아 만족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우리 돈으로 맥주는 1병에 1,000원, 파파야 샐러드는 3,500원, 닭볶음은 5,450원이니 두 사람이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비가 10,950원이다.
역 앞 정류소에서 13시 20분 버스(차비는 1인 1,500원)를 타고 다시 사파로 돌아 와 마트에 들러 맥주 4개를 사고 호텔로 돌아오면서 며칠 전부터 궁금했던 보라색 줄이 그어진 이름 모를 과일을 샀다.
< 이 과일의 이름은 모르지만 참외 비슷한 느낌과 참외보다 무른 식감인데 별 맛은 없다. >
< 껍질을 깎은 모양. 이것도 베트남 배처럼 하루 하나씩 의무적으로 깎아 먹는 신세가 되었다. 차라리 오이가 향이 좋고 귤도 먹을 만하다. >
호텔에서 오랜만에 소맥으로 한잔하고 낮잠을 잤다. 저녁식사는 조금 일찍 다니던 맛집에 갔는데 들어가면서 보니까 여러 가지 꼬치 중 돼지고기 삼겹살 부위를 길고 두껍게 뭉텅 썰어 둔 것이 보였다. 하노이 일주사 구경 후 시장에서 팔던 돼지고기의 모양이 생각나서 돼지고기 구이와 닭 꼬치, 야생 새 꼬치를 시켰다. 돼지고기는 크기에 따라 값이 달랐는데 12만 동 짜리를 시키면서 분명히 “take out”이라 했는데 영어를 잘 모르는 남자 종업원이 그걸 쟁반에 썰어 왔다. 그래서 똑똑한 그 집 딸에게 말했더니 하나를 더 구워 플라스틱 곽에 넣어주어 우리는 졸지에 돼지고기 풍년을 맞게 되었다.
< 나는 어제 돼지고기 쌀국수를 시키고도 채소 쌀국수를 먹은 생각이 나서 돼지고기 쌀국수를 시켰다. >
< 안선생은 여러 가지 고기가 든 볶음면에 주문했는데 역시 맛있다. 돼지고기가 두 통이 되었다. >
내일은 해발 3143m의 “판시판 산”에 오르기로 되어 있는데 “판시판 산”은 계륵과 같아 가고 싶기는 한데 가려니 어려움이 많아 망설여지는 곳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케이블카 승차장까지 택시를 타야 한다고 하니 옛날 인도네시아의 브로모 화산 산악 지프들의 바가지요금이 생각나서 절로 이마가 찡그려졌다. 게다가 안선생은 고소공포증이 있어 높은 곳을 싫어하고 나는 다리가 불편하여 오래 걷는 것을 싫어하는데 왜 고원도시인 사파에 왔는지 모르겠다. 또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바깥 베란다는 오히려 피하고 싶을 텐데 웃돈을 주면서까지 굳이 베란다가 딸린 방을 고집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첫날 왔을 때 안개가 끼여 바깥 베란다에서 한잔했으나 안선생이 이튿날 문득 공포증을 느낀 후부터는 빨래나 널기 위해 나갈까 별 출입을 하지 않았다. 나는 눈이 시원하고 좋지만 안선생은 어지럼증을 느끼는 곳이 바로 곁에 있다는 사실이 별 기분 좋은 일은 아닐 듯하다. 그래서 판시판 산에 나 혼자 다녀오라고 권하는데 여기까지 와 혼자 가기도 뭐하고 같이 가자고 권하기도 뭐 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지게 된 것 같다. 판시판 등반이 사파여행의 그야말로 절정인데 가지 않기는 너무 아쉬워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take out한 안주와 깍두기와 과일 등으로 한상 거하게 차려 술 한잔하니 숯불에 구운 돼지고기가 정말 맛있다. 그렇게 마시다가 오늘도 어떻게 자는지 모르고 잤다.
♠제 10 일 (2018. 11. 08. 목) 사파
일찍 잠이 깨여 판시판 산을 검색해 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산행열차라는 단어가 눈에 띄어 자세히 읽어 보니 왜 “사파 스테이션”이 내가 생각하던 복합몰이 아닌 진짜 역인지 알게 되었다. 올해 3월 푸니쿨라(funicular - 와이어 로프식 차량)가 개통이 되었고 그 출발역이 사파 스테이션이라는 것이다. 안선생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어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하니 그 건물에 무슨 철도가 있더냐면서 펄쩍 뛴다. 하긴 그 건물에 두어 번 들어갔지만 철도나 기차는 본 적이 없다. 그래도 인터넷에서 본 기사와 사파 스테이션이란 단어가 분명 신빙성이 있는 것 같아 그럼 가서 보고 그런 기차가 있으면 올라가고 없으면 둘 다 포기하자고 하니 그러자고 한다.
9시경에 나가 우선 “Sapa Express”에 들러 내일 오후 4시 버스를 오후 1시 반으로 변경할 수 있느냐고 했더니 가능하단다. 원래 4시차는 리무진이고 1시 반 차는 침대차라서 편안한 4시 차를 선택했는데 그럼 너무 도착시간이 늦어 저녁 먹기도 힘들고 또 내일 체크아웃하고 나면 갈 곳도 따로 있는 것도 아니라서 어중간한 시간을 보낼 듯해 시간을 당기기로 했다.
사파 역으로 들어가 좌측을 보니 줄을 선 사람들이 바로 보였다. 우린 지금까지 이 건물에 두어 번 들어 왔는데 무얼 보고 다녔는지 모르겠다. 마음이 있어야 표를 끊으려 서있는 사람들도 보이는 모양이다. 그래서 안선생은 일단 케이블카 도착지까지만 가고 판시판 정상은 나 혼자 가기로 해서 내 표는 82만동, 안선생 표는 75만동이다. 표를 끊는 방법은 먼저 82만동을 주고 표를 받고 “and”라고 말한 후 75만동을 주니 깔끔하게 종류가 다른 표를 끊을 수 있었다. 안내판을 따라 가다가 화장실이 있어 들러 소변을 보았다. 베트남에서는 큰 건물이나 식당에서 미리 소변을 보고 다니는 것이 좋다. 아니면 2,000동을 주어야 하는데 잔돈이 없는 경우 낭패를 보기 쉽다.
< 왼쪽 첫줄이 어른 표 값이다. 케이블카 표 값 70만동, 라오까이 주민은 50만동, 케이블카 타는 역까지 푸니쿨라 표값 5만동(return ticket), 판시판 푸니쿨라 표값 7만동(way up)이라 적혀 있다. 어린이의 기준이 재미있다. 1 ∼ 1.3m 사이라고 하니 나이가 어려도 키가 크면 어른 요금을 내어야겠네. >
< 푸니쿨라는 건물 1층 끝에 있었는데 길에서는 보이지 않는 위치였다. >
< 푸니쿨라가 건물에서 출발하면 바로 아래는 절벽 위에 선 것처럼 낭떠러지다. 건물에서 바로 철교를 놓아서 경사진 길을 오른다. >
< 푸니쿨라에서 내려다 본 경치도 장난이 아니다. 지대가 높아도 다랑이 논으로 개간할 수 있는 곳은 전부 개간하였다. >
< 다낭의 바나힐의 케이블카 사업을 하는 “선월드”에서 사파 케이블카도 운영을 하는데 자본을 투자하는 규모로 짐작컨대, 아마 사파도 곧 발 디딜 틈 없는 관광지가 될 듯하다. 사파 시내의 한집 건너 이루어지고 있는 호텔의 증개축이 이 케이블카와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아직은 홍보가 덜되어 호텔 예약도 수월하고 물가도 싼 편이지만 그런 호시절은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
<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모습. 인간이 만든 풍경인데 자연을 따르다 보니 자연을 닮아 길마저 인위적이지 않게 보인다. >
< 케이블카를 내려 정상까지 가는 푸니쿨라를 탄 후 다시 가파른 계단 100개쯤 올라와 드디어 판시판 정상에 올랐다. 별 하나는 베트남 국기의 별을 상징하는 것 같다. 혼자서 찍는 사진은 늘 어색하다. >
어디를 가든지 안내판을 잘 읽어보아야 하는데 나는 늘 여행이 끝나고 와서 글을 적으며 사진으로 확인을 하니 가끔 문제가 생긴다. 아래 커피숍에서 기다리는 안선생을 생각하고 바로 하산하기로 했다. 내려가는 푸니쿨라를 타려고 하니 안 된단다. 무슨 이런 경우가 있담? 그래서 내려가는 길을 보니 까마득하다. 알고 보니 내가 산 표는 “return ticket”이 아니라 “way up ticket”이었다. 쉽게 말하면 편도 티켓인 셈이다. 아래의 안내판에 괄호 안에 적힌 걸 보지 못한 탓이었다. 하는 수 없이 근처 매표소에서 하산 표를 사니 8만 동이다. 1만 동이 비싸다. 도둑놈의 새끼들.
< 산을 올라오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 싫다. 계단이 끝없이 이어져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런 급경사의 계단을 걸어 내려가라고? >
< 판시판의 부처는 정결한 안개로 목욕재계하시고 인도지나 반도의 중생을 제도하시되, 부처 당신께서는 인간의 죄가 묻어 그런지 검다. >
< 산을 내려와 사파 시내의 “판시판 레스토랑”에서 호박 soup, spring roll, 밥과 마파두부, 팬케이크로 구성된 코스 B를 주문해 먹었다. 가격은 1인분 4,500원 정도인데 너무 지저분해서 절대 권하고 싶지는 않다. >
피곤했지만 근처 함종산이 좋다기에 가보기로 했다. 사파 성당 왼쪽 옆으로 난 길을 따라가니 왼쪽 비탈진 길에 상점들이 줄지어 있고 매표소가 보였다. 일단 매표소까지 가서 입장료는 7만 동이다. 안내 책자를 받아 보니 일종의 공원에 시설을 한 것인데 제법 걸어야 할 듯한데 둘 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포기하기로 했다.
< 저녁으로 쌀국수와 새우와 버섯꼬치, 그리고 어젯밤의 추억으로 다시 돼지고기를 주문했다. >
방에서 사파의 마지막 밤을 소맥 파티로 장식 후 잠자리에 들었다.
♠제 11 일 (2018. 11. 09. 금) 사파 - 하노이
체크아웃 시간이 11시인지라 호텔 조식 후 대강 가방을 꾸리고 빈둥거렸다. 나는 계속 방에서 개기고 어제 푹 쉰 안선생은 나가 커피 한잔하고 들어왔다. 체크아웃하고 나와 “Sapa Express” 사무실로 가 한번더 티켓 건을 확인하고 가방을 맡기고 나왔다.
사파 공원 옆 “Cong cafe”에 들러 난 코코넛 밀크 커피를, 안선생은 수박주스를 시켰다. “Cong cafe”의 “Cong”은 “Viet Nam Cong San”의 “Cong”이다. 이는 남베트남 민족 해방 전선 소속의 군사 조직인데 쉽게 말해 “베트남의 공산주의자“를 의미한다. 그래서 일하는 애들이 군복 비슷한 것을 유니폼처럼 입고 있다.
< 공산주의자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이들은 자랑스러운 역사의 일부라 여기는 듯하다. >
현대 베트남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다. 베트남의 공산당이 주도한 독립 선언으로 시작된 1946년 베트남과 프랑스의 전쟁은 디엔 비엔 푸 전투에서 베트남군의 승리함으로써 1954년 종전이 된다. 제네바 협정에 따라 북위 17도선을 경계로 남북으로 베트남은 분할되는데 이를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라 한다.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은 1965년 미국은 통킹 만 사건을 빌미로 북베트남을 공격하여 발발되는데 1973년 파리 평화 협정으로 미군이 철수하고 종전되기까지를 말한다. 이 역시 베트남의 승리로 끝이 났다. 앞서 이야기한 1979년 중국과의 전쟁 역시 베트남의 압도적 승리로 끝이 났으니 결국 그 밑바닥에는 호치민으로 대표되는 민족주의적 공산주의자들의 헌신적 노고가 있었다. 그러니 이들이 공산주의에 대해 가지는 감정은 적대시해야할 “이즘”이 아니라 민족적, 구국적 이념인 것이다. 주어진 해방이 아니라 쟁취한 해방이었기에 자랑스러워할 만하다고 하겠다.
콩 카페를 나와 일찍 점심을 먹기로 했다. 이리저리 다니다가 중국식당에 갔는데 메뉴판에 베트남어밖에 없어 다른 걸 달라고 했더니 중국어로 된 것을 준다. 중국은 이웃하여 서로 왕래를 하니 메뉴판이 있는데 “잉글리시”라니 없단다. 그래서 포기하고 나왔다. 이 식당은 아직 시대를 읽지 못하고 있다. 최소한 관광지라면 영어 메뉴판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 옆에 고기 뷔페식당이 보여 안선생이 가자고 하는데 점심에 고기 뷔페는 과한 듯하기도 하고 2층에 보이는 사람들이 전부 집게를 들고 설치는 것이 보여 그냥 구관이 명관이란 말을 믿고 늘 가던 식당으로 갔다.
< 아래 떡가래 같은 것이 대통 밥이고 그 위 고추 비슷한 것을 놓아둔 접시가 대통 밥을 찍어 먹는 양념이다. 왼쪽 붉은 고추장 같은 것은 돼지고기를 찍어 먹는 양념인데 살짝 달다. >
지금까지 우리가 늘 시켰던 쌀국수에서 벗어나 오늘은 이 집에서 마지막 식사이니 대통 밥 2개, 돼지고기 바비큐, 버섯과 고추 비슷한 콩깍지 닮은 것, 그리고 닭고기 버섯 수프를 주문했다. 돼지고기는 맛있는 걸 알고 있었지만 왜 우리는 대통 밥을 시켜 먹지 않았는지, 그리고 왜 수프는 마지막에서야 시켰는지 탄식이 나올 뿐이었다. 이 식단이 우리가 원하던 완성된 모습이었지만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이다. 발발거리며 손님 주문을 받는, 우리로 보면 겨우 중학교 1학년 정도로 보이는 두 소녀, 수염을 얌생이처럼 길러 식당 전체를 둘러보는 인민복 차림의 남자주인, 태생이 찌푸린 듯한 얼굴의 여주인, 좀 어리숙해 보이는 남자 종업원, 그러나 이 집의 기둥이며 닻이 되는 건 바로 이 아가씨이다. 영어도 능숙하고 계산도 빠르고 모든 일을 바로바로 처리하는 것이 시원시원하다. 우리는 이 아가씨가 있으면 들어가고 없으면 안 들어간다고 했을 만큼 일솜씨가 참 야물다.
< 입을 꼭 다문 얼굴에 펜을 쥔 손을 보라. 탄탄하게 생기지 않았는가! >
< 오후 1시 30분 하노이 행 sleeping bus를 탔다. 처음 타는 것이지만 안에 화장실도 있고 키가 그리 크지 않으면 그런대로 탈 만하다. >
일기예보에 오늘부터 우리가 가는 날까지 비가 온다더니 하노이 가까이 오면서부터 빗방울이 듣는다. 비는 오락가락했지만 그칠 기미는 없다. 비를 맞으며 캐리어를 끌고 갈일을 생각하니 끔찍하다. “사파 익스프레스”에서 “아만다 호텔”까지 택시를 타려고 해도 택시를 기다려 캐리어를 택시에 싣고 내리고 할 동안에 걸어가면 닿을 거리라 그것도 어중간하다. 버스에서 내릴 때쯤은 아예 비가 소나기처럼 내리는데 아! 감동, 차장이 내리는 승객에게 무료로 비닐우의를 하나씩 주는 것이다. 얼른 꿰어 입고 나니 안선생은 팔과 머리의 출구를 못 찾아 비닐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손이 상당히 많이 가는 할배다.
예약해둔 아만다 호텔에 갔더니 304호실을 주는데 603호실보다 방이 좁고 갑갑하다. 왜 그럴까? 가만히 보니 창문이 없다. 603호는 그래도 바깥쪽 창이 있어 정리되지 않은 남의 집 지붕이라도 보였는데 그 방향은 아예 벽처리가 되어 있다. 그래서 창문이 없다고 아가씨에게 말하니 창문이 있다고 한다. 아! 창문이 있구나. 복도 쪽으로 명분만의 창문이 있다. 호텔에 투숙한 사람이 복도 쪽 창문을 열어두고 있으면 오가는 사람들의 눈요기나 되자는 건가? 그래도 창문이 있다고 하니 할 말은 없다. 이게 베트남 가옥 구조의 비극이다. 아마 그래서 베트남 사람들이 기를 쓰고 베란다 만들기를 고집하는지 모르겠다. 꿩 대신 닭이 아니라 낼 수 없는 창문 대신 낼 수 있는 베란다를 만든다는 이야기다.
< 시간이 좀 늦어 클래식 호텔로 가 석식이 되느냐고 하니 된다고 한다. 오늘은 고생을 했으니, 스테이크에 와인을 한잔하기로 했다. 그러나 제일 비싼 8,000원짜리 “US top blade steak”는 안 된다고 한다. 그래서 “mushroom beef”와 “lemongrass pepper beef”를 각 5,000원에 주문하고 레드 와인을 주문했는데 와인 값은 12,000원이었다. >
< 가게에서 보드카와 캔맥주와 요구르트를 사와서 방에서 한잔하고 취침. >
< 3부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