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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아이를 등원하고 가는 길, 평소보다 10분 늦게 도착을 하게 되어 마음이 급해집니다.
부랴부랴 도착해서 점빵에 오니, 미리 물건 챙겨놔주신 우리 선생님들, 고마웠습니다.
9시 15분,
아침이 한산합니다. 일자리로 참여하고 있는 어르신들, 분주하게 마을 곳곳에 풀을 메고 계십니다.
그곳에서 조용히 울리는 동락점빵의 소리.
한동안 기다려봐도 오지 않는 어르신들. 이제 모내기가 한창 시작할 때 이기도 해서 그런지 마을에 어르신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못살것을 미리 알고 요 몇일날 전에 미리 전화해서 주문해주시는 우리 어르신들. 전화 주시는 마음이 참 감사할 따름입니다.
9시 35분,
어르신 댁 문이 열려 있고 밀차도 있는데 어르신이 나오지 않습니다. 마당까지 가니 티비소리가 다들립니다. 얼마나 크게 해놓았는지, 어르신은 누워계시다가 저랑 눈이 마주치시곤 깜짝 놀라십니다. 시간 가시는 줄 모르고 누워계셨던것이지요. 한참 나오셔서 어르신께서 하시는 말씀이,
"아니, 누가 내 마당을 이렇게 다 정리해놔버렸어~~ 저 뒷집인 것 같은데 뭐 좀 사다줘야겠어~" 하십니다.
마당에 풀이 베져있고, 화단도 정리되어있는 모습에 어르신은 선사하고자 하셨습니다.
"뭐가 좋을랑가...그 집은 술도 안마시고 참.." 한참 고민하시다가 망고쥬스 3개, 카스타드 한개 고르셨습니다.
그러다 어르신께 "요즘 밖에 일하시는 젊은 사람들은 이런 포카리스웨트 이온음료 좋아해요~~" 하고 하니,
어르신께서 망고쥬스를 내려놓고 포카리 한 상자를 사십니다. 그러곤 흐뭇하게 좋아하시는 어르신. 도움을 받았으면 그에 따라 마음을 답례하는 것이 인지상정임을 몸소 실천해주십니다.
9시 45분,
오늘은 불가리스 어머님들이 안나오셨습니다. 한 집으로 들어가니 놓여져있는 만원짜리 1장, 오천원짜리 1장. 신뢰입니다. 직원 선생님이 이 두집에 배달갈 불가리스는 따로 챙기신다고하셔서 잔돈만 놓고 나옵니다. 아랫집에도 가보니 아랫집 어르신은 돈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문은 열려있었습니다. 선생님께 말씀드려 배달할 때 냉장고 안에 두줄 놓고와달라고 부탁드립니다.
이번주도 어르신들의 장이 원활한 운동 되길 바래봅니다.
9시 55분,
"어이!!!!!! 커피 마시고가!!!!!" 하시는 쩌렁쩌렁한 어르신의 소리. 알고보니 윗 마을서 일자리 끝나고 가는 어르신한테 소리지르시는 마을 어르신의 소리였습니다. 그 모습에 저도 "어르신!!!!!저도요!!!!!" 해봅니다. 어르신이 막 웃으시더니 "어여와~~" 하십니다. 윗집 어르신도 마침 내려오셔서 같이 커피 한 잔 마시러 모시고 갑니다.
어르신 댁에 들어가니 우리 일자리 참여했던 어르신이 "아이구 잘 왔네 잘 왔어~~" 하시며 안쪽 자리 내어주십니다. 물 끓는 시간에 우리 일자리 참여한 어르신께서는 "이보게들 커피에 소금 한 덩이씩만 넣어봐. 그게 그렇게 좋다네~! 맛도 좋아~" 하십니다. 믹스커피에 소금을 넣는것이 상상이 안되지만, 어르신께서 소금을 한덩이씩 넣어주셨습니다. 그 맛을 본 어르신 2분. 맛이 좋다며, 참 센스있게 사네~! 하십니다.
그러곤 일자리 어르신께서는 하소연을 하시기 시작하십니다.
"글쌔 말이여.. 우리 동네 어른 둘이 그렇게 싸워재끼고 난리 치는데, 내 속이 열불나서 화해도 안하고.. 아이구... 그래서 내가 오죽하면 우리 서방 무덤가서 실컷 울다 왔다니깐. 근데 그 소리를 들었는지, 그 어른 한명이 오더니 회관 가자고 하더이다. 그래서 또 갔더니.. 화해를 하는가 싶더니 또 그러는거 있지. 아이고... 참말로 이 좁은 동네서 다들 좋게 좋게 살아야지 이게 뭔난리인지 모르겠당께. 결국엔 화해를 하긴 했는데, 내참 그랬어 정말." 하시며 동네에서 아쉬웠던 이야기를 푸셨습니다.
어르신의 속이 얼마나 상하셨을지... 커피 한 잔에 다 풀어낼 순 없지만 듣다보니 30분이 훌쩍 지나서 어르신들껜 어서 인사드리고 나섰습니다.
10시 45분,
"어이~! 동광~!! 소주 두 박스만 갖고 오게나~!" 하시는 어르신.
점빵차 보자마자 바로 이야기 하십니다. 오늘은 토방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계셨습니다. 무슨일인가 싶더니 소머리고기를 해오셨다며 앉아서 양껏 먹고 가라고 하십니다. 콜라 한 캔 함께 내주시는 어르신.
먹을려고 하는 순간,
"이건 소 혀, 이건 소 귀, 이건 소 머리..." 하시는데, 입이 짧은 제가 순간 젓가락이 머뭇거렸습니다. 그래도 어르신들께서는 잘먹는것을 좋아하시니, 최대한 먹을만큼 먹고, 잘먹었다며 인사드렸습니다. 그러시곤 옆에 앉아계시던 어르신이,
"울집도 두박스 내려놓고 가게~" 하시며,
"난 여 회원이라 여서만 사야혀~~" 하시며 허허 웃으십니다.
이동네 함께 술마시는 멤버들이 계셨는데, 활동범위가 여기까지 계신줄 몰랐습니다. 논들이 워낙 곳곳에 있다보니 활동범위가 넓어지셨구나 싶었습니다.
11시,
기다리고 있을무렵, 어르신께서 집 마당서 나오십니다.
집 마당에서 차가 있는 곳까지는 생각보다 경사가 있어 밀차로 밀고 올라오는것이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르신께 내려가서 무엇이 필요한지 여쭤보니,
"간장.. 애간장 있어?" 하십니다.
그리고 "막걸리도 하나" 하십니다. 아들은 어디에 있는지 여쭤보니 방안에 있다고 하십니다.
어르신께서는 차로 올라오실려고 하시기에, 필요하면 갖다드리겠으니 말씀해달라고 하니, 일단 먼저 말한것만 달라고 하십니다.
그러곤 어르신께 물건 드리고 다시 마을을 나가는 길, 어르신 집 골목 위에 어버이날 꽃에 달려있었던 것 같은 리본 하나가 보입니다.
어버이날 자식들이 왔다 갔구나 싶은 생각에 안도감을 가지며 돌아갑니다.
11시 25분,
지난번에 두부를 사셨던 젊은 이모님, 오늘도 오셨습니다. 이모님 알고보니 미국에서 살다 오셨다고 합니다. 본집은 광주에도 있는데 이 동네에 동생이 살고 있어서 왔다갔다 한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점빵차 운영하는 것에 관심이 있어보이셨습니다.
"이것으로 수익이 나요?" "매일 와요?" "당근은 왜이렇게 비싸요? 미국보다 더 비싼것 같아요." 하는 여러 질문에,
마을에서 필요로 하는 일이고, 어르신들 구매력을 볼 땐 매일 오는 것이 비효율적이며, 미국의 유통망과 한국의 유통의 구조는 매우 다르기에 가격을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님을 말씀드렸습니다. 동네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야채인데, 매장으로만 오면 왜 비싸지는지 이해가 안간다는 이모님 말씀에 저도 충분히 공감을 하며, 유통 구조의 문제임을 말씀드렸습니다.
11시 45분,
오늘도 아랫쪽에서 밭일 하다오시는 어르신.
오늘은 바나나를 사지 않으십니다. "오늘은 일 안항께 바나나를 안사지, 지난번엔 참으로 샀고~" 하시며 집에서 필요한 것들 사십니다.
수퍼타이, 간장, 락스, 식용유, 계란
다 들고 가시기 힘들 것 같아 식용유 계란만 부탁드리고 나머지는 들어다드렸습니다.
13시 30분,
요즘 동네를 다니다보니 전동퀵보드 같은 것을 타고다니는 젊은 여자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군가 싶었는데, 마침 점빵차로 다가오는 그 분
"시원하거 있나요?!"
마침 저온저장고에서 막 갖고온 포카리스웨트 음료수가 있어서 만져보라고 드리니 "딱 좋네요" 하십니다.
여자인줄 알았는데, 긴생머리의 남자분이었습니다. 무엇을 하고 다니시는지 여쭤보니 마을에 설치되어있는 전봇대를 점검하고 다닌다고 합니다. 이일을 주로 하시는가 싶었는데, 원래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던 간호사라고 하였습니다. 근데,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근태가 너무 힘들어 얼마전 공무원 시험으로 7급을 합격하고나서 한 의료원에 취업을 하나 싶었는데, 지난 의사파업 이후로 3월부터 쭉 발령 대기라고 하셨습니다. 대학원병원에서도 응급간호를 하고 있었던 입장이라, 인정을 받기 힘든 구조였는데, 취업마저도 쉽지가 않다보니 너무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현재는 재정 부족으로 인해서 그런지 7급보다는 9급들 중심으로 인력을 충원하고 배치하고 있다고 하니, 의료현장이 여러모로 많이 어렵겠구나 싶었습니다.
한창 이야기를 나누던 찰나, 어르신께 전화가 왔습니다.
"시정에서 뭐항당께! 나 밭에 일하러 가야하는디, 빨리와~!" 하십니다. 여기선 보이지도 않는 어르신, 점빵차가 보이셨나봅니다. 어서 인사를 마무리하고 어르신께갑니다.
13시 45분,
"뭔 얘기를 그리 한감?" 하시는 어르신. 이런저런 이야기 말씀드렸습니다. 어르신께서는 당초 필요하셨던 식용유, 그리고 햄, 참치, 짜파게티 등 식료품을 다양하게 사셨습니다.
햄류도 사실 가격이 비싸서 사먹기가 참 어려운데, 어르신께서는 "비싸도 사먹어야지~ " 하며 한 번 사실 때 두개씩 사시곤 합니다. 가끔 어르신께서 사시는 것들 보면 손주를 위해서 사시나 싶지만, 어르신 본인을 위해서 사신다고 하니 한 편으론 신기해보이기도 했습니다.
14시 10분,
오늘도 그늘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삼촌, 지난번 주문한 생수 6개 묶음 5개 갖고 왔습니다. 두 묶음씩 들어서 나르려고했는데, 삼촌은 몸 건강이 좋지가 않은지 두개를 들기도 힘들어했습니다. 집에 갖다 놔드리는 사이 필요한 물건을 추가로 더 사시는 삼촌. 건강상 이유로 생수와 화장지를 많이 사시곤 합니다. 기침을 많이하고 가래가 끓는 일이 잦습니다. 집에 환경이 중요한데, 지난번 면사무소에서 방문하여 집 정리를 모두 해주어서 참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14시 30분,
지난번에 이어 오늘도 주문을 많이 해주시는 반점집 사장님.
지난번 외상값까지 오늘 한 번에 결제해주셨습니다. 소주 8박스, 맥주 5박스... 결제하면서도 은근 오늘 결과가 어떨지 설레는 순간이었네요.
14시 45분,
"얍!!!!!!!!!!!!!!!!!!!!!!!" 하시는 어르신의 소리.
깜짝 놀랐습니다. 회관에 당연히 멈춰야겠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갑작스럽게 튀어나오셔서 소리를 치셔서 너무 놀랐네요.
회관에서 내일 치매검진 진행하신다며 식사하러 오는 인원이 많이 있다고 하십니다. 냉장고 한 번 살피시더니 필요하신 것들을 주문하시는 어르신.
"어르신 다음에는 소리 안지르셔도 되요, 천천히... 손짓만 부탁드려요." 라고 말씀드리며 인사드리고 나왔습니다.
14시 50분,
오늘은 집에 계신 두유 단골 어르신. 지난번 두유값 같이 주시면서 다른 것들 말씀하십니다.
평소 공산품을 이야기 안하셔서 차에 없는 줄 아셨는지 물건이 있는지 여쭤보십니다.
"화장실 청소하는 락스 있어? 그.. 빨래에 쓰는 세제도." 하셔서 한 번 오셔서 보면 좋겠다 싶으신대 나오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어르신 피죤은 안필요하세요?" 라고 여쭈니 함께 갖고와달라고 하십니다.
그러곤 내일 회관에서 치매검사있고 식사하니 회관가서 꼭 드시라고 말씀드리며 나왔습니다.
15시,
출발하려던 찰나 처음보는 어르신게서 손짓 하십니다.
"우유 있어?" 하시는 어르신. 그러곤 "삼성 페이되나?" 하시며 핸드폰을 주십니다.
지난번에 삼성페이 결제를 성공했던 기억을 더듬어 시도해봅니다. 두 차례 실패하다가 핸드폰을 뒤집어서 대니 성공했습니다.
"센서가 엉덩이에 있나보네~" 하시며 어르신께선 우유를 바로 뜯어 마십니다.
밖에서 일하다 갈증이 매우 심하셨나 봅니다. 지나가는 길에도 필요한 물건을 드릴수 있음이 감사한 순간이었습니다.
15시 10분,
어르신 집앞 경사로와 손잡이가 모두 해체되었습니다. 지난번 불편을 신고하고 난뒤 바로 방문하여 조취를 했다고 합니다.
어르신께서는 "아이고 고맙네 고마워~ 치워서 고마워~" 하십니다.
참 아이러니 하면서도 어르신의 말씀을 안듣고 일방처리 해버린 행정과 시공사의 안타까움이 너무 컸습니다.
작던 크던, 당사자의 의견을 잘듣고 귀기울여야 함을 생각해보던 순간이었습니다.
15시 15분,
회관에 도착하니 어르신이 나오십니다. 어르신의 얼굴을 보니 평소보다 살이 많이 빠지셨습니다.
무슨일인가 싶어 여쭸더니 "이가 아파서 뭘 잘 못먹었어~" 하십니다.
최근에 이 치료를 하셨는지, 기존에 끼던 틀니를 빼셨다는 어르신. 볼살이 쏙 들어간 모습에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어르신께서는 걱정말라며 오히려 "오늘 늦은거보니, 많이 팔았어~? " 하시며 점빵을 걱정해주십니다. 늘 하던 만큼 하고 왔다고 말씀드리며,
다음주에 뵐 때는 좀 더 살이 있는 모습으로 뵙자고 말씀드렸습니다.
15시 25분,
지나갈 때마다 감탄하고 또 감탄합니다.
마을마다 있는 당산나무, 또 그 아래 위치한 시정. 참 절묘하다 싶습니다.
15시 30분,
어르신댁 올라가니 집 현관 옆에 둥글레가 엄청 올라왔습니다. 물끓여먹는 둥글레, 그 꽃을 이렇게 보게 되었네요.
어르신은 계시는가 싶었는데, 또 밭에 나가셨다며 집에 안계신다고 합니다. 어디로 가셨는지 보이진 않지만, 어르신 안부 여쭙고 내려갑니다.
15시 40분,
어르신댁에 가니 오늘은 아무도 안계셨습니다.
"어~ 좀전까지 있다가 내려갔어~" 하시는 어르신.
방 안쪽에 못보던 단지 3개가 있습니다.
"이게 말이지, 내가 하나는 수박 하나는 마늘 하나는 사과 등 해서 막 갈았어~" 하십니다.
"이게 내가 밥 대신 먹는거야~" 하시는 어르신.
지난주보다 더 야위워져서 평소 밥은 어떻게 하시는지 여쭤보니,
"회관서 밥 다 먹어~~" 하시는 어르신,
"집에서 밥 먹는것도, 요양보호사가 해줘야 먹지..." 하며 끝내 씁쓸해하셨습니다.
주간보호로 다시 오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니,
"죽어도 내 집에서 죽어야지, 내가 어딜가나.." 하십니다.
어르신께서 주신 수박쥬스 한 잔 먹으며, 한편으로는 과일의 당을 너무 많이 섭취하시는건 아닌지 조심스레 걱정을 해봅니다.
어르신께서 선택하신 삶을 존중해야하지만,
매일 꾸준한 식사를 잘 하지못하고 있는 상황은 염려가 되네요.
동네 다니며 외부사람들이 점빵차를 보면 하는 말씀들이,
"돈이 되요?" "군에서 운영하죠?" 라는 말씀들을 종종하십니다. 그럴 때마다 민간에서 하고,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운영합니다 라고 말씀드리면,
"좋은 일 하시네요~ " 하십니다. 그럴 떈, "마을에서 필요로 하는 일이니깐요~" 라며 답을 드립니다. 돈이 되지 않는 일은 지속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시장구조이지만, 언젠간 이 일이 지방 면단위에서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일임을 인정받는 그 날이 오길 생각해봅니다. 돈을 벌기위해서 점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삶과 사회를 만들기 위해 최소한의 유통 인프라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일을 하기 위해 점빵이 운영되고 있음을 인식되는 그 날이 오기까지, 더욱 열심히 달려봐야겠다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