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벌린의 <러시아 사상가(1)> :이사야 벌린이 본 톨스토이의 역사관
1. 이사야 벌린은 ‘자유’에 대한 고전적이며 현대적인 의미를 권위있게 정리한 인물로 알려져 있을 뿐 아니라, 현대 세계와 인물에 대한 심층적이고 다양한 측면을 극단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사상가이다. 그의 글에서는 추상적이고 복잡한 관념을 활용하지 않으면서도 명쾌하면서도 심도있는 논의가 등장한다. 츠바이크의 글과 함께 그가 보여주는 인물에 대한 평가에서는 한 인물을 분석할 때 접근할 수 있는 인식과 표현의 최대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전범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나치게 난해하거나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단순한 개념을 남발하지 않는 표현은 이사야 벌린이 갖고 있는 지성의 깊이를 말해준다.
2. 벌린의 러시아 사상가들에 대한 글을 모은 『러시아 사상가』에는 벌린의 대표적인 철학 에세이 「고슴도치와 여우」가 실려있다. 벌린은 고대 그리스의 시인 아르킬로코스의 시구 “여우는 잡다한 것을 알지만, 고슴도치는 굵직한 것 하나를 안다.”를 인용하면서 지식인의 유형을 고슴도치형과 여우형으로 나누고 그들의 핵심적인 특징을 기술한 후, 톨스토이의 대표적인 작품 『전쟁과 평화』에 나타난 역사관을 분석한다. 벌린의 분석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이상적이고 공상적인 평화주의자 톨스토이와는 다른 면모를 만나게 해준다. 젊은 날의 톨스토이가 갖고 있던 역사와 인생에 대한 통찰은 종교적 세계에 몰입한 말년과 다르게 형이상학적 독단론을 비판하면서 개별적인 지식과 관찰의 중요성을 강조한 회의주의자이면서도 지극히 현재에 집중하는 모습이 강조된다.
3. 벌린은 톨스토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서론적인 논술을 통해 고슴도치형과 여우형의 특징을 정리한다. “첫 번째 유형(고슴도치형)은 이해하고 생각하고 느낄 때 단 하나로 된 중심적 버전, 대체로 일관되고 논리정연한 단일체계, 오직 자기의 입장과 주장만이 중요하고 유일하며 보편적인 어떤 조직원칙에 모든 것을 수련시키는 사람이다. 두 번째 유형(여우형)은 서로 무관하기 일쑤고 심지어 모순적이기까지 하며, 설령 연관이 있다고 해도 일관된 도덕적·심미적 원리로 서로 접합되는 게 아니라 어떤 사실적 측면에서만, 즉 심리적이거나 생리적 이유로만 연결될 뿐인 다양한 목표를 추구하는 자들이다.” 이런 정의 이후 톨스토이를 설명하는 것은 이 유형 중에 톨스토이가 어디에 속하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자 이러한 유형을 구분하는 실제적인 방법에 대한 사례를 추적하는 작업일 것이다.
3. 톨스토이의 작품 『전쟁과 평화』는 인물과 사건의 묘사에 대한 예술적 탁월성에도 불구하고 철학적 세계관이 부족하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벌린은 그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톨스토이의 역사관을 재구성한다. 벌린은 톨스토이가 영웅, 역사적 힘, 도덕의 힘, 민족주의, 이성 등의 추상적 가치를 이상화하고 그것의 타당성을 입증하려는 형이상학적 시도를 부정하고 비판하였다고 강조한다. 역사를 움직이고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이성적 수단, 법의 제정, 과학적 지식의 확산 등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불신하였던 것이다.
4. 이런 이유로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전쟁을 이끌고 승리를 결정짓는 힘이 특정한 영웅이나 뛰어난 인물의 영향력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오히려 이해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어떤 요인이 역사를 결정짓는 것이다. 톨스토이에게 지혜는 구체적인 사물과 경험을 이해하는 능력이며 환경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며 우리가 알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법에 대한 앎인 것이다. “지혜는 우리가 우리의 경험을 특징짓는 시공간의 침투성을 가늠할 수 있는 능력이며, 우리의 활동을 에워싸고 있는 불변적 매개체를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것은 ‘불가피한 흐름’, ‘측정할 수 없는 것’, ‘만물의 존재방식’을 의식적으로 무시할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하다.”
5. 톨스토이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추상적인 힘과 이념을 통해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과는 무관하다. 오히려 이러한 주장은 삶의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의 보편적 구조를 지배하는 어떤 만물의 불변적 관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벌린은 이것을 동양적 숙명론과는 다른 개인의 개별적 능력과 특성을 인정하면서도 개인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는 톨스토이의 접근방법이라고 설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톨스토이에게 통찰력은 “사건의 움직임이나 변화무쌍한 특징들을 포착하는 틀을, 우리 손으로 바꿀 수 없고 우리의 권력에 통제받지 않는 ‘냉혹하고 보편적이고 편만한 무엇으로 인식하는 영원한 현재의 감각’”인 것이다.
6. 톨스토이의 역사관에는 어떤 갈등이 존재한다. 즉 개개인의 특성만이 진실이라는 신념과 개인의 특성에 대한 분석만으로는 진실을 알 수 없다는 원칙 사이에 갈등은 그를 끊임없이 괴롭힌 문제 중 하나였다. 경험적으로 이루어진 관찰의 중요성을 확신하면서도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통합하는 어떤 힘의 필요성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본능적 판단과 이론적 확신의 충돌은 19세기 유럽을 지배했던 이성과 과학적 사고의 영향력에 저항하면서도 그것을 완전하게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없는 갈등의 일종처럼 보여진다.
7. 톨스토이는 한평생 과학, 문명, 합리적 비판을 의심했다. 그에게 진리는 이러한 것들을 제외한 무엇이었다. 그에게는 사실에 대한 지식이 늘어날수록, 현재의 세계를 표현하는 개념이나 범주가 생겨날수록, 행위는 오히려 부자연스러워진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톨스토이의 본능과 이론 사이의 갈등은 점점 심해졌고 결국 말년의 톨스토이는 갈등을 포기한 채 종교적 세계 속에서 사상의 평화를 추구했다. 기독교적 평화주의는 그의 도달점이었다. 하지만 그런 결론에 도달하기 전에 그가 추구했던 갈등의 영역에는 인간이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내기 위한 치열한 사상적 투쟁의 흔적이 남겨져 있다.
8. 벌린이 서두에서 제시했던 지식인의 두 유형(고슴도치와 여우) 중에서 톨스토이는 어디에 가까울까? 비록 우리가 알 수 없는 힘에 대한 복종을 주장했지만 그것에 도달하기 위하여 구체적인 역사와 인물에 대한 정교한 묘사와 관찰을 통해 접근했다는 점에서, 또한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과 갈등의 흔적을 추적했다는 점에서, 젊은 날의 톨스토이는 여우형에 가까울지 모른다. 비록 말년에 고슴도치의 평화 속으로 들어갔지만 말이다. 벌린이 쓴 이 글의 매력은 한 인간의 평가에 대한 복잡하고 다양한 접근의 필요성과 말과 글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인간의 특성을 구체화하는 작업의 정교함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나의 글은 단지 어떤 지식을 전달해주는 것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식과 사실을 일련의 비교와 분석을 통해서 확정짓는 작업이라는 점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다이제스트화된 최근의 교양서를 비판하는 이유도 그러한 책들에는 사고의 결과만 나타날 뿐, 사고의 과정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우와 고슴도치>는 톨스토이의 역사관을 어떤 기준에서 어떤 방법으로 어떤 비교와 분석을 통해 파악하는 가를 생생하게 보여줄 뿐 아니라 그러한 측면을 매력적인 언어로 재현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은 작품이었다.
첫댓글 - "사건의 움직임이나 변화무쌍한 특징들을 포착하는 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