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語文生活> 제236호(2017. 07. 01.) 게재
亂名난명의 대한민국! 正名정명으로 바로잡자
朴光敏(박광민-한국어문교육연구회 연구위원 / 현절사 有司)
최근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주 되뇌는 말 중 “이게 나라인가!”라고 하는 自愧感자괴감 섞인 비아냥거림이 있다. 保守보수냐 進步진보냐의 정치적 性向에 따라 그 의미는 相反 되게 해석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필자 또한 이 말을 곱씹을 때가 많다. 물론 필자가 되뇌는 이 말은 정치적 성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망가진 한국어의 모습을 보며 느끼는 慘憺참담함에서 비롯된 嘆息탄식이다.
亂名난명의 대한민국! 거리에는 영어 간판이 櫛比즐비하고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외국어를 암호 같은 한글로 적어 놓아서 “과연 이곳이 대한민국일까.”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아파트 명칭은 ‘파빌리온․그랑시티자이․브라운 스톤’ 등 외국어 명칭이 대부분이다. 여러 분야의 상품 이름도 영어로 짓는 경우가 많다. 국산 자동차나 TV, 냉장고, 에어컨, 화장품 등에서 한국어 명칭을 하나라도 찾아볼 수 있는가.
“UV VEIL MOISTURE SUN ESSENCE”라는 화장품 명칭은 “濕潤性습윤성 紫外線자외선 遮斷劑차단제”라고 하면 한자를 아는 이는 누구나 쉽게 정확한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상품명을 영어로 짓는 것은 국제화 시대의 대응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담당자가 영어를 한국어로 的確적확히 對譯대역할 능력이 없는 것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외국어 번역시 적절한 어휘 선택은 필수지만 수십 년 한글전용교육의 늪에 빠진 우리에게는 풍부한 어휘력을 바탕으로 한 충실한 번역 능력이나 새로 만들어지는 西歐서구의 新造語신조어들을 한국어로 對譯대역해 낼 능력이 없는 것이다.
몇 해 전 梨花女大이화여대 崔在天최재천 교수가 영어의 “Consilience”라는 말을 “統攝통섭”이라는 새로운 말로 번역했다고 하여 話題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동양의 인문학에서는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사용해 온 것으로 전혀 새로운 말이 아니다. 『周書주서-陸騰傳육등전』에 ‘統攝’이라는 말이 사용 되었고, 『朱子語類주자어류』에도 “지금의 史官사관은 모두가 서로 통섭함 없이 각자 일년을 나누어 (기록)한다.(今之史官全無相統攝 每人各分一年去做)”고 하여 ‘統攝통섭’을 ‘相互交遊상호교유’라는 의미로 사용 했으므로 ‘學際間학제간’이라는 말과도 통한다.
영어 명칭의 범람도 큰 문제지만 호칭 문제 또한 심각하다. 어느 TV 예능 프로그램에 ‘기자계의 여신 ○○○’이라는 명찰을 달고 나온 기자가 있었다. ‘국민가수 ○○○․국민배우 ○○○’라는 말도 드물지 않게 듣고 본다. 심지어 하느님에 빗댄 ‘○느님’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記者界기자계의 女神여신’이라니 이런 오만한 호칭이 어디 있는가. ‘국민가수․국민배우’라는 호칭은 ‘驕傲之心교오지심’에서 나온 것이니 방송국에서 아무리 강요해도 생각 있는 사람이라면 결단코 사양할 일이겠거늘 孟子맹자가 말한 四端사단 중 ‘辭讓之心사양지심’의 禮예를 배우지 못한 까닭에 그런 호칭으로 불리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낄낄거리는 것이다.
『論語논어』 「子路篇자로편」에, “衛위나라 군주가 선생님을 모셔다 政事정사를 맡기려 하는데, 선생님께서는 무엇을 먼저 하시겠습니까.(子路曰, 衛君待子而爲政, 子將奚先?)”라는 子路자로의 질문에 “반드시 이름을 바르게 할 것이다.(子曰, 必也正名乎)”라고 대답한 孔子공자의 말은 母國語모국어에 대한 正體性정체성마저 외면한 채 그악스런 다툼으로 국력을 낭비하고 있는 우리가 마음에 새겨야 할 銘言명언이요, 名言명언이다. 『論語』 「子路篇」 鄧林등림의 備旨비지에 “먼저 그 君臣군신과 父子부자의 이름을 바루어 그 명칭으로 하여금 실질에 맞게 하겠다.(必先正其君臣父子之名 使名稱其實乎)”고 한 것처럼 공자의 ‘正名정명’ 사상은 명칭과 명분을 아우르는 말로, 명칭이 바르게 서야 명분도 제 자리를 찾게 된다는 뜻인데, 『論語』 「顏淵篇안연편」의 “君君臣臣父父子子군군신신부부자자”와도 相通상통하는 내용이다.
모국어에 대한 정체성이 확고하다면 商號상호나 제품의 명칭 하나라도 어찌 소홀히 짓겠으며, 남편을 ‘오빠’라 하고, 아내에게 ‘야’ 또는 ‘너’라고 하는 오랑캐 호칭을 사용하겠는가. 宋송나라 張載장재의 <東銘동명>이라는 글에는, “戲弄희롱의 말은 생각에서 나오고, 戲謔희학스런 행동은 잔꾀에서 만들어진다.(戏言出于思也, 戏动作于谋也)”고 하였다. 인간은 언어로 思惟사유하는 존재이므로 평소 ‘正名정명’의 뜻을 깊이 새겨 올바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라면 상스런 희롱으로 다른 사람을 놀리거나 남에게 희학질을 할 리가 없는데, 명칭과 호칭이 混雜혼잡스러워지니 邪曲사곡의 萌芽맹아만 무성하게 자라서 大義대의와 名分명분은 대한민국에서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이 모든 문제의 根底근저에는 漢字한자․漢文한문 교육의 放棄방기가 根因근인으로 자리 잡고 있거니와 漢文學한문학 전공 교수가 한문학 논문을 쓰면서도 引用文인용문 외에는 한 글자의 漢字한자도 쓰지 않는 이가 적지 않다. 이는 자기 學問학문에 대한 否定부정이요, 논리의 矛盾모순이다. 漢字의 筆順필순조차 제대로 모르면서 컴퓨터 자판만 두드려 논문을 쓴 이들도 교수가 될 수 있는 나라! 거의 모든 국민이 “한글사랑 나라사랑”이라는 狂信的광신적 한글전용 假善主義가선주의[populism]와 방송언어의 낄낄거리는 광대쇼비니즘[clown chauvinism]에 中毒중독되어 思惟사유와 四維사유[禮․義․廉․恥]를 내 팽개쳐 버린 나라! 盲目的맹목적 西歐憧憬서구동경으로 영어 표현이 日常化일상화 되었으면서도 모국어의 올바른 사용에는 관심조차 없는 나라! 오로지 경제만을 話頭화두로 삼아 ‘어렵다, 어렵다.’ 하면서도 恭儉공검과 廉正염정 보다는 먹고 노는 향락에 耽溺탐닉해 할 짓 다하면서 남탓만 하는 나라!
“정말 이게 나라인가!”
첫댓글 박광민 선생님 귀한글 감사 합니다.
고맙습니다.
변변찮은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맞는 말씀입니다
귀한글 잘읽고갑니다
"말 한 마디로 천량 빚을 갚는다."는 속담은 빈말이 아닌데도 우리는 말의 중요성을 종종 잊고 삽니다.
*** 감사합니다.
올려주신 글, 끝까지 잘 읽었습니다.
목요일인 오늘 하루도 부디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서로 남탓만 하는데 열을 올려서 한국어가 지금 처럼 경박스러운 적이 없었고, 지금처럼 머흐러운[險한] 적도 없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