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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3장 1-9절. 신령한 자와 육신에 속한 자. 찬 427장, 512장
앞부분에서 바울 사도는 ‘육에 속한 사람’과 ‘신령한 사람’을 대조하여 말하면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마땅히 신령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이 마땅히 ‘신령한 사람’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여전히 육신의 정욕에 따라 사는 ‘육신에 속한 자’임을 지적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육신에 속한 자’인 증거로서, 바울 사도는 그들이 서로 시기하고 분쟁함으로써 바울파, 아볼로파 등 파당을 형성한 것을 들고 있습니다(3-4절).
그러면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고린도 교인들은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임을 밝히고, 바울이나 아볼로와 같은 사역자들은 하나님의 밭과 집에서 섬기는 일군일 뿐이라고 말합니다(5-9절).
1절.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I, brethren, could not speak to you as to spiritual men, but as to men of flesh, as to infants in Christ.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Κἀγώ, ἀδελφοί, οὐκ ἠδυνήθην λαλῆσαι ὑμῖν ὡς πνευματικοῖς
and I, brothers, not I was able to speak to you as to spiritual
‘말할 수 없어서’에서 앞의 동사(ἠδυνήθην)는 부정과거 수동태이고(was able), 뒤의 동사(λαλῆσ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to speak)로서 도무지 말할 수 없는 것을 가리킵니다.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ἀλλ’ ὡς σαρκίνοις, ὡς νηπίοις ἐν Χριστῷ.
but as to fleshly, as to infants in Christ
1. <신령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πνευματικοῖς(프뉴마티코이스)'는 2장 14-15절과는 달리 본 절에서는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즉 ‘신령한 성도’란 성령 충만하고, 생활 속에서 성령님과 동행하면서 말씀(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해가는 성도를 가리킵니다.
2.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
<육신에 속한 자>(σαρκίνοις)는 예수 믿고 구원받았지만, 생활 속에서는 예수님 안 믿는 사람(2:14. 육에 속한 사람)과 하등에 다를 것이 없이 영적으로 미숙한 상태에 있는 '그리스도 안의 어린아이'(νηπίοις ἐν Χριστῷ)를 가리킵니다.
즉 ‘육신에 속한 자’란 고린도 교인들의 상태가 여전히 성숙 되지 못하고 육신의 욕망을 따라 살고, 육적인 편견과 기준을 따라, 사람을 중심으로 파당을 만들고 정치적으로 움직이는 교회의 모습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2절.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 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 gave you milk to drink, not solid food; for you were not yet able to receive it. Indeed, even now you are not yet able,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γάλα ὑμᾶς ἐπότισα,
milk you I gave to drink
‘먹이고’(ἐπότισα)는 부정과거로서(I gave to drink) ‘먹였다’는 뜻으로 과거에 확실히 먹인 사실을 가리킵니다.
밥으로 아니 하였노니
οὐ βρῶμα·
not solid food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οὔπω γὰρ ἐδύνασθε.
not yet for you were able
직역하면 ‘왜냐하면 너희가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에서 동사(ἐδύνασθε)는 미완료 과거로서(you were able) 과거부터 현재까지 계속 감당하지 못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지금도 못하리라.
Ἀλλ’ οὐδὲ ἔτι νῦν δύνασθε,
but not still yet now you are able
‘못하리라’에서 동사(δύνασθε)는 현재형입니다(you are able).
1. <밥>에 해당하는 헬라어(βρῶμα)'는 원래 '고기'(meat)와 같이 성인이 먹는 ‘단단한 음식’(solid food)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히브리서 5장 12-14절에는 ‘젖’과 ‘단단한 식물’의 대조가 나옵니다.
히브리서 5:12.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예수 믿은 지가 오래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믿음이 어린 형제를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 할텐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στερεᾶς τροφῆς: solid food)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기는 초대교회 성도들은 모두가 은혜 속에서 능력이 충만한 줄 아는데, 아닙니다.
오늘 이 말씀을 볼 때, 초대교회에도 어린아이와 같은 신자가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5:13.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젖을 먹는 신자란 혼자 힘으로는 말씀을 깨닫아 신앙생활 하지 못하고, 목사의 설교나 장로님이나 권사님들이나 구역장의 도움을 받아야만 겨우 주일 성수하고, 신앙생활의 명목을 유지해나가는 성도를 말합니다.
설교를 들으면서도, 성경 말씀의 내용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체험 이야기나 예화나 이해하는 성도를 가리킵니다.
성경 말씀을 하면, 무슨 말인지 통 모르겠더라고 하면서 졸고, 예화 할 때면 다시 잠을 깨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장성한 성도는 설교 때 예화나 체험 이야기보다는 성경 말씀을 액면 그대로 풀이해주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히브리서 5:14.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장성한 신자는 두 가지를 할 수 있는 성도인데, 첫째는 단단한 식물을 먹는 것이고, 둘째는 연단을 받아 분별력(prudence)이 있는 성도라는 것입니다.
밥만 먹고 가만히 누워있는 사람은 아직도 어린아이이지, 가족에게 도움이 되는 제목이 못됩니다.
밥을 먹었으면, 가족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성인다운 사람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방언도 잘하고 신비한 체험도 많이 한 성도들이었으나, 아직도 다른 사람을 돕고 지도할 만한 성도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방언을 해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되게 무질서하게 행동했습니다
신령한 은사를 받았다고 하면서도, 예배의 질서도 안 지키고(고전 11장), 가정에서 남편도 무시하는 무례한 성도가 되었습니다(고전 11장).
뿐만 아니라, 신령한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 불신자보다도 더 악한 죄를 범하기도 했습니다( 고전 5:1).
또한, 자칭 신령한 성도라고 하면서, 물질에 욕심이 붙어서 서로 소송하고 싸웠습니다(고전 6장).
그리고, 신령한 성도라고 하면서, 다른 성도를 배려할 줄도 모르고, 우상의 제물도 마구 먹었습니다( 고전 8-10장).
또, 자칭 신령한 성도라고 하면서, 가정생활을 착실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고전 7장)
신앙이 어린 성도는 그저 다른 성도가 이끌어주어야만 겨우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신앙이 장성한 성도는 교회에서나 사회에서도 다른 사람을 도와주려고 합니다.
3절.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you are still fleshly. For since there is jealousy and strife among you, are you not fleshly, and are you not walking like mere men?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ἔτι γὰρ σαρκικοί ἐστε.
still for fleshly you are
직역하면 ‘왜냐하면 아직도 너희가 육신으로 있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여기 동사( ἐστε)는 현재형입니다(you are)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ὅπου γὰρ ἐν ὑμῖν ζῆλος καὶ ἔρις,
where for (are) among you jealousy and strife
직역하면 ‘왜냐하면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동사는 생략되어 있습니다.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οὐχὶ σαρκικοί ἐστε καὶ κατὰ ἄνθρωπον περιπατεῖτε;
not fleshly are you and according to man are you walking?
‘육신에 속하여’는 직역하면 ‘육신으로 너희가 있어서’란 뜻이고 동사(ἐστε)는 현재형(you are)입니다.
‘행함이 아니리요’는 직역하면 ‘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뜻이고, 동사(περιπατεῖτε)는 현재형으로서(you are walking) 현재 행하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1. 역시 ‘아직도’가 강조되어 있습니다(헬라어 원문에서 앞에 나오는 단어는 강조임: 믿은 지 5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본 절의 ‘육신에 속한 자’와 1절의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는 같은 내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시기>는 선의적 경쟁심리를 가리키기도 하나, 여기서는 악의적인 질투심을 가리킵니다.
<분쟁>은 마음속에 있는 시기심이 밖으로 표출되어 교인들끼리 파당을 짓고 싸우는 것을 가리킵니다.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한다>는 것은 `세속적인 마음을 가지고, 불신자처럼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4절.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when one says, "I am of Paul," and another, "I am of Apollos," are you not mere men?
어떤 이는 말하되
ὅταν γὰρ λέγῃ τις
when for might say one
‘말하되’(λέγῃ)는 현재 가정법 동사로서(might say) ‘말한다면’이란 뜻입니다.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Ἐγὼ μέν εἰμι Παύλου,
I indeed I am of Paul
‘나는’(Ἐγὼ: I)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다른 이는
ἕτερος δέ
another however
직역하면 ‘그러나 다른 이는’이란 뜻입니다.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Ἐγὼ Ἀπολλῶ,
I of Apollos
‘나는’(Ἐγὼ: I)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οὐκ ἄνθρωποί ἐστε;
not men you are?
동사(ἐστε)는 현재형입니다(you are).
여기서 ‘사람’(ἄνθρωποί)이란 ‘육신에 속한 사람’(σαρκίνοις: fleshly)을 가리킵니다.
Berean Literal Bible과 King James Bible과 New King James Version과 Literal Standard Version과 World English Bible과 Young's Literal Translation에는 ‘육신에 속한 사람’( fleshly),
Holman Christian Standard Bible에는 ‘비영적인 사람’( unspiritual people),
Aramaic Bible in Plain English에는 ‘육적인 사람’( carnal),
Good News Translation에는 ‘세속적인 사람’( worldly people),
New Living Translation에는 ‘세상에 속한 사람’( people of the world)이라고 번역했습니다.
1. 여기서 <사람>은 이상적인 인간이 아닌 육정적인 사람, 변화되지 않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란 말은 ‘너희가 아직도 변화되지 않은 세속적인 사람이 아니리요?'라는 뜻입니다.
5절.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at then is Apollos? And what is Paul? Servants through whom you believed, even as the Lord gave opportunity to each one.
아볼로는 무엇이며,
τί οὖν ἐστιν Ἀπολλῶς;
who then is Apollos?
직역하면 ’그러면 아볼로는 무엇이냐?‘는 뜻입니다.
동사(ἐστιν)는 현재형입니다(is).
바울은 무엇이냐?
τί δέ ἐστιν Παῦλος;
who then is Paul?
동사(ἐστιν)는 현재형입니다(is).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διάκονοι δι’ ὧν ἐπιστεύσατε,
servants through whom you believed
직역하면 ‘그들을 통해서 너희가 믿은 사역자들이다’는 뜻입니다.
‘너희가 믿은’(ἐπιστεύσατε)은 부정과거로서(you believed) 그들을 통해서 너희가 과거에 확실히 믿은 사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καὶ ἑκάστῳ ὡς ὁ Κύριος ἔδωκεν.
also to each as the Lord gave
직역하면 ‘주께서 각자에게 주신 대로’란 뜻입니다.
‘주신 대로’에서 동사(ἔδωκεν)는 부정과거로서(gave) 주님께서 과거에 분명히 주신 사실을 가리킵니다.
1. 고린도전서 16장 12절을 보면, 바울 사도나 목회자 아볼로는 이 고린도전서를 쓸 당시에 에베소에 함께 있으면서, 전혀 싸움이 없이 아주 좋은 관계 속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신앙이 미숙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지도자(바울이나 아볼로)의 이름을 내세우면서 파당을 이루며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적인 파당 운동은 목회자에게 큰 피해를 끼치는 일인 것입니다.
이것은 어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컨대, 가정에서도 자녀들이 ‘나는 엄마 편이다, 나는 아빠 편이다’ 하면서 싸운다면, 그 부모님들이 얼마나 속상하겠습니까?
직장이나 교회의 어느 기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느 구역에 속해 있는 구역원들끼리 서로 싸운다면, 구역장님이나 예배인도자가 구역예배로 모일 때마다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누구 편을 들겠습니까?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하 직원들끼리 싸우면, 그 직장의 상사는 일하기가 참 불편할 것입니다.
어느 일본인(이케하라 마모루: 池原守)이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인 비판>이란 책(1999년, 중앙M&B)에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 같은 나라에 비해 쓸데없이 싸우기를 좋아하고, 협동 정신이 부족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점을 주의하여, 서로 도와주며 사랑하는 일에 본을 보여야 하겠습니다.
6절.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 planted, Apollos watered, but God was causing the growth.
나는 심었고,
ἐγὼ ἐφύτευσα,
I I planted
‘나는’(ἐγὼ: I)이 강조되어 있고, ‘심었고’(ἐφύτευσα)는 부정과거로서(I planted) 과거에 분명히 심은 사실을 가리킵니다.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Ἀπολλῶς ἐπότισεν,
Apollos watered
‘물을 주었다’(ἐπότισεν)도 부정과거로서(watered) 과거에 분명히 물 준 사실을 가리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ἀλλὰ ὁ Θεὸς ηὔξανεν·
but the God kept growing
‘자라나게 하셨나니’(ηὔξανεν)는 미완료과거로서(kept growing) 계속 자라나게 하신 사실을 가리킵니다.
1. 바울 사도가 심었다는 것은 그가 AD 52년-53년 1년 6개월 동안 고린도에서 전도하여 고린도 교회를 설립한 사실을 말하고(행 18:1-18), 아볼로가 물을 주었다는 것은 사도 바울이 3차 전도 여행 시 에베소에서 본서를 기록한 때(55년경)까지 아볼로가 약 3년간 고린도 교회에서 말씀을 강론하면서 목양한 사실을 가리킵니다(행 18:24-19:1).
7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o then neither the one who plants nor the one who waters is anything, but God who causes the growth.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ὥστε οὔτε ὁ φυτεύων ἐστίν τι, οὔτε ὁ ποτίζων,
so neither the one planting is anything, nor the one watering
‘심는’(φυτεύων)은 현재분사로서(planting) 현재 심고 있는 것을 가리키고, ‘물 주는’(ποτίζων)도 현재분사로서(watering) 현재 물 주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아무 것도 아니로되’에서 동사(ἐστίν)는 현재형입니다(is).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
ἀλλ’ ὁ αὐξάνων Θεός.
but the One giving growth God
‘자라게 하시는’(αὐξάνων)도 현재분사로서(giving growth) 현재 자라게 하고 계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1. 아무리 고린도 교인들처럼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인이라도, 하나님께서는 훌륭한 신앙인으로 자라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나 목회자 아볼로 같은 주의 종들이 열심히 물주고, 돌볼 때,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사역을 통해서 어린 신앙인들을 어른처럼 성장시키신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겨우 주일 예배나 참석하던 새신자들도, 목사님을 통해서 말씀 듣고, 구역장님이나 예배인도자나 권찰님들을 통해서, 권면을 받고 계속 지도를 받으면, 언젠가 모르게 훌륭한 성도로 성장한 것을 봅니다.
그래서, 남편이나 자녀들도 교회에 데리고 나오고, 교회 행사에도 열심히 참석하고, 봉사도 하는 어엿한 일군으로 성장하는 오진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성도들의 신앙을 자라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복음의 씨앗을 심는 성도들이나, 말씀으로 물주는 교사나 예배인도자 등은 희망을 갖고, 열심히 심고 물 주는 일을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8절.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ow he who plants and he who waters are one; but each will receive his own reward according to his own labor.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ὁ φυτεύων δὲ καὶ ὁ ποτίζων, ἕν εἰσιν,
the one planting now and the one watering, one are
‘심는’(φυτεύων)도 현재분사로서(planting) 현재 심고 있는 것을 가리키고, ‘물 주는’(ποτίζων)도 현재분사로서(watering) 현재 물 주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맨 뒤의 동사(εἰσιν)는 현재형입니다(are).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ἕκαστος δὲ τὸν ἴδιον μισθὸν λήμψεται
each now the own reward will receive
직역하면 ‘각자가 자기 상을 받을 것이다’는 뜻입니다.
‘상을 받으리라’(λήμψεται)는 미래형입니다(will receive).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κατὰ τὸν ἴδιον κόπον.
according to the own labor
1. <한가지라>는 말은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일하는 한 팀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한가지라>는 말과 <각각>이라는 말이 대조를 이루면서 조화되고 있습니다.
즉, 교회의 어느 부서에서 일을 하든지, 다 주의 일군들로서 한 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각 부서들은 상부상조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주일학교도 유년부면 유년부만 중요하게 생각하지 말고, 초등부나 유치부와 잘 협조해야 교회학교 학생들의 지도가 더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각부 남녀 전도회도 마찬가지고, 각 구역과 지역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교회의 각 봉사자들은 한 팀이라는 정신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만 아니라, 다른 성도의 일도 돌아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충성한 데 대한 상급은 각각 일한 대로 받는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았기 때문에, 평생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해도 은혜를 갚을 길이 없지만, 좋으신 주님께서는 일하는 성도들에게 상급을 주시겠다고 누누이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2절에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빌립보 3장 14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고 했습니다.
9절.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we are God's fellow workers; you are God's field, God's building.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Θεοῦ γάρ ἐσμεν συνεργοί·
of God for we are fellow workers
직역하면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동역자들이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동사(ἐσμεν)는 현재형입니다(we are).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Θεοῦ γεώργιον,
of God field
하나님의 집이니라.
Θεοῦ οἰκοδομή ἐστε.
of God building you are
동사(ἐστε)는 현재형입니다(you are).
1. 바울과 아볼로가 하나님의 지도 아래서 일하는 동역자들이라는 것과, 바울과 아볼로 같은 사역자들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것입니다.
2.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원문상 <하나님의>(Θεοῦ: of God)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사람의 밭이나, 사람의 집이 아니고, 바로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교회를 단순히 사람의 모임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인 줄 알고 귀하게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3. 결론:
오늘은 고린도 교인들이 교회가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사도 바울이나 아볼로 같은 사람을 중심으로 당을 짓는 것이 잘못된 일임을 보았습니다.
물론, 가정에서 부모님의 위치나, 직장에서 상사의 위치나, 국가의 공직자들이나, 각 기관의 책임자들은 어떤 면에서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분들이고, 마땅히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단지, 오늘 성경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것은 각 기관에서 사람을 중심으로 당을 형성하여 쓸데없는 분쟁을 하거나, 이기적인 목적으로 싸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독재정치를 방지하고, 민주주의를 하기 위해서 정당을 만들고, 건설적인 정당정치를 하는 것은 올바른 일입니다.
심지어, 이기적이고 무익한 분쟁을 하지 말라고 교훈하고 있는 이 고린도전서에서도, 11장 19절에서는 “너희 중에 편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고 말씀하시면서, 건설적인 편당 활동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신앙의 정절을 위해서는 미신과 싸워야 하겠고, 진리를 따라가기 위해서도 죄악으로 이끄는 비진리와 싸워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에서는 어린아이처럼 육신의 정욕을 따라서, 분쟁하는 일을 하지 말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성경 유다서 1장에는 ‘당을 짓는 사람은 육에 속한 사람이며, 성령은 없는 자’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정욕대로 행하는 자들인데, 마지막 심판 때에 멸망을 받을 것이므로, 성도들은 경건하게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18-19절).
또한, 예레미야 17장에는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그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5-6절)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 하며, 가무는 해에고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 함 같으리라”고 했습니다(7-8절).
그러므로, 사람을 따라 당을 짓지 말고,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하나님과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시기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4.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은 연약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는 눈에 보이는 사람을 의지하여, 당을 짓고 싸우며 시기하기 쉬운 저희들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대로 주님만 의지하며 힘있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삶이 되게 하여 주시고, 저희들도 사명 잘 감당하여 복된 성도들이 되고, 몸 된 교회가 부흥되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3분설 문제에 대한 비판
┌ 육에 속한 사람(14) - 자연인
├ 신령한 자(15) - 영에 속한 사람?
└ 육신에 속한 자(3:1) -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 혼에 속한 사람?
┌─지방교회 -워치만 니, 영에 속한 사람과 혼에 속한 사람, 위트니스 리
└─구원파 - 구원의 도리 깨달은 사람은 영에 속했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하면서, 회개하는 내용이 들어 있는 주기도를 안 함
* 여러 교단들과 귀신론파도 이 3분설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통 교회는 2분설 혹은 1원설입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엄격한 3구분설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을 거듭나지 못한 육에 속한 사람, 거듭났어도 아직 육신에 속한 신자, 거듭났을 뿐만 아니라 영에 속한 신자를 구조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3구분설을 주장하는 단체는 소위 지방교회와 구원파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970년대에 이 3구분설이 판을 쳤는데, 그 때 가장 많이 읽힌 책이 ‘워치만 니’의 로마서 강해서인 ‘영에 속한 사람과 육에 속한 사람’이란 책이었습니다.
그때 신학계의 가장 큰 이슈는 바로 이 3구분설에 관한 비판이었습니다.
오늘날 이 ‘워치만 니’의 계승자는 ‘위트니스 리’이고, 바로 ‘위트니스 리’가 소위 지방교회라는 이단적 단체의 교조입니다.
구원파라는 이단도 바로 3구분설을 신봉하는 사람들인데, 예수 믿는 사람도 구원의 도리를 완전히 깨닫지 못하여 자꾸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는 육신에 속한 신자와, 구원파 신자들처럼 구원의 도리를 완전히 깨달아 신령한 세계에 속한 신자가 있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볼 때, 신령한 그리스도인과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은 원리적인 구분이지, 구조적인 구분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이미 거듭난 신자도 한때는 성령 충만할 때가 있지만, 또 다시 범죄하여 회개할 때도 있는 것이지, 한번 신령한 사람이 되었다고 다시는 한 번도 죄를 안 짓고 회개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구원파는 주기도문도 필요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대로 순간순간 짓는 죄는 회개하고 용서를 빌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근본적인 죄는 단번에 영원히 용서받았으나, 살아가면서 짓는 자범죄는 늘 회개하면서 성화 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지방교회에 한 번 빠지게 되면 헤어나오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내가 지금 영에 속한 생각을 하는가 아니면 육에 속한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늘 분석하고 다니기 때문에 정신 분열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과거에 서울대를 나오고 지금 ‘치유목회’ 사역을 하고 계신 김*수 목사님도 70년대에 이 3구분설의 지도자로 있다가 정신 분열로 고생을 하다가, 잘못된 것을 깨닫고 우리측 신학교로 돌아온 것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