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고 줄이고 절약하라
시골살이를 꿈꾸는 도시인의 걱정거리중 하나가 한 달에 생활비가 얼마나 들고 수입은 어떻게 만들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논밭 농사가 별로 돈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무수히 들어왔기에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속깊은 불안감이 자리하는 것 같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기에 귀농초부터 되도록 아끼고 덜쓰고 얻거나 서로 빌려쓰는 걸 원칙으로 했다. 부부간에도 결혼전부터 생필품외에 십만원 이상을 지출할 때는 서로 동의를 구하도록 해서 충동구매나 낭비를 예방했다.
그럼에도 농사 첫해에 호미와 낫을 비롯한 농기구와 자재값이 만만찮게 들었고 수입은 생각보다 적어서 연금 보험과 아이를 낳기 전부터 가입한 교육 보험 등을 해약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농사짓는 틈틈이 다른 농가에서 품도 팔고 잡지에 기고도 하며 부족한 생활비를 보탰다.
특히 상대적으로 큰 돈이 되는 차량과 경운기, 관리기 등 농기계는 중고로 시작하거나 낡아서 방치된 것을 얻어와 고쳐서 사용했는데, 경운기는 하늘이 노래지도록 크랭크 핸들을 돌려야 겨우 시동이 걸렸던 기억이 새롭다. 칠십만원을 주고 산 중고 더블캡 트럭도 정비 공장에 얼마나 자주 갔던지 나중에는 구내 식당에 농사지은 쌀을 납품하기도 했다.
덕분에 차량과 농기계의 기본 정비와 오일류를 손수 교환하는 것은 물론 차고와 농기계고를 지어 눈비를 맞히지 않는다. 중고 농기계를 사면 꼼꼼히 세척후에 방청 페인트와 마감 페인트를 두 번 칠하고 작동 부위에 수시로 윤활유를 발라 수명을 최대한 늘려 쓴다. 특히 사용 시간이 적은 이앙기와 콤바인은 중고를 공동 구매하여 지출을 억제하니 5대 농기계를 모두 보유했을 때도 이웃집 트랙터 구입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는 생활용품도 마찬가지여서 아이들에게 꼭 필요했던 피아노도 가족 여행을 겸해 부산에서 사왔고 그밖에 값이 좀 나가는 것들도 마찬가지였다. 꼭 필요한 것들은 서두르지 않고 충분히 검색을 해서 이른바 가성비가 최고의 것들을 골라 구매하는 식이었다.
부모가 이렇다 보니 아이들도 닮아가는지 한창 꾸미고 싶은 대학생임에도 신상이나 고급품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하기는 진작에 “대학 입학이후 드는 돈은 전부 갚아야 할 빚”으로 합의한 결과 두 아이 다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한다. 방학때에는 다음 학기의 생활비를 버느라 여념이 없다. 대학도 학비가 적은 국립대를 택해 부모의 걱정을 덜어준 반면에 학업도 소홀히 하지 않아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서는 걱정이 없다.
아직까지 한 번도 새 차를 산적이 없고 부부의 별명이 ‘재활용의 귀재’일 정도로 집안팎에 중고품이 넘쳐나지만 환경에 부담을 주는 신품에 대한 갈망같은 건 없다. 그 결과 빚 또한 없다. 어떤 이들은 “아이들에게 너무하는 것 같다”고 하지만 강제가 아닌 합의여서 사소한 불만도 듣지 못했다. 대신에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공부하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학습도, 진로도 모든 것은 스스로 해나가야 한다.
농사에 매진했던 오륙년전까지 도시인들이 한 달 수입을 물으면 ‘돈도 없지만 돈 쓸 시간도 없다’라며 버릇처럼 대답했듯이 우리 부부의 생활은 역동적이었다. 여행이나 휴식, 놀이보다는 귀농 후배들에게 시골살이를 안내하거나 무언가 도움을 주는데 무게중심을 두니 해마다 멘토링이나 인턴 신청 등이 이어져 결과적으로 농가 살림에도 적지않은 보탬이 되었다.
결국 도시든 시골이든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삶의 결이 달라진다. 시류에 따라 남들 하는 대로 가면 내 삶의 폭과 높이는 딱 그만큼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 또 일이 잘 안되면 예의 사회와 구조탓으로 돌리기 쉽다. 지금 농업, 농촌이 어려워진 상당한 사유는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하는 바가 크지만 긴호흡으로 시선을 조금 바꾸면 틈새와 나름의 해법이 보이기 마련이다.
그간 우리 부부는 절약과 재활용이라는 두가지 전략에 돈을 쓰지 않으면서도 아이들을 강인하게 키우는 방식으로 농가 살림을 꾸려왔다. 그리고 결론은 말하기에는 이른감이 있지만 아직까지는 지극히 유효했다고 자부한다.